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구속자가 살아계심”(1740년 설교)


- 영어 원 제목은 “I Know My Redeemer Lives" 이다.
- 욥기 19장 25절을 본문으로 하고 있다.


  이 설교는 휫필드가 떠난 직후의 설교이다. 에드워즈는 이 설교를 다른 지역에서도 적어도 3번이상 설교했다. 이 설교는 휫필드가 성도는 완전한 구원을 확신할 수 있다고 한 주장을 반복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휫필드와 차이점이 있는데 그것은 신자들이 구원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오랜 기간의 ‘거룩한 열매’의 나타남과 실천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결코 어떤 절대적인 구원의 확신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한다.

Ⅰ. 본문 관찰


  욥은 이 말을 통해 자신의 친구들이 자신을 위선자요 악인이라고 비난하는 것을 책망하려고 하는 듯 보인다. 욥은 이 말을 하기 전에 자신의 말이 철필과 연으로 영영히 돌에 새겨지기를 바란다(19:24)고 했다. 이는 자신의 말이 종말에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자신의 말과 친구들의 말 중에 누가 옳은지를 판단하실 때까지 영영이 기록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욥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욥의 말은 성령의 인도로 책에 기록되었고, 욥의 구속자가 종말에 이 땅에 임하시고, 벌레에게 먹혔던 욥의 육체가 다시 부활하여 욥이 육체를 입고 친히 하나님을 보게 될 때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Ⅱ. 교리(Doctirne)


  “자신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환경에 있든지 큰 위로와 기쁨을 얻게 된다.”

1. 자신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말 속에 내포된 것은 무엇인가?


1) 그리스도가 구속자이시며 구세주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또한 이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며, 성경에 기록된 구원의 길이 생명의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을 내포한다.

2) 본문의 신앙고백 속에 담긴 또 다른 지식은 그리스도가 살아 계시다는 것에 대한 지식이다. 이것은 다음의 네 가지를 의미한다.
  (1)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을 의미한다.

  욥 시대에는 그리스도가 우상과 다른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의미하고, 복음 시대에는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살아 계시다는 것을 의미한다.


  (2) 그리스도가 생명의 창조주이시며 원천으로서 충분한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을 의미한다.

   거짓 신들은 귀머거리 우상들이며 생명 없는 막대기와 돌맹이에 불과하므로 거짓 신들을 믿는 자들은 도울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는 자들을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살아계신 구세주이기 때문에 충분한 구세주이시다.


  (3) 그리스도께서 구세주로서 신실하시며 불변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을 의미한다.

  욥은 변하기 쉬운 존재이다. 욥은 이미 큰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욥의 구속자는 변하지 않는다. 욥에게는 이것이 큰 위로이다.


  (4) 그리스도가 영원한 구세주이시며, 그리스도는 영원히 살아계셔서, 그리스도의 능력과 자비와 진리는 영원할 것을 알고 있음을 의미한다.

  욥에게 있어 자신은 죽고 벌레에게 먹힐 것이지만 욥의 구속자는 결코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 계신다는 것이 위로와 기쁨이었다.

3)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속자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며 영광스러운 분이시라는 것뿐 아니라 모든 영광을 가지신 그리스도가 우리 것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또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신다는 것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살아 계심을 알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믿는 자들에게 그처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복을 약속하셨다는 것뿐 아니라 그 약속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며 그 영광이 우리에게 임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이 같은 신앙고백을 했을 때, 이것이 어떻게 모든 상황에서 위로와 기쁨이 되는가?


1)이런 신앙 고백은 모든 상황에서 위로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합리적인 근거다.

부유하든지 가난하든지 간에 욥이 본문에서 말하는 것처럼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기뻐할 이유가 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이 누리는 삶의 편안함과 안락함을 누리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질병으로 고통하고 많은 날을 곤고하게 산다 해도, 누군가와 사별하게 되었든지, 자신의 죄를 생각하고, 자기 마음이 치명적으로 부패해있다는 것을 알게 되든지, 살고 있는 마을이나 도시가 치명적인 질병이나 불행한 전쟁의 재난에 휩싸이게 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구속자가 살아 계심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기쁨과 평강을 누릴 수 있다.


2) 만일 어떤 사람이 ‘나는 구속자가 살아 계심을 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위로의 근거가 될 뿐 아니라 실제로 모든 상황에서 위로와 기쁨을 줄 것이다.

믿음이 있을 때 믿음은 분명히 영혼에 위로와 즐거움을 준다. 그리고 어떤 환경도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서 기쁨을 빼앗아 가지 못한다. 이런 확신은 다음의 네 가지를 근거로 한다.
  (1) ‘나는 구속자가 살아 계심을 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가 모든 것보다 뛰어나신 분임을 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구속자가 바로 자신의 구속자이라는 것을 안다. 그것은 무엇이 부족하든지 간에 틀림없이 위로를 줄 것이다. 


  (2) ‘나의 구속자가 살아계심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구속자가 무엇보다 뛰어나시며,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안다.

   만일 그가 마귀의 세력에 공격을 받고 있다든지,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고 폭풍 한가운데 있다든지,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구속자가 그것들보다 강하다는 것을 안다. 


