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비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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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절: 마태복음 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 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3가지 천국 비유를 통해 천국에 대해 입체적으로 설명해주십니다. 여기서 천국은 장차 우리가 들어갈 미래적인 하늘나라가 아니라 현재 이 세상에서, 교회에서, 또 우리 마음 가운데 존재하는 천국을 말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천국의 본질과 가치를 깨닫고 천국을 소유하는 자 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 가라지 비유(24-43)

 

24절에서 예수님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주인이 제 밭에 좋은 씨를 뿌렸으니 얼마나 애지중지 키우며 열매에 대한 기대가 컸겠습니까? 좋은 씨를 뿌렸다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는 본질적으로 선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씨가 좋기 때문에 좋은 열매 맺을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잘 때에 원수가 와서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기 때문입니다. 가라지는 깜북이가 있는 독보리로서 그 모습이 보리나 밀과 비슷하여 이삭이 패기까지는 구별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가라지는 독이 있기 때문에 모르고 먹으면 설사 구토와 함께 나중에는 사망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원수가 가라지를 뿌린 것은 하나님의 선한 역사를 방해하고 궁극적으로는 생명을 빼앗기 위함이었습니다. 싹이 나고 결실할 때가 되자 드디어 가라지도 보였습니다. 그러자 종들이 주인에게 와서 물었습니다.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27) 이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선하게 창조하셨는데 악이 도대체 어디서 생겨났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이에 대해 주인이 대답하였습니다.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그러자 종들은 "우리가 가서 가라지를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물었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의외로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여 추수 때까지 가만 두라고 하였습니다. 가라지는 곡식보다 뿌리를 깊고 넓게 내려서 가라지를 뽑으면 곡식까지 상하게 할 위험 때문입니다. 그러나 추수 때에는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고 곡식은 모아 곳간에 들이게 될 것입니다.

 

36-43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비유의 뜻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좋은 씨를 뿌리는 자'는 예수님, ''은 세상,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 곧 하나님의 백성,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 '원수'는 사단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을 가리킵니다. 가라지를 거두어 불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인자가 천사들을 보내어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풀무불에 던져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라 하셨습니다. 반면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게 될 것이라는 분명한 결론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라지 비유를 통해 세상은 의인과 악인이 공존한다는 것, 하나님의 선한 역사가 있는가 하면 또 마귀의 역사가 있음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세상은 선과 악, 빛과 어두움, 아브라함의 후손과 롯의 후손들이 항상 공존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세상을 선하게 창조하셨는데 악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습니까? 우리도 이 세상에 악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악의 기원에 대해 여러 가지 나름대로 이론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악의 기원에 대해 원수가 이렇게 하였다고 분명하게 가르쳐주십니다. 마귀는 사단으로서 본래 하나님의 피조물인 아름다운 천사였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교만해져 자기 지위를 지키지 못하고 하나님을 대적함으로 쫓겨난 타락한 천사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원수로서 하나님을 반역하고 대적합니다. 또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반역하고 대적하도록 부추깁니다. 선과 악은 교회 내에도 함께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생명구원역사가 있는가 하면 사단이 심어 놓은 인본주의 역사가 있고,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통해 생명을 살리는 역사가 있는가 하면 십자가 없이 편안하고 즐기는 세속주의의 세력이 침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초기에는 곡식과 가라지를 구별하기 어렵듯이 복음신앙과 인본주의 신앙을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둘 다 훌륭한 신자요 하나님의 백성 같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복음 신앙은 의와 생명의 열매를 맺게 하지만 십자가를 지지 않고 은혜만 따먹는 가라지 역사는 하나님의 백성을 병들여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고난과 십자가를 외면하는 인본주의, 세속주의 세력은 분명히 사단이 덧뿌리고 간 가라지 역사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고,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핵심으로 하는 하나님 중심의 순수 복음주의에 대항하여 은혜와 사랑, 자유를 빙자하여 인간 중심의 세속적인 가라지 신앙을 뿌려놓습니다. 고난과 십자가 없는 부활의 영광, 이는 분명 듣기에는 좋아 보이지만 그 열매는 죽음이요 심판입니다.

