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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권징

고린도전서5:1-13

 

1.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2.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3.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4.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5.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6.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9.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10.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11.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12.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13.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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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교회는 그에게 절대 복종해야 한다. 만일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치 않는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고 인간 집단에 불과할 것이다. 교회의 권세는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나온다. 교회의 권징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에 근거하여 시행된다. 권징의 효력은 교회 자체에 근거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께 근거한다.

교회는 교회 안에 있는 악한 자들을 분별하여 권징을 성실히 시행해야 하고 회개치 않는 자는 교회에서 제명하고 출교시켜야 한다.

 

1. 권징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에 근거한다. (1-5)

 

(1)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1)

 

첫째로 그는 그들 중의 어떤 사람이 계모와 악한 관계를 갖도록 허용되고 있는 것이 대단히 치욕스런 일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 남자는 그의 아버지로부터 그의 계모를 유혹하였는지, 아니면 매음녀로서 그 여자를 결혼이라는 허울 속에 두고 있었던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그 의혹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전자의 경우 그것은 극도로 악하고 가증한 간통이며, 또 후자의 경우일지라도 자연스러운 존경과 정상적인 관계로써는 아주 부당한 간음이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한 사람의 죄 때문에 모든 사람을 책망하는 것이 옳은 일이냐고 질문을 한다면, 나는 이렇게, 즉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그들 교인중의 한 사람이 범죄를 하였는데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마땅히 준엄한 형벌을 받아 마땅할 치욕스런 행위를 묵인함으로써 그들은 사실상 그 행위에 격려를 보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대답하겠다.

 

(2)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2)

 

그가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라고 말할 때 그는 대조적인 논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이런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왜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하여 애통해 해야 하는 가라고. 그 이유는, (1) 교인들 사이에 있어야 할 친교 때문에 그들 중 어떤 일부 사람들의 치명적인 타락은 다른 교인들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며, (2) 그런 부끄러운 행위가 교회 안에서 일어나면 그 죄책은 그 범죄자 자신에게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전 교인이 연대적인 책임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는 아내나 자식들이 잘못하면 그 아버지가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였으며, 또 온 가족이 가족의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치욕을 받게 하신 것이다. 교회 안에서 어떤 불명예스런 죄악이 발생할 때마다 전 교회가 그 불명예로 더럽혀진다는 사실을 각 교회마다 깊이 깨달아야 한다.

 

더욱이 우리는 한 사람의 신성모독죄 곧 아간의 범죄(7:1)가 전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임하게 하였음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한 사람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무죄한 모든 사람들에게 진노를 발하시는 그런 무자비함이 하나님의 진상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하심에는 항상 분명한 이유가 있다. 사람들 가운데서 일어나는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모든 사람들을 벌하심으로써, 하나님은 그 악으로 말미암아 전체의 몸이 전염되고 오염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기를 원하신 것이다.

우리는 교회가 한 개인의 죄를 마치 그들이 전체 몸을 포함한 온 가족이 불행을 당한 것처럼, 그 개인의 범죄를 슬퍼하는 것이 교회의 임무라는 사실을 우리는 여기서 쉽게 추리하여 낼 수 있다. 우리가 그 잘못을 뉘우침으로 거룩하여지려는 열망에 불타게 될 때 경건하고 의로운 개심이 시작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방법으로는 그 가혹함이 고통을 충만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라는 말로 바울은 이제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 대한 책망, 곧 그들이 그 무서운 증오의 대상인 범죄를 눈감아 버린 데 대한 그 무관심을 신랄하게 꾸짖고 있다.

이 사실로부터 우리는 교회가 교인들 가운데 발생하는 어떤 잘못을 엄격한 훈련으로써 고치고 제거할 수 있는 이 능력을 부여받았다는 사실이 분명히 나타남을 깨달을 수 있으며, 또 불의를 제거하기에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음도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바울이 여기서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정죄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들이, 한 사람이 범죄를 한데 대하여 그 범죄를 징계하는 일에 아주 무관심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이 권력을 소유하지 못하였다면, 그들을 책망하는 바울의 책망은 정당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파문의 권력은 이 구절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이다.

한편, 이 형벌의 방법의 교회에 주어졌으므로, 바울은 마땅히 그럴 만한 상황이 되었는데도 이 권력을 행사하지 않는 사람들은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라고 알려주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잘못을 꾸짖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교인들에게 불의를 행하고 있는 것이다.

