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들의 부활
고린도전서15:12-34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25.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27.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에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28.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29.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
30. 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32.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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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은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확실한 진리이다.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다시 살 것이다. 이 영광스런 부활 소망을 가진 자들은 참으로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경건하고 죄 안 짓는 삶, 헌신과 희생의 삶, 현실의 역경을 초월하며 순교까지 할 수 있는 인내하는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나 악인의 부활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영원한 지옥에 던지는 심판의 부활이다.
1. 죽은 사람들의 부활 (12-19절)
[12-13절]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 고린도교회 안에 어떤 이들은 죽은 자들의 부활을 부정하였다. 그것은 부활이 인간의 이성으로 불가능하여 보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다 썩고마는데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는가? 그러나 죽은 자들의 부활은 성경의 기본 진리이며(사26:19; 단12:2; 마22:23-33; 히6:1-2) 기본적 진리를 부정하는 자들이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은 교회의 중대한 문제이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많은 증인들에 의해 확증된 사실이며 복음의 핵심적 내용임을 증거함으로써 죽은 자들의 부활을 부정하는 자들을 반박하고 부활 진리를 확증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한 분명한 예이며 증거이었다. 죽은 자들의 부활이 불가능하다면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지 삼일 만에 부활하신다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 김효성 성경강해 - ]
[14-15절]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 그리스도의 부활은 기독교 신앙에 매우 중요하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지 못하셨다면 그들의 전파하는 것이 헛것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전파하는 중심적 내용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실을 포함하였기 때문이다(행1:22; 2:32; 3:15; 4:33; 5:30-32). 또,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이 거짓이라면 그리스도인들의 믿음도 헛것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의 부활을 믿었고 그것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의 진실하심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되심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거짓이라면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즉시 허위로 판명될 것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사활(死活)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인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바울을 포함하여 모든 사도들은 다 거짓 증인으로 판명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기 때문이다. 거짓 증거는 하나님의 십계명의 제9계명을 어기는 중죄(重罪)이다. 핍박을 참고 순교까지 당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거짓 증인이며, 기독교는 역사상 유래 없는 거짓말에 근거한 사기(詐欺)이며, 기독교 신자들은 거기에 속아 넘어간 가련한 영혼들인가? 순교의 피로 인을 친 기독교가 믿을 만하지 못하다면, 세상에는 믿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기독교 진리를 의심하는 것은 증거들의 부족 때문이 아니고 단지 그들이 심히 무관심하고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이와 같이 중요하고 확실한 만큼, 그것에 의해 확증되는 죽은 자들의 부활은 부정할 수 없는 진리이다. - 김효성 성경강해 - ]
[16-19절]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이 구절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Hemenaeus와 Philetus가 우리의 믿음으로부터 오는 최종적인 은혜는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뿐이라고 당시에 주장한 것과 같은 그런 상징적 부활에 대한 어떤 잘못되고 환상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더욱 분명하게 하여주고 있다.
부활이 우리의 구원의 완성을 의미하며, 또한 말하자면 부활이 모든 우리의 축복의 최절정이라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우리의 부활이 이미 일어났다고 말하는 사람은 죽은 후의 소망에 대한 어떤 좋은 것도 남겨두지 않고 있다. 그러나 어떻든 간에 이 구절은 우리의 영혼이 부활 때까지 우리의 육신과 함께 잠자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헛소리에 전혀 아무런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
[ 바울은 앞에서 언급한 요지를 반복하면서 두 가지를 덧붙이고 있다. 하나는,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이 그의 부활로 확증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못하셨다면 자신이 부활할 것이라는 그의 말이 거짓이 되며 또 그의 무죄성(無罪性)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되심이 부정될 것이므로 결과적으로 그의 속죄가 부정될 것이다. 그렇다면 인생의 죄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의 문제로 남게 될 것이다.
