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서의 관점에서 본 구약의 개혁신학

 

 

예언자의 입장에서 예언서의 관점으로 구약의 개혁신학을 읽고 글을 쓰라는 교수님의 말씀에 그것을 듣는 순간 잠시 생각이 멈추어 버렸다. 교수님의 말씀하신 아이디어에 깜짝 놀랐다. 이런 방법으로도 책을 읽을 수 있구나 하지만 어디서 어떻게 접목하며 읽어야 하는 것인지 감히 잡히지 않아 무거운 마음을 갖고 책을 읽었다.


이 책의 구성은 각 장별로 책을 볼 수 있게 되어 있고 구약의 개혁신학과 한국 역사에 대한 관심, 구약의 종교 개혁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또한 한국의 구약 신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 한다. 물론 개혁의 관점에서 말하고 있다. 책의 내용은 일관성 있게 잘 연결되어진다. 다음에 논의 될 내용을 독자로 하여금 예상하게 해주므로 저자의 세심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조금은 딱딱하게 읽게 될 수 있는 구약을 좀더 쉽게 읽게 해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논문 형식을 갖춘 책이기에 쉽게 읽을 수만은 없었다. 먼저 책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고 나의 작고 부족하지만 예언서의 관점에서 보도록 노력하며 글을 간단히 쓰고자 한다. 교수님의 생각에 미치지 못할 것이 걱정이 된다.



1장 유다 왕국의 종교 개혁


Ⅰ. 문제 제기와 연구 목적


이 연구의 과제는 신명기 역사서에 나타난 남왕국시대의 종교개혁을 신명기 역사가의 신학적 관점과 히스기야 왕과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 특징을 이해하는데 있다. 이 책의 관심은 히스기야와 요시야 왕이 왜 종교개혁을 일으키게 됐는가, 신명기 역사가는 이 왕들의 종교개혁을 어떻게 평가하며, 어떤 기준에서 평가하는가라는 문제에 있다.


"종교개혁" 연구 신명기적 역사연구에서 신명기 역사의 통일성을 재구성하려는 움직임으로 호프만은 다섯 가지 종교개혁 유형을 밝히며 히스기야 왕과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은 종교와 정치가 통합된 개혁이었다는 것과 요시야 왕의 개혁기사의 특징을 설명한다. 히스기야 왕과 요시야 왕의 종교 개혁은 “제의 중앙화”에 대한 문제가 중심이다. 일반적으로 신명기서의 근본적인 요구의 하나가 단일 중앙 성소에서 야웨 예배를 드리도록 하는 것이라는데(야웨가 선택하실 곳) 동의한다. 그러나 기원에 대한 문제에서는 견해가 일치하지 않는다.


 

Ⅱ. 분열 후 남왕국시대의 종교 개혁


종교개혁의 유형 호프만은 종교개혁 기사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하나는 부정적인 개혁으로 신명기 역사가의 눈에 벗어난 것으로서 야웨 종교와 분리된 개혁, 또 하나는 긍정적인 개혁으로 제의의 순수화와 관련된 개혁이다. 그는 신명기 역사는 왕국시대의 종교개혁을 시대별로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누었다. 여기서는 마지막 시대인 남 왕국의 히스기야 왕과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을 다루고자한다. 그것은 종교개혁의 유형이 같을 뿐만 아니라 개혁의 목적과 의도, 제의 중앙화 등 개혁내용들이 유사하는 점에서 연구할 가치가 있다.


분열 후부터 히스기야 시대까지 종교 정책 신명기 역사가는 계약신앙에 입각하여 신앙의 순수성을 강조하며 토라에 대한 순종은 축복을, 불순종은 징벌을 가져온다는 공식으로써 이스라엘 역사를 해석한다. 남 왕국의 왕들을 르호보암 왕부터 히스기야 시대까지(992~687/6 B.C.) 각 왕들의 종교정책을 세 부분으로 대별할 수 있다. 첫째, 르호보암부터 아사 왕까지, 둘째, 여호사밧부터 아달랴까지, 셋째, 요아스부터 히스기야 왕까지.


