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의 권리
고린도전서9:1-27
1.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2.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3. 나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변명할 것이 이것이니
4.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5.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6.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7.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8.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9.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10.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11.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13.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14.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15.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17.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18.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20.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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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사도이었지만 스스로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삶을 살았다.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정당하지만, 바울은 복음에 장애가 없도록 자신을 절제하였다. 그는 결혼하지 않았고 그는 스스로 생활비를 벌었다. 그러나 그는 직분을 받은 자이기 때문에 그것을 자랑하지도 않았다.
바울이 자신의 독신 생활과 손으로 일한 생활을 들어 우리의 절제 생활을 권면한 말씀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그리고 복음에 장애가 없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독신(獨身)의 길을 택했고 또 손으로 일하면서 전도 활동을 했다. 그는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기꺼이 제한하였고 심지어 포기했다. 또 그는 한 명의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을 비웠고, 자신을 현실의 여러 환경에 최대한 적응시켰다. 물론 죄 되는 일이 아닌 한 그러하였다.
1. 사도의 권리를 제한함 (1-18절)
(1)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1-2절)
바울은 종의 신분이 아니고 자유자이었다. 그것은 육신적인 의미에서 뿐 아니라, 영적인 의미에서도 그러하였다. 모든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었기 때문에 죄와 율법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었다. 바울은 자유자일 뿐 아니라 또한 사도이었다. 그는 부활하신 주님을 친히 보았다. 바울의 사도직은 고린도교회에서 증거되었다. 주께서 그를 세워 복음의 전파자로 사용하신 구체적 한 증거가 바로 고린도교회이었다. 그들은 바울의 전도 사역에서 맺혀진 열매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의 사도직은 주 안에서 그 교회와 교인들에 의하여 확증된다.
(2) "나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변명할 것이 이것이니,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3-5절)
바울은 그의 사역을 트집 잡는 자들에게 대답한다. 무슨 일이든지 사랑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이해할 수 있지만, 문제점을 지적하려고 하면 한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주신 모든 음식이 다 깨끗하며 감사히 받으면 버릴 것이 없지만(딤전 4:4), 그는 다른 성도의 유익을 위해 먹고 마시는 자유와 권리를 스스로 제한하였다.
결혼 문제도 그러하다.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는 결혼하였고 자매된 아내를 데리고 다녔다. ‘주의 형제들’이란 예수님의 육신적 동생들 즉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등을 가리킨다(마13:55). 결혼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스스로 독신의 길을 택하였다. 그것은 좀 더 복음 사역에 자유롭게 전심전력하기 위해서이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는 스스로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한 것이었다. 그것은 가능하고 때때로 필요하고 유익하다.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무엇이든지 포기하거나 제한할 수 있는 것이다.
(3)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6-7절)
주의 일꾼으로 부름을 받은 자들이 복음 사역에만 전념하고 의식주의 필요를 공급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다. 세상에 자비(自費)로 군인이 되는 자는 없다. 우리나라에서와 같이 의무적인 군 복무도 의식주와 약간의 용돈을 공급받는다. 세상에 포도원을 만들고 포도 열매를 먹지 못하거나 양떼를 기르고서 양떼의 젖을 마시지 못하는 일은 없다. 일꾼이 먹을 것을 얻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 권리를 다 쓰지 않았다. 그는 친히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며 필요한 돈을 벌었다(행18:1-3). 그는 에베소 장로들에게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너희 아는 바에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다”고 말했었다(행20:33-35).
(4)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8-10절)
바울은 구약 신명기를 인용하면서 ‘모세 율법’이라고 언급하였다. 오늘날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구약의 처음 다섯 권의 책들을 모세가 쓴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바울은 그 중 하나인 신명기를 모세의 책으로 증거하였다. 인용된 말씀은 일차적으로 소에 대한 말씀이지만, 그 이치는 비슷하다. 소를 먹이면서 일을 시켜야 하듯이, 교회는 복음 사역자들에게 의식주의 필요를 공급해야 한다. 교회가 전임 봉사자들에게 주택을 제공하고 생활비를 드리는 것은 성경적으로 합당한 일이다.
(5)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11절)
"신령한 것"은 복음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 "육신의 것"은 의식주에 관한 것을 말한다. 신령한 것은 영원한 것이지만, 육신의 것은 100년 동안만 유용한, 일시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리를 물질에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돈을 가지고 영원한 진리를 살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리의 가치를 안다면 그 진리를 연구하고 전하는 주의 종들에게 하는 물질적 필요의 공급을 아깝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6)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12절)
바울은 결혼할 자유가 있고 의식주의 필요를 공급받을 권리가 있지만, 그 자유와 권리를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보화이다. 인생의 참 가치, 참 기쁨, 참 행복, 참 생명이 그 안에 있다. 이 복음과 물질적인 것, 육신적인 것과는 비교할 수 없기 때문에, 그는 그 복음이 장애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해 현세적인 것을 양보하고 그것을 사용할 자유와 권리를 스스로 제한한 것이다.
