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십자가 [상권.2-28]
마16:21-24 -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마1621)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에게“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고 나를 따르라”고 명하 셨다. (마16:21,24)
당시,십자가형은 종종 시행되어, 사람들은 십자가를 자신이 지고 형장으로 끌러가는 사형수를 볼 기회가 적지 않았다. 그러므로 예수 님의 이 말씀(마16:21)은 먼저 문자 그대로 받아드려야 할 것이다.
1.십자가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
⑴ 십자가의 필요성을 예수님은 일찍이 가르치셨다.(마16:21,막8:31,눅9:22)
⑵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선생과 같은 수단으로 죽임을 당할 것이 예 언되었고, 이 예언은 교회의 역사의 초기에, 또 그 후에도 문자 그 대로 성취되었다. (마23:34)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구박하리라.”(마23:34)
⑶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의 주 예수에 대한 충성과 헌신, 끊임없는 자기 부인의 생활 방법을 의미하고 있다. (눅9:23)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눅9:23)
2.십자가에 대한 제자들의 이해
⑴ 제자들:
①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어떤 의미와 필 요성을 가지고 있는가를 명확하게 선언하고 있다.(행2:23,36, 4:10,갈5:24,엡2:16,골1:20)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 내어준바 되었거늘 너 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행2:23)
⑵ 바울:
① 성경에 나타난 십자가의 의미를 확실히 한다. (고전15: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 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고전15:3)
② 십자가 안에 만이 참된 지혜가 있으므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 도 이외에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결심한다. (고전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전2:2)
③ 십자가 이외는 자랑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갈6:14)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 으니...” (갈6:14)
⑶ 요한:
① 십자가 위에서의 예수님의 승리를 보고, 예수님이 마지막에 “다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을 증언하고 있다. (요19:28ー30)
- 속죄의 도구로서 사용된 십자가는 죽음, 고통, 피 등의 말과 함께 구원의 소망을 암시하는 중요한 말씀이 되었다.
3.그리스도인의 십자가
⑴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이 주 예수님을 위하여 참지 않으면 안 되는 부끄러움의 상징이다. (히12:2)
⑵ 그리스도인의 “옛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롬6:6,갈2:20)
⑶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부활의 생명에 참여하 는 자가 되었다. (롬6:4)
⑷ 그리스도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한다. (갈6:14)
⑸ 십자가는 기독교의 선교의 내용을 요약하는 것이 되었다.(참조: 고전2:2)
- 그러므로 세상의 교회는 십자가의 증거를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상징 으로 생각하여 높이 들어 강조하여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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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죄와 십자가
- 이사야 53:1-9 -
이사야 53:1-9 / 1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9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1. 서언:
인간의 죄와 십자가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은혜를 알기를 바랍니다.
2. 본문강해
- 어찌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셨는가?
이사야 선지자는 사53:5-6『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여호와께서는 우리 머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켰도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아니한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 전서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세례 요한은 요 1:29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요리 문답에 있는 말씀과 같이 아담이 죄를 범한 이후에 그 모든 후손들은 그의 죄와 그의 부패한 성품을 계대(繼代)하였고, 또한 자기 자신들이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따라서 성경에 있는 말씀과 같이 의인은 없나니 곧 하나도 없다고 하는 이와 같은 비참한 상태에 모든 인간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죄에는 값이 있습니다.
죄의 값은 여러 가지 비참한 것이 많지마는 한마디로 말하면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육신과 영혼의 영원한 죽음입니다. 하나님과 멀리 떠나서 원수가 되고, 항상 하나님의 저주 아래에 있게 되고, 영원한 멸망 곧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이 어떻게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랑이시면 그저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면 그 뿐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말하는 이들도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인 동시에 공의의 신이올시다. 그와 같이 되면 하나님의 공의가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또한 그와 같이 되면 이 우주의 도덕적 질서가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에도 죄 사함을 얻는 길은 오직 어린양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자기의 죄를 고백한 후에 그 양을 잡아 피를 흘리고 제사를 드림으로 죄 사함을 받은 것입니다. 피 흘림이 없이 죄 사함이 없는 것입니다.
- 그러면 누가 능히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할 수 있겠는가?
