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동산 [상권.1-21]
- 사51:1-3 -
“대저 나 여호와가 시온을 위로하되 그 모든 황폐한 것을 위로하여 그 광야로 에덴 같고 그 사막으로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사51:3)
하나님은 광야 같은 세상을 에덴 동산 같이 만드시고, 사막 같은 인 간의 심령도 여호와의 동산으로 같게 하신다. 성경에는 세 가지 동산 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첫째는 인간이 얻었다가 잃어버린 에덴 동 산, 둘째는 구원받은 인간이 들어갈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즐거운 동 산, 셋째는 인간이 세상에 사는 동안 거하는 평안한 심령의 동산이 있다.
1. 얻었다가 잃어버린 에덴 동산 (창2:8, 3:23)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 을 거기 두시고, ...” (창2:8),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 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창3:23)
⑴ 하나님이 에덴이라는 곳에 아름다운 동산을 만드시고 첫 인간 아담 과 하와를 그곳에 살게 하셨다.
⑵ 이 동산은 인간이 살기에 참으로 좋은 곳이었다. 좋은 과실나무도 많았고 선악과도 있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이 동산의 모든 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다.
⑶ 이 동산에서 사탄이 인간을 유혹했다. 하와와 아담이 그 유혹에 속 아 금지된 선약과를 따서 먹으므로 죄를 범했다. 그로 인하여 인간 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
- 영국의 시인 존 밀톤이 ‘잃어버린 낙원’이란 책을 써서 그 사실을 잘 묘사했다.
2. 구원받은 인간이 들어갈 하나님 나라의 즐거운 동산(계22:1-2)
“...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 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 과를 맺히고 ...” (계22:1-2)
⑴ 하나님 나라에는 구원받은 사람이 영원히 있을 낙원(즐거운 동산)이 있다.
①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눅23:43)”라고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의 한 강도에게 말씀하셨다.
②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고후12:4)”라고 바울이 자신의 신비로 운 체험을 고백했다.
③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계2:7)
⑵ 창세기로부터 계시록에 있는 모든 책들은 죄로 말미암아 에덴 동산 에서 추방을 받은 인간들이 다시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동산에 들 어가는 길을 보여준다.
3. 인간이 세상에 사는 동안 거하는 평안한 심령의 동산 (렘31:12)
“... 그 심령은 물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렘31:12)
⑴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에덴 동산에서 추방을 당했지마는 하나님께 서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어 그를 믿고 구원 받은 사람은 비록 이 세상에 살지마는 여호와의 동산에 살게 하겠 다고 말씀하셨다. (요4:13, 렘31:12, 아5:1)
① “...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 라.” (요4:13)
② “그 심령은 물댄 동산 같겠고 ...” (렘31:12)
③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 (아5:1)
⑵ 구원받은 자의 영혼은 그 마음이 여호와의 동산이다.
① 이 동산은 하나님께서 창설하셨다. (시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시23:3)
② 이 동산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값을 주고 사신 것이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 (고전6:19-20)
③ 이 동산에 주님께서 항상 머물기를 원하신다. (딤후4:22, 마28:20)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 ” (딤후4:22)
누구든지 예수님 앞에 나와서 그를 믿으면 그의 심령이 광야와 같 고 사막과 같을지라도 여호와의 동산과 같이 변화시켜서 참된 행복을 누리게 하신다. 우리 주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면 우리의 삶 가운데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을 것이다(본문).
하나님의 창조
- 이사야 40:25-31 -
이사야 40:25-31/ 25.거룩하신 이가 이르시되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교하여 나를 그와 동등하게 하겠느냐 하시니라
26.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27.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28.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서언: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고, 만물을 그 수효대로 이끌어 내셨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셨다. 그의 능력이 크고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이 창조되었다. 이 세상의 어느 신, 어느 우상이 이런 능력을 조금이라도 가졌는가?
1. 본분강해:
[25-26절]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거룩하신 자가 가라사대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 나로 그와 동등이 되게 하겠느냐 하시느니라.”