 

또한 가라지 비유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악인에 대한 심판을 유보하신다는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우리는 의인은 하는 일마다 잘되고 악인은 하는 일마다 안되고 망하게 되어 하나님의 공의가 만 천하에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오히려 악인은 세상에서 득세하고 잘 나가는데 의인은 핍박받고 무시받고 손해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은 점점 믿음의 사람이 살기에 힘들게 되어 가고 있습니다. 가라지가 뿌리를 깊이 내려 생존력이 강하듯이 악인이 세상에 깊이 뿌리내리고 친화력이 있어 믿음의 사람들보다 훨씬 잘 나갈 때가 많습니다. 이런 세상을 볼 때 하나님은 왜 악을 그냥 내버려두시는가?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과연 사랑하시는가? 하나님의 선하심과 절대적인 사랑을 의심하고 의롭게 사는 삶에 대해 회의를 품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악인에 대해 당장 심판을 하지 않으시는 것은 어디까지나 택한 백성을 보호하시기 위함입니다. 주인이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을 다치게 하는 것을 원치 않듯이 하나님은 악을 심판하는 과정에서 택한 백성이 상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지극한 사랑으로 악인의 심판을 유보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악인을 당장에 심판하지 않는다고 해서 심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심판을 유보한다는 것뿐입니다. 악인들은 최후에 받을 심판을 차곡차곡 쌓고 있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끝 날에 악인을 심판하시고 의인에게는 상급을 주십니다. 그 심판은 공정하고 무섭고 철저하고, 의인들에게 임할 영광은 장엄한 것입니다. 악인들은 꺼지지 않는 풀무불에서 영원히 고통하며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됩니다. 그러나 의인들은 이 땅에서 악인으로 인해 많은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지만 믿음의 연단을 받아 결국에는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영원토록 빛나게 될 것입니다. 한편 하나님은 가라지 역사를 통해 어떤 세상 세력에 대해서도 준수하게 믿음을 지키도록 믿음의 사람들을 연단하셔서 강한 믿음의 사람으로 키워주십니다. 우리가 고난 가운데서도 끝까지 의롭게 살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악을 언제까지나 그냥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이를 볼 때 복음의 일군으로 부르심 받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를 섬겨야 하는 것입니까? 가리지를 뽑고자 열심을 내기보다 곡식을 가꾸고 의의 역사를 이루는데 힘써야 할 것입니다. 개혁이나 조건개선을 이루고자 힘쓰기보다 모든 것을 살아 계신 하나님의 공의에 맡기고 말씀의 열매를 맺기에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인본주의, 세속주의를 심는 사단의 역사를 대적하여 순수복음 신앙의 열매를 맺고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 여름 곡식 역사를 땀 흘려 섬기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 겨자씨와 누룩 비유(31-35)

 

