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더하소서 [상권.5-23]
- 눅17:5-10 -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눅17:5-6)
사도들이 예수님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라고 간구했다. 그때에 비로소 사도들은 자신들에게 믿음이 더하여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 같다. 물론 우리들도 자신들에게 믿음이 더하여져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도들의 간구에 응답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1. 사도들은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라고 간구했다.(눅17:5, 본문)
⑴ 사도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들에게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자각한 것 같다.
①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 (롬10:17, 히11:3, 롬1:17)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10:17)
②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다. (히11:1-2)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으니라.” (히11:1-2)
③ 구원을 얻게 하는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엡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 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2:8)
⑵ 예수님은 때때로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믿음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① 믿음이 적은 자들을 책망하셨다. (마6:30, 마8:26, 마17:17, 2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마6:30)
② 믿음이 큰 사람들을 칭찬하셨다. (마8:10, 15:28)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마15:28)
2. 사도들의 간구를 들으시고 비유로서 교훈하셨다.(눅17:6, 본문)
⑴ 믿음의 ①시작과 ②그 결과에 대하여 교훈하셨다.
①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눅17:6, 본문) <참조; 막4:31-32>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막4:31-32)
②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 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눅17:6) <참조; 막9:23, 빌4:1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막9:2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⑵ 믿는 자의 ①위치와 ②그 태도에 대하여 교훈하셨다.
①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 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 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눅17:7-8) <참조; 마24: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 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마24:45)
②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할지니라.” (눅17:9-10)<참조; 요15:20, 막10:44>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 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 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 (요15:20)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 것이다(히11:6).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믿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도록 하자. <참조; 요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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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더하소서
- 누가복음 17:5-6 -
샬롬선교회
[누가복음 17:5-6] “5.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6.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사도들이 예수님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라고 원하였다. 그때에 비로소 사도들은 자신들에게 믿음이 더하여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 같다. 물론 우리들도 자신들에게 믿음이 더하여져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도들의 간구에 응답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1. 사도들이 주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라고 말하였다. (누가복음 17:5, 본문)
- 사도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들에게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자각한 것 같다.
+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 (로마서 1:17, 10:17, 히브리서 11:3)
[로마서 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다. (히브리서 11:1-2)
[히브리서 11:1-2]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으니라.”
+ 구원을 얻게 하는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에베소서 2:8)
[에베소서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 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2. 사도들의 요구를 들으시고 비유로서 교훈하셨다.(누가복음 17:6, 본문)
+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참조; 마가복음4:31-32>
[마가복음 4:31-32]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 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참조; 마가복음 9:23, 빌립보서 4:13>
[마가복음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빌립보서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3.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가르침은 사도행전 3장과 4장에 나온다.
나면서 못 걷게 된 사람에게 사도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 이를 본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때 사도 베드로가 무슨 말을 했는지가 중요하다.
+ 하나님이 주신 믿음은 비록 작은 겨자씨만한 믿음일지라도 그 믿음은 우리의 능력을 뛰어넘어 역사합니다. 즉,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그 믿음이 역사하더라도 믿음을 받은 자는 '나는 할 수 있는 만큼만 했습니다'라는 겸손한 태도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던 것 같다.
[사도행전 3:12,16]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사도행전 4: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 위의 베드로의 말씀의 배경에는 사도 베드로가 누가복음 17장에 있는 예수님과의 문답에서 예수님으로부터 '믿음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은 것이 있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믿음이 겨자씨만한 믿음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이 주시는 믿음이라는 통로를 통해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이 역사하여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예기치 못한 사건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 더군다나 누가복음 17:11-19에서 예수님께 돌아온 사마리아인에게 예수님은 "일어나 가라"고 말씀하셨다. 이 '일어나라, 가라'의 '일어나라'는 '아니스테-미' ανιστημι의 명령형 '아나스타스' αναστας로 부활의 용어이다. 오랫동안 사회에서 소외되고, 친척들과도 떨어져 고립되어 살아야 했던 자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주님과 관계를 맺고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으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기 위해 일어서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큰 소망을 가져다주는 말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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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이 주신 믿음은 비록 작은 씨앗과 같은 믿음일지라도 그 믿음은 우리의 능력을 넘어선다. 즉,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는 믿음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그 믿음이 역사하더라도 믿음을 받은 자는 '나는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는 겸손한 태도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던 것 같다.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 것이다."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 누가복음 8:19~25 -
샬롬선교회
19. ○예수의 어머니와 그 동생들이 왔으나 무리로 인하여 가까이 하지 못하니, 20. 어떤 이가 알리되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을 보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니라.
22.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매 이에 떠나, 23.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24.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25.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그들이 두려워하고 놀랍게 여겨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 하더라.
서언.