또 하나는,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이 거짓이라면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 곧 죽은 자들이 망하였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를 믿고 소망 가운데 죽었으나 그 소망이 헛되기 때문이며 더욱이 그를 위해 고난과 핍박과 순교를 당한 자들은 아무런 보상과 위로가 없는 헛된 죽음을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독교 전(全) 역사를 뒤엎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렇게 부정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사실로 확실하게 증거되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은 돈, 부귀, 영화, 명예, 권세, 쾌락 등 이생의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길어야 백 년 동안만 가치 있는 것들이며 영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들이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부활에 있고 영원한 천국에 있다. 그 진리, 그 소망 때문에 우리는 고난도 받고 순교도 감당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인의 소망이 이생뿐이라면 그리스도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순교까지 당한 사도들과 주의 제자들은 가장 불쌍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불쌍한 사람이 아니다. 왜냐하면 내세가 있고 부활이 있고 영원한 천국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 김효성 성경강해 - ]
2. 부활의 순서 (20-34절)
[20절]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 "잠자는 자들"은 죽은 자들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죽은 자는 잠자는 자와 모양이 비슷할 뿐 아니라, 또 잠자는 자가 깨어 일어나듯이 죽은 자도 깨어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비유한 것일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잠자는 자들의 ‘첫열매’라고 부른 것은 그의 부활이 죽은 자들의 부활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곡식이나 과일나무의 첫열매는 동일한 종류의 많은 열매들이 뒤따를 것을 기대하고 소망하게 한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를 믿는 자들이 그의 부활과 같은 부활을 기대하고 소망하게 하는 사건이다.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부활과 같은 부활이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복된 일이다. - 김효성 성경강해 - ]
[21절] 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 도다.
[ 본 절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죽은 자들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되는 이치를 보인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라는 말씀은 아담의 범죄로 세상에 사망이 들어온 사실을 말한다(롬 5:12).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 도다’는 말씀은 대속의 이치를 보인다. 사람이 범죄를 하였으므로 사람이 형벌을 받아야 했다. 천사가 그것을 대신할 수 없고 심지어 하나님 자신이 그것을 대신하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았다. 사람의 범죄로 죽음이 왔기 때문에 사람이 죗값을 받음으로 죽음을 극복해야 했다. 거기에 하나님의 아들이 왜 사람이 되셔야 했는가 하는 이유, 곧 성육신(成肉身)의 필요성과 이유가 있다. 물론 사람이 되신 후에도 그는 하나님이기를 중단하지 않으셨다. 그는 여전히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참으로 사람이 되셨던 것이다. 이와 같이,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다. - 김효성 성경강해 - ]
[22절]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 본 절은 죽은 자의 부활이 사람으로 말미암는 까닭을 보인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었다. 아담은 인류의 대표자로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못하고 범죄하였고, 그의 범죄로 모든 인류는 죄인이 되었고 죽게 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게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라는 말씀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모든 사람(엡1:4),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된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고전12:13; 요 15:4).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은 다 영광스럽게 부활하고 영생을 얻을 것이다(요3:16).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생명을 얻는 까닭은 그리스도 때문이며, 곧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때문이다. 그의 대속을 입은 모든 사람들은 하나도 예외 없이 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예수께서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요6:39). 바울이 전도할 때에 어떤 이들은 그의 말을 믿고 어떤 이들은 믿지 않았지만, 사도행전은 증거하기를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하였다(행13:48). 이것은 하나님의 예정의 성취이다. 하나님의 선택은 실패치 않는다. 하나님의 계획은 반드시 성취된다.- 김효성 성경강해 - ]