 

(3)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3)

 

그들이 용납해서는 안 될 악을 용납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바울은 비록 몸으로는 떠나 있었지만 영으로는 고린도 교인들과 함께 거기에 있어서 그 악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다. 그 악한 자가 그 죄를 청산하지 않는다면 그는 교회에서 추방되어야 마땅하였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그들의 의무를 행하지 못하고 있으며, 바울이 그들의 게으름을 정죄한 후, 이제 그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오점을 씻기 위해서는, 그 음행한 자들을 믿음의 사회에서 내쫓아야 한다. 이렇게 하여 그는 파문을, 고통거리를 제거하는 치유책으로 제시하였다.

 

(4)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4-5)

 

그는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라고 덧붙이고 있다. 왜냐하면 만일 그 약속이 사실이라면,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18:20)는 말씀 그대로이며, 그런 모임에서 하는 일은 무엇이나 모두가 그리스도의 일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합법적인 파문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추리할 수가 있는데, 그것은 그 파문이 하나님의 권세에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역시 이행되어야 한다.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18:18). 그러나 이 진술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들의 마음속에 일반적인 공포심으로 때려서는 아니 됨으로, 신실한 목회자들이나 모든 교회들이 다 같이 바울이 여기서 말한 대로 그런 심각한 문제를 아주 공손하게 처리해 가야 한다. 그리스도의 능력은 인간들의 뜻이나 의견에 좌우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영원한 진리에 있는 것이다.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라고 말씀한 이 모임은 영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육체적으로 함께 모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바울은 그가 직접 함께 있는 것처럼 그들이 함께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바울은 그가 사도이지만 스스로 자신의 욕심을 따라서 파문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공동 결정으로 처리하기 위하여 교회의 협의를 채택하고 있다. 참으로 그는 철저하게 그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가 다른 사람들과 연합하였을 때 그 권력이 한 개인에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주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군중들이 충고를 따르지 않으면, 군중들이 온건하게 또 위엄을 가지고 어떤 일을 결코 처리하지 못하므로 옛 교회에서 임명한 장로회는 말하자면 장로들의 모임인 공동 의회가 사건의 제 1회 심의를 의뢰 받았다. 물론 그들이 이미 판결한 그 사건은 백성들에게로 내려온다. 그것이 어떤 사건이든지 간에, 그 사건은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설립한 대로, 교회의 질서를 따라 잘 지켜지며, 그리고 파문권은 사실상 공정하게 한 사람의 손에서 그의 권위로 그가 원하는 사람을 처리할 수 있도록 한 사람에게 주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파문의 문제가 일어났을 때 이 정규적인 준비가 유지되어야 하며, 이 특별한 훈련은 장로들의 모임에서 함께 논의되고 교인들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사실에 주의하여야 한다. 또한 이것이 전제정치를 방지하는 치유책이 된다는 점에 유의하자. 그리스도에 관한 훈련에 반대하는 것은 최대의 전제이며, 만일 모든 권력이 어느 한 사람에게 집중된다면 그 전제의 문은 활짝 열려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라는 말씀은 다른 여러 권세와 함께 사도들은 악한 자와 강퍅한 자들을 사단에게 내어주는 권세를 받았으며, 사단에게 그들을 내어줌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바르게 인도하는 경고로 삼고 있으므로, 크리소스톰과 그를 추종하는 자들은 바울의 이 말을 그런 종류를 형벌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다른 구절, 곧 디모데전서1:20의 알렉산더와 후메내오에게 대한 설명과 일반적으로 일치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라는 말은 어떤 준엄한 신체적인 형벌을 가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나로서는 전체 문장을 더 자세히 살펴볼 때, 그리고 동시에 다음 서신에서 말하는 것을 비교하여 볼 때에 나는 그 해석을 억지인 것으로 보며 바울이 의미하는 바와 일치하지 않고, 그것은 다만 파문을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한다.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라는 말씀은 파문을 설명하는 아주 적절한 방법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다스리시고 지키심으로 사단은 교회 밖에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거스틴 역시 사도의 말에 대한 그의 제 68회 설교에서 같은 설명을 하고 있는데, 그는 여기서 이 구절에 대하여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의 친교 속에 있으며, 그리스도의 보호와 책임 아래 머물러 있기 때문에, 나는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은 어느 면에서 사단에게 내어준 바 된 사람들이며, 또 그리스도의 다스림에서 멀리 떠나 분리된 자들이기 때문에 사단에게 내어 준 바 된 자들이라고 생각한다.

