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십자가 [상권.2-25]
ー 요19:17-22 -
“저희가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오시니, 저희가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 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 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요19:17-18)
십자가의 필요성은 예수님이 미리 가르쳤으나(마16:21, 막8:31, 눅9:2 2),부활과 성령강림 후에 제자들은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십자가의 거치는 것이 어떤 의미와 필요성을 가지고 있는가를 확실히 선언하고 있다(행2:23, 갈5:24, 엡2:16, 골1:20).신약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그 사실과 그 상징적 의미의 2가지 면으로 묘사하고 있다.
1.그 사실
⑴ 참으로 기묘한 재판 후에 빌라도는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박히게 넘겨주었다. (마27:26)
“바라바는 저희에게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박히게 넘겨 주니라.” (마27:26)
⑵ 예수님은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오셨다. (요19:17)
⑶ 십자가는 그렇게 무거운 것은 아니었어나 예수님의 지친 몸에는 무리였기 때문에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웠다. (막15: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지나가는데 저희가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막15:21)
⑷ 형장에 도착하니 그 십자가 위에 예수님의 손에 못을 박아 세웠다.(요19:18)
“저희가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요19:18)
⑸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히브리말, 로마말, 헬라말로 쓴 죄패를 붙였다.(마27:37,요19:19,20)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마27:37)
⑹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숨을 거두셨다. (마27: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마27:50)
⑺ 십자가의 죽음은 예수님 자신이 예기하고 있었던 일이며, 그 자신으로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이었다. (마20:18,19,27:40ー42)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마20:18)
2.그 상징적 의미
⑴ 예수님의 십자가는 역사에 있어서 하나님의 속죄에 대한 상징이 되었다. (골1:20,벧전2:24)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1:20)
⑵ 죄인을 거스리고 죄인을 대적하는 증서를 패기하여 버렸다.(골2:13,14)
“...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골2:13,14)
⑶ 십자가에 의한 하나님과의 화해는 유대인과 이방인과의 사이의 벽을 부수었다. 또 구원이 전 인류를 위한 보편적인 것이 되게 했다. (엡2:11ー16)
⑷ 유대인은 로마인과 달라서 산 자를 십자가에 메다는 일은 하지 않 았다. 그러나 처형된 자의 시체를 나무에 메달아 그 형벌을 보다 크게하고 그 수치를 들어내는 일은 종종 행하여졌다. (신21:22,23)
⑸ 예수님의 십자가는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저주를 받으신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갈3:13,빌2:68)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자라 하였음이라.” (갈3:13)
⑹ 십자가는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이었다. (고전1:23,24)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1: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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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 누가복음 23:20-25 -
샬롬선교회
20. 빌라도는 예수를 놓고자 하여 다시 그들에게 말하되, 21. 그들은 소리 질러 이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22.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하니, 23. 그들이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
24. 이에 빌라도가 그들이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25. 그들이 요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를 놓아 주고 예수는 넘겨주어 그들의 뜻대로 하게 하니라.
서언:
[누가복음 23:13-10] 13.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관리들과 백성을 불러 모으고, 14. 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이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고 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심문하였으되 너희가 고발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15. 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그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그가 행한 일에는 죽일 일이 없느니라. 16. 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노라.
18. 무리가 일제히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 하니, 19. 이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러라.
1. 예수를 무죄로 하려는 빌라도의 노력
+ 누가 23:13~25에는, 빌라도가 그들 (제사장들, 지도자들, 민중)을 불러 모았다. 그 목적은 그들이 고소하고 있는 것 같은 죄를 예수에게서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빌라도의 입에서 세 번 예수가 무죄임을 말하고 있다 (23:14, 15, 22 절 참조).
+ 빌라도가 예수의 결백을 호소하며, 세 차례에 걸쳐 예수를 '석방'하려는 노력을 볼 수 있다(16, 20, 22절 참조). 그러나 반대로 민중들의 '바라바를 석방하라'는 요구에 굴복하여 본의 아니게 빌라도는 바라바를 석방하고 예수를 그들에게 인도한다. 이 전개는 빌라도에게 있어서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고 생각된다. 그가 예수를 '징계하여 석방한다'라고 하는 것도 부조리한 것이다. 죄가 없으면서도 응징을 통해 민중은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러한 속셈은 모두 실패로 끝나고 빌라도가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흐름이 전개된다.
+ 천적(天的) 현실에서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그것을 아무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누가는 우리에게 호소하려 하고 있다. 만약 예수가 십자가 위에 죽지 않았다면, 즉 빌라도가 예수의 무죄를 호소해 석방할 수 있었다면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었다는 얘기가 되고 말 것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이르는 길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일이다
2. 십자가는 어둠의 지배의 힘의 상징
+ 누가복음 23:23에는 빌라도가 예수의 결백을 여러 번 호소하면서도 그들(제사장들, 지도자들, 민중)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라는 목소리가 더 우세해져서 결국 빌라도가 그들의 요구에 응하기로 결정하게 된다.