31,32절을 보십시오.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겨자씨 한 알은 참새 한 끼 간식거리도 되지 않는 극히 작은 것입니다. 그러나 밭에 심으면 그 작은 씨가 1-3m 높이의 큰 나무로 자라 피곤하고 지친 새들이 찾아와 가지에 깃들어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겨자씨 비유는 하나님 역사의 시작은 작고 미미하지만 그 안에 생명이 있어 인류 역사를 바꾸어 놓을 만큼 크게 자란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겨자씨 한 알과 같이 죽은 자와 방불한 시골 할아버지에 불과하였지만 그 속에 믿음의 씨가 심겨졌을 때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게 되었습니다.(11:12)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도 겨자씨 한 알과 같이 보잘것없는 무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들을 복음의 밭에 심었을 때 점점 자라나 마침내 온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큰 나무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세계선교의 불타는 환상 가운데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가서 셋집에서 일대일 역사를 감당하였습니다. 이 일대일 역사는 당시에는 겨자씨 한 알과 같이 있으나 마나한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셋집 일대일 역사는 생명력이 있어 점점 자라나 마침내 AD 313년에 거대한 로마를 정복하였습니다. UBF 역사도 처음에는 지극히 작고 미미하여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말씀의 생명이 점점 자라나 40년이 지난 오늘날 본국과 세계 각처에 놀라운 생명 구원역사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 비유가 제자들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은 로마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에 살면서 자기들도 크고 힘 있는 역사를 섬기기를 동경하였을 것입니다. 큰 성전에서 화려한 까운을 입고 많은 양들을 거느린 대 목자가 될 날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럴 때 귀신들린 한 사람을 섬길 수 없었고, 불쌍한 무리들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겨자씨 한 알과 같이 작고 보잘것없는 것에서 서서히 성장하기 때문에 믿음과 인내심을 가지고 가꾸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한 알의 겨자씨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을 작다고 무시하는데 있습니다. 한 알의 겨자씨를 무시하지 않고 땅에 심을 때 싹이 나고 자라 큰 나무가 되듯이 하나님의 역사는 한 팀의 일대일, 한 사람의 제자양성을 무시하지 않고 감당할 때 그것이 자라 큰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2041년까지 십만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기도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역사가 이루어지려면 한 팀의 일대일과 한 번의 기도를 무시하지 않고 땀 흘려 밭에 심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겨자씨의 위력을 영접하고 겸손히 섬기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나 한 사람이 겨자씨와 같이 자라나 큰 나무가 될 것을 믿읍시다. 시들시들한 내 양 한 사람이 이 시대에 거목으로 성장하게 될 것을 믿고 기도합시다. 이제 우리는 겨자씨를 무시하는 교만한 마음을 회개하고 영적인 눈을 가지고 겨자씨 역사를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침 저녁 내가 드린 작은 기도를 받으시고 그 생명을 자라게 하실 것을 믿고 한번의 기도와 한번의 심방에 충성하기를 기도합니다. 어찌하든 한 말씀을 주고자 총력을 기울여서 하나님의 생명역사에 쓰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33절을 보십시오.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겨자씨 비유가 외적 성장을 말해준다면 누룩 비유는 내적 영향력을 말해줍니다. 누룩은 적은 양만 있어도 밀가루 반죽 전체를 부풀게 하는 놀라운 팽창력을 가졌습니다. 누룩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내면세계에 침투하여 큰 영향력을 끼칩니다. 복음역사는 소수라 해도 영향력에 의해 움직여집니다. 천국복음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가정과 캠퍼스와 국가와 직장에 침투해 들어가 큰 영향력을 미칩니다. 복음이 들어가는 곳마다 내면이 변화되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베드로는 누가복음 5장에서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려 예수님을 만난 후 제자의 인생을 살고 인류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의 택한 그릇으로 삼으신 주님의 음성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원수노릇하던데서 위대한 사도의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한 말씀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고 시대를 바꾸어 놓는 위대한 역사를 누리게 되는 것은 모두 누룩의 역사입니다. 내가 속한 세상에 나 한 사람의 믿음의 영향력이 그 사회를 변화시키게 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신시네티 UBF의 토니 싸이 목자는 젊지만 P&G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들 모두를 일대일 양으로 삼고 있습니다. 나 한 사람이 내가 속한 가정과 사회와 모임에서 누룩이 되어 가루 서말 전체를 부풀게 하는 영향력 있는 종이 되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시편 72:2절을 이루려 하심입니다.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 전부터 감추인 것을 드러내리라" 예수님은 어찌하든지 인생들에게 천국 비밀을 가르치시고자 알기 쉬운 비유로 자세히 가르쳐주셨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감추어진 천국 비밀을 알게 하시고자 말씀 공부로 초대하시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씀의 깊은 세계에 나가도록 도우십니다. 우리가 이 영적인 은혜와 복을 겸손히 감당하는 자 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 보화 비유(44-52)

 

44절을 보십시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옛날에는 지금처럼 보화를 보관할 수 있는 은행이 없었기 때문에 부자들이 보화를 숨겨둘 곳이 따로 없어 개인적으로 보관해야 했습니다. 이웃 나라와의 잦은 전쟁이나 강도의 출현으로 집은 재물을 보관하기에 안전하지 못해 보화를 궤 속에 넣어 아무도 몰래 밭에 깊이 묻었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이를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갑작스럽게 죽는 경우 어떤 농부가 그 밭을 갈다가 쟁기에 무엇이 덜커덩 걸려서 발견되었습니다. 캐보니 속에 진주, 다이아몬드, 남보석, 비취, 정금 등 수 많은 보석들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농부는 얼른 궤를 땅에 묻고는 그 밭을 사기 위해 집도 팔고, 소도 팔고, 주식도 팔고, 모든 소유를 다 팔았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더운 여름 밖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더니 더위를 먹은 것이 아닌가 이상히 여겼습니다. 그러나 농부는 보화를 발견하였기에 남들이 무엇이라고 하든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고 그 밭을 기쁨으로 샀습니다.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다고 하십니다.(45) 보석 장사의 소원은 가장 값진 진주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는 극히 값진 진주를 구할 수만 있다면 어디든지 가고, 어떤 대가도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가 더운 여름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고 찾아다니다가 마침내 극히 값진 진주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즉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습니다.

 

이상 두 가지 비유가 천국에 대해 가르쳐주는 바가 무엇입니까?