 

그 다음에 육신은 멸하고라는 말씀이 뒤따르는데, 이것은 다소 완화하는 방법으로 부가되어진 것이다. 바울은 고침을 받고 있는 사람이 완전히 사단에게 내어 준 바 된 것이라거나 혹은 영원히 사단의 노예가 된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형벌은 일시적인 것이요, 더욱이 이 형벌을 인하여 더 향상될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영혼에 관한 한, 구원과 형벌은 영원한 것이지만, 육체의 정죄는 일시적인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그의 왕국에서 보호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우리는 그를 이 세상에서 일시적으로 정죄할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이 해설을 논박하려는 반대들은 제거된다.

 

이런 사실에 비추어 볼 때 파문의 형벌은 육체보다는 영혼에 대한 것임을 가르치고 있으며, 그들은 그것이 어떻게 육체의 멸망이 라고 불리어질 수 있는가라고 질문한다. 여기에 대해서 나는, 이미 앞에서 암시한 대로, 육체의 멸망은 오직 이 근거 위에서는 영혼의 구원과는 아주 다른 문제라고 대답한다. 전자는 일시적이지만, 후자는 영원한 것이다. 바울이 히브리서5:7에서 그리스도에 관하여,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라고 말한 것은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죽을 생명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죄인들을 가혹하게 벌하여 그들을 교회 밖으로 추방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남겨두시기 때문이다. 만일에 파문의 규율이나 그 원인, 필요성, 목적, 그리고 파문을 절제 있게 적용하는 문제들에 대하여 더 알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의 기독교 강요(4.12)를 참조하기 바란다.

 

2. 교회는 권징을 성실히 시행해야 한다. (6-13)

 

(1)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6)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라는 말씀은 고린도 교인들이 그런 악을 포용하면서도 뻔뻔스레 자랑하였던 것 같다. 그들은, ‘우리는 대체로 건전하다. 단지 한 명이 잘못되었을 뿐이다라고 말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자랑은 옳지 않았다. 그 한 명을 용납한 것이 문제이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기 때문이다. 죄악은 전염성을 가진다. 죄를 범한 한 명 때문에 교회의 거룩함이 상실되고 기강이 심히 흐려지고 있었다. 그가 용납되었다면 또 다른 죄인이 용납되지 못할 이유가 있겠는가. 그러면 교회는 점점 더 부패될 것이다. 이것은 지 교회나 한 교단이나 마찬가지이다.

 

(2)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7)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라는 말씀에서 묵은 누룩은 옛 죄악들을 가리킨다. 예수께서는 구약에 예표가 된 유월절 양이시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희생되심으로 우리는 죄 사함을 받았다. 유월절 양의 피를 문틀에 바름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었듯이,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 공로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교회는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은 성도들의 모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묵은 누룩을 내어버려야 한다. 우리는 과거에 행했던 죄악된 행습을 버려야 한다.

 

(3)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라는 말씀에서 명절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을 말한다. 또 부활하신 날을 주일이라 한다. 제자들은 이 날에 공적 예배를 위해 모이기 시작하였다. 이로써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제7일 토요일로부터 주간의 첫째 날인 주일로 변경되었다. 신약교회는 공적 집회를 가질 때 누룩 없는 떡을 가지고 해야 한다. 그것은 옛날의 죄악들을 다 버리고 순전함과 진실함으로 모이는 것을 말한다. 교회는 거룩해야 한다. 교회의 구성원들도 거룩해야 하고 교회의 모임들도 거룩해야 한다.

 

(4)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9-10)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라는 말씀에서 그가 여기서 말하는 편지(서신)는 오늘날 현존하지 않는다. 많은 다른 서신들도 유실되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남아 있는 성경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충분하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라는 말씀에서 우리가 악한 자들과 교제하지 말라고 할 때, 그 말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결코 이 세상과 격리되라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이 세상을 떠나 산 속으로 들어가라든지 혹은 따로 공동 집단을 만들어 그 속에서만 살라는 뜻이 아니다. 이 세상은 죄인들이 사는 세상이므로 죄인들과 전혀 교제하지 말아야 한다면 우리는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성도는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의 전도 구역은 바로 이 죄악된 세상이다. 우리의 사랑의 대상, 전도와 구원의 대상은 바로 이 세상의 죄인들이다.