첫째로, 이런 분은 사람 가운데서는 찾을 수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모든 사람은 다 죄를 지은 까닭으로 자기의 죄를 감당하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의 죄까지 대속할 수가 있겠습니까?
둘째로, 이런 사람은 아무래도 사람이어야 하겠고 또한 모든 인류를 대표할 만한 자격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여기에 여러분께서 아시는 바와 같이, 말씀이 육신을 입는 - 신학상의 술어로 수육(受肉)이라고 합니다.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육신을 입으셔서 참 하나님과 참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둘째 아담, 곧 전 인류의 대표로 어린양이 되어서 십자가의 희생의 제단을 드림으로 만민의 죄를 속량하신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담당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첫째는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시고,
둘째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시고,
셋째는 인간의 죄를 용서하셔서 구원의 문을 여신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뜻입니다.
3. 이렇게 뜻 깊은 십자가를 바라보십시다.
마음의 눈을 열어서 골고다를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골고다 산 위에 예수 그리스도를 못 박은 십자가가 높이 서 있습니다.
먼저 주의 얼굴을 보십시오. -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셨습니다. 가시에 찔린 그 이마에서는 피가 점점이 흐릅니다. 머리가로도 피 흘린 흔적이 보입니다.
그리고 또한 두 손을 보십시오. - 오른 손과 또한 왼손을 보시기 바랍니다. 두 손 다 높이 십자가에 못이 박혔습니다. 손바닥을 꿰뚫어 큰못이 예수님의 부드러운 상을 찌고 뼈 사이에로 뚫려서 나무에 깊이 박혔습니다. 못 박힌 자리에서 피가 점점이 흐릅니다. 몸이 늘어질수록 살이 점점 찢어지고 따라서 피가 더 많이 흐릅니다.
두 발을 바라보세요. - 두 발들은 역시 큰못으로 뚫렸고 그 못은 나무에 까지 깊이 박혔습니다. 못 자국으로 선형이 줄줄이 흐릅니다.
그리고 그 옆구리를 바라보십시오. - 무지한 군인은 날선 창끝을 가지고 우리 주님의 부드러운 가슴을 창으로 찌릅니다. 그 창끝이 나오자마자 뜨거운 선혈이 물과 같이 쏟아집니다. 주님의 얼굴은 점점 창백하여집니다.
이렇게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이런 고통은 한 시간만 계속된 것이 아닙니다. 두 시간만 계속된 것이 아닙니다. 세 시간만 계속된 것이 아닙니다. 네 시간, 다섯 시간, 여섯 시간, 우리가 성경에 있는 대로 계수 해 보면, 적어도 여섯 시간을 십자가 위에서 끝까지 이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고통은 참형보다 더 심하고 교수형보다 더 심합니다. 문자 그대로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모든 고통을 친히 맛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떠한 육신의 고통을 당하든지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보다 먼저 그 고통을 당하시었고 우리를 동정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십자가의 고통은 단순히 육신의 고통만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의 정신적 고통은 이보다 더 심하였습니다. 원수들은 조롱을 하였습니다.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그 곳에서 내려와서 그들로 하여금 믿게 하라고 비웃었습니다. 심지어 지나가는 사람들도 자기의 머리를 흔들면서『아,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짓는다고 하는 자여, 네가 그 자리에서 내려와서 우리로 하여금 믿게 하라.』고 조소를 거듭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적은 고통이었습니다.
십자가상에서 가장 큰 고통은, 하나님께서도 우리 주님을 버리셨습니다.
인간의 모든 죄가 그의 어깨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주님께로부터 그 얼굴을 돌리셨습니다.
마27:46-47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나의 하나님이요,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 부르짖음은 예수 님께서 인간의 죄를 홀로 담당하시고 친히 죄가 되어서 하나님께로부터 저주를 받는 그 시간에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죽기까지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마지막에 죽으셨습니다.
이렇게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으시고 마침내 죽으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요,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주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낳음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 한번 다시 우리가 십자가를 바로 봅시다.