하나님은 거룩하신 자이시다. 그는 모든 피조 세계로부터 초월해 계신다.
그의 존재 자체가 초월적이며 그의 도덕성이 이 불결한 세상과 구별되신다.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 나로 그와 동등이 되게 하겠느냐?”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온 세상을 홀로 섭리하시는 주권적 하나님을 그 누구와 비교할 수 있겠는가?
이사야는 다시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증거한다.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면 그 분 자신에 주목하지 않고 그 분 자신이 만든 것을 섬긴다. 그리하여서 지으신 분을 망각하고 그 분께서 행하신 표적만을 좇는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은 ‘우상을 만들어 내는 영원한 공장(工場)’과 같다. ‘마음은 우상을 잉태하고 손은 그 우상을 만들어 낸다’.
창조주 하나님을 진실하게 알지 못하고 그 분을 예배치 않으면서 단지 그 분께서 지으신 것들만 바라고 붙드는 것이 곧 우상숭배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형상으로 하나님을 비길 것으로 여기는 자들을 질책하면서,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깨닫지 못하였느냐”(사 40:21) 라고 반문하였다.
[27절]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의 낙심된 마음 상태를 지적하며 그들을 위로하려 한다.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내 사정’이나 ‘내 원통한 것’은 그들이 앗수르와 바벨론의 포로 생활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내용을 말한다. 그들은 죄 때문에 당연히 고난을 받고 있지만, 회개하며 하나님의 긍휼의 구원을 갈망하며 또 그들을 학대하는 이방인들에 대해 하나님의 공정한 보응을 호소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깊은 뜻 가운데 자기 백성을 고난 중에 버려두셨고 그들을 잊으신 것처럼 보였다. 그는 때때로 그러하셨다(시 13:1-2).
[28-29절]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시며 그가 자기 백성에게 무엇을 주실 것인지 증거한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이스라엘은 먼저 하나님께서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이심을 알아야 한다. ‘여호와’는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스스로 계신 분이심을 나타내는 명칭이다. 출애굽기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스라엘은 창조자 하나님께서는 피곤치 않으시고 명철과 능력이 무한하신 자이심을 알아야 한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명철과 능력으로 그 선하신 뜻을 다 이루신다.
[30-31절] 이스라엘은 특히 하나님께서 피곤한 자들에게 힘을 주시는 분이심을 알아야 한다. 이사야는 말하기를,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라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넘어질 수 있고 피곤하고 낙망할 수 있다. 아브라함도, 모세도, 다윗도 실수하거나 낙심할 때가 있었다. 사람은 질그릇과 같다. 능력은 사람에게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있다. 시편 62:11은,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난 중에도 낙심치 않는다고 고백하면서,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증거하였다(고후 4:7). 사람은 연약하지만, 오직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고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며 걸어가도 피곤치 않고 달려가고 곤비치 않을 것이다.
2. 창조주 하나님의 손
* 하나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을 지으셨다. 그러므로 시간과 공간에 갇히지 아니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역사 속에 계시지만 그 너머에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공간이 아닌 곳에도 계신다. 시간을 다 더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영원히 계심에 닿을 수 없고 공간을 다 모은다고 해서 하나님의 어디에나 계심을 채울 수 없다.
* 하나님께서 영이심은(요 4:24) 그 분께서 스스로 계심을 의미한다. 지어진 것은 모두 물(物)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계시니 영이시다.
창조주께서는 살아계신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지어진 것 자체가 아니시며 그것의 기(氣)나 정신(精神)으로 대체되시는 분이 아니시다.
*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뻐하심에 따라서 만물을 지으셨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극장으로서, 그 분의 은총을 기념하는 훈장으로서, 그 분의 어떠하심을 비추는 거울로서, 그 분의 섭리를 그러내는 그림으로서 지어졌다.
하나님께서 시간과 공간과 함께 만물을 지으셨으므로 시간과 공간을 연장한다고 한들 그 분의 무한하심에 이를 수 없다. 만물이 존재함은 오직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이다. 물론 사람도 예외가 될 수 없다.