누가 8:19-25에는 두 가지 주제가 다루어져 있다. 하나는 하나님의 새로운 가족에 대한 것이고, 또 하나는 호수 위의 풍랑의 사건이다. 언뜻 보면 서로 다른 사건들이 나열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1. 하나님의 새로운 가족으로서의 공동체 (8:19~21)
'하나님의 말을 듣는다'라는 뜻은, 예수님이 '듣는 귀가 있는 사람은 들으라', '듣는 법에 주의하라'라고 말한 것과 관련이 있다. 즉, 듣는다는 것은 수동적으로 듣고 알았다고 생각하고 행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은 그 뜻을 스스로 묻는 것, 스스로 묻고 진의를 아는 것이 '듣는다'라는 것의 의미였다
'하나님의 말을 듣는다'의 '듣다'와 '그것을 행하다'의 '행한다'는 동사는 각각 함께 현재형 분사로 '계속 듣다', '계속하다'를 의미한다. 주께 있는 새로운 공동체란 그런 공동체이다. 항상, 반복, 납득이 갈 때까지 물어가는 공동체이며, 참뜻을 깨닫고 따라가는 공동체이다. 예수님이 말하는 매세지의 참뜻을 묻고 그것을 행하기 위해, 하나님께 선택된 자들, 이것이 혈연관계와는 다른, 그것을 초월한 새로운 하나님의 가족이다. 하나님의 식탁에 앉아, 함께 하나님의 말씀의 참뜻을 살피면서, 그것을 먹는 즐거움을 얻는 신앙의 공동체이다.
2. 예수님의 질문 (8:22~25)
누가의 복음 8:22-25은 호수 건너편으로 건너가기 위해 예수님이 먼저 배에 올랐고 그 뒤에 제자들이 따랐다. 그들은 먼 호수로 나갔다. 예수님은 배에 오르자, 예수님은 깊이 잠들어 버렸다. 신개역(新改訳)은 '예수님은 곤히 잠드셨다.'(23절)고 번역하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몰아친 폭풍, 맹렬한 돌풍이 그들에게 몰아쳤다. 이 때문에 그들은 물을 뒤집어쓰고 배도 물에 잠기며 덮쳤다. 제자들은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아 예수님을 깨웠다. 불쑥 일어난 예수님이 바람과 폭풍을 꾸짖는다. 바람과 풍랑은 멈추고, 바람이 멎고 물결이 잔잔해졌다. 제자들은 놀라고, 바람에 권위를 갖고 명령을 내리고, 그것을 막은 예수님에 대해 두려워하고, 놀라며,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라고 서로 말을 주고받는 것이었다.
확실히 예수님이 바람을 향해 꾸짖고, 바람이 멎고, 물결이 잔잔하게 된 현상이 놀랍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한 물음이다.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8:25)
이 한마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이 이 사건의 열쇠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이라고 하는 분은 하나님 나라의 의(奥義) 속에 항상 살아 계시고, 거기에서 말씀하시고, 행하고 계신다. 그래서 제자들은 그 진의를 알아보고 자기 것으로 삼아야 한다. 그런데 갑자기 폭풍우를 만났을 때, 그들이 예수님이 말하는 것을 어떻게 듣고 있었는지가 폭로되고 말았다.
여기서 진정한 놀라움은, 폭풍우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배 뒷머리(舟尾)에서 곤히 주무셨다는 것이다. 제자들은 이 예수님의 모습보다 예수님의 권위 있는 말씀으로 폭풍우가 멈추는 것에 더 놀라고 있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잠이 드신 모습에서야 말로 하나님 나라의 참 훌륭함을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그에 대해 놀라지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그들이 기적 같은 일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이다. .
원래 예수님이 배를 타고 건너편에 건너가려고 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돌풍이 불어오는 위기를 맞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것은 위기적인 사건에 있어서의 신앙의 살아있는 현장 훈련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폭풍을 만났을 때 제자들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날아가 버렸다. 그런데 예수님은 '침착하게, 아버지를 신뢰하고' 계셨다. '아버지를 신뢰하고' 있던 예수님은 폭풍우 속에서도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즉, 신앙이란 이런 것이라고 가르치려고 한 것이다. 예수님이 잠들어 있었다는 사실이 하나님 나라의 놀라운 현실이다. 그리고 이 믿음을 주고, 키우기 위해서, 새로운 하나님의 가족으로서의 공동체, 같은 한 배에 탄 운명공동체가 필요한 것이다.
결언.
1. 하나님께 선택된 자들은 혈연관계와는 다른, 새로운 하나님의 가족이다. 하나님의 식탁에 앉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함께 먹는 즐거움을 누리는 신앙의 공동체이다.
2. '평안한 잠'은 두려움을 몰아내는 하나님의 사랑의 힘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의 힘이야말로 영원한 생명,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의라고 할 수 있다.
=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쿠데타로 낙향했을 때 지은 시편 3편에, 다윗은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시편 3:5)라고 했다. 또 시편 27편에, 다윗은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시편27:4)라고 했다.
다윗이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여 이루어진 것이라면, 우리도 다윗이 단 하나의 일로 청한 것을 자신의 우선 요구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3. 예수님의 가르치심과 행하심, 그 모든 것이 우리의 현실을 증거하고 있다. 우리의 두려움을 몰아내는 그 신앙은 어디에 있는지를 예수님은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 예언자 이사야는 강대국의 위협에 떨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이사야 30:15)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전했다. 그런데 하나님 백성들은 그걸 원치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