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효도/ 요19:25-27 <메츄핸리 주석>

 

예수는 죽음에 임하여서도 그의 어머니를 부양할 대책을 세우셨다. 그녀의 남편인 요셉은 오래 전에 죽었고 그녀의 아들 예수가 그녀를 부양해 왔던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그녀의 생계를 유지하는 데는 예수가 꼭 필요하였다. 그런데 그가 죽음에 처해지게 되었으니 그녀의 심정이 어떠하였겠는가? 예수는 곁에 서 있는 그녀를 보고 그녀의 염려와 슬픔을 아셨다. 그리고 그는 요한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것도 보았다. 그들을 보고 예수는 그의 사랑하는 어머니와 사랑하는 제자 사이에 새로운 인연을 맺어 줄 것을 결정하셨다. 그리하여 그는 그녀에게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저가 아들이 되었으니 이후로는 그에게 모성애를 베풀어 주십시요"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요한에게는 "보라 네 어머니라. 그러니 그녀에게 자식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었다." 본문의 내용 중 다음 사실들을 고찰하여 보자.

 

(1) 그리스도께서 그의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베푼 배려. 그는 그의 친구들을 모두 잊어버릴 정도로 고통에 대한 의식에 사로잡혀 계시지는 아니하셨다. 그는 그에게 베푼 그들의 염려를 그의 마음에 두고 계셨다. 어쩌면 그의 어머니는 그가 당하는 고통에 마음이 아픈 나머지 앞으로 그녀가 어떻게 될 것인가는 생각조차 못하셨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그 생각을 할 여유가 있으시었다. 그는 은이나 금을 남겨 놓으신 것도 아니었고 재산이라든가 후손을 남기시지도 아니하셨다. 그의 옷은 병사들이 빼앗아 버렸고 돈을 맡고 있었던 유다가 자살을 한 후 그가 지녔던 전대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전하여진 바가 없다. 그러므로 예수는 그의 어머니를 친구에게 의탁하는 것 이외에 그녀를 돌볼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는 본문에서 이 일을 이루시었다.

 

[1] 그는 그녀를 어머니라 부르지 않고 "여인"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그녀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이미 슬픔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고 있는 그녀에게 어머니란 말이 더 큰 상처를 주지나 않을까 염려해서였다. 마치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아버지"라고 불렀을 때 그가 상처를 입었듯이 말이다. 그는 이제 이 세상에는 더 이상 있지 아니할 사람으로 이 세상에서 그에게 귀하게 여겨졌던 모든 것에 대하여 이미 죽은 사람처럼 말씀하였다. 그가 그의 어머니에게 외견상 냉담한 어조로 말씀하신 것은 그가 전에도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천주교가 그녀에게 부여한 당치도 않은 숭배를 예견하시고 이를 미연에 방지하고 저지하시려고 시도하신 말씀으로 보여 진다. 그런데 천주교도들은 그녀가 구속자의 영예를 누림에 있어서 예수와 함께 대가를 지불한 자인 것처럼 여기고 있다.

 

[2] 그는 그녀에게 요한을 그녀의 아들로 생각하라고 당부하신다. 그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보세요. 저기 당신 곁에 서 있는 자가 바로 당신의 아들입니다. 그에게 어머니가 되십시오." 다음 사실들을 고찰하자.

 

첫째, 하나님의 선하심의 실례를 여기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는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 사실이다.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한 위로를 빼앗아 가실 때, 우리가 전혀 기대하지도 않던 곳에서 다른 위로를 우리를 위하여 마련하신다. 우리는 교회가 자녀들을 잃고 난 후 다른 자녀들을 얻게 될 것에 대한 말씀을 알고 있다(49:12). 그러므로 한 번 고인 물이 말라버렸다고 물이 영영 없어진 것으로 생각지 말게 하자. 왜냐하면 같은 샘의 근원에서 다른 물이 흘러 그곳을 채울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가족 부양의 의무에 대한 실례를 여기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는 우리가 본받을 사실이다. 본문에서 그리스도는 자녀들에게 그들의 힘이 다하기까지 연로한 부모들을 편안하게 부양해 드릴 것을 가르치셨다. 다윗도 환난 중에 있을 때 그의 부모들을 보살폈으며 그들을 위하여 안식처를 제공하였다(삼상 22:3). 본문에 보면 다윗의 자손인 예수도 그렇게 하셨다. 자녀들은 아직도 부모들이 살아 있어 그들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데 자신은 죽음을 앞에 맞이하게 되면 자신의 능력에 따라 양친을 부양할 대책을 세워두어야 한다.

 

(2) 사랑하는 제자에 대한 그의 신뢰. 그가 "보라, 네 어머니라"고 하신 말씀은 바로 그에게 하신 말씀이었다. "내가 그녀를 너에게 부탁하니 그녀의 아들처럼 그녀를 보살펴 달라는 말이다"(51:18). 그리고 "그녀가 연로하게 되었을 때도 그녀를 버리지 말라"(23:22)고 한다.

 

[1] 예수께서 이런 부탁을 하신 것은 요한에게는 영광이었다. 이것은 요한이 사려가 깊고 신실하다는 증거였다. 만일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 요한이 그를 사랑하는 것을 염두에 두시지 않았다면, 그를 자기 모친의 후견인으로 삼지는 않았으리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기용되고 세상에서 그를 위한 무슨 일이 부과된다는 것은 최대의 영예이다.

 

[2] 그러나 그것은 또한 요한에게 염려와 책임의식을 가지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일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로써 당할 곤란이나 경비, 자기의 가족도 돌보아야 할 자기의 책임 또 이 일로 인하여 초래될 가정의 불만도 개의하지 않는다. 참으로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에게 사랑받는 자들은 그나 그에게 속한 분을 위하여 섬길 수 있는 기회가 허용되면 이를 기뻐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한 교회사(Nicephoras's Eccl, Hist, lib, ii, cap. 3)는 동정녀 마리아가 요한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11년 간을 산 다음 죽었다고 한다. 또 다른 재료들에 의하면 그녀는 요한과 함께 에베소를 이사하기까지 살아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