  (3) ‘나의 구속자가 살아계심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모든 고통 속에서도 구속자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자신이 역경 가운데 있을 때 여인이 자기 젖먹이 어린아이를 돌보는 것보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더 잘 돌보심을 알며, 자신이 그리스도의 손바닥에 새겨져 있음을 알며, 자신이 모든 고통을 받을 때 그리스도께서도 함께 고통을 받으신다는 것을 안다. 이것은 온갖 고통 가운데 있을 때 가장 격려와 위로가 되는 생각이다.


  (4)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심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구속자가 자기에게 한 약속을 이루어 주실 것을 안다.

  자신의 구속자는 결코 자신을 버리지 않으며 끝까지 신실하실 것을 안다. 그 누구도 자신을 그리스도의 손에서 빼앗아 갈 자가 없음을 안다.

Ⅲ. 적용(Use)


 1. 이것은 그리스도 없는 사람이 아주 비참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처럼 구속자를 많이 필요로 하는 상태에 있다. 마귀의 손아귀에 잡혀 있는 불쌍한 포로이다. 그런데 구속자에 대한 관심이 없다. 구속자가 없이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할 때 무엇이 여러분을 위로해 줄 수 있는가? 만일 여러분이 현재 겉으로 보기에 잘되고 있는 것 때문에 어떤 위로를 받고 있다면 여러분의 기쁨은 그릇된 것이다.

2. 이 교리는 멸망할 수 밖에 없는 구속자를 의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해 준다.
그리스도가 아닌 사람을 의지하는 사람이나 자신의 의를 의지하는 사람은 죽음이 찾아올 때 아무런 소망이 없다.

3. 욥과 같이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다는 것을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권면이 있다.
1)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에 대한 관심이 있으나 아직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있다면, 많은 측면에서 여러분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누릴 수 있는 유익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기뻐할 수 없고, 그리스도로 인한 위로를 얻지 못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 그래서 참되고 경건한 많은 성도가 큰 두려움과 슬픔 가운데 삶을 살며, 임종의 자리에서도 많은 슬픔과 두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구속자가 되어 주기를 바랐으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구속자라고 확신하지는 못했다.


2) 그리스도께서 나의 구속자가 되신다는 확신은 사람들이 시간과 정력을 들여 얻고자 추구하는 일시적인 좋은 것들보다 훨씬 더 여러분에게 위로를 줄 것이다.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다는 것을 안다’는 고백을 할 수 있다면 여러분의 창고에 쌓여 있는 가장 좋은 것보다 더욱 큰 위로를 얻게 된다. 그것이 여러분이 죽을 때 자녀들에게 남겨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재산이 될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고백을 얻기 위해서 일시적인 좋은 것을 얻기 위해 행하는 수고보다 더 큰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3) 이런 확신은 여러분의 영혼에 최선의 위로를 줄 뿐 아니라 매우 유익하다.

  확신은 여러분에게 큰 힘을 불어 넣어 주어 유혹을 잘 대처하게 하고, 용기를 주어 힘든 의무를 잘 감당하게 한다. 만일 여러분이 하늘에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구속자이며, 여러분의 보재라는 사실을 안다면 이런 지식은 여러분의 천국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지식은 여러분의 마음을 천국으로 향하도록 해 주며, 여기 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4) 이것은 수많은 하나님의 성도가 얻었던 특권이다.

  욥과 같이 다윗도 시편에서 종종 확신에 대한 신앙고백을 한다(시 16:5). 사도 바울도 이런 고백을 했다(딤후 1:12, 4:7-8).


 5) 이것은 소수만이 얻을 수 있는 특권이 아니다. 합당한 수단을 사용하면 모든 성도가 통상적으로 이 특권을 얻을 수 있다.

  확신은 부지런히 추구하는 모든 성도들을 위해 예비하신 하나님의 상급이다.

이런 확신을 얻기 위해서 사용해야 할 수단은 무엇인가?

  (1) 장애물을 제거해야 한다.

  하나님에 대해서나, 집에서나 밖에서나, 혼자 하거나 함께 하거나, 하나님의 집에서 하거나 다른 곳에서 하거나 간에 온갖 죄에 대해 가장 철저하고 엄격하게 감시해야 한다. 


 (2) 은혜가 적은 상태여서는 안 된다.

  은혜를 아주 약하게 받으면 은혜를 누리는지 그렇지 않은지 충분히 확실할 수 없다. 은혜가 더욱 강하고 활발하게 역사하면 모든 면에서 확신을 촉진시켜 준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 간절히 노력해야 한다.
  여러분은 믿음이 강하고 활발하게 역사하기를 추구해야 한다.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자라기를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겸손과 심령의 가난함을 추구해야 한다(이와 같은 은혜는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을 가장 확실하게 보증해 준다). 


 (3) 거룩한 열매를 풍성하게 맺어야 한다.

  거룩한 일 특히 구제와 자기 점검의 일은 하나님이 자신의 임재를 나타내며 자신의 사랑과 은혜를 베푸시는 특별한 표로 주시는 상급인 경향이 있다.


 (4) 자구 그리고 엄격하게 자신을 점검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상태를 모른다.

   그 이유는 자신을 점검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도는 자주 자신을 점검해야 한다. 신실하게 자기를 점검하며 자기 마음을 살피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성령 충만을 구해야 한다. 그래서 자기 마음의 거짓된 용기와 기만을 피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며, 하나님이 살피시고 시험하셔서 영원한 길로 인도해 주시기를 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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