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 에베소서 5:18-20 -
샬롬선교회
[에베소서 5:18-20]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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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5:19-20이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는 명령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9-20절의 본문과 18절의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씀의 연관성을 살펴보면, 원문에서는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는 하나의 명령에 대해, 원문에는 네 개의 분사구 '서로 화답하며', '노래하며', '찬송하며', '감사하며'가 이어져 있습니다.
1. “서로 화답하며”란
+ 서로에게 그리스도의 말씀을 가르치거나 나누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감화를 준다는 뜻입니다. 이 '서로'의 직역은 '우리 자신을 향하여'인데, 이를 서로 나눔으로써 자신과 주변이 함께 풍성해집니다. 그래서 '서로'라는 것은 지극히 공동체적인 행위입니다. 주님은 거기에 영원한 축복을 명령하고 계십니다.
+ 시편 1편은 'אשרי האיש (ashri ha'ish)'로 시작합니다. '그 사람은 복이 있도다.', 혹은 '어찌 그리 복이 많은가 그 사람은'입니다. '그 사람'의 특징 중 하나는 '여호와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그 말씀을 주야로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즉, 반복하고, 되풀이하고, 계속 되새기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울은 '서로 화답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시편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세우는 데 있어 최고의 텍스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편 묵상의 묘미는 점점 더 진화하고, 새로워지고, 깊어져야 합니다.
2. “노래하며”, “찬송하며”란
+ '노래하며'라는 것은 소리 내어 노래하는 것입니다.
+ '찬송하며'라는 것은 본래 '현을 튕기다'라는 뜻입니다. 거기서 악기를 연주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 새 공동번역에서는 '노래하다'와 '찬송하다'를 합쳐 '찬양하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 찬송함으로써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께로 향하고 열리게 됩니다. 찬송함으로써 그 후 시편을 묵상할 때 하나님께서 새로운 빛을 주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성령에 의해 말씀이 열리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인해 황홀경에 빠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마음이 충만해지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다른 표현이 허락된다면, 아침부터 성령의 술에 취하는 경험입니다.
+ 찬송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마음과 입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것이 자각적인 행위가 되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각적으로 노래하며 찬송하는 일을 한다면,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 마음에 가득 차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입으로 말하는 말에 의해 지배되기 때문입니다. 예배 가운데 마음으로부터 주님을 찬송하면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마음을 주관하시고, 선포한 대로 하나님이 주관하시게 됩니다.
3. “감사하며”란
+ 성령 충만한 행함 중 하나는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감사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언제든지'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성령 충만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언제든지, 모든 것'이란... 감사할 수 있는 '언제든지', 혹은 감사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아닙니다. 질병 가운데서도 감사하고, 가난 가운데서도 감사하고, 고통 가운데서도 감사하고, 실망 가운데서도 감사하고, 뜻대로 되지 않을 때에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 '그건 도저히 그럴 수 없어.'라는 소리가 들릴 것 같습니다. 감사할 수 없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지만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상기해야 합니다. 성령은 그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분입니다. 그 분은 예수님이 이 지상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걸어오셨을 때에도, 예수님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시고 도우신 분입니다. 그 동일한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안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그분의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의 하늘 아버지는 선하신 분이며, 좋은 것만 자녀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분입니다. 모든 좋은 것은 하늘에서 오는 것입니다. 하늘은 본래 '주는 존재의 원천'이 되는 분이며, 주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는 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하늘에 대한 건전한 관계는 무엇일까? 바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감사'는 현재를 긍정하고 개선이나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의 상황이나 사건이 갖는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하고, 진정으로 감사해야 할 좋은 것을 찾아내려는 마음가짐입니다.
+ '감사의 제사'는 '찬양의 제사'와는 달리 말뿐 아니라 구체적인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수반합니다. 마음만이 아닙니다. 입으로만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시간도, 돈도, 능력도, 체력도, 자신의 신체, 아니 존재 자체도. 그런 사람을 하나님은 매우 기뻐하십니다. 예배의 헌금은 감사의 제물, 감사의 예물입니다. 교회는 그러한 감사의 제물로 인해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 바울은 여기서 '감사하는 것'과 '성령 충만함'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손을 드는 것은 찬양할 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를 드리는 것에서도 연약한 손을 들 수 있다면 어떨까? 그런 의미에서 감사는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진실한 것임을 증거하는 잣대이기도 합니다.
https://meigata-bokushin.secret.jp/swfu/d/auto_iBrzwt.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