이렇게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그 어깨에 짊어지셨던 우리의 죄도 같이 죽었습니다. 내 죄가 거기 달려서 주님이 죽을 때에 같이 죽었습니다. 죽은 예수와 같이 우리의 죄도 죽었습니다. 율법이 요구하는 죄의 형벌을 십자가에서 다 끝을 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모든 죄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때부터 우리는 죄에 죽고 의에 대하여 살기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온 인류에게 구원과 생명의 길이 열렸습니다. 이렇게 죄에 대한 책임뿐만 아닙니다. 우리를 다스리는 죄의 권세도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전에는 우리가 죄에 속아서 죄의 마력에 끌려갔습니다. 그렇지마는 우리는 죄가 이렇게 흉악하고 죄가 우리 주님까지 죽게 한 것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죄라고 하는 것이 우리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 마력이 온전히 없어졌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지 못할 때에는 죄가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죄에 속았습니다. 죄의 마력에 끌렸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본 우리는 죄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추악하고 우리 주님까지 이와 같은 고통을 받게 하였다는 죄의 정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죄의 다스리는 권세가 역시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십자가를 다시 한 번 바라볼 때에,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서 우리 주님의 그 고난을 받으신 것으로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 즉 자기의 살을 찢고 자기의 피를 흘려서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 볼 때에는, 우리는 죄에는 죽었지마는 의에는 다시 살게 되는 것입니다.
4. 결언:
인가의 죄와 십자가의 관계를 오늘 생각했습니다.
그 말씀은 이사야 53:5에 이미 이사야가 예언한 그대로입니다. 이 절을 한번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절을 읽을 때에 「우리」라는 말 대신에 「나」라는 말을 넣어서 한번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그가 찔림은 나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나의 죄악을 인함이요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내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을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얻었도다.』
여러분, 이 말씀을 다 이대로 믿습니까?
이대로 믿는 사람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내 주로 영접하는 이는 과거에 어떠한 허물과 어떠한 죄가 있던지 다 용서함을 받고, 죄에는 죽고 온전히 의에는 사는 새 생활이 시작될 것입니다. 주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의 마음속에 이 은혜를 더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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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십자가 [상권.2-28]
마16:21-24 -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마1621)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에게“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고 나를 따르라”고 명하 셨다. (마16:21,24)
당시,십자가형은 종종 시행되어, 사람들은 십자가를 자신이 지고 형장으로 끌러가는 사형수를 볼 기회가 적지 않았다. 그러므로 예수 님의 이 말씀(마16:21)은 먼저 문자 그대로 받아드려야 할 것이다.
1.십자가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
⑴ 십자가의 필요성을 예수님은 일찍이 가르치셨다.(마16:21,막8:31,눅9:22)
⑵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선생과 같은 수단으로 죽임을 당할 것이 예 언되었고, 이 예언은 교회의 역사의 초기에, 또 그 후에도 문자 그 대로 성취되었다. (마23:34)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구박하리라.”(마23:34)
⑶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의 주 예수에 대한 충성과 헌신, 끊임없는 자기 부인의 생활 방법을 의미하고 있다. (눅9:23)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눅9:23)
2.십자가에 대한 제자들의 이해
⑴ 제자들:
①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어떤 의미와 필 요성을 가지고 있는가를 명확하게 선언하고 있다.(행2:23,36, 4:10,갈5:24,엡2:16,골1:20)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 내어준바 되었거늘 너 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행2:23)
⑵ 바울:
① 성경에 나타난 십자가의 의미를 확실히 한다. (고전15: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 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고전15:3)
② 십자가 안에 만이 참된 지혜가 있으므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 도 이외에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결심한다. (고전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전2:2)
③ 십자가 이외는 자랑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갈6:14)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 으니...” (갈6:14)
⑶ 요한:
① 십자가 위에서의 예수님의 승리를 보고, 예수님이 마지막에 “다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을 증언하고 있다. (요19:28ー30)
- 속죄의 도구로서 사용된 십자가는 죽음, 고통, 피 등의 말과 함께 구원의 소망을 암시하는 중요한 말씀이 되었다.
