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에 있어서 방언(1/2)
- 행2:4,6 -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행2:4, 6) |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고전12:28)
1. 복음서
⑴ 복음서 중에 방언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보이는 곳은 막16:17 뿐 이다. (어떤 사본에는 막16:9-20이 없다.) 그곳에는 믿는 자에게 따 르는 표적으로서 “새 방언을 말하며”라고 기록되어 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 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막16:17)
2. 사도행전
⑴ 행2장의 성령강림의 기사에는 제자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외국어로 말하기를 시작했다고 받아들 일 수 있는 기술이 있다. (행2:4,6)
① 일반적인 의미의 외국어로 말하기 시작했다고 해석하면 “새 술이 취하였다.”(행2:13)고 이해된 기술과 모순이 된다고 하여 고린도 교회의 경우와 동일한 방언 현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② 오순절 성령강림은 성령의 공적 부여이며(요20:22), 새로운 성령시 대의 개시를 나타낸다.
③ 인류의 언어가 혼란된 바벨탑의 기사와 대조적이며, 율법이 세계 의 모든 언어로 주어졌다는 전승과 대응하는 것 같이 기술되어 있다(행2:8)고 지적된다.
④ 중요한 점은 세계 선교와의 관계이다. 행2:9-11에 기록된 나라들 의 일람표에도 나타난 것 같이 오순절의 성령강림은 그리스도인 과 교회에 맡겨진 세계 선교의 사명(행1:8)과는 결코 끊을 수 없는 관계이다.
⑵ 그 밖의 기술에 대하여
① 가이사랴의 경우(행10:46)는 이방인에게 임한 성령강림이며, 사마 리아(행8:17)나 에베소(행19:6)에서의 성령강림도 각각의 지역이나 그룹에 성령의 최초의 도래를 나타내는 특별한 증거로서 의미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② 방언이 성령강림으로 성령충만을 받고 세례를 받은 자에게 있어 서 최초의 경험으로 필요 불가결한 것이라고 하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③ 사도행전의 기술 가운데도 방언이 성령 세례받은 자에게 반드시 나타나는 최초의 경험이 아닌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지적되기도 한 다. (행4:31,8:17,9:17,18)
④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위의 사람들 이외에도 성령을 받을 때에 방 언으로 말을 했는가 하는 것은 직접 명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단정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⑤ 방언은 사도적 메세지의 확인을 의도하는 표적의 은사이며, 이 은 사는 사도시대의 종결과 함께 끝났다고 하는 논증에 대해서도, 직 접 사도행전 만으로 그렇게 확정하는 것은 곤란하다.
* 현대 교회의 방언에 대한 언급
⑴ 현대 교회의 방언 운동에는 많은 그릇된 방언들도 드러난다. 이런 방언들은 물론 금지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⑵ 한편, 성경의 교훈(고전14장)을 지키면서 참된 방언을 하는 운동이 있다면 그것을 반대하는 것은 조심할 일이다. 그 이유는, 방언이 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은사라고 성경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고전12:28, 본문)
⑶ 그 뿐아니라, 성령에 의하여 방언하는 자는 그 은사로 말미암아 자 기 자신의 신앙에 유익을 받는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고전14: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 을 세우나니” (고전14:4)
신약성경에 있어서 방언(2/2)
- 고전12-14장 -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고전12:28-29) |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행2:4, 6)
3. 고전12-14장
바울 서신에 있어서 방언에 대한 언급의 대표적 구절은 “성령의 은사” 에 대하여 기록한 고전12-14장이다.
⑴ 고전12장
이 장에는, 성령의 은사의 풍부한 다양성과 통일성 가운데 방언이 취급되고 있다.
① 그 배경으로서, 성령으로 인한 생활을 오해한 고린도 교회의 열광 적인 사람들이 방언을 은사 중에 최고의 것이라고 자랑하는 경향 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② 이러한 경향에 대하여, 바울은 은사의 다양성을 강조하면서, 방언 은 성령의 은사들 중에 하나 라고 한다. (12:28)
③ 누구라도 영적인 사람은 방언을 해야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하나 님의 주권적인 인도를 강조하면서 반론을 제기한다. (12:29,30)
⑵ 고전13장
이 장에는, 서로의 사랑에 결핍함이 있었다고 생각되는 고린도 교회 의 사람들(고전8:1-3)에게, 성령의 인도와 다스림으로 인하여 이 땅 에서 참 영적으로 사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① 주 예수로 말미암아 분명하게 나타난 사랑으로 사는 것이야말로, 성령의 은사를 가지고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불가결한 것이 며, 성령의 은사와 성령의 열매(갈5:22, 23)의 깊은 관계가 암시하 고 있다.
② 바울이 지적하여 말하는 사랑과 성령의 은사는 서로 대립하는 것 이 아니다. 그리스도와 산 결합 가운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교 회의 풍부한 생활, 생애의 전체상 가운데에서, 바울은 방언이 차 지하는 위치를 말하고 있다.
③ 바울은,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 을 하려고 하라.” (고전14:1)고 요약하고 있다.
⑶ 고전14장
이 장에는, 방언의 성질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① 방언은 외국어가 아니라(14:2), 신비적인 언어 표현이다고 하는 견 해가 있는 반면, 어떤 이들은 다른 구절(14:10)을 들어 그것을 반 대한다.
② 모든 경우에 해석이 필요하다. 방언은 해석 없이는 이해하기 어렵 다.(14:27-28)
③ 특히 교회 밖의 사람들로부터 방언을 둘러사고 오해를 받기 쉽다. (14:21-23)
④ 방언의 불가해성을 불신자를 위한 표적으로서, 또 구약 예언의 성 취로서 받아 들이고 있다. (14:21, 사28:11,12)
⑤ 바울은 이 불가해성 때문에 교회가 비판을 받고 있는 사실을 인 정하고 있다. (고전14:23)
⑥ 방언과 예언은 명백히 구별되며, 방언은 자기 덕을 세우고, 예언 은 교회의 덕을 세운다고 하고 있다.(고전14:4)
⑦ 바울은 자신이 방언의 은사를 받고 있는 것을 인정하면서(14:8),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일을 중요시 하고(14:5, 12, 17, 26), 교회의 질 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14:39, 40)과 같이 하라고 당부한다.
4. 그 밖의 서신
방언에 대한 언급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로 의견이 나누어지는 구절은, 롬8:26,엡5:19,골3:16,히2:4 등이 있다.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 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엡5:19)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 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골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히2: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 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