히스기야ㆍ요시야의 종교개혁 이스라엘 종교 전승은 크게 두 가지 전승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출애굽 ․ 시내산 계약 전승으로 북쪽 지파에 의해 계승되어 내려왔고, 또 하나는 예루살렘 시온(제의) 전승과 다윗 계약 전승이다.



Ⅲ. 히스기야 왕의 종교개혁


히스기야 왕은 선왕의 정치적 예속으로 인한 혼합주의적 이방종교의 범람에 저항하여 종교 개혁을 일으키게 되었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앗시리아로부터 독립하려는 의지에서 표출된 행동이었다. 당시의 사회적 현실은 예언자 이사야와 미가의 예언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종교개혁 시도 제의 중앙화의 종교 개혁을 실시하고 혼합주의적 종교의식을 철폐하고 성전을 강조하였다. 이사야는 다윗 왕조신학으로 국가의 재난을 해석하였다. 또한 히스기야 왕에게 영향을 미쳐 개혁 사업에 전력케 하였을 것이다.


신명기 역사가는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다”라고 평가한다.



Ⅳ. 요시야왕의 종교개혁


역사적 배경과 동기 정치적 상황, 종교적 경향, 시회적 현실 속에서 변화를 가져오게 했다. 종교개혁 시도와 결과 이 개혁은 거의 일세기 전의 히스기야의 개혁과 유사했지만 그 철저함은 훨씬 더하였다. 개혁을 가속화 그 방향을 뚜렷하게 하였다.


 

Ⅴ. 결론


히스기야 개혁은 북이스라엘의 멸망상황에서 남은 유다의 민족의 도태 국면에서 남유다를 지속케 했고, 요시야 개혁은 신명기 역사가에 의하면 유다의 심판을 연기시킨 결과를 가져다주었을 뿐만 아니라 독립운동이란 유다의 정신적 산물을 남겼다.



2장 히스기야 개혁 신학


Ⅰ. 신명기 역사의 제의 개혁과 환원 신학- 아하스, 므낫세, 요시야 왕을 중심으로


이 번장에서는 신명기 역사를 중심으로 아하스 왕과 므낫세 왕, 요시야 왕의 개혁을 보며 히스기야 왕의 개혁을 비교해 본다. 아하스 왕은 신명기 개혁에 반제의 개혁자로서 열왕기에 나타나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야웨 제의 개혁의 확장을 이루었던 왕으로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므낫세는 히스기야 개혁을 무산시키고 원점으로 돌아가게 한 왕이었지만 신명기 역사에 있어서 그림자의 역할로서 히스기야를 부각시키고 있음이 드러났다. 히스기야의 초기 신명기 율법책이 숨겨지고 요시야 시대에 발견되어 개혁에 동력이 되었다. 요시야 개혁은 시기적으로 후대에 다시 히스기야 개혁을 보완하여 더 적극적으로 제의 중앙화를 실시하려고 노력한, 정치성이 결여된 개혁이었다. 히스기야, 요시야 왕의 제의 개혁은 히스기야 시대에는 제의 중앙화로서, 포로시대에는 제의 순수화로서 개혁 신학의 의미를 가진다.


Ⅱ. 앗시리아의 종교 정책과 히스기야 종교 개혁


히스기야 시대의 앗시리아의 종교 정책은 종교 강요 정책이 아닌 자국의 종교를 인정하는 관용 정책으로 유다에서는 야웨 종교를 인정한 상황이었다. 히스기야의 개혁이 앗시리아 반란으로 발전되었던 것은 당시 국제 정세의 상황에서 주위에 여러 나라와 더불어 앗시리아에 반란하던 정황에서 보조를 맞추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히스기야가 성전 기둥에 있는 금, 은 보화를 벗겨서 바치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통하여 포로기 편집자의 관점에서 포로기 신학을 찾게 되었다. 히스기야 개혁 기사를 통하여 히스기야 시대와 요시야 시대, 포로기 시대의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되고 읽혀졌는가라는 점이 새롭게 대두되고, 다시 연구되어져야 한다.