3.그리스도인의 십자가
⑴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이 주 예수님을 위하여 참지 않으면 안 되는 부끄러움의 상징이다. (히12:2)
⑵ 그리스도인의 “옛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롬6:6,갈2:20)
⑶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부활의 생명에 참여하 는 자가 되었다. (롬6:4)
⑷ 그리스도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한다. (갈6:14)
⑸ 십자가는 기독교의 선교의 내용을 요약하는 것이 되었다.(참조: 고전2:2)
- 그러므로 세상의 교회는 십자가의 증거를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상징 으로 생각하여 높이 들어 강조하여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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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죄와 십자가
- 이사야 53:1-9 -
이사야 53:1-9 / 1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9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1. 서언:
인간의 죄와 십자가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은혜를 알기를 바랍니다.
2. 본문강해
- 어찌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셨는가?
이사야 선지자는 사53:5-6『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여호와께서는 우리 머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켰도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아니한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 전서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세례 요한은 요 1:29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요리 문답에 있는 말씀과 같이 아담이 죄를 범한 이후에 그 모든 후손들은 그의 죄와 그의 부패한 성품을 계대(繼代)하였고, 또한 자기 자신들이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따라서 성경에 있는 말씀과 같이 의인은 없나니 곧 하나도 없다고 하는 이와 같은 비참한 상태에 모든 인간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죄에는 값이 있습니다.
죄의 값은 여러 가지 비참한 것이 많지마는 한마디로 말하면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육신과 영혼의 영원한 죽음입니다. 하나님과 멀리 떠나서 원수가 되고, 항상 하나님의 저주 아래에 있게 되고, 영원한 멸망 곧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이 어떻게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랑이시면 그저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면 그 뿐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말하는 이들도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인 동시에 공의의 신이올시다. 그와 같이 되면 하나님의 공의가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또한 그와 같이 되면 이 우주의 도덕적 질서가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에도 죄 사함을 얻는 길은 오직 어린양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자기의 죄를 고백한 후에 그 양을 잡아 피를 흘리고 제사를 드림으로 죄 사함을 받은 것입니다. 피 흘림이 없이 죄 사함이 없는 것입니다.
- 그러면 누가 능히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할 수 있겠는가?
첫째로, 이런 분은 사람 가운데서는 찾을 수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모든 사람은 다 죄를 지은 까닭으로 자기의 죄를 감당하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의 죄까지 대속할 수가 있겠습니까?
둘째로, 이런 사람은 아무래도 사람이어야 하겠고 또한 모든 인류를 대표할 만한 자격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여기에 여러분께서 아시는 바와 같이, 말씀이 육신을 입는 - 신학상의 술어로 수육(受肉)이라고 합니다.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육신을 입으셔서 참 하나님과 참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둘째 아담, 곧 전 인류의 대표로 어린양이 되어서 십자가의 희생의 제단을 드림으로 만민의 죄를 속량하신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담당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첫째는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시고,
둘째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시고,
셋째는 인간의 죄를 용서하셔서 구원의 문을 여신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뜻입니다.
3. 이렇게 뜻 깊은 십자가를 바라보십시다.
마음의 눈을 열어서 골고다를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골고다 산 위에 예수 그리스도를 못 박은 십자가가 높이 서 있습니다.
먼저 주의 얼굴을 보십시오. -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셨습니다. 가시에 찔린 그 이마에서는 피가 점점이 흐릅니다. 머리가로도 피 흘린 흔적이 보입니다.
그리고 또한 두 손을 보십시오. - 오른 손과 또한 왼손을 보시기 바랍니다. 두 손 다 높이 십자가에 못이 박혔습니다. 손바닥을 꿰뚫어 큰못이 예수님의 부드러운 상을 찌고 뼈 사이에로 뚫려서 나무에 깊이 박혔습니다. 못 박힌 자리에서 피가 점점이 흐릅니다. 몸이 늘어질수록 살이 점점 찢어지고 따라서 피가 더 많이 흐릅니다.
두 발을 바라보세요. - 두 발들은 역시 큰못으로 뚫렸고 그 못은 나무에 까지 깊이 박혔습니다. 못 자국으로 선형이 줄줄이 흐릅니다.
그리고 그 옆구리를 바라보십시오. - 무지한 군인은 날선 창끝을 가지고 우리 주님의 부드러운 가슴을 창으로 찌릅니다. 그 창끝이 나오자마자 뜨거운 선혈이 물과 같이 쏟아집니다. 주님의 얼굴은 점점 창백하여집니다.