(7)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13-14절)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레위 제사장들은 이스라엘 교회의 교역자들이었으며, 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들 자신의 사역으로부터 생활필수품을 공급받도록 정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동일한 정당의 원리가 오늘날 그리스도인 교회의 사역자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내가 하는 모든 것은 나의 독자들이 바울이 실제적으로 말하고 있는 내용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독려하는 것이다. 그의 논증은 복음을 선포하는 책임을 진 목회자들에게 생활을 유지시켜 주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고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그 제사장들에게 생활비를 공급해 주어야 한다고 오래 전에 주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옛날의 사제직과 오늘 우리 시대의 그것 사이에 차이점을 알아야 한다. 율법 아래 있던 당시의 제사장들은 제물을 드리는 책임과, 제단을 섬기고, 성막과 성전을 돌보는 책임을 맡았으며, 오늘의 성직자들은 말씀을 선포하고 성례를 베푸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성직 수행을 위하여 오늘의 성직자들이 자신 스스로 제물을 사라고 말씀하지도 않으셨으며, 또한 그들이 제물을 드려야 할 제단도 오늘날에는 없다.
희생 제물로부터 이끌어 온 이 유추법을 복음을 설교하는 일보다 다른 것에 적용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어리석은 자들이다.
구약시대에 제사장들은 제물의 한 부분을 하나님께 드리고 남은 부분은 먹도록 되어 있었다(레2:3; 7:14, 31, 32). 이와 같이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들을 전도하러 내보내실 때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고 가르치셨다(마10:9-10). 주의 일꾼들이 일터에서 의식주의 필요를 공급받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8)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15절)
바울은 이런 당연한 권리들을 쓰지 않았다. 그는 의식주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 하였고 하나님의 은혜로 독신으로 살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에 지장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도 의식주 문제나 결혼에 있어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하나님의 은혜로 스스로 절제하고 제한할 수 있다. 그것은 참으로 귀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9)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16절)
복음은 영혼 구원의 소식이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며, 죄의 결과는 죽음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의 구주로 이 세상에 오셨다. 그는 많은 기적들로 자신을 증거하셨고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으나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이제 죄인들은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영생의 구원을 얻는다. 이것이 복음이다. 복음은 사람에게 가장 귀한 소식이며 전도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일이다. 그러나 바울이 그 일을 자랑하지 않는 것은 부득불 할 일, 즉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전도는 주께서 그에게 맡기시고 명하신 일이었다. 그것은 그가 해야만 할 의무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으리라”고 말했다.
(10)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17절)
모든 성도가 다 의무적으로 전도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신자의 일반적 의무는 하나님께 예배하며 말씀과 기도 가운데 경건하게 살고 성경 말씀대로 죄 짓지 않고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 살고 또 힘이 있는 대로 하나님의 선한 일들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 신자 중 누가 육신의 즐거움을 포기하고 자원해서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 전도자가 된다면, 그것은 상을 얻을 일이다. 주께서 요구하시는 신자의 의무 이상으로 자신을 주께 드릴 때 분명히 주께서 칭찬하시고 상을 주실 것이다. 모든 신자가 반드시 전도대원이 되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니지만, 자발적으로 전도의 일에 참여하는 자에게는 주께로부터 칭찬과 상급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사도라는 특별한 직분을 받았다. ‘직분’이라는 말은 ‘임무’라는 뜻이다. 바울은 복음을 널리 전파해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러므로 그는 지금 복음 전도의 의무 아래 있고, 그 직분과 의무에 충실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도 주께로부터 목사, 장로, 권사, 집사 등의 직분을 받았다. 목사와 장로는 교인들을 영적으로 보살피는 임무를, 권사는 교인들을 격려, 권면하는 임무를, 집사는 교회의 재정 봉사의 임무를 맡았다. 교회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자신이 맡은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
(11)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18절)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은 마땅한 의무이므로 거기에서 상을 기대할 것은 없다. 단지, 그의 상은 그가 복음을 전할 때 값없이 전했고 그의 권리를 다 쓰지 않은 데서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의무를 행한 것은 당연한 일이므로 상을 기대할 것이 없겠지만, 의무 이상을 행했을 때, 즉 주께서 요구하시는 것 이상을 행했을 때 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2. 권리를 제한한 목적 (19-27절)
(1)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19-21절)
바울은 종이 아니고 자유인이지만 모든 사람에게 종처럼 처신하였다. 그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었다. 그는 한 명의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포기한 것이다. 그는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으로서 처신하였고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마치 자신도 율법 아래 있어서 율법의 의무를 지키는 자인 것처럼 처신하였다. 그는 루스드라에서 디모데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 때 그 지경에 있는 유대인들을 인해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였는데, 그 까닭은 사람들이 그의 부친이 헬라인인 줄 알기 때문이었다(행16:3). 그러나 바울은 율법 없는 자들 곧 이방인들에게는 비록 그가 하나님 앞에서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이지만 율법 없는 자같이 처신하였다. 그것은 율법 없는 자들 곧 이방인들을 얻고자 함이었다.