 


Ⅲ. 히스기야 개혁의 정치, 종교적 성격과 신학


히스기야 개혁이 종교적 동기에서 발생하였는지, 아니면 정치적 동기에서 발생하였는지에 대한 문제는 멕케이와 코간, 호프만이 주장하는 것처럼 일방적인 하나의 입장보다는 종교적인 요인과 정치적인 요인이 별개로 존재하면서 동시에 히스기야가 종교적 개혁과 정치적 개혁을 일으킨 것으로 볼 수 있었다. 히스기야 시대의 제의 중앙화 개혁은 궁극적인 면에서 종교 개혁 후 정치 개혁을 일으킨, 종교 ․ 정치적인 개혁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또한 포로기 신명기 역사가는 히스기야 개혁을 예루살렘 귀환의 중요한 신학적 메시지의 모델로 보고 있다. 그래서 히스기야 개혁을 귀환 개혁의 케리그마로 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히스기야 개혁이 당시의 상황에서 정치적, 종교적 의미가 있었고, 그 개혁의 기록 시대에는 또 다른 신학적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된다.


 


Ⅳ. 히스기야 기사에 나타난 환원 신학


히스기야 개혁 기사가 바빌론 포로기에 환원(귀환, RESTORATION)의 과제로 인식되고 히스기야 개혁이 신학적으로 환원 개혁으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성경의 본문이 기록된 시대와 그 이야기가 반영하는 시대가 있음을 전제해 볼 때, 전승사적인 발전의 과정을 상정할 수 있었다. 히스기야 시대와 요시야 시대, 포로 시대 등 각 시대마다 히스기야 개혁 기사가 어떠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질문할 수 있었다. 그러한 맥락에서 포로기의 히스기야 기사의 의미는 드러난다. 이 책에서는 포로 시대의 적작들 중에 에스겔과 예레미야, 제2이사야의 포로기 신학이 환원 신학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더 나아가 히스기야 기사와 신명기 역사서의 전체 주제의 관점에서 포로기 환원 신학을 연구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환원 신학은 히스기야 기사에 중심 신학이며 포로 시대에 중요한 핵심 주제임을 드러내었다.



Ⅴ. 역대기 역사의 히스기야 개혁


히스기야 개혁 기사가 성서에 세 부분(열왕기, 역대기, 이사야)에 나오는데 각기 기록된 내용과 신학이 다르게 나온다. 역대기 역사에 기록된 히스기야 개혁에 대한 내용이 신명기 역사에 기록된 것과 차이가 있고 많은 점이 다르게 나타난다. 신명기 역사는 바빌론 포로 생활이라는 시점에서 귀환의 희망을 가지고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반면, 역대기 역사는 유다 귀환 생활에서 다시 솔로몬 성전을 재건하려는 역사적 사명에서 제의 공동체와 제2성전을 건설해야 할 과제로서 역사를 해석하고 있다. 신명기 역사에 종교 개혁 기사가 더 많이 기록된 요시야 개혁보다 히스기야 개혁은 역대기에 더 강조되고 있다. 이것은 유월절 행사, 성전 청결, 레위인 정결 등 제의 중앙화 개혁을 보여 준다.