= 부당한 재판, 불합리한 요구, 부조리한 결정이 소용돌이치는 가운데 예수는 십자가로 향한다. 지적(地的) 현실은 부당, 불합리, 부조리로 가득 차 있는 현실이지만, 천적(天的) 현실은 모두 그것으로 결정되고 있다.
즉, 예수가 지적 현실에 의한 십자가에 의해서 죽는 것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 누구도 이 천적 결정을 막을 수 없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십자가라는 저주받은 자로서 죽기로 이미 하나님이 정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 예수의 십자가의 선고는 이 세상의 모든 부당한 재판, 불합리한 호소, 부조리한 현실을 정면으로 수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어둠의 세계이다. 그 어둠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로 인한 신앙의 싸움터이기도 하다. 예수는 그 어둠 속에 놓임으로써 어둠을 승리하는 분으로 정해진 메시아이시다. 그러니 예수의 무죄를 호소하는 빌라도의 노력도 헛수고가 되어야 했다. 예수는 우리를 어둠의 힘에서 구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아야 했다.
[요한복음 16:32-33] 32.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누가복음 22:42-43] 42.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43.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3.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갈라디아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라는 말씀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말하고 있다면,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사시는] 것이라"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고 있다.
=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십자가의 죽음은 현재 완료형이다. 현재 완료형은 이미 완료된 사항이 지속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시제이다. 그리고 또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사시는] 것이라."는 현재형이다. 그리고 그 신앙은 곧 다가오는 재림에서도 계속된다.
결언:
[요한복음 13:31-35] 31. 그(가룟 유다)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32. 만일 하나님이 그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말미암아 그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33. 작은 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인간을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서 계획되고,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으로 성취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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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죄와 십자가
- 이사야 53:1-9 -
이사야 53:1-9 / 1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9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1. 서언:
인간의 죄와 십자가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은혜를 알기를 바랍니다.
2. 본문강해
- 어찌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셨는가?
이사야 선지자는 사53:5-6『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여호와께서는 우리 머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켰도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아니한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 전서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세례 요한은 요 1:29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요리 문답에 있는 말씀과 같이 아담이 죄를 범한 이후에 그 모든 후손들은 그의 죄와 그의 부패한 성품을 계대(繼代)하였고, 또한 자기 자신들이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따라서 성경에 있는 말씀과 같이 의인은 없나니 곧 하나도 없다고 하는 이와 같은 비참한 상태에 모든 인간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죄에는 값이 있습니다.
죄의 값은 여러 가지 비참한 것이 많지마는 한마디로 말하면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육신과 영혼의 영원한 죽음입니다. 하나님과 멀리 떠나서 원수가 되고, 항상 하나님의 저주 아래에 있게 되고, 영원한 멸망 곧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이 어떻게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랑이시면 그저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면 그 뿐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말하는 이들도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인 동시에 공의의 신이올시다. 그와 같이 되면 하나님의 공의가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또한 그와 같이 되면 이 우주의 도덕적 질서가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에도 죄 사함을 얻는 길은 오직 어린양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자기의 죄를 고백한 후에 그 양을 잡아 피를 흘리고 제사를 드림으로 죄 사함을 받은 것입니다. 피 흘림이 없이 죄 사함이 없는 것입니다.
- 그러면 누가 능히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할 수 있겠는가?
첫째로, 이런 분은 사람 가운데서는 찾을 수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모든 사람은 다 죄를 지은 까닭으로 자기의 죄를 감당하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의 죄까지 대속할 수가 있겠습니까?
둘째로, 이런 사람은 아무래도 사람이어야 하겠고 또한 모든 인류를 대표할 만한 자격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여기에 여러분께서 아시는 바와 같이, 말씀이 육신을 입는 - 신학상의 술어로 수육(受肉)이라고 합니다.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육신을 입으셔서 참 하나님과 참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둘째 아담, 곧 전 인류의 대표로 어린양이 되어서 십자가의 희생의 제단을 드림으로 만민의 죄를 속량하신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담당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첫째는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시고,
둘째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시고,
셋째는 인간의 죄를 용서하셔서 구원의 문을 여신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뜻입니다.
3. 이렇게 뜻 깊은 십자가를 바라보십시다.
마음의 눈을 열어서 골고다를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골고다 산 위에 예수 그리스도를 못 박은 십자가가 높이 서 있습니다.
먼저 주의 얼굴을 보십시오. -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셨습니다. 가시에 찔린 그 이마에서는 피가 점점이 흐릅니다. 머리가로도 피 흘린 흔적이 보입니다.