[23절]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 부활에는 순서가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있다. 그는 부활의 첫열매이시다.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 곧 그의 재림 때에 그에게 붙은 자들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성경의 근본 진리이며 거기에 우리는 큰 소망을 둔다. ‘그에게 붙은 자’라는 원어(호이 투 크리스투)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 곧 그리스도의 소유라는 뜻이다(롬 1:6). 그에게 속한 자들은 그리스도 재림 시 영광스럽게 부활할 것이다(살전 5:16). 이 말씀은 세상에는 그에게 속하지 않은 자들도 있음을 암시한다. 주께서 다시 오실 때 인류는 두 부류로 나뉠 것이다. 하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었던 자들이다. - 김효성 성경강해 - ]
[24절] 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 ‘나중’이라는 말은 ‘마지막’이라는 뜻이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의인의 부활이 있은 후에 세상의 종말이 올 것이다. 물론 그때 악인의 부활도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악인의 부활을 ‘심판의 부활’이라고 표현하셨다(요5:29). 다니엘서에는 그것이 수욕과 무궁한 부끄러움을 입을 부활로 묘사되었다(단12:2). 요한계시록은 모든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 보좌 앞에서 심판받는 장면을 증거하였다(계20:12). 악인의 부활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또 그때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을 멸하실 때이다. 마귀의 권세 아래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의인들을 핍박하던 세상 나라들이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이다(계 11:15).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친다."는 말은 이미 시작된 교회 시대가 끝나고 영광스런 천국, 새 하늘과 새 땅이 시작됨을 말한다. 지금도 교회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고 중생한 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는 의미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이지만(요3:5; 골1:13; 계1:6), 주의 재림으로 이 나라는 아버지께 바쳐져 영광스러운 천국으로 완성될 것이다. - 김효성 성경강해 - ]
[25-26절] 25.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 하나님의 ‘모든 원수’는 사탄과 악령들과 그 도구인 세상의 악한 정권들을 가리킬 것이다(엡6:11-12; 단10:20-21). 그러나 그는 모든 원수를 결국 다 복종시키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전투에서 노련한 대장이시다. 그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서 온 우주의 물질계와 영계를 통치하시고 모든 원수를 복종시키실 것이다. 맨 마지막으로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다. 개인적으로 말하면 사람의 장례식은 그의 세상 생활의 종말이다. 인류 전체로 말하면 세월이 지나갈수록 세상에는 공동묘지나 무덤들만 늘어간다. 그러나 사망은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으로 극복된다. 그것은 원리적으로 이미 정복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 시 그것은 실제적으로 정복될 것이다. 의인들은 다 영광의 부활로, 악인들은 다 심판의 부활로 부활할 것이다. - 김효성 성경강해 - ]
[27-28절] 27.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에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28.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만물을 저의 아래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그러나 얼마나 성경 여러 곳에서 그리스도의 왕국의 영원성이 이 문장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주장을 하고 있는가? 어떻게 이 문장이 다른 말씀, 곧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벧후1:11)와, 또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빌2:8)라는 말씀과 조화될 수 있는가? 이 문제에 대답함으로써 우리는 바울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더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신 속에 모든 능력이 그에게 양도되었다는 사실을 관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위대한 위엄은 인간에게는 부적당한 것이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본질상 동일하시면서도 자신을 낮추신 그리스도를 높이시고 만물이 그의 이름 아래 꿇어 엎드리어 경배하도록 하는 권세를 그리스도에게 주셨다(빌2:8). 더구나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부섭정관이 되시기 위하여 주님과 최고의 왕으로 임명되셨다. 말하자면 세계를 다스리는데 있어서 그런 위치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아무 것도 안하시고 그리스도께서만이 모든 것을 하신다는 그런 경우는 아니다(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지혜와 섭리의 하나님이며, 그리스도와 한 본체이시고 또한 같은 하나님이신 것을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성경이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대신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통치권을 지금 가지셨다는 것을 증거하는 이유는 우리가 주님이외에 다른 통치자나 주, 변호인, 혹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는 심판주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며, 우리가 우리의 눈을 오직 