Ⅵ. 요시야 개혁과 신명기 역사 - 히스기야 개혁과 관련하여


구약 역사서 분야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의 문제들이 제기 되어오고 있다. 그것이 신명기와 신명기 역사에 대한 문제, 신명기와 요시야 개혁, 히스기야 개혁과의 관계등의 문제들이다. 특히 요시야 개혁은 그 중요성이 증가되면서 논자는 많은 연구를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히스기야, 요시야 개혁은 예루살렘을 제외한 지방의 모든 제의 시설을 철폐하고 모든 제의 활동을 예루살렘 성전으로 제한하는 것을 그 골격으로 하고 있다. 요시야의 개혁은 이전의 왕들에게서 언급되지도 않았고 이전의 통치자의 잘못으로 돌리지도 않았던 부정한 제의적인 행동과 물건들을 제거했다. 요시야는 이미 완전한 신명기 역사가의 토라, 제의, 예언, 정치(생활)의 구성의 틀을 모두 실현한 선왕, 히스기야 왕을 재현하려고 했다.


신명기와 신명기 역사 연구에서 요시야 개혁과 히스기야 개혁에 대해 연구함에 있어서 기록 시대와 편집 시대, 정경 시대를 구별하여 연구 해야 한다. 요시야 왕 때 발견된 율법책이 원신명기라는 이론과 그 책과 개혁이 관련되어 있다. 이것은 더욱이 신명기와 신명기 역사서의 구성과 편집에 핵이 된다. 신명기 역사가의 관점에서 히스기야 기사와 요시야 기사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구성적 주제의 관점에서 보면 요시야 개혁보다 히스기야 개혁 상대적으로 더 강조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3장 구약의 개혁 신학의 방향


Ⅰ. 구약의 축제


구약의 축제는 이스라엘의 축제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왜 축제가 형성되었는가라는 근원적인 문제에 해답이 되기 때문이다. 논자는 축제가 기록된 본문들을 살펴보면서 축제의 역사성과 후대의 축제 상황 등을 살펴보며 구약 축제의 중심 축제와 역사적 중심의 사건은 무엇인가라는 중요한 질문을 제기 한다. 또한 신학적인 해석이 반영되었는지, 역사적 상황은 어떠했는지 묻고 있다. 구약의 3대 절기인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로부터 수전절, 부림절, 현대의 절기 등을 거론하고 현대 이스라엘의 축제를 살피면서 구약 축제의 실체와 본질을 파악하고 있다.


축제란 말은 구약성서에 오직 3개의 축제에만 사용된다. 무교절, 오순절(주간절), 초막절이다. 유월절이란 말은 ‘보호하다’, ‘넘어가다’의 의미와 ‘부드럽게 하다, 유순하게 하다, 가라앉히다, 진정시키다’ 등 여러 가지 뜻을 지닌 아카드어에서 기원한다. 출애굽을 기념하며 이루어지는 행사이다. 유월절은 하루만 지키는 대신 무교절은 특별한 집회나 축제가 나란히 7일 동안 드려졌다. 그로 말미암아 유월절 대신 무교절 절기가 되었다고 한다. 유월절은 7월 14일 무교절 축제는 7월 15일 그 달 21일 까지 7일 동안 지속되었다. 오순절은 첫 이삭 한 단은 안식일 이튿날, 7월 16일에 바쳐졌다. 그날로부터 50일 계산되었고 히브리의 9월 6일은 언제나, 주간 잔치 또는 오순절 잔치로 선포된다. 초막절(나팔절, 신년제, 속죄의 날)은 출애굽의 구원의 사건을 기념하며 광야에서 고생하였던 것을 회상하는 축제였다. 그들이 초막에서 덧없는 인생임을 깨달으며 여호와 경외하는 삶을 살아가기로 다짐했던 축제였다. 포로기를 지나 포로기 이후 성전 재건 시대가 되면서 다시 성전 중심의 축제가 정착되게 되었고, 유월절 행사가 회복되게 되었다. 이 때에 3대 축제가 구약성서로 문서화되었고, 동시에 축제가 구체화하고 발전하게 되었다.