 

(5)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11)

 

사귀지도 말고"라는 말씀에서 우리가 악한 자들과 교제하지 말라는 교훈은 세상 사람들에 대해서가 아니고 교회 안에 있는 자들에 대해서이다. 그것은 형제라 일컫는 자즉 예수 믿는 자,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에 대한 것이다. 엄격한 의미에서, 우리는 아무나 형제라고 부르지 않는다. 형제라는 명칭은 세상과 교회를 구분하는 선과 같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자들만 형제라고 불릴 수 있다.

 

권징과 교제 단절에 대한 교훈은 바로 교회 안에 있는 형제들에 대한 문제이다. 즉 어떤 형제가 음행이나 탐람(貪婪)이나 우상숭배나 후욕(詬辱)이나 술취함이나 토색(討索) 등의 죄를 범했다면 그런 자와 교제하지 말라는 교훈이다. - 탐람은 탐욕, 후욕은 남을 욕하고 비방하는 것, 토색은 남의 물건을 강제로 빼앗는 것을 말한다.- 이런 일들은 명백히 죄이며 교회 안에서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죄에서 구원받은 자들의 모임이다. 그러므로 만일 교회 안에 그런 악한 자들이 있다면, 우리는 그런 자들과 사귀지 말고 함께 먹지도 말아야 한다. 바른 믿음을 저버린 이단자들이나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과 불순종자들은 교회의 교제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라는 말씀에서 우리는 먼저 바울이 교회 전체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지, 아니면 개인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 점에 대하여 나는 그것이 분명히 개인에 대한 언급이라고 대답하겠다. 그러나 그것은 친교의 원리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파문권은 각 개인에게 허용된 것이 아니라, 교회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 요점은 믿는 사람은 아무도 파문을 당한 사람과 친교 관계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만일 개인들이 하나님의 성찬 참예에서 제외된 자들의 초대에 응하게 되면, 교회의 권위가 사라지고 말게 된다. 음식을 함께 나누는 것은 함께 공동생활을 하는 것을 의미하거나, 혹은 우정 깊은 회식의 교제를 갖는 것을 나타낸다.

만일 내가 여관에 들어가서 파문을 당한 어떤 사람이 거기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면, 내가 그를 내쫓을 아무런 힘도 가지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와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바울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도권이 쥐어져 있는 한에서는 교회가 교제를 금한 그런 사람들과의 관계를 피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6)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12)

 

교중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치 아니하랴.”라는 말씀에서 권징의 문제는 교회 밖의 사람들에 대한 문제가 아니고, ‘교중 사람들즉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문제이며, 모든 교인들이 판단해야 할 문제이다. 외인들이란 교회 밖의 사람들 곧 하나님을 믿지 않고 그에게 복종치 않는 자들을 가리킨다.

물론 우리가 무엇이든지 바르게 판단하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아야 하며 또 그러려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열심히 읽고 묵상하며 배워야 한다.

 

(7)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13)

 

외인들은 하나님이 판단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라는 말씀은 교회 밖에 있는 세상의 모든 죄인들은 마지막 심판 날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악한 자들에 대해서는 교회가 판단하여 권징을 해야 한다. 만일 어떤 교인이 자신이 행한 악을 인정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그를 교회의 교제로부터 제외시켜야 한다.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 그는 교회에서 제명하고 출교되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가 거룩해야 한다는 진리를 안다면, 또 만일 우리가 죄의 심각성과 전염성을 안다면,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말씀에 복종하기를 원한다면, 교회는 이 사도의 교훈대로 성실히 권징을 실행해야 할 것이다. 교회가 바른 교훈을 하고 바른 지식을 가지고 신앙고백을 하고 바른 실천을 힘쓸 뿐 아니라, 권징을 성실히 시행할 때, 교회는 비로소 교회다워지고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이 그 교회와 함께할 것이다. 참 교회는 권징을 성실히 시행하는 교회이다. 그러나 권징이 없는 교회는 이름만 정통적이고 실제로는 병들었거나 죽어가는 교회일 것이다.

 

존 칼빈 주석을 중심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