주님에게만 고착시키도록 하기 위하여서이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께서 통치자이신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다스림이 인간 그리스도에게서 실현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때 그가 받은 나라를 바칠 것이며, 그래서 우리는 완전히 하나님께 집착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이런 방법으로 그 나라를 포기하실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영광스러운 신성에 대한 그의 겸손으로부터 어떤 방법이나 혹은 다른 방법으로 그것을 이양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은 우리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감추어져 있는 것이 그때의 접근하는 방법으로써 우리에게 공개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복종하시게 될 것인데, 그때 베일이 벗겨지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위엄으로 다스리시는 것을 분명히 보게 될 것이며, 또한 그리스도의 인성이 더 이상 우리 사이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더 가까이 뵙는 일을 저해하지 않을 것이다.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그것은 마귀와 불순종이 같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아마 우리가 ‘존재하다’는 동사를 ‘알게 되다. ’혹은‘ 공공연히 알려지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이지만 않는다면 그럴 경우 그 의미는, ‘마귀가 지금 하나님과 싸우고 있으므로 악이 하나님께서 이루신 제도를 혼란에 빠뜨리면서 그 하나님의 질서를 뒤엎고 있으므로, 우리를 공격하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일들이 면전에서 우리를 응시하고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 안에 계심이 분명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 그에게 부여하신 심판을 수행하실 때, 그리고 사단과 모든 불순종이 우리를 넘어뜨렸을 때, 그때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의 파멸 속에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와 같은 일이 그 성격상 거룩하고 합법적인 권위에 대해서도 말하여질 수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실제의 하나님 그대로 지금은 우리에게 아주 적절하게 나타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그때는 하나님께서 친히 어떤 중재자 없이 하늘과 땅을 다스리실 것이며, 또 그때는 그런 방법으로 그가 모두에게 나타나실 것이다. 그 결과로써 하나님은 마지막에 모두의 안에 계실 것이며, 모든 인류에게 뿐만 아니라, 마찬가지로 모든 피조물들 안에도 동일하게 계실 것이다.
이것은 신실한 해석이며, 또 그것이 바울이 마음속에 품었던 것과 아주 일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것은 만일 이 구절이 다만 신자들, 곧 하나님께서 이미 그의 나라를 그들 속에서 세우기 시작한 그 신자들만을 언급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적합하지 못할 것이며, 또 그때 그것이 완성될 것이고 이런 방법으로 그들을 하나님께 완전히 집착하게 될 것이다.
이런 해석들 중 어느 것이든지 이 구절을, 그들이 주장하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악용하는 사람들의 불경건하고 터무니없는 견해를 격퇴하기에 그 자체로써 충분하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소멸될 것이고 또한 무로 돌아갈 것이라는 의미에서 하나님이 모든 존재 안에서 모두가 될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러나 바울의 말이 내포하고 있는 유일한 의미는 만물이 하나님께 더욱 가까워지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의 상태로 그리고 오직 처음과 마지막으로 하나님께로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이것으로부터 마치 하나님께서 마귀를 친구로 만들며 또한 그와 함께 하시려는 것보다는 그 마귀의 멸망 속에서 모든 선한 자들에게 알려지기를 원하시기라도 한 것처럼, 마귀와 불순종자들이 구원받을 것이라고 추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이 바울의 말을 그들 자신의 독신을 지지하는 것으로 왜곡할 때, 이런 종류의 사람들이 얼마나 뻔뻔스러운 광인들인가를 깨닫게 된다.
[ 사람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친히 아버지께 복종하셨다. 히브리서5:8은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웠다”고 증거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과연 십자가에 죽기까지 아버지께 복종하셨다(마26:39; 빌2:8).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라는 말은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시려’라고 번역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와 이 세상과 인류에게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이 있다. 그러나 그가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시면 우리에게 아무것도 없다. 우리에게 지금 있어 보이는 것도 다 없어질 수 있다. 마지막 심판 날에 그것들은 다 불타 없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가?’라는 질문은 인간에게 지극히 중요한 질문이다. - 김효성 성경강해 - ]
[29-32절] 29.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
30. 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32.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지 못하면", 내가 이 절을 설명하기 전에, 그것은 교부들의 권위로 지원을 받았고, 또한 거의 모든 사람들에 동의한 일반적인 설명이므로 논박할 가치가 있다.
