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심하지 아니하며

- 고린도서후서 4:7~10 -

샬롬선교회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서언.

 

+ 우리 주변에는 용기를 잃고 모든 것을 내던져 버리고 싶은 현실이 참으로 많을 것이다. 기복이 심하고 비참한 생각에 빠져 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리고 이 실망낙담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오히려 이 실망낙담은 성공한 사람마저도 덮친다. 높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거기에서 떨어졌을 때의 낙차가 커진다.

사도 바울도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고린도후서 1:8)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무엇 때문에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며'라고 하는가? 본문에는 그 이유가 적혀있다.

 

1. 우리는 이 '보배'를 질그릇에 넣고 있다

 

+ 질그릇과 그 안에 있는 보배

우리는 바울이 말한 대로 '질그릇'이라는 것이다. 이 경우 '질그릇'은 복수로 '흙으로 만든 수많은 그릇'이다. 그 그릇(복수)'보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보배'('-사우로스'θησαυρός)는 단수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향기', '그리스도의 편지'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복음'혹은 '메시아의 복음', '천국 복음'이라고도 바꿔 말할 수가 있지만, '보배'의 의미를 문맥에 따라서 살펴보자.

 

[고린도후서 4:5~6] 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라는 표현 속에 예수님 안에 하나님을 본다는 위대한 사상이 언급되고 있다. 예수님이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다'(14:9)라고 한 것처럼, 여기에서 바울은 예수님을 항상 바라보면, 거기에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들에게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이야말로 질그릇의 '보배'라고 하는 것이다.

 

+ 질그릇 안에 있는 '보배'가 가진 힘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측량할 수 없는, 남다른, 절대적인, 탁월한' 것이다. 그러므로 8절에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또한 9절에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가 되는 것이다.

 

2. 바울의 '우리는 낙심하지 않는다'라는 선언의 근거

 

[고린도후서 4:1]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 '그러므로''그런 이유로'라는 의미이다. 그 이유는 2, 3장에 기록되어 있는 바울에게 주어진 봉사('디아코니아'διακονία)의 직분 때문이다. 2장에서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직분', 3 장에서 고린도교회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편지를 쓰는 직분'이라고 했다.

이 직분은 받은 자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라고 말했다.

 

+ '낙심하지 않는다.'(= '용기를 잃지 않는다.', '실망낙담하지 않는다.', '피곤하여 싫어하지 않는다.")라는 표현은 신약에 6번 사용되고 있지만, 누가복음 181절을 제외하고 모두 바울의 특애용어이다. 바울은 '우리는 낙심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이유를 밝혔다.

 

+ 바울의 '우리는 낙심하지 않는다'(16)라는 선언의 근거, 그것은 어디 있는가?

[고린도후서 4:14-15] 14.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15.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 바울은 고린도 교회 사람들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 격려 할 수가 있는 것을 감사하고 있다. 그 믿음은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알고 있다'는 믿음이다.

 

++ 바울은 세 가지 믿음에서 '우리는 낙심하지 않는다.'라고 격려하고 있다.

 

(1)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라는 믿음

= 우리의 신체적, 육체적 성장이라는 것은 20세 이전에 피크를 지난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의 뇌 세포는 어떨까? 아무리 사용해도 5퍼센트 정도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나이가 들면 신체의 여러 부분에 고장이 나오고, 지금까지 할 수 있었던 것도 조금씩 할 수 없게 되어 간다. 그러나 '속사람'은 어떨까? 쇠퇴, 멸망하지 않고, 오히려 '날마다 새롭게 된다'는 것이다. '속사람''보배' 그 자체인 '그리스도'를 말한다.

[에베소서 3: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사도 바울의 기도)

 

(2) '잠시 받는 가벼운 환난은,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영원한 영광을 이루게 한다'라는 믿음

= "속사람"에게 역사하는 성령에 의해서도 우리는 강하게 되고 있지만, 동시에 고난을 통해서도, 우리의 신앙을 성장시킬 수 있고, 우리에게 '크고 영원한 영광'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 우리의 "속사람"인 예수님 자신도 사람으로부터 조롱받고, 침을 뱉음을 당하고, 거부되고, 상처를 당하면서도, 우리를 위해 영원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이다.

[로마 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3)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 눈을 고정한다.'는 믿음

= 우리가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서는 '보이지 않는 것'에 눈길을 멈추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결언.

 

+ 우리가 질그릇에 가진 '보배',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게 하고',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이루게 하고', '보이지 않는 것에 눈길이 멈추게 하고'있다.

[고린도후서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