* 천지를 지으실 때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복리(福利)’를 귀하게 여기셨다.
‘만약 하나님께서 아담을 황량하고 공허한 땅에 두셨다면, 만약 빛이 있기 전에 아담을 지으셨다면, 그 분께서는 아담의 복리에 충분하게 주신 것으로 여겨지지 않으셨을 것이다.
실로 그 분께서는 사람의 필요를 위하여 해와 별들의 운행들을 주장하셨으며, 생물들로 땅과 물들과 공중을 채우셨고, 음식에 족하도록 과일들을 풍부하게 맺게 하셨다. 그리하여서 하나님께서는 미리 바라보고 부지런히 가족을 돌보는 아버지의 책임을 떠맡으셔서 우리를 향하여 자신의 놀라운 자비를 보이신다’.
* 모든 피조물의 지어짐이 이러하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두고 평생을 묵상하여도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시선을 어디로 향하든 하나님께서 빚으신 창조세계의 아름다움에 압도되지 않을 사람 아무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이 우주의 모든 좋은 것을 지으신 후 사람을 창조하셔서 함께 안식에 들어가셨다. 이렇듯 창조의 순서는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부성적인 사랑’을 여실히 계시한다.
*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을 가진 사람에게 영광을 받기 위해서 자신의 ‘섭리’와 ‘부성적인 배려’ 가운데 먼저 인간에게 유익하다고 예견하시고 예지하신대로 모든 것을 지으셨다.
이제 그 하나님의 창조의 ‘손(manus)’이 섭리하심으로 그 분께서는 자신에게 속한 자녀들을 성실하게 보호하시며 가르치고 양육시키신다.
3. 하나님의 창조의 위대함과 부요함
*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성령의 권능으로 하늘과 땅을 무로부터 창조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각각의 종류대로 생물들과 무생물들을 지으시고, 각각에 적합한 특성을 부여하시고, 그 특성에 맡는 기능을 맡기셔서 정한 곳에서 정한 일을 정한 법칙대로 행하게 하셨다.
*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은밀한 손에 의해서 배양되며 새 힘으로 공급받고 종이 멸절되지 않도록 보호받는다.
창조주께서는 마치 웅대하고 화려한 저택과 같이 가장 아름답고 정교한 식양에 따라서 마련된 장식들로 우주를 채우신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는 ‘그토록 유려한 아름다움과 그토록 위대하고 다양한 은사들로 사람을 장식하셔서 자신의 작품들 중에서 최고의 표본을 제시하셨다.’
“그러므로 이 가장 아름다운 극장에 드러나 표현된 하나님의 작품들을 즐기는 것을 부끄러워 말자!”.
* 하나님께서는 또한 자신의 ‘일꾼(minister)’으로서 천사를 창조하셨다.
창세기의 기사는 보이는 것들에 대해서만 구체적으로 전하고 있다. 그러나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창 2:1) 라는 말씀 가운데 천사의 창조도 6일 중에 이루어졌음이 천명되었다고 볼 수 있다.
* 천사 역시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마니교는 선한 것들의 기원이 하나님이신 반면에 악한 것들은 사탄으로부터 지어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타락한 천사는 처음부터 그렇게 지어진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선하게 지으셨다. 그러므로 ‘죄는 본성으로부터가 아니라 본성의 부패로부터 나온다’.
* 천사와 관련해서 우리는 건덕에 도움이 되는 교훈에 만족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진실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께서 말씀하신 것을 자신의 백성이 받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일체의 ‘공허한 사색’을 피하여야 한다.
‘신학자의 임무는 수다스럽게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것들, 확실한 것들, 유익한 것들을 가르침으로써 양심을 확증하게 하는데 있다’.
* 천사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경영자들이며 수행자들이다.
그들의 손이 우리를 붙들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며(시 91:11-12) 우리를 둘러 진 치고 건지신다(시 34:7). 그들의 섬김으로 광야의 인생길 가운데 이스라엘의 진이 보호되었다(출 14:19; 23:20).