이렇게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이런 고통은 한 시간만 계속된 것이 아닙니다. 두 시간만 계속된 것이 아닙니다. 세 시간만 계속된 것이 아닙니다. 네 시간, 다섯 시간, 여섯 시간, 우리가 성경에 있는 대로 계수 해 보면, 적어도 여섯 시간을 십자가 위에서 끝까지 이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고통은 참형보다 더 심하고 교수형보다 더 심합니다. 문자 그대로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모든 고통을 친히 맛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떠한 육신의 고통을 당하든지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보다 먼저 그 고통을 당하시었고 우리를 동정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십자가의 고통은 단순히 육신의 고통만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의 정신적 고통은 이보다 더 심하였습니다. 원수들은 조롱을 하였습니다.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그 곳에서 내려와서 그들로 하여금 믿게 하라고 비웃었습니다. 심지어 지나가는 사람들도 자기의 머리를 흔들면서『아,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짓는다고 하는 자여, 네가 그 자리에서 내려와서 우리로 하여금 믿게 하라.』고 조소를 거듭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적은 고통이었습니다.
십자가상에서 가장 큰 고통은, 하나님께서도 우리 주님을 버리셨습니다.
인간의 모든 죄가 그의 어깨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주님께로부터 그 얼굴을 돌리셨습니다.
마27:46-47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나의 하나님이요,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 부르짖음은 예수 님께서 인간의 죄를 홀로 담당하시고 친히 죄가 되어서 하나님께로부터 저주를 받는 그 시간에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죽기까지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마지막에 죽으셨습니다.
이렇게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으시고 마침내 죽으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요,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주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낳음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 한번 다시 우리가 십자가를 바로 봅시다.
이렇게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그 어깨에 짊어지셨던 우리의 죄도 같이 죽었습니다. 내 죄가 거기 달려서 주님이 죽을 때에 같이 죽었습니다. 죽은 예수와 같이 우리의 죄도 죽었습니다. 율법이 요구하는 죄의 형벌을 십자가에서 다 끝을 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모든 죄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때부터 우리는 죄에 죽고 의에 대하여 살기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온 인류에게 구원과 생명의 길이 열렸습니다. 이렇게 죄에 대한 책임뿐만 아닙니다. 우리를 다스리는 죄의 권세도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전에는 우리가 죄에 속아서 죄의 마력에 끌려갔습니다. 그렇지마는 우리는 죄가 이렇게 흉악하고 죄가 우리 주님까지 죽게 한 것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죄라고 하는 것이 우리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 마력이 온전히 없어졌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지 못할 때에는 죄가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죄에 속았습니다. 죄의 마력에 끌렸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본 우리는 죄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추악하고 우리 주님까지 이와 같은 고통을 받게 하였다는 죄의 정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죄의 다스리는 권세가 역시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십자가를 다시 한 번 바라볼 때에,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서 우리 주님의 그 고난을 받으신 것으로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 즉 자기의 살을 찢고 자기의 피를 흘려서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 볼 때에는, 우리는 죄에는 죽었지마는 의에는 다시 살게 되는 것입니다.
4. 결언:
인가의 죄와 십자가의 관계를 오늘 생각했습니다.
그 말씀은 이사야 53:5에 이미 이사야가 예언한 그대로입니다. 이 절을 한번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절을 읽을 때에 「우리」라는 말 대신에 「나」라는 말을 넣어서 한번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그가 찔림은 나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나의 죄악을 인함이요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내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을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얻었도다.』
여러분, 이 말씀을 다 이대로 믿습니까?
이대로 믿는 사람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내 주로 영접하는 이는 과거에 어떠한 허물과 어떠한 죄가 있던지 다 용서함을 받고, 죄에는 죽고 온전히 의에는 사는 새 생활이 시작될 것입니다. 주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의 마음속에 이 은혜를 더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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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짐을 진 자
- 마태복음 11:27-30 -
샬롬선교회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도]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1:27-30)
서언
+ 찬송가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이 찬송은 엘리사 호프만(Elisha Albright Hoffman, 1839-1929) 목사가 1893년, 어느 불행한 여인을 심방하고 돌아와 작사․작곡한 것이다. 그는 이렇게 회고하였다.