그리고 또한 두 손을 보십시오. - 오른 손과 또한 왼손을 보시기 바랍니다. 두 손 다 높이 십자가에 못이 박혔습니다. 손바닥을 꿰뚫어 큰못이 예수님의 부드러운 상을 찌고 뼈 사이에로 뚫려서 나무에 깊이 박혔습니다. 못 박힌 자리에서 피가 점점이 흐릅니다. 몸이 늘어질수록 살이 점점 찢어지고 따라서 피가 더 많이 흐릅니다.
두 발을 바라보세요. - 두 발들은 역시 큰못으로 뚫렸고 그 못은 나무에 까지 깊이 박혔습니다. 못 자국으로 선형이 줄줄이 흐릅니다.
그리고 그 옆구리를 바라보십시오. - 무지한 군인은 날선 창끝을 가지고 우리 주님의 부드러운 가슴을 창으로 찌릅니다. 그 창끝이 나오자마자 뜨거운 선혈이 물과 같이 쏟아집니다. 주님의 얼굴은 점점 창백하여집니다.
이렇게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이런 고통은 한 시간만 계속된 것이 아닙니다. 두 시간만 계속된 것이 아닙니다. 세 시간만 계속된 것이 아닙니다. 네 시간, 다섯 시간, 여섯 시간, 우리가 성경에 있는 대로 계수 해 보면, 적어도 여섯 시간을 십자가 위에서 끝까지 이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고통은 참형보다 더 심하고 교수형보다 더 심합니다. 문자 그대로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모든 고통을 친히 맛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떠한 육신의 고통을 당하든지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보다 먼저 그 고통을 당하시었고 우리를 동정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십자가의 고통은 단순히 육신의 고통만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의 정신적 고통은 이보다 더 심하였습니다. 원수들은 조롱을 하였습니다.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그 곳에서 내려와서 그들로 하여금 믿게 하라고 비웃었습니다. 심지어 지나가는 사람들도 자기의 머리를 흔들면서『아,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짓는다고 하는 자여, 네가 그 자리에서 내려와서 우리로 하여금 믿게 하라.』고 조소를 거듭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적은 고통이었습니다.
십자가상에서 가장 큰 고통은, 하나님께서도 우리 주님을 버리셨습니다.
인간의 모든 죄가 그의 어깨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주님께로부터 그 얼굴을 돌리셨습니다.
마27:46-47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나의 하나님이요,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 부르짖음은 예수 님께서 인간의 죄를 홀로 담당하시고 친히 죄가 되어서 하나님께로부터 저주를 받는 그 시간에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죽기까지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마지막에 죽으셨습니다.
이렇게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으시고 마침내 죽으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요,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주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낳음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 한번 다시 우리가 십자가를 바로 봅시다.
이렇게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그 어깨에 짊어지셨던 우리의 죄도 같이 죽었습니다. 내 죄가 거기 달려서 주님이 죽을 때에 같이 죽었습니다. 죽은 예수와 같이 우리의 죄도 죽었습니다. 율법이 요구하는 죄의 형벌을 십자가에서 다 끝을 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모든 죄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때부터 우리는 죄에 죽고 의에 대하여 살기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온 인류에게 구원과 생명의 길이 열렸습니다. 이렇게 죄에 대한 책임뿐만 아닙니다. 우리를 다스리는 죄의 권세도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전에는 우리가 죄에 속아서 죄의 마력에 끌려갔습니다. 그렇지마는 우리는 죄가 이렇게 흉악하고 죄가 우리 주님까지 죽게 한 것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죄라고 하는 것이 우리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 마력이 온전히 없어졌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지 못할 때에는 죄가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죄에 속았습니다. 죄의 마력에 끌렸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본 우리는 죄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추악하고 우리 주님까지 이와 같은 고통을 받게 하였다는 죄의 정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죄의 다스리는 권세가 역시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십자가를 다시 한 번 바라볼 때에,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서 우리 주님의 그 고난을 받으신 것으로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 즉 자기의 살을 찢고 자기의 피를 흘려서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 볼 때에는, 우리는 죄에는 죽었지마는 의에는 다시 살게 되는 것입니다.
4. 결언:
인가의 죄와 십자가의 관계를 오늘 생각했습니다.
그 말씀은 이사야 53:5에 이미 이사야가 예언한 그대로입니다. 이 절을 한번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절을 읽을 때에 「우리」라는 말 대신에 「나」라는 말을 넣어서 한번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그가 찔림은 나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나의 죄악을 인함이요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내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을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얻었도다.』
여러분, 이 말씀을 다 이대로 믿습니까?
이대로 믿는 사람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내 주로 영접하는 이는 과거에 어떠한 허물과 어떠한 죄가 있던지 다 용서함을 받고, 죄에는 죽고 온전히 의에는 사는 새 생활이 시작될 것입니다. 주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의 마음속에 이 은혜를 더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