그리하여 다른 사건들의 추종을 받는 크리소스톰과 암브로스는, 어떤 사람이 갑작스런 죽음으로 세례를 받지 못하였을 때,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그 죽은 사람을 대신하여 묘지에서 세례를 받는 관습이 있었다고 생각하였다. 참으로 그들은 이 관습이 타락이며 또한 아주 잘못된 미신이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또한 그들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논박하기 위하여 그들이 부활을 부인하고 있는 동안, 바울이 이 논증을 의뢰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에게 관한 한, 아무 것도 내가 이것을 믿도록 꾀이는 것이 없었다. 왜냐하면, 부활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일치하여 그리고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런 의식을 행하였다는 것을 믿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논증이 건전한 것이라고 상상하면서, 만일 이것이 고린도교회 교인들 사이에 만연된 것과 같은 그런 타락한 일이 실제로 있었다고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가? 그들의 잘못에 대하여 거의 모든 간단한 잘못만을 책망하는 것을 보면서, 바울은 그것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앞 장에서 이것과 같이 심각하지 않은 어떤 것을 정죄하였다. 그는 여자들이 머리에 무엇을 쓰는 문제와 다른 그와 비슷한 문제들에 대하여 안내하는 데는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단순히 성찬에 대한 잘못된 시행만을 비난한 것이 아니라, 그의 비판을 심화하고 있다. 동시에 그것이 다른 문제보다 더욱 심각한데 그런 무서운 세례의 신성모독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그가 하지 않을 것인가? 그는 그들이 그들의 축제를 자주 행함으로써 이방인의 미신적인 신조와 관습들을 암암리에 따르고 있는 그들에게 맹렬한 공격을 가하였다. 그가 이 가증스러운 이방의 미신을 성령의 세례라는 이름으로 바로 그 교회에서 행하도록 허락할 것인가? 나는 바울이 여기서 세례의 규칙적인 시행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명히 이해하며, 또한 그것과 같은 타락에 대한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이제 우리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도록 하자. 나는 바울이 여기서 세례의 모든 포용적인 종말에 대하여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여 왔다. 왜냐하면 세례의 유익은 여기서의 우리의 현세 생활에 국한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에 그 말들을 내가 더 자세히 살펴보았을 때에, 나는 여기서 한 가지 특별한 관점을 취급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가 세례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 등에 대하여 말할 때, 그는 모든 사람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그는 총명한 해석보다는 건전한 해석을 더 좋아한다. 그러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죽은 자를 위하여 세례를 받는 사람들은 이미 죽은 사람으로 생각되는 자들이며, 또한 생명의 소망을 함께 포기한 자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을 살펴보는 다른 방법이 있는데, 원한다면 여러분이 그것을 취하여도 된다. 즉 죽은 자를 위하여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죽을 때, 그리고 살아 있지 않을 때, 은혜를 받기 위하여 세례를 받는다는 것이다.
