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상권.1-03]
- 요한일서4:14~16 -
[요서한일4:14~16] “14.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 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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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생을 얻게 하는 복음은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세상의 구주로 보내셨다는 것이다.
[요한복음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누구든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하고 고백하면 하나님께서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할 것이다. 이것이 구원이다. 죄인이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성경의 가장 기본적 진리이다.
[요한복음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로마서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은 오늘날의 사회를 빙자하여 “교제는 있으나 진정한 우정은 없다. 사랑이란 말은 있으나 거기에 결혼이란 없다. 직업은 있으나 소명감은 없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사랑이라는 말을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없다는 말로 이해하게 된다. 그러면 우리들이 알고 믿고 행하는 참된 사랑은 어떠한 것인가?
1. 사랑이란 무엇인가?
⑴ 사랑은 하나님의 본성이다. =본문,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요한일서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 사랑('אהבה'ahava/Hebrew Morden역)은 신구약성경의 121절(요한일서와 요한이서의 15절)에 기록되어 있다.
2.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나는가?
⑴ 하나님의 사랑은 자연을 통하여 나타난다.
*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고 심히 좋아하셨다. 곧 하나님은 그 지으신 모든 것에 하나님의 사랑과 정성을 담으신 것이리라.
[창세기1:31~2:1]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⑵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났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다.
[로마서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끝까지 보호하여 주신다.
[요한복음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베드로전서1: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 하나님은 때를 따라 우리들의 부족을 다 채워 주신다.
[시편34:9-10] "9.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10.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야고보서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 하나님은 우리들에 대하여 오래 참으신다.
[베드로후서3:9] “...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3.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⑴ 주의 계명(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한다.
[요한복음14: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 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한일서2: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⑵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
[요한일서4:11-12]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요한복음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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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은 것은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안 것이요 믿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이시다.
참 신앙은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하고 실천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함의 실천은 참 신앙의 증거일 뿐만 아니라, 구원의 증거 즉 하나님과의 연합의 증거가 되는 것이다.
* 어떤 주석가가 전하여 준 말이다.
『사랑의 사도라고 불리는 요한이 거의 백세가 되어 거동을 하지 못하여 의자채로 강단에 앞에 두면 “부모들은 서로 사랑하라. 형제들은 서로 사랑하라. 자매들은 서로 사랑하라.”라는 말로 일관했다. 그 때 어떤 이가 “왜 사랑하라는 말씀만 하십니까?”라고 물었을 때 요한은 “이것만이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해주신 계명이다. 그리고 이것만하면 다 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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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긍휼
- 누가복음 1:67-75 -
샬롬선교회
[누가복음 1:67-75] 67. 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하여 이르되 68.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69.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70.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71.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
72.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73.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라. 74. 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 75.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서언
[누가복음 1:49-50] "49.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50.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누가복음 1:77-78] "77.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78.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 마리아의 찬양에 2회, 사가랴의 찬양에서 "긍휼"로 번역된 '에레오스'ελεος라는 명사를 3회(신약성경에는 27회) 사용하고 있습니다.
본문강해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입이 열린 후에 성령이 충만하여 예언하였습니다.
[67-71절]
+ 찬송은 하나님의 하신 일을 알고, 그의 은혜를 체험한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찬송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이며, 기도이며,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간증입니다. 사가랴의 찬송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보셔서 구원의 뿔을 그의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구약성경에 기록된 메시아 예언의 성취를 가리킵니다(예레미야 23:5-6; 에스겔 34:23-24; 호세아 3:5; 이사야 11:10 등). 뿔은 능력의 상징입니다. ‘구원의 뿔’이란 ‘능력의 구주’라는 뜻입니다.
[72-75절]
+ 구약과 신약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구원의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구원의 이유는 우리 자신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의 긍휼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과 맹세로 은혜를 자기 백성들에게 보이시며, 긍휼을 자기 백성들에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 '긍휼'('에레오스'ελεος)과 '은혜'('카리스'χαρις)의 차이.
