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 에베소서 5:8 -

샬롬선교회 


[에베소서 5: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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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은 '가난한 자'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가난한 자의 벗이 된다는 것은 사람의 깊은 곳까지 헤아리는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므로 두려움 때문에 다양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왔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존재는 우리의 나약함, 사랑의 결핍을 드러내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존재, 그리고 그들과 교감하는 것은 사실 비장애인들의 가난을 풍요롭게 하는 길입니다. '장 바니에(Jean Vanier, 자선 단체 라르쉬 설립자)'는 보다 풍요로운 삶의 세계를 가져다주는 그들의 '낮은 것의 가치'를 호소하는 것을 통해 오늘날의 경쟁사회,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가 얼마나 비인간적인 것인가를 역설한 것입니다. 이들 현대의 3대 성인이 보여주는 길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답게, 사랑으로 행하라'는 실천판입니다. 그리고 그 길은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에 머무는 것을 통해서만 관여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1. 어둠과 빛

 

*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걸음은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행보일까? 이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본문은 에베소서 5:8절로 한정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 너희가 전에는 어둠 가운데서 태어났고 어둠 가운데서 살았으나, 이제는 빛 가운데로 옮겼느니라. 게다가 어둠의 본성을 가진 자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빛이 되었다” - 빛 가운데서 태어나고 빛 가운데 살면서 빛의 성질을 가진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둠과 빛'은 전혀 상반된 세계이며, 전혀 성질이 다른 세계입니다. 어둠의 세계에 살던 자가 빛의 세계로 초대받아 빛의 세계에 사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메시아 예수님 안에서 실현될 수 있는 하나님의 기적 그 자체입니다.

 

* 우주에는 '블랙홀'이라는 공간이 있다고 합니다. 한번 그 구멍에 들어가면 모든 물질이 어떤 힘으로도 빠져나올 수 없는 공간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어둠'도 그런 의미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단순히 어두운 것이 아니라 힘으로 지배하는 어둠의 세계입니다.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힘을 가진 '블랙홀'과 같은 세계, 그것이 '어둠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세상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흑암의 압제에서 벗어나 사랑하는 자녀의 다스림으로 옮기신'(골로새서 1:13) 유일한 분이십니다.

 

2. 빛의 근원이신 예수님

 

* 요한복음은 세상을 비추는 '빛의 근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요한은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라고 말씀합니다. '각 사람에게 비추는 참 빛'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그분이 세상에 오셨을 때,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라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하나님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싫어하고,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배척하려는 세상입니다. 그런 세상에 참 빛이신 분이 오셨습니다.

 

*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작은 불빛이라도 그 빛은 어둠을 밝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휴대폰의 빛은 아주 작은 빛입니다. 하지만 깜깜한 집 안에서도 그 불빛으로 걸을 수 있습니다. 열쇠 구멍을 찾을 수 있습니다. 어둠은 아주 작은 빛조차도 이길 수 없는 것입니다. 빛은 소중한 것입니다. 그 빛의 근원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 요한복음 1장의 말씀이지만, 요한복음 8장에는 예수님께서 직접 자신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한복음 8:12). 이 말씀의 배경이 된 사건이 있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한 여인이 예수님 앞에 끌려나온 사건입니다. 율법에 엄격한 바리새인들이 이 여인을 데리고 와서 예수님 앞에 세우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요한복음 8:5).

 

* 이것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고 고소할 구실을 얻기 위해 그렇게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원래는 이 죄는 윤리적, 도덕적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의 눈에는 예수의 말과 행동이 율법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여기서 율법을 어기는 말을 했다면 당장 하나님을 모독한 죄로 고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무언가를 쓰시더니, 그들의 집요한 질문에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연장자부터 시작하여 하나 둘씩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잡혀온 여자만 남았습니다. 남은 예수님만이 이 돌을 던질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여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주여 없나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 내 안에 있는 어두움을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가지고 사람을 심판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의 본질은 우리를 살리기 이전에 우리 안에 있는 어둠의 사실을 비추는 하나님의 빛입니다. 율법은 사람을 심판하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은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남은 여자를 향해 예수님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그 여자를 율법으로 심판하지 않으시고 어둠의 세상에서 생명의 빛으로 초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한복음 8:12)

 

* 사도 바울도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하늘로부터 오는 빛'을 받았습니다. '나는 옳은 일을 하고 있다, 다른 사람에 비해 하나님께 열심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자랑할 만한 점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빛을 비췄을 때, 눈에서 비늘이 떨어졌습니다. 자신의 진정한 어둠의 실체를 알게 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그는 변했습니다. '생명의 빛'이란 무엇일까? '생명의 빛'을 가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요한이 쓴 편지(1서신)에 그 힌트가 있습니다. 몇 구절을 발췌하여 '생명의 빛을 가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요한일서 1:5)

+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한일서 1:6~7)

+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요한일서 2:9~10)

 

* 위와 같이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는 의미는 교회 안에 초대받은 자들끼리 서로 판단하지 말고 서로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교회들이 하나님의 율법에 의해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자기들의 성경의 입장은 이렇다, 이 해석이 옳다는 벽을 쌓고 서로를 판단하고 미워해 왔습니다. 개신교회가 많은 교파를 가지고 있는 것은 성경에 대한 해석의 차이 때문입니다. 성경에 대한 해석이 진리라고 해도 어둠의 세력은 그런 말씀의 영역에도 역사합니다. 그리고 자신들만이 옳다고 생각하게 함으로써 그곳에 큰 담을 쌓게 합니다. 그것이 어둠의 지배자의 전략입니다. 역사 속에서 성경의 진리 발견은 우리 인간의 자존심으로 인해 많은 다툼을 일으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갈등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우리가 빛의 자녀라는 것을 재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 밖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빛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한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빛 가운데 있다고 말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아직도 어둠 가운데 있는 자니라.”라고. 그러나 반대로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넘어지지 아니하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 '생명의 빛', 그것은 우리의 진정한 어둠인 죄를 비추는 빛입니다. 요한이 말하는 어둠은 모든 사랑의 관계를 끊으려는 힘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빛, 생명으로 인도하는 빛, 사랑의 생명의 관계를 가져오는 빛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서로 용서하고 서로 교제하려는 힘입니다. 또한 넘어지지 않는 힘이며, 동시에 사람을 넘어지게 하지 않는 힘입니다.

 

* 교회 안에서도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서로 다투고, 미워하고,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빛 가운데 머물러 있다면 결코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용서하시고 받아주신 하나님의 '사랑의 빛', '생명을 주는 빛', 그 빛에 초대받은 것에 감사하십시다.

 

https://meigata-bokushin.secret.jp/swfu/d/auto_WNbNUw.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