구약의 축제와 현대 이스라엘의 축제를 보면 정체성을 잊지 않고 세계 문화속에 동화되면서도 야웨의 역사하심의 사건을 재현하여 문화와 역사가 융합된 독특한 축제로 승화시켰다. 우리의 축제일도 이스라엘 축제와 같은 중심 정신과 민족의 한을 신명나게 풀 수 있는 축제일들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Ⅱ. 구약의 죽음과 문화


우리 인간들은 숨을 쉬는 유한한 존재이다. 숨이 멈추는 날, 생물학적 생명은 끝이 난다. 태워 나서 숨을 멈추는 시간까지를 인간의 일생이라고 말한다. 죽음의 기원이 하나님 명령의 불순종에 있다는 사실과 금령을 어김으로서 인류에게 죽음이 들어왔다. 죽음은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불순종의 결과로 나오게 된 것이다. 죽음이란 모든 사람들이 가야 할 자연스런 현상으로 본다. 구약의 죽음이 보여주는 것과 오늘날 한국 사회의 장례 문화와 의례, 기독교 장례와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바람직한 장례 문화를 위한 구약의 죽음 이해의 좋은 적용은 무엇인지 앞으로 연구해봐야 할 것이다.


스올에 있는 죽은 자는 찬양하지 못한다. 찬양과 희망은 사망과 음부를 넘어선다. 사망 권세를 이긴 예수만이 죽음을 이기는 소망이 되신다. 우리는 이미 죽음에 놓였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빨리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에게 돌아가야 함을 구약은 가르쳐 준다.



Ⅲ. 통일 신학과 통일 리더십-문화 신학적 접근


성서에 나타난 리더십과 한국 교회 선배들의 리더십을 찾아보며 오늘 이 시대의 리더십의 과제와 신학적 요구를 살피며, 리더십을 통해 한국 민족적과제를 해결하는 통일 비전을 조망하고 있다. 리더십은 하나의 과학이나 학문이 아니고, 기술이다. 리더십은 옳은 일을 행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리더십은 신앙 위인들의 지도력이다. 특히 사사기에 나타난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대표적으로 언급한다. 하나님의 영이 임한 사사들이 하나님의 종이 되어 이스라엘을 이방의 대적으로부터 구원해내는 사역을 감당한다. 구약의 대표적 리더는 모세, 다윗, 느헤미야를 들 수 있다. 이들은 민족을 인도한 지도자이었다.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았다. 다윗은 강력한 왕으로의 리더십을 가졌다. 오늘 우리 시대에 교회에 필요한 것은 바로 통일 리더십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지도력을 물려받은 구약의 리더들과 같은 성품의 지도자이어야 한다. 참된 리더십의 본보기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찾을 수 있다. 12명의 제자들 만들어 세계를 움직인 리더십은 오늘 통일 시대를 이끌 통일 리더십의 모델이 된다.


유동식 교수가 말하는 한국 초기 교회의 지도자들의 3분류의 대표는 정치, 교육, 사회 운동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명한 윤치호, 보수적 근본주의 사상 길선주, 종교적 자유주의 사상 최병헌이다. 한숭호 교수는 한국 신학 사상의 흐름을 네 가지, 문화와 사회, 성서의 신학이해의 범주에서 나눈다. 한국역사에 있어서 시급히 풀어야 할 숙제는 통일이다. 통일의 비전과 그 희망의 목표를 놓고 기도하며 준비해야 할 때이다. 한국 교회의 개혁이 요구된다. 한국 교회는 너무 비대해지고 대형화되었다. 한국 교회의 성장 일변도의 문화가 내적 성장과 나눔의 공동체로 탈바꿈을 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 한국 신학의 방향이 통일 신학과 리더십으로 조망해야 한다.



