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위로의 하나님

고린도후서 1:3-7

 

3.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우리의 모든 환난(고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5.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6.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7.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고린도후서 1:3-7)

 

서언

 

마음의 고통은 자기가 알고, 마음의 즐거움도 타인이 참예하지 못하느니라(14:10)”라고 했다. 누구든지 자기만이 아는 고통(고난)을 가지고 있다. 그 고통(고난)을 해결할 수 있는 참된 위로를 찾는다면 참으로 복되고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것에서 위로를 찾는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고난 중에 모두 특유한 위로(하나님의 위로)를 받는다.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119:50).

 

1. 모든 위로의 하나님


(1) '위로'라는 어휘

+ 본문 3~7'위로하다' '위로'라는 말이 반복되고 있다. 헬라어로는 동사 '파라칼레오-'(παρακακαλέω)가 4. 명사 '파라카레-시스'(παράκλησις)6회이다.


+ 히브리어로 하면 동사 '위로하다''-'(נָחַם), 명사 '위로''네하--'(נֶחָמָה)이다. 특히 '-'(נָחַם)의 첫 구절은 창세기 529절이다.

[창세기 529] [그가] 이름을 노아(위로)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위로)하리라 하였더라.

- []는 노아의 아버지 라멕으로,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위로)하리라"라고 말하며, 자신의 아이를 '노아'(נֹחַ)]라고 이름 지었다. '노아''위로'의 존재이다.

 

(2) '위로'

+ 라멕은 아버지 므두셀라를 통해 하나님의 심판이 곧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람의 죄악이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여, 그 심판을 면할 수 없는 것을 안 라멕은 자신의 아들을 '노아'(위로)라고 이름을 지었다. 왜냐하면 거기에 하나님의 위로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라멕이 자신의 아들의 이름을 '노아'라고 지은 것은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라고, 실낱같은 희망을 아들 안에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의 구원을 고대하던 나이 많은 시므온이 예루살렘에서 어린 예수를 안았을 때(누가 2:28-35), 그곳에서 구원의 전모를 본 것과 비슷하다. 즉 라멕은 지상의 환경이 포학으로 가득 차 있어도 거기에 하나님의 위로를 대망하는 신앙을 가진 사람의 대표라고 할 수 있다.

 

2. 고난과 위로


(1) '고난'을 견디어 내는 힘

+ '위로''고난'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의 위로를 고대하던 시므온이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누가 2:34~35)라고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했듯이, '위로'란 어려움이나 고난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용기를 주어 이에 맞서게 하는 것, 고난을 견뎌내는 힘(고린도후서 1:6)을 의미한다.

 

+ 바울이 '위로'라는 어휘를 많이 사용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고난을 겪으면서도 이겨내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건 그가 사도로서 부름을 받은 것과도 관련이 있다.

[사도행전 9:15~16] 15.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 이 예수님의 말씀은 다메섹에 사는 예수님의 제자인 아나니아를 통하여 바울(그 당시는 '사울'이라고 불렸다)이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를 보여준다고 한다. 사도로 택함을 받은 것은 예수님을 위해 고통을 받는 것이다. 그것이 사도로서의 징표라고 바울은 이해하고 있었다. 고난 없는 사도의 직무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가짜 사도와의 차이점이다.

 

(2) 위로의 연쇄

+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한 바울은 위로의 연쇄='자신에서 우리로, 우리에서 모든 이들에게'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고린도후서 1:4] - 본문 -

 

결언

 

환난 중에 사도들을 위로하신 하나님께서는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우리에게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다.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하다”(7)는 말씀은 이 세상에서 '우리(사도)들과 같이 너희(성도)들에게는 때때로 고난이 있으나, 하나님의 모든 위로도 확실히 있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


+ 이사야서 40장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로 시작한다. 원문은 '나함- 나함- 암미-' (נַחֲמוּ נַחַמוּ עַמִּי)이다. 그리고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라고 계속된다


+ 40장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위로가 있다.

'해방자에 의한 위로':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2).

'목자의 위로': "그는 목자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11).

'창조자의 위로':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26).

'영원자에 의한 위로':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2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