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할 것과 버릴 것

(살전5:19-22)

 

19성령을 소멸치 말며 20예언을 멸시치 말고 21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바울은 독자들에게 취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에 관해 교훈하고 있다.


먼저 그는 성령을 소멸치 말며 (19절)라고 한다. 여기서의 성령(토 프뉴마,)에 대해서는 (1) 영감이라는 설(NEB),(2) 성령이라는 설("Phillips"1), 헨리), (3) 성령의 역사(행사)라는 설 2), (4) 성령의 열매(윤리)들이라는 설("Chrysostom"3) 김용옥). (5) 성령의 은사(선물)들이라는 설4), (6) 포괄적인 의미에서 우리 마음 속에 작용하는 성령의 영향들이라는 설(A.클라케,바니스)등이 있다.
본절의 경우에는 취사선택하기보다는 종합적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즉 성령 및 그로부터 비롯되는 모든 것이다.
소멸치 말며(메 스벤뉘테,)의 동사는 불이나 빛을 끄는 것을 의미한다 (Wetstein),5) 따라서 성령 또는 그 작용은 여기서도 불로 비유되고 있는 것이다(마3:11,눅3:16,행2:318:25,딤후 1:6).
성령의 불을 끄는 것에 대해 A.클라케는 [성령께서는 자랑의 영이시므로 분노, 적의,원한, 불친절,불경한 기질은 성령의 불을 끌 것이다. 따라서 성령께서는 떠난 것이고 마음은 완고해지고 어두워질 것이다.... 범죄와 마찬가지로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성령을 근심케 하며 또한 그 불을 끌 것이다]라고 하며, 어드맨은 [어떤 신자나 다 성신을 소멸할 수 있는 것이다. 성신의 감동을 거역하며 그의 지도를 거부하며 성신의 주시는 은사를 활용하지 않으며 그의 은혜를 함양하지 않으면 그것이 곧 성신을 소멸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불행하게 된 것에 대해 이사야 선지자는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신을 근심케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63:10)라고 외쳤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4:30)고 하였고, 율법주의를 가르친 거짓 교사들에 의해 흔들리고 있던 갈라디아 교인들에게는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3:3)라고 탄식조로 책망하였다. 한 마디로,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는 것은 육체의 소욕이 아니라 성령의 소욕을 좇으라는 뜻이다(갈5:17).

 

다음으로 그는 그 구체적인 예를 들어, 예언을 멸시치 말고(20절)라고 한다. 이러한 금령을 보면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고린도 교인들처럼(고전 14:1)에언의 은사를 매우 하잖게 여겼던 것 같다. 본절의 동사는 엑수테네이터로서,단순히 업신여기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경멸하거나 전적으로 무시하는 것을 뜻한다.

예언이 복수(프로테이아스,)로 되어 있는 것은,예언이 수많은 표현 형식을 갖기 때문이거나, 개개의 경우들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바울에게 예언이란 성서를 해석하는 기술이 아니다(칼빈). 또한 미래를 미리 말하는 은사도, 과거를 설명하는 은사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다(프레임). 그래서 예언자(고전 12:28-14:29-)란 내재하신 그리스도 또는 성령 안에 작용하시는 하나님의 뜻의 계시자인 것이다.


헨드릭슨은 예언자란 말을 어원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프로페테스는 프로(앞으로, 밖으로)와 페미가 앞으로(말하기)가 결합된 단어이다... 그리고 그 (예언자)가 앞으로(밖으로) 말하거나 공공연히 선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마음이다. 그는 선포자이지, 반드시 예고자(예언자)인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예언을 멸시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다.

끝으로 바울은 범사에 헤아려 6) 좋은 것을 취하고(21절),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22절)고 한다.
범사에(판타,)즉 모든 일에를 성령의 불 또는 예언을 지시하는 것7)으로 볼 수도 있지만, 꼭 그렇게 국한시킬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 말 자체가 일반적인 것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므로 문자 그대로 그것들을 포함한 "모든 일에 있어서"라고 폭넓게 생각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8)
헤아려(도키마제테, 2:4의 '감찰하시는'의 주석을 보라)는 성령의 은사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고전 12:10). 여기서는 좋은 것과 나쁜 것에 대한 식별을 뜻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는 성령을 소멸치 말아야 하고, 예언을 멸시치 말아야 하지만, 한편 그들은 시험해 보지도 않은 채 경솔하게 말려 들어가서도 안된다(Lightfoot).9) 어드맨은 시험하는 방식에 대해[모든 성신의 은사는 사랑 안에서 활용할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덕을 세우는 것이 목적이라고 다른 곳에 밝히 적혀 있다. 그리고 참으로 성신의 감동을 받은 자는 그것이 온전히 그리스도의 주신 은사인 줄 알아 오직 그의 영광만 나타내고 자기는 전혀 숨는 것이다]라고 설명하였다.

베드로전서 4:10에도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고 기록되어 있다.
좋은 것을 취하고(21절 하반)란 식별한 후에 취할 태도를 말한다. 특히 취하고(카테케테,)는 구데 붙잡는 것, 견고하게 지키는 것을 뜻한다. 즉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좋은 것이라고 판단되는 것은 철저하게 실천해야 한다는 뜻이다.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22절)에 대해 (1) 악이 모양의 형용사, 즉 모든 악한 모양이라는 설10), (2) 악이 모양의 주격, 즉 악은 모든 모양이라는 설11)이 있다. 둘 다 같은 뜻이기는 하지만 후자가 보다 강조적이다.
모양은 에이두스로서, 신약에는 드물지만, 70인 역에는 많이 사용되었다. 이 낱말은(1) 육체의 모양(요5:37,눅3:22,외관, 용모(눅9:29,욥 41:10),육체의 출현, 현현(고후5:7,출 24:17,민9:15), (2)종류,부류(렘15:3)등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겉모양 12)이라기보다는 종류13)로 이해해야 한다.

버리라는 아페케스테로서, 피하라(NIV),버리라 등을 뜻한다. 이 말은 21절의 "좋은 것을 취하고"와 병행하여, 상당히 적극적인 태도를 요청하는 것이다(김용옥).


지금까지의 고찰 결과에 의하면, 바울은 성령 및 그로부터 비롯되는 모든 것을 없애지 말라고 하면서, 그 구체적인 예를 들어, 예언들 곧 하나님의 말씀 선포(설교)를 전적으로 무시하지 말라고 한다.

이어서 그는 앞서 언급한 것을 비롯한 모든 일(것)에 있어서 잘 시험하여 좋은 것을 굳게 붙잡고, 대신에 악은 어떤 종류의 것이든 버리라고 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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