1IMMANUEL 1136.jpg : 신약성경에 있어서 방언1IMMANUEL 1135.jpg : 신약성경에 있어서 방언

신약성경에 있어서 방언(1/2)

- 2:4,6 -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2:4, 6)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고전12:28)

 

 

1. 복음서

복음서 중에 방언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보이는 곳은 막16:17 뿐 이다. (어떤 사본에는 막16:9-20이 없다.) 그곳에는 믿는 자에게 따 르는 표적으로서 새 방언을 말하며라고 기록되어 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 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6:17)

 

2. 사도행전

2장의 성령강림의 기사에는 제자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외국어로 말하기를 시작했다고 받아들 일 수 있는 기술이 있다. (2:46)

일반적인 의미의 외국어로 말하기 시작했다고 해석하면 새 술이 취하였다.”(2:13)고 이해된 기술과 모순이 된다고 하여 고린도 교회의 경우와 동일한 방언 현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오순절 성령강림은 성령의 공적 부여이며(20:22), 새로운 성령시 대의 개시를 나타낸다.

인류의 언어가 혼란된 바벨탑의 기사와 대조적이며, 율법이 세계 의 모든 언어로 주어졌다는 전승과 대응하는 것 같이 기술되어 있다(2:8)고 지적된다.

중요한 점은 세계 선교와의 관계이다. 2:9-11에 기록된 나라들 의 일람표에도 나타난 것 같이 오순절의 성령강림은 그리스도인 과 교회에 맡겨진 세계 선교의 사명(1:8)과는 결코 끊을 수 없는 관계이다.

 

그 밖의 기술에 대하여

가이사랴의 경우(10:46)는 이방인에게 임한 성령강림이며, 사마 리아(8:17)나 에베소(19:6)에서의 성령강림도 각각의 지역이나 그룹에 성령의 최초의 도래를 나타내는 특별한 증거로서 의미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방언이 성령강림으로 성령충만을 받고 세례를 받은 자에게 있어 서 최초의 경험으로 필요 불가결한 것이라고 하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사도행전의 기술 가운데도 방언이 성령 세례받은 자에게 반드시 나타나는 최초의 경험이 아닌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지적되기도 한 다. (4:318:179:1718)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위의 사람들 이외에도 성령을 받을 때에 방 언으로 말을 했는가 하는 것은 직접 명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단정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방언은 사도적 메세지의 확인을 의도하는 표적의 은사이며, 이 은 사는 사도시대의 종결과 함께 끝났다고 하는 논증에 대해서도, 직 접 사도행전 만으로 그렇게 확정하는 것은 곤란하다.

 

 

* 현대 교회의 방언에 대한 언급

현대 교회의 방언 운동에는 많은 그릇된 방언들도 드러난다. 이런 방언들은 물론 금지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한편, 성경의 교훈(고전14)을 지키면서 참된 방언을 하는 운동이 있다면 그것을 반대하는 것은 조심할 일이다. 그 이유는, 방언이 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은사라고 성경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고전12:28, 본문)

 

그 뿐아니라, 성령에 의하여 방언하는 자는 그 은사로 말미암아 자 기 자신의 신앙에 유익을 받는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고전14: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 을 세우나니” (고전14:4)

 

 

 신약성경에 있어서 방언(2/2)

- 고전12-14-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고전12:28-29)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2:4, 6)

 

 

3. 고전12-14

바울 서신에 있어서 방언에 대한 언급의 대표적 구절은 성령의 은사에 대하여 기록한 고전12-14장이다.

 

고전12

이 장에는, 성령의 은사의 풍부한 다양성과 통일성 가운데 방언이 취급되고 있다.

그 배경으로서, 성령으로 인한 생활을 오해한 고린도 교회의 열광 적인 사람들이 방언을 은사 중에 최고의 것이라고 자랑하는 경향 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경향에 대하여, 바울은 은사의 다양성을 강조하면서, 방언 은 성령의 은사들 중에 하나 라고 한다. (12:28

누구라도 영적인 사람은 방언을 해야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하나 님의 주권적인 인도를 강조하면서 반론을 제기한다. (12:2930

 

고전13

이 장에는, 서로의 사랑에 결핍함이 있었다고 생각되는 고린도 교회 의 사람들(고전8:1-3)에게, 성령의 인도와 다스림으로 인하여 이 땅 에서 참 영적으로 사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주 예수로 말미암아 분명하게 나타난 사랑으로 사는 것이야말로, 성령의 은사를 가지고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불가결한 것이 며, 성령의 은사와 성령의 열매(5:22, 23)의 깊은 관계가 암시하 고 있다.

  바울이 지적하여 말하는 사랑과 성령의 은사는 서로 대립하는 것 이 아니다. 그리스도와 산 결합 가운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교 회의 풍부한 생활, 생애의 전체상 가운데에서, 바울은 방언이 차 지하는 위치를 말하고 있다.

바울은,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 을 하려고 하라.” (고전14:1)고 요약하고 있다.

 

고전14

이 장에는, 방언의 성질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방언은 외국어가 아니라(14:2), 신비적인 언어 표현이다고 하는 견 해가 있는 반면, 어떤 이들은 다른 구절(14:10)을 들어 그것을 반 대한다.

모든 경우에 해석이 필요하다. 방언은 해석 없이는 이해하기 어렵 다.(14:27-28)

특히 교회 밖의 사람들로부터 방언을 둘러사고 오해를 받기 쉽다. 14:21-23

방언의 불가해성을 불신자를 위한 표적으로서, 또 구약 예언의 성 취로서 받아 들이고 있다. (14:21, 28:1112

바울은 이 불가해성 때문에 교회가 비판을 받고 있는 사실을 인 정하고 있다. (고전14:23)

방언과 예언은 명백히 구별되며, 방언은 자기 덕을 세우고, 예언 은 교회의 덕을 세운다고 하고 있다.(고전14:4)

바울은 자신이 방언의 은사를 받고 있는 것을 인정하면서(14:8),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일을 중요시 하고(14:5, 12, 17, 26), 교회의 질 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14:39, 40)과 같이 하라고 당부한다.

 

 

4. 그 밖의 서신

방언에 대한 언급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로 의견이 나누어지는 구절은, 8:265:193:162:4 등이 있다.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 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5:19)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 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2: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 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