천사들은 그리스도의 나심을 고지했으며(눅 1:26-38) 그 분의 나심을 찬양했다(눅 2:13-14). 천사들은 예수를 수종들고(마 4:11) 그 분의 기도에 힘을 더하였다(눅 22:43).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자신의 은혜를 베푸실 때 천사들을 일꾼으로 사용하신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일을 수종들며 동시에 그 분의 영광을 찬미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행하며 그의 말씀의 소리를 듣는 여호와의 천사들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그에게 수종들며 그의 뜻을 행하는 모든 천군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시 103:20-21).
*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히 1:14) 단순한 성질이나 영감이 아니라 ‘실체’이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의 손으로 율법을 주셨다(행 7:53; 갈 3:19). 천사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섬기며 그들의 머리로서 중보하시는 그리스도를 수종든다(엡 5:23; 히 1:6). 주님께서는 마지막 날 천사들과 함께 강림하실 것이다(마 25:31; 눅 9:26). 그리스도께서 교회와 천사들의 머리가 되신다.
* 천사들은 ‘하나님의 손’으로서 사용된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 분께 붙들려 은혜 받게 돕는다. 결국 천사들은 중보자 그리스도의 사역을 돕는 일꾼들로서 사용된다. 만군의 주께서 서 계시는 사닥다리로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섬긴다(창 28:12; 요 1:51). 천사들의 직임은 중보자 그리스도의 중보를 돕는데 있다.
* 타락한 천사인 마귀는 본래는 하나님의 천사였으나 스스로 타락하여 ‘거짓의 아비’가 되었다(요 8:44).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벧후 2:4) 심판하심은 그들이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이기 때문이다(유 6). 그러나 타락한 천사들도 하나님의 일꾼으로 사용된다. 심지어 타락한 천사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때도 하나님의 작정 가운데의 허용이 없고서야 되지 않는다.
* 사람과 천사와 더불어 모든 피조물 가운데는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지혜, 권능, 의, 인자(仁慈)’가 빛나고 있다.
지어진 모든 것들 가운데서 우리는 지으신 분의 어떠하심을 ‘마치 거울들을 통해서 보듯이 본다. 모든 만물이 이토록 수려하고 조화롭거늘 ‘그 예술가의 위대하심’은 어떠하랴!
실로 하나님의 권능으로부터 나오는 많은 기적들은 그 분의 선하심의 표들만큼이나 많고, 그 분의 지혜의 증거들만큼이나 많도다. 그 수는 사물들이 작든지 크든지, 그 사물들만큼이 되도다.
결언:
본문에서 세 가지 교훈을 얻는다.
첫째로, 우리는 우상숭배가 헛됨을 알자.
놋쇠나 나무로 만들고 금은을 입힌 우상은 아무 생명이 없다. 제사와 차례도 헛되고 가증한 우상숭배임을 알자. 또 돈 숭배와 인간 숭배와 육신의 쾌락 추구도 헛된 것이다. 우리는 헛된 우상숭배를 버리자. 인간 숭배, 돈 숭배, 육신의 쾌락 추구를 버리자. 그것들은 우리에게 참 평안과 행복을 주지 못하고 더더욱 영생을 주지 못한다.
둘째로, 우리는 참 하나님만 섬기자.
태초부터 하늘 위에 앉으신 자,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홀로 섭리하시는 그 하나님만 믿고 섬기자. 그는 명철과 능력이 무한하시며, 피곤치 않으시는 자이시다. 그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자신을 증거하셨다. 그가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고 그의 죽음과 부활로 자신을 증거하셨다. 우리는 그 하나님만 믿고 섬기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앙망함으로 날마다 새 힘을 얻자.
이스라엘은 고난 중에 피곤해져 있고 낙심 가운데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힘을 얻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시고 용납하실 것이다. 아니,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감동하셨고 회개하며 주께로 돌아오게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조주와 섭리자이신 하나님을 앙망해야 한다. 우리는 피곤함과 낙심을 떨쳐 버리고 날마다 살아계신 참 하나님을 앙망함으로 새 힘을 얻고 하나님 안에서 살며 활동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