첫째, 천국은 모든 소유를 다 팔아 사야 할 만큼 최고의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감추인 보화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이는 현상 세계는 중히 여기고 얻고자 하지만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는 가볍게 여깁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의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각종 보화가 들어 있는 말씀의 세계입니다. 죄로 인해 멸망당하고 심판에 이를 죄인에게 구원을 주는 지혜보다 더 귀한 보화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는 구원에 이르는 지혜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것과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는 지식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천국이 보화와 같다고 할 때 이 보화는 말씀의 핵심인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는 세상의 어떤 보화와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귀한 보화입니다. 골로새서 2:3절은 말씀합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예수님 안에는 죄사함이 있고, 영생이 있고, 용서의 사랑이 있고, 참 만족과 평안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이르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시는 진정한 보화이십니다.

 

둘째, 천국은 간절히 찾고 구하는 자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나 극히 값진 진주는 아무나 그냥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의 보화 되신 예수님을 얻기 위해 우리의 시간과 물질과 젊음을 팔아야 하고, 세상에서 귀하게 여기는 나의 보화를 다 팔아야 합니다. 이는 천국의 가치를 알고 이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투자하는 자가 천국을 소유하게 됨을 말해줍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세상의 보화가 많았습니다. 그는 당대의 최고 학자였고, 율법으로는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으로서 영적인 열심이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의 의로는 흠 잡을 데가 없는 완전한 자였습니다. 그는 육체를 자랑하고 신뢰할 만큼 자아 완성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발견하였을 때 그는 자기에게 유익하던 것을 다 배설물로 여기고 세상의 보화를 다 팔아 그리스도를 샀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 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발견한 사람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자기의 소유를 기쁨으로 팝니다. 모세나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랬습니다. Mother Sarah Barry선교사님은 그리스도를 위해 미시시피의 공주의 세상 특권과 결혼의 꿈을 팔았습니다. 김요셉 목자님도 그리스도를 위해 이곳의 안정된 평신도 목자의 삶을 팔고 미국 선교사의 고난의 길을 가고자 합니다.

 

사람들은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세상 보화를 추구합니다. 세상의 명예와 권세와 부와 인정을 얻기 위해 목숨 바쳐 투쟁합니다. 그러나 세상 보화는 얻고 나면 잠시 뿐 우리에게 진정한 만족과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영혼을 멸망에서 구원해주지 못합니다. 세상 보화는 우리에게 생의 의미와 목적을 주지 못하고 우리 영혼을 구원해주지 못합니다. 세상 보화는 결국 썩고 쇠하고 더러워집니다. 그러나 천국 보화는 영원토록 진정한 만족과 행복을 줍니다. 우리가 세상의 모든 것을 얻었다할지라도 천국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에는 세상 보화와 천국 보화 둘 다 동시에 얻고자 무섭게 투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 보화를 팔아 하늘 보화를 사라고 하십니다. 천국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팔아야 살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보화입니다. 세상에서 누리는 잠시의 유익보다 영원한 보화를 위해 세상 보화를 팔 수 있는 진정으로 지혜 있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47-50절에서 예수님은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다고 하십니다. 그물이 가득하게 되면 물가로 끌어내어 앉아서 좋은 것은 그물에 담고 못된 것은 다시 물에 넣어버립니다. 세상 끝에도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어 거기서 이를 갊이 있게 됩니다. 이 비유는 가라지 비유와 비슷하지만 심판에 강조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가라지 비유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각종 물고기를 모은 그물은 교회를 의미합니다. 교회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사람들은 교회에 들어오기만 하면 구원받은 줄로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최후 심판의 날에 믿음으로 산 의인만이 구원을 받고, 믿음으로 살지 않고 세상 풍조를 따라 자행자지한 자들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당장 심판이 없다고 육체의 욕심을 따라 마음대로 살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평소에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비유를 말씀하신 후 제자들에게,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물으시자 제자들은 "그러하외다"고 응답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제자들이 성경선생으로서 어느 정도 수준이 되어야 하는가를 말씀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52)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이란 천국을 전하는 성경선생이란 뜻입니다. 옛것은 구약성경을, 새것은 신약성경을 가리킵니다. 천국의 서기관은 말씀을 깨달은 후에는 구약과 신약 성경을 자유자제로 증거할 수 있는 유능한 천국 복음 전파자가 되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옛것을 고수하다보면 새것을 무시하기 쉽고, 새것에 집착하다보면 옛것을 가볍게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구약과 신약을 다 사랑하고 이를 자유자제로 찾아 전할 수 있는 위대한 성경선생이 되어야 합니다. 대학생 성경읽기에 있는 우리가 평소에 성경을 다독하여 말씀에 익숙한 종들로 성장하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천국 보화는 어느 특정인의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무조건 주어지지도 않습니다. 천국 보화는 누구나 얻을 수 있지만 그 가치를 알고 모든 것을 팔아 사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의 눈을 밝히사 천국 보화를 소유하는 종들이 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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