신약성경에서 '은혜'와 '긍휼'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어에서는 '은혜'는 grace로 번역되고, '긍휼'은 일반적으로 mercy로 번역됩니다. 성경 중에는 그 의미를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는 부분은 없지만, 동사로 “긍휼히 여겨 주소서”라고 예수님께 탄원하고 있는 곳에서는 반드시 구체적인 하나님의 행위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가복음 17:11 이후에, 10명의 문둥병자가 예수님께 "소리를 높여", "긍휼히 여겨 주소서"라고 탄원했을 때, 그 병이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다음 장 18:35에 한 맹인이 예수님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긍휼히) 여기소서"라고 큰 소리로 외쳤을 때, 예수님께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하시니 그가 원하는 대로 되었습니다. 즉 예수님의 긍휼로 인하여 그 맹인의 눈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긍휼'의 행위에 의해 나타난 하나님의 호의, 사랑을 '은혜'('카리스' χαρις)라고 하는 것입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긍휼의 출처, 혹은 근원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동기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인간은 구체적인 하나님의 긍휼을 경험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의 궁극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십자가와 부활에 의한 구원의 사건입니다. 그 구원을 이루는 배경에는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일방적인, 보답을 요구하지 않는 호의(사랑)가 있는 것입니다. '은혜'는 사랑('아가페' αγαπη)과 거의 동의어입니다.
+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하나님의 긍휼'로 주시는 '구원의 목적'은 '하나님의 평안'을 얻어 평생토록 하나님 앞에서 거룩과 의로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 '은혜'와 '긍휼'과 '평안'의 관계 ; 바울의 인사에서
사도 바울이 편지의 인사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라는 형식(로마서, 고린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서, 디도서, 빌레몬서)입니다. 사도 베드로의 편지에서도 그 형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디모데에게의 편지에서 바울은 분명히 의식하면서 사랑하는 제자의 디모데에게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찌어다.”라고 적었습니다. 그것은 디모데가 목회적인 의무에 대한 어떤 나약함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으로, 바울은 자신을 예로 들면서 자신도 본래는 그런 의무 같은 것이 주어질 리 없는 자, 더 이상의 죄인은 없다고 생각되어도 어쩔 수 없는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런 자신을 용서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복음의 의무를 기대해주셨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긍휼로 인하여, 이제 자신이 이런 봉사를 하고 있음을 말하면서 디모데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몸에 실제로 행하신 하나님의 긍휼을 깊이 생각나게 하면서 사랑하는 제자를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와 긍휼과 평안이 있기를 원하노라”라고 인사하고 있습니다.
+ '은혜'와 '긍휼'과 '평안'의 관계 :
'은혜'는 우리에 대한 일방적인 하나님의 호의, 동기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하나님의 '은혜'가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행동으로 드러난 사건입니다, 그리고 '평안'은 히브리적 색채가 강한 샬롬에서 오는 것이며, 하나님의 축복의 총칭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 가지는 항상 순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편에서는 '은혜'에서 출발하여 '긍휼'의 일을 하고 '평안'('평화'도 같은 원어)이라는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만, 인간 측에서 말한다면, '긍휼'과 '평안'을 경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를 보다 깊게 알게 되는 순서가 됩니다. 혹은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써 하나님께 대담하게 '하나님의 긍휼'을 구할 수 있으며, 그 결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결언
+ 구원의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뿐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 속에는 구원받을 아무런 의(義)도, 조건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아니고서는 세상에 구원받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아야 마땅했던 죄인들이 구원받는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밖에 없습니다.
+ 구원의 목표는 빛과 평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돋는 해로 오셨습니다. 그 빛은 참된 지식과 의와 기쁨과 생명이며,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는 빛입니다. 이제 구원받은 자들은 영원히 하나님 앞에서 거룩과 의로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섬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