(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22-23절)
그는 약한 자들을 대할 때 자신도 약한 자인 것처럼 처신하여 그들을 구원하려 하였다. 그는 실로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되었다. 물론 이것은 진리와 의 안에서의 처신이어야 하며 비 진리와 악을 포용하는 처신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악을 포용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바울은 진리와 의 안에서, 즉 죄 되는 일이 아닌 한, 영혼 구원을 위해 자신을 비웠고 현실의 환경에 최대한으로 자신을 적응시키려 하였다.
바울의 행동 원리는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이었다. 이로써 그는 복음에 참여하기를 원하였다. 복음의 일은 영혼 구원의 일이다. 복음에 참여하는 것은 영혼 구원의 일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 일이 가장 중요하고 가장 귀하기 때문에 그는 이 일을 위해 자신을 제한하고 조정하고 심지어 포기하였다. 그렇다면 오늘날 하나님의 은혜로 바울같이 복음을 위해 자신을 제한하고 조정하고 포기할 자는 없는가?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최대의 소원인 복음의 일, 곧 영혼 구원의 일을 위해 우리 자신을 기꺼이 드리자.
(3)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4절)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우리의 투쟁은 이런 면에서 세상의 경주와 같지 않다. 운동장에서 달리는 우리의 투쟁은 이런 면에서 세상의 경주와 같지 않다. 운동장에서 달리는 경기는 다른 모든 사람을 제외하고 단 한 사람만이 승리자가 되고, 또 상을 받지만, 우리의 경주 경우에 있어서는 더 좋은 경기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한 번에 승리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모든 것은 목적지까지 모든 길을 끈기가 있게 끝까지 달려가라는 것이다.
달리기 경주에서 많은 사람이 출발점에서 출발 신호를 받고 달리기 시작하지만, 1등의 상은 한 명에게만 돌아간다. 그 상을 얻기 위해 많은 사람이 달리는 것이다. 신앙생활도 마치 달리기 경주와 같다. 물론 신앙의 경주에서 상 받는 자가 한 명뿐이라는 뜻은 아니다. 상을 얻기 위해 달리는 경주자들처럼 우리도 상급을 기대하며 힘써 달려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뿐이다. 모든 성도는 경주자처럼 열심히, 성실히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4)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5절)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한다는 말은 일반적 진리이다. 좋은 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이나 금메달을 목에 거는 운동선수들의 삶이 그러하다. 시간을 아끼고 육신적 즐거움을 절제하는 자만이 그런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영적 생활도 비슷하다. 사실 영적 생활은 더 고상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세상의 경쟁은 썩어질 면류관을 얻으려는 경쟁이나, 영적 경쟁은 썩지 않을 면류관을 얻으려는 경쟁이다. 믿음의 결국은 영혼의 구원(벧전1:9) 곧 영생이며(롬6:22) 하나님께서 주시는 존귀와 영광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썩는 것이지만, 영생은 영원히 썩지 않을 존귀하고 영광스런 일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신앙생활에서 승리하려면 시간 절제, 돈 절제, 힘 절제, 의식주 절제 등 절제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5)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26-27절)
사람은 열심히 살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열심히 사는 것이 좋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르게 사는 것이다. 교회 봉사자는 단순히 열심히 일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일해야 한다. 싸우는 자가 상대를 치지 않고 허공만 친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바울의 목표는 영혼 구원의 일이었다. 그는 그 일을 위해 전심전력하였다.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이 구절을 다른 것들에 대한 관계를 언급하는 것으로써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즉 ‘나의 생애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모범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성품과 행위가 나의 가르침에 위배되지 않는 그런 생활을 하기 위하여 고통을 감수하여야 하며, 또한 형제들에게 불명예와 그들을 실족케 하는 심각한 허물의 원인들을 포함하는,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요구한 그런 일들에 게으르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이 구절은 또한 그가 앞에서 말한 이 효과에 대해서도 일치하는 것이다. 곧 내가 복음을 속이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이 나의 사역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성도도 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몸의 욕망대로 따라가면 실수하고 실패할 수밖에 없다. 전도자라 할지라도 죄 가운데 빠져 산다면 그는 남은 구원해놓고 자신은 버림받는 자가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가상적 경고이다. 참으로 중생한 자는 그렇게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고는 성경에 종종 나오고 또 필요한 경고이다(롬8:13). 그러므로 바울은 주께서 주신 영혼 구원의 임무를 위해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포기하고 범사에 절제하였다. 그것은 자기의 몸을 쳐 복종시키는 일이었다. 우리의 몸은 편안하고 세속적인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으며 몸의 욕구대로 살면 실패자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우리도 영혼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크신 뜻을 앞에 놓고 자신을 절제하고 자기 몸을 쳐 복종시켜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바울처럼 헌신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예는 우리에게 놀라운 도전이 된다. 우리의 신앙생활과 봉사생활은 바울의 삶에 비교하여 어떠한가? 우리는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의 일을 위해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어느 정도나마 제한하고 포기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달리기 경주자가 이기기 위해 모든 일에 절제하며 힘써 달리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몸과 마음과 시간과 재능과 돈을 주의 영광과 복음을 위해 드리며 모든 일에 절제하며 영생과 천국을 향해 힘써 달음질하여야 한다.
- 김효성 성경강해를 중심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