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 새사람

 

에베소서4장

[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생각]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구원받은 성도들은 이제부터 이방인들처럼 행하지 말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구원받지 못한 이방인들의 특징들을 증거한다.

 

첫째로, 이방인들은 그 생각의 허망한 것으로 행하고 있다. 이방인들은 참으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허무한 것을 생각하고 있다. 우리도 구원받기 전에 그러하였다.

 

[18]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둘째로, 이방인들은 총명이 어두워져 있다. 이방인들은 육신적인 일이나 물질적인 일에는 지혜가 있을지 모르나, 인생이 참으로 알아야 할 바 하나님과 죄와 구원에 대한 깨달음이 없다.

 

셋째로, 이방인들은 무지함 가운데 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에 살면서도 가장 기본적인 사실들인 창조주 하나님을 모르고 인간의 목적도, 참된 도덕 원리도 모르고 있다.

 

넷째로, 이방인들은 마음이 굳어져 있다. 이방인들은 마음이 완고하여 자신의 잘못된 생각들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은 자기 생각대로만 살며 하나님의 진리를 진지하게 찾지 않는다.

 

다섯째로,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다. 생명의 원천은 하나님이시므로, 그를 알지 못하고 그를 멀리 떠나 사는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이며, 영생의 길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19]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아셀게이아)[육욕, 호색,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여섯째로, 이방인들은 감각 없는 자가 되었다. 그들은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을 분별하고 판단하는 도덕적 감각이 없다. 그래서 인간 사회는 심히 비도덕적이며 죄악된 사회가 되었다.

 

일곱째로, 이방인들은 자신들을 방탕에 방임하고 있다. 부도덕한 인간의 죄악들 중 첫째는 음란이다. 인간은 음란하고 방탕하다.

 

여덟째로, 이방인들은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고 있다. ‘모든 더러운 것이란 온갖 죄악들을 가리킨다. 죄 없는 사회는 아름답고 평화로울 것이지만, 죄악된 세상은 정신적, 육신적 상처들로 얼룩져 있다. 의는 깨끗한 옷과 같고, 죄는 더러운 옷과 같다.

 

이런 여덟 가지 점들이 이방인들의 삶의 모습이다. 이것들은 우리의 구원받기 전의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제 이런 모습들로부터 떠나야 한다. 우리는 이방인들처럼 행하지 말아야 한다.

 

[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우리가 처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이 모든 죄악된 것들로부터 떠나라고 명하셨다. 우리는 그의 명령을 순종하였다. 우리는 우리의 과거의 죄를 회개했고 하나님께로 돌아왔다. 우리는 그에게서 죄악된 삶으로부터 회개하는 것을 배웠지, 이방인들의 삶을 그대로 살라고 배우지 않았다.

 

[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그에 대하여]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예수께서는 진리 자체이시며 그 안에 진리가 있다(14:6). 에베소 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 직접 듣지는 못했을 것이나 사도들을 통해 그에 대해 많이 들었고 그 진리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다. 본절 끝의 받았을진대라는 말부터 24절까지는, ‘받았으니 곧 . . . 입으라는 것이라라고 번역하는 것이 정확하다. 22절부터 24절까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로 가르침을 받은 내용을 말한다. 그것은 모든 죄를 벗어버리고 새사람이 되라는 구원의 초청이었다.

 

[22] 너희는 유혹의[속이는]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舊習)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이전의 생활 방식에 대하여(KJV, NASB), 너희는 속이는 욕심들을 따라 부패되어 가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욕심들은 처음에는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우리를 불행으로 이끌기 때문에 속이는 것이다. 옛사람은 구원받기 전의 자아(自我)를 말하며 앞절들에서 말한 이방인들의 모습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속이는 욕심들을 따라 부패되어 가는 삶이었다. ‘벗어버리고라는 원어(아포데스다이)(과거부정사)는 그 행위의 단회성(單回性)을 보인다. 옛사람을 벗어버리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의 구원을 받을 때 단번에 이루어진 사실이다. 그것은 반복될 수 없는 구원 사건이다. 구원은 단번에 일어나는 사건이다. 그것이 중생이며 회개와 믿음이다.

 

[23] 오직 심령으로[너희의 생각의 영으로] 새롭게 되어.

 

영의 기능은 지식과 감정과 의지이다. 본절은 그 중에 특히 지식을 강조한다. 사람에게 있어서 생각은 매우 중요하다. 사람은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행동도 달라진다. 바른 생각은 바른 행동으로 나타나고, 잘못된 생각은 잘못된 행동으로 나타난다. 구원은 생각의 변화이다. 우리가 구원받을 때 우리의 생각이 새롭게 되었다.

 

새롭게 되어라는 원어(아나네우스다이)(현재부정사)는 계속성을 나타낸다. 우리의 구원은 생각의 변화에서 시작되지만, 그 생각의 변화는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적으로 진행된다. 성화는 일차적으로 깨달음의 변화이다. 인간의 연약성은 잘 변하지 않지만, 성도의 생각과 깨달음의 변화는 크다. 하나님을 아는 생각, 자신의 부족을 아는 생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는 생각은 세월이 흐를수록 깊어진다. 심령의 새로움은 평생 계속된다.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의와 참된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하나님을 따라지으심을 받았다는 말은 새사람의 내용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의 본래의 내용임을 보인다. 하나님의 형상의 내용은 의와 참된 거룩함이다. 그것을 본래의 의라고 부른다. 구원은 범죄함으로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 즉 본래의 의를 회복하는 것이다.

 

입으라는 원어(엔뒤사스다이)(과거부정사)는 단회성(單回性)을 보인다. 그것은 지금 성도들에게 명하는 말이 아니고 예수님 믿기 전에 우리가 받았던 구원 초청의 내용이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라는 초청은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으라는 것이었다. 옛사람의 상태에서 새사람의 상태로 옮겨지는 것이 구원이다. 이것은 점진적인 것이 아니고 단번에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가 십자가 대속 사역으로 이루신 의()로 옷 입었고 의롭다 하심과 거룩함을 얻었다. 이것이 칭의(稱義)이다. 본문은 칭의(稱義)에 대한 교훈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이방인들의 행위를 버려야 한다. 과거에 우리의 삶은 무지하고 불경건하며 도덕적으로 죄악되고 더럽고 또 허망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삶을 버려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구원의 의미를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배운 구원의 초청은, 속이는 욕심들을 따라 부패되어 가는 옛사람을 버리고 생각이 새로워져서 하나님을 따라 의와 참된 거룩으로 지으심을 입은 새사람을 입으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초청대로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죄를 회개하였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고 의롭다 하심과 거룩함을 얻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이제 날마다 심령으로 새로워져서 의와 거룩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우리는 예수 믿고 구원받아 생각의 변화가 일어났던 그때부터 날마다 성경말씀과 성령의 감동 가운데 변화를 받아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답게 경건하고 의롭고 거룩하고 선하게만 살아야 한다.

 

 http://www.oldfaith.net/01exposit/02nt/2-10에베소서.htm#4장: 교회의 일체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