―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근심과 고통으로 신음하는 어느 여인을 심방하라고 나를 보내셨다. 그 여인은 자기의 어려운 형편을 다 말한 다음, “목사님,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주님께 아뢰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예수님께 아뢰십시오.” 'You must tell Jesus.' / 한동안 말없이 깊은 생각에 짐겨 있던 그 여인은 눈을 뜨더니 이렇게 말하였다. “예, 예수님께 아뢰어야지요!” 'Yes, I Must tell Jesus.' /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 장면이 눈에 선하였다. 'Yes, I Must tell Jesus. I Must tell Jesus.' 나는 즉석에서 작사 · 작곡을 하였다.
+ 내 모든시험 무거운 짐을 - 찬송 363/337
(1)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 근심에 사인 날 돌아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2) 내 모든 괴롬 닥치는 환난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 주께서 친히 날 구해 주사 넓으신 사랑 베푸시네
(3) 내 짐이 점점 무거워 질 때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 주께서 진히 날 구해 주사 내 대신 짐을 져 주시네
(4) 마음의 시험 무서운 죄를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 예수는 나의 능력이 되사 세상을 이길 힘 주시네
<후렴>
무거운 짐을 나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본문강해.
[27절]
+ 하나님께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인류의 구원에 관한 모든 것들을 맡겨주셨다.
- 사람들 중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 직분과 권세와 영광을 아는 자가 아무도 없다. 오직 하나님만 예수 그리스도를 아시고, 또 사람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다”고 말씀하셨고(요 6:44), 또 자기에 대한 바른 신앙고백을 한 베드로에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말씀하셨다(마 16:17).
또 본문에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보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하나님 아버지를 아시고, 또 우리로 하나님을 깨닫게 해주신다.
[28절]
+ 무지와 불신앙과 죄악에 빠져 있는 온 세상의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놀라운 구원의 초청을 하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인류를 가리킨다. 모든 사람은 죄로 인해 영육으로 수고롭고 무거운 짐 진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생들에게 그는 편히 쉬게 하시겠다는 구원의 초청을 하신 것이다.
+ 이 초청은 초청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적 인격이심을 보인다.
이 세상에서 누가 이런 초청을 할 수 있겠는가! 누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에게 참된 안식을 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신적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고, 또 그는 그에게 오는 모든 사람에게 참으로 안식을 주신다.
[29-30절]
+ 예수의 초청의 말씀은 "[너희도]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あなたがたもわたしのくびきを負って、わたしから學びなさい] ."라는 것이다.
먼저 '너희도'라는 말씀은 중요한 내용이다. "너희는"이 아니라 "너희도" 이다. 그것은 예수의 '나도'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아버지의 멍애를 짊어지고 다닌다는 전제가 있는 것이다. 마치 예수님과 아버지가 "멍애"를 지고 있는 모습을 보이시며, "내게 배우라"라고 초청하는 말씀일 것이다.
+ 배움의 자세는 "나의 멍에를 메고"라는 것이다.
멍에라는 것은 두 마리의 소의 목에 걸어서 나아가야할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막대기 모양으로, 멍에를 멘다는 것은 비유적이다. 그렇다면 누구든지 순종하여 머리를 숙여야지 멍에를 목에 올릴 수 있을 것이다.
+ 예수님의 멍에는 성도의 직분과 봉사자의 직분을 가리킬 것이다.
그 멍에는 짐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마음의 평안을 얻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지식과 믿음을 얻었고 구주께서 주신 구원과 안식을 얻었으므로, 이제 겸손한 마음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며 따르며 배워야 한다.
결언
1. 우리는 천국 백성이 되었는지 자신을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는 참으로 회개했는지 스스로 묻고 대답해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을 의심치 말고 믿고 그의 소원으로 하나님과 예수님을 바르게 알고 믿어야 한다.
2. 우리는 참 안식을 얻어야 한다.
주께서는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자들에게 참 안식을 주신다. 그것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다(요한복음 14:27).
3. 우리는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워야 한다.
주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길은 그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는 길이다.
[갈라디아서 6: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