 


이 책은 유다 왕국의 개혁, 특히 히스기야 왕과 요시야 왕의 제의 개혁을 당시의 삶의 정황에 맞춰 신명기 전통에 근거한 신명기 신학으로 해석한다. 신명기 역사서에 포함되는 책은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이다. 이들을 신명기 역사라고 부르는 이유는 신명기의 중심사상을 근거하여 이스라엘 역사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 책들의 언어적 특성 및 역사에 대한 신학적 이해에 있어서 신명기에 나타난 사상들과 언어들이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신명기 역사서는 이스라엘과 유다를 함께 취급하며 소개하고 있는 반면, 역대기 역사서는 남유다와 성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따라서 신명기 사가의 시각이 선지자적이라 할 때 역대기 사가의 시작은 제사장적이라 할 수 있다. 논자는 신명기 역사를 중심으로 아하스 왕, 므낫세 왕, 요시에 왕의 제의 개혁을 히스기야 왕의 제의 개혁과 비교하여 연구하고, 아하스 왕, 므낫세 왕, 요시에 왕의 제의적 평가와 역사적 사실, 그리고 실제와 역사 기록의 차이를 검토하고, 제의 의미와 신학을 살펴본다. 끝으로 구약의 축제와 죽음의 정의와 의미, 그리고 역사성을 검토하고, 통일 신학을 추구하고 있다.


노트 이전의 연구 오경연구 학자들은 초기에 오경의 자료들(J. E. D. P)이 여호수아서에서도 있다고 보고 신명기적 역사서를 ‘사사기-열왕기’로 생각하였다. 마틴 노트의 ‘신명기-열왕기하’ 연구는 구약성서 연구에 있어 고전적인 연구 중에 하나가 되었다. 이 연구는 신명기 역사서의 구성과 성격을 심층 탐구하기 위한 기본적인 근거와 틀을 제공하고 있다. 그는 신명기적 역사 연구의 기본 골격을 형성해 놓은 것이다. 노트 이후의 연구 노트의 견해에 대하여 수정, 보완 한 학자는 스멘트. 리히터와 디트리히 등이다. 이 학자들은 각기 다른 입장으로 주장하는데 그 의견의 분기점은 “신명기 역사서”의 구성연대와 관련 된 것이다. 노트는 최종 구성연대로 포로기 시대로 보는 반면, 크로스는 두 편집 설을 주장, 요시야 시대에 개혁의 뒷받침과 포로기에 고난당하는 백성을 위한 기록이라고 말한다. 히스기야 왕과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은 “제의 중앙화”에 대한 문제가 중심이다.


책을 읽으며 졸업을 앞에 두고 있는 내 자신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하였다. 8년을 공부 했는데도 신학을 하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다. 도대체 이렇게도 신학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까? 현재의 예언서는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두고 복잡한 과정을 통하여 형성되었다는 것을 구약의 개혁신학을 읽으며 되새기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나라 역사도 아니고 수 천년에 걸쳐 만들어진 남의 나라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교수님이 더욱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또한 이렇게 어려운 과정의 구약 역사를 예언자의 입장에 서서 예언서 관점으로 글을 쓰라고 하니 제자는 뭐라고 할 말이 없다. 역사 하나도 힘든데 예언과 연관을 지어 보라니 교수님 너무 하신 것 같다.


예언자는 본래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자이지, 그 말씀을 문서로 남기려고 한 저술가가 아니다. 예언자들은 동시대의 청중들과 직접 대면하여 그들에게 구두로 메시지를 선포하였다. 때로는 예언자가 자신이 자신의 메시지를 기록으로 남기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현재의 예언서로 정착되기 전에 구전전승과 더불어 문서전승도 함께 전승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성서 전승의 복잡한 과정을 고려하여 구약성서 학자들은 성서의 저자를 논할 때 선포자, 구전자, 기록자, 그리고 편집자 전체를 “성서의 공동 저자”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언자와 예언서를 올바로 이해해야 하며 형성과정을 가능한 한 충분하게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말 예언을 한다는 것은 잉태의 고통과도 같은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것을 수업을 통하여, 책을 읽으며 깨닫게 된다. 예언자는 더 생각하고 보고 느끼며 경험하고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예언자가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확인하게 되었다. 우리들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예언자로 항상 성령충만하여 이 시대에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회중들에게 정확하고 명확하게 잘 전달해야 한다. 그 때 하나님의 역사와 뜻이 그들의 삶에 연결되어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일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을 구약의 개혁 신학을 읽으며 더 중요하게 알게 되었다. 신앙도 중요하지만 신학의 부분을 소홀이 하면 잘못된 해석으로 성도들에게 왜곡된 말씀을 전하는 이 시대 예언자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브라함 헤셀은 예언이란 어떤 특수한 인간 상화에 영원한 기준들을 단순히 적용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사 속의 어느 특정한 순간을 해석하는 것이다. 인간 상황을 하늘의 눈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언은 하늘의 눈으로 인간 실존을 주석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예언이란, 그것이 사람위에 덮쳐 그를 예언자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려지기까지는 허풍일 따름이다.


