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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종교 사회의 기독교 자세
황성철 목사(전 총신대 신대원 교수·포이메닉스 연구소 소장)
▲ 황성철 목사
우리 사회는 여러 종교가 서로 공존하는 다원주의적 사회이다. 이런 사회에서 종종 문제가 되는 것은 종교 간의 갈등이다. 얼마 전 한 기독교단체의 회원들이 일명 ‘봉은사 땅밟기’라는 동영상을 만들어 유포한 일이 있었다. 이 일에 대해 불교계가 심한 불쾌감을 드러냈던 것은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당연했다. 물론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매우 성숙치 못한 행동’이었다는 꾸짖음이 많았다. 다행히도 당사자들이 현장을 찾아가 사과함으로 일단락되었지만 이 사건은 종교 간의 상생과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 우리 모두의 사회적 문제인지를 다시 한 번 일깨워주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물음을 하게 된다. “다종교사회 속에서 기독교는 어떻게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타종교와 상생할 수 있을까?” 기독교는 그 본질상 배타적이고 편향적이다. 종교 가운데 유일하게 구원관을 말하는 기독교는 인간 구원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길이 없다고 주장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2) 아버지께 갈자가 없다고 선을 긋는다. 우리 기독교 정체성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유일성은 어떤 명분에서도 양보할 수 없고 타협할 수 없는 기독교의 절대가치이다.
따라서 기독교는 교리상 타종교와 늘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으며, 그들에 대해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혹자는 타종교와의 공존과 상생을 위해서는 기독교의 가치체계와 고유한 정체성은 포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에 우리는 동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기독교의 가치관과 특수성을 타종교와 평균화시키려는 보편주의 또는 획일주의로의 유도이기 때문이다. 종교 간의 진정한 공생은 종교적 특수성과 정체성의 포기가 아닌 상호인정과 존중에 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어울러 사는 연습이 잘 되어 있지 않다. 일상의 삶 속에서 수없이 많은 그들과의 만남이 있지만 막상 타종교와의 문제가 공식적으로 거론되거나 이야기될 때면 그것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훈련이 부족하다. 그래서 무엇보다 먼저 우리 기독교는 종교 간에 서로의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관용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 이 사회 안에는 여러 종교의 신봉자들이 공존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그들의 사고와 삶의 방식, 종교관을 이해하고 대화하려는 균형 잡힌 태도를 학습해야 한다.
기독교는 타종교와의 관계에서 본질의 문제에 있어서는 배타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비본질의 문제에 있어서는 수용하고 상생하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기독교의 절대가치와 정체성을 견지하면서도 다른 종교와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하도록 노력하고 협조할 수 있는 일에는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예컨대 사회의 도덕성을 회복한다든지 자선과 구제에 있어서 범국민적인 참여가 필요할 때 우리 기독교가 종교를 초월하여 나서서 돕는 일은 타종교를 인정하고 대화하려는 소통적 태도로서 성숙한 우리의 모습이다.
끝으로 봉은사에 대한 일은 매우 잘못된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을 죄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기독교 교리를 다룸에 있어서 지혜롭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이 보여준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들의 행동이 비난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그러나 그들이 무슨 악한 의도를 가지고 저지른 일이 아니고 다만 선교적 열정으로 행한 일이기에 우리는 그들의 미숙한 신앙을 이해하고 보듬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신앙적으로 사려 깊지 못했던 이들의 행동을 빌미삼아 우리 안에 소모적인 논쟁을 갖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다종교 사회 안에서 예수 구원의 유일성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고 바로 지금이 그 때다.
출처: 기독신문 / 2010.11.23
황성철 목사(전 총신대 신대원 교수·포이메닉스 연구소 소장)
▲ 황성철 목사
우리 사회는 여러 종교가 서로 공존하는 다원주의적 사회이다. 이런 사회에서 종종 문제가 되는 것은 종교 간의 갈등이다. 얼마 전 한 기독교단체의 회원들이 일명 ‘봉은사 땅밟기’라는 동영상을 만들어 유포한 일이 있었다. 이 일에 대해 불교계가 심한 불쾌감을 드러냈던 것은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당연했다. 물론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매우 성숙치 못한 행동’이었다는 꾸짖음이 많았다. 다행히도 당사자들이 현장을 찾아가 사과함으로 일단락되었지만 이 사건은 종교 간의 상생과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 우리 모두의 사회적 문제인지를 다시 한 번 일깨워주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물음을 하게 된다. “다종교사회 속에서 기독교는 어떻게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타종교와 상생할 수 있을까?” 기독교는 그 본질상 배타적이고 편향적이다. 종교 가운데 유일하게 구원관을 말하는 기독교는 인간 구원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길이 없다고 주장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2) 아버지께 갈자가 없다고 선을 긋는다. 우리 기독교 정체성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유일성은 어떤 명분에서도 양보할 수 없고 타협할 수 없는 기독교의 절대가치이다.
따라서 기독교는 교리상 타종교와 늘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으며, 그들에 대해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혹자는 타종교와의 공존과 상생을 위해서는 기독교의 가치체계와 고유한 정체성은 포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에 우리는 동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기독교의 가치관과 특수성을 타종교와 평균화시키려는 보편주의 또는 획일주의로의 유도이기 때문이다. 종교 간의 진정한 공생은 종교적 특수성과 정체성의 포기가 아닌 상호인정과 존중에 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어울러 사는 연습이 잘 되어 있지 않다. 일상의 삶 속에서 수없이 많은 그들과의 만남이 있지만 막상 타종교와의 문제가 공식적으로 거론되거나 이야기될 때면 그것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훈련이 부족하다. 그래서 무엇보다 먼저 우리 기독교는 종교 간에 서로의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관용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 이 사회 안에는 여러 종교의 신봉자들이 공존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그들의 사고와 삶의 방식, 종교관을 이해하고 대화하려는 균형 잡힌 태도를 학습해야 한다.
기독교는 타종교와의 관계에서 본질의 문제에 있어서는 배타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비본질의 문제에 있어서는 수용하고 상생하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기독교의 절대가치와 정체성을 견지하면서도 다른 종교와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하도록 노력하고 협조할 수 있는 일에는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예컨대 사회의 도덕성을 회복한다든지 자선과 구제에 있어서 범국민적인 참여가 필요할 때 우리 기독교가 종교를 초월하여 나서서 돕는 일은 타종교를 인정하고 대화하려는 소통적 태도로서 성숙한 우리의 모습이다.
끝으로 봉은사에 대한 일은 매우 잘못된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을 죄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기독교 교리를 다룸에 있어서 지혜롭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이 보여준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들의 행동이 비난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그러나 그들이 무슨 악한 의도를 가지고 저지른 일이 아니고 다만 선교적 열정으로 행한 일이기에 우리는 그들의 미숙한 신앙을 이해하고 보듬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신앙적으로 사려 깊지 못했던 이들의 행동을 빌미삼아 우리 안에 소모적인 논쟁을 갖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다종교 사회 안에서 예수 구원의 유일성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고 바로 지금이 그 때다.
출처: 기독신문 / 2010.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