초대교회 당시에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인 믿음의 초신자들이 아팠을 때에, 그리고 만일 그들이 절박한 죽음의 위험에 직면하였을 때, 그들은 수세를 요청하는 관습이 있었으며, 그래서 그들이 그리스도를 고백하기 전에 이 세상을 떠나지 않도록 하였으며, 또한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들은 자기들의 구원에 대한 확증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후에 미신이 이 관습에 또한 침투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교부들의 문헌에 나타나 있다. 왜냐하면 교부들은 세례 받기를 죽을 때까지 미루고 있는 사람들을 욕하고 있는데, 그것은 일단 그들이 모든 그들의 죄를 다 씻음 받고 하나님의 심판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참으로 부분적으로는 큰 무지에서 또한 일부분은 위선에서 온 어리석은 과오이다. 그러나 여기서 바울은 다만 거룩하고 하나님의 제도에 합당하는 관습, 곧 만일 이미 그 다음에 그리스도의 믿음을 받아들인 세례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죽음이 가까이 다가온 것을 알고 그가 세례 받기를 할 때, 부분적으로는 그 사람 자신을 위하여, 또 다른 면으로는 그의 형제들을 강하게 하기 위하여 세례를 베푸는 관습만을 취급하고 있다. 자기 몸에 확증된 이 구원의 증거를 갖는 것은 결코 적은 위로일 수가 없다.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는 데 있어서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는 강력함이 또한 있다. 그러므로 죽은 자를 위하여 세례를 받는 사람들은, 그것이 이 세상에서는 그들에게 유익이 없는 까닭에, 또 그들이 인생을 절망하였다는 사실은 그들이 죽을 때에야 세례 받기를 요구하는 바로 그 이유가 된다.
우리는 만일 죽은 후에 아무런 소망이 없다면, 그들이 무엇을 할 것이냐고 바울이 질문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지금 알고 있다. 이 구절은 또한 고린도교회 교인들의 믿음을 뒤엎어버린 사기꾼들이 신자들의 궁극적인 목적이 이 현세에 있다고 부활은 상징적으로 날조하였다는 데 대한 증명이기도 하다.
바울은 곧 ‘어찌하여 저희를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라는 형식으로 거듭 질문하면서 그것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그들이 세례를 받은 사람들보다 먼저 그들의 생명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면전에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후자는 그들이 죽은 후에 그들의 세례의 은혜를 얻기 위하여 세례를 받는다.’
"나의 자랑을 두고", 그리고 그는 맹세의 일반적인 형식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주제에 적합한 그런 맹세의 형식을 취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여기서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라고 맹세하고 있다. 그러나 그 자랑은 하늘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이 의문을 품고 있는 것은 사실상 그것이 거룩한 맹세의 힘을 가졌다는 것을 그가 확신하고 있음을 그가 나타내고 있다.
[ 죽은 자들을 위해 세례를 받는다는 말은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것은 아마, 촬스 핫지의 주석대로, 비 세례교인이나 학습교인이 세례받기 전에 죽었을 때 그의 가족이 그를 대신하여 세례를 받았던 초대교회의 한 잘못된 풍습을 가리킨 것 같다. 그 풍습은 비록 잘못된 것이었지만 부활 신앙에 근거하였었다. 바울은 그것을 들어 그들의 부활 소망을 증거하려 한 것 같다.
"나는 날마다 죽는다"는 말은 바울의 전도생활이 죽음의 위험이 가득한 삶이었음을 증거한다. 그는 날마다 죽음의 위험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이런 위험한 생활을 피하지 않는 것은 부활의 확실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세상에서 죽음을 초월할 자가 누구인가? 그러나 부활 소망을 가진 자들은 죽음을 초월할 수 있다. ‘맹수들’은 바울을 죽이려는 무리들을 가리킨 듯하다.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한다면 누가 죽음의 위협을 감수하겠는가? 쾌락주의자들의 좌우명은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일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도, 하나님의 심판도 부정하는 자들이며, 부활 소망이 없는 자들이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도 다 쾌락주의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활과 내세가 있음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현세를 근신하며 조심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산다. - 김효성 성경강해 - ]
[33-34절] 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 교제는 영향이 있다. 부활을 부정하는 자들과의 교제는 악한 교제이며, 악한 교제는 선한 행실을 더럽힌다. 우리는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않아야 한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죄로부터 구원을 받고 이제는 선하고 의롭게 살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게 된 자들은 그렇게 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그런 삶을 살지 않을 것이다. - 김효성 성경강해 - ]
- 존 칼빈 주석을 중심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