구약의 개혁은 히스기야의 개혁이나 요시야의 개혁이나 이왕들 자신의 개혁의지와 노력과 그 시대의 정치, 문화, 사회의 현실과 상황의 요소들이 많이 좌우 했지만 그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과 함께 하였던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였고 왕들 앞에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예언자들을 통한 함께하심이다. 하나님께서는 왕들이 개혁을 하기 위해 노력을 할 때, 또한 어려움을 당할 때, 예언자들을 통하여 응답하셨다. 예언자의 임무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것이다. 이들은 항상 하나님 말씀의 열정으로 자신들을 불태울 준비가 되어있다. 거룩함과 성결의 준비가 되어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말씀을 알아들을 수가 없다. 남을 감동시킬 수 없다. 이러한 모습은 왕들에게도 보여 졌다. 그래서 그들은 예언자들의 감동을 통해 하나님이 맡긴 자신들의 나라의 정치를 순간 순간 묻고 그 응답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나라를 통치하였던 것이다. 말씀에 순종하면 나라가 흥하였다. 하지만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예언자들을 멀리하고 그들을 무시하면 나라와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고 왕들도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된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들을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그들의 죄악에서 돌이키면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신다. 때론 포로로 끌려가기도 했지만 주님께서는 영원한 종살이를 하게 하지 않고 다시 돌려보내신다. 귀환시켜 다시 이스라엘을 붙잡으시고 성전을 재건하시고 모든 열방으로 하여금 하나님됨을 알게 하신다.


이 책은 이스라엘의 역사인 구약만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서문에서도 말한 것 같이 한국교회가 초대교회의 복음의 변질되지 않고 원형을 유지하고 순수성을 가지를 바라며, 한국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된 구약의 종교 개혁의 연구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와 이스라엘의 역사를 비교하며 역사와 전통, 한 민족의 문화의 발전 모색하기도 하였다. 특히 이스라엘의 3대 축제를 통해 월드컵 축제나 촛불 시위 축제들을 보며 가능성을 국민들의 정서를 느끼는 것과 한민족 문화의 재발견의 작업과 통일에 대한 염원과 비전을 보며 예언자적 관점에서 시대를 이끌어간 예언자(지도자)들 언급하며 우리나라의 상황들과 접목하여 연구하는 부분들은 매우 신선한 느낌도 받았다. 이것은 교수님만 할 수 있는 생각이라고 본다.


오늘날의 시대를 성령시대라고 한다. 성령의 역사는 온 나라와 민족들에게 나타나고 있다. 이런 성령의 역사를 통해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 성령 세례를 통해 성령의 임재를 경험한 모든 사람들은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의 예언자들과 같이 성령 감동의 역사를 통해 예언을 하며 부패하고 패역한 세대를 히스기야와 요시야 왕 같이 변화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이 시대의 강단의 목회자의 말씀과 기도의 중보자, 그리고 우리 자신에 임하는 성령의 진리의 말씀을 통해 그의 나라와 의가 이루어지며 확장되어지는 놀라운 일들이 많이 생겨나기를 소원한다.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OHS3&articleno=1211&categoryId=40&regdt=20100807093138&totalcnt=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