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 에베소서 4:30
샬롬선교회
[에베소서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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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 새 사람을 입으라."(4:22, 24)의 ‘새 사람’은 ‘하나님을 따라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을 말합니다. '새사람을 입는다'는 것을 다른 말로 알기 쉽게 말한다면,
(1) '그리스도처럼' 사는 것 Just like Christ / Just like Jesus
(2) '그리스도의 마음'을 마음에 품는 것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으로 행하는 것. - 그것은 마음에 평안을 가져다줍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인데,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4:30(본문)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보증으로서의 성령
*본문에 나오는 몇 가지 단어를 먼저 설명해 드리고 싶습니다.
① '너희'는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고 받아들인 자들을 말합니다.
② '구원의 날까지(구원의 날을 위하여)'란 무슨 뜻일까? - 여기서는 일단 '날'을 떼어내어 '구원까지(구원을 위하여)'로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본래 '구원'이란 어떤 사람이 잃어버린 권리나 재산을 누군가가 대신하여 되찾아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지음 받았지만, 사탄의 유혹으로 사탄의 말에 속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모든 권리와 축복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런 우리를 위해 하나님 자신이 대가를 치르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사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리와 축복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성령은 그 사실을 보증해 주십니다.
여기서 앞서 뺀 '날'이라는 단어를 정식으로 넣어 생각해 보면, '구원의 날까지(구원의 날을 위하여)'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서 실현되는 날입니다. 그것은 머지않아 장차 반드시 실현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완전한 자산을, 하나님의 상속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습니다. 그 날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지금 현재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구원의 날'에는 완전한 형태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완전한 회복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회복은 하나님 자신과의 사랑으로 충만한 교제입니다.
③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의 '인'은 어떤 것을 증명하기 위한 도장입니다. 동의서에 도장을 찍는다든지, 계약서에 동의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우리는 인감을 찍습니다. 법적으로 더 큰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경우에는 인감도장을 사용합니다. 유럽에서는 사인으로 충분하지만, 일본의 경우에는 왜인지 도장을 찍습니다. '성령의 증거'란 당신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나님께서 당신을 하나님의 자녀로 정식으로 다시 사셨다는 것을 증명하는 인장입니다. 성령이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예외 없이 주어지는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성령을 받은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인침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신 소중한 '보혜사'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성령(성령, 주의 영이라고도 하는)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성령을 '보혜사(助け主/도움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도움'이냐고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도움인데, 그 도움에는 여러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주는 도움,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의 뜻에 맞는 형태로 대신해 주는 도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도움,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나 하나님의 가족과의 사랑의 관계를 방해하는 문제를 조명하고 해결로 이끄는 도움 등 다양한 측면이 있습니다. 도움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보혜사'가 바로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믿는 자에게 주어져 있음을 알고 굳게 믿어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자녀의 보증으로 주신 성령께서 근심하신다는 것은 ...
*30절 전후에는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죄가 열거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옛 사람'이 '새 사람'을 입는 그 내용은 모두 관계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특히 주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과의 관계에 관한 것들입니다. 성령은 우리가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도록 도와주시는 '보혜사'(돕는 하나님)로 보내주셨습니다.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는다'는 것은 ....
(1) 거짓을 버린다 (1) 진실을 말한다.
(2) 분을 품고 있지 말라 (2) 용서하라.
(3) 나쁜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 말라 (3) 사람의 덕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는 말을 하라
(4) 도둑질하지 말라 (4) 일하고 베풀어라(자선을 베풀 수 있을 정도로)
(5) 무자비함, 분노, 외침을 버리라 (5) 친절하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되라.
*하나님과 그 아들이 보내신 성령, 이 문제를 놓고 큰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성령은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가, 아니면 성자 하나님으로부터 오는가 하는 문제, 성경에는 어느 쪽으로부터도 보내심을 받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교통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성부로부터도 성자로부터도 온다는 것이 요한이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각각 위격을 가지면서도 하나이신 존재입니다. 서로 영원한 사랑의 교통 속에 존재하는 '관계의 하나님'입니다. 요한은 이 영원한 사랑의 교통을 '영원한 생명'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성령께서 근심하신다면 그것은 관계의 근심입니다. 옛 사람이 입고 있는 '거짓(부정직), 분노(분냄), 악한 말(어리석은 말, 듣기 싫은 말, 장난스러운 말, 사람의 존재와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 도둑질, 악의를 품은 무자비, 분노, 외침, 비방'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유기적인 관계를 파괴하는 것들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런 죄를 깨닫지 못한다면, 성령께서 근심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사랑의 관계를 맺기 위해 우리에게 보내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근심하시는 곳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교회 간의 갈등, 주 안에 있는 형제자매 간의 갈등은 모두 성령께서 근심하시는 부분입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쓴 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기 위함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장벽'을 허물고 평화를 이루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하나'가 되는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속에는 종종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현실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해 바울은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
3. 보혜사 성령은 종종 '밤'에 당신에게 말씀하십니다.
*'보혜사'이신 성령은 결코 강압적이거나 강요하거나 횡포를 부리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신사적인 분입니다. 우리를 도와주는 데 있어서도 결코 강요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의 의사를 존중하고, 우리의 주체성에 힘을 실어주고, 우리가 스스로의 의지로 자발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조용히 조언해 주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잠잠함이 필요합니다.
*시편 16편의 저자는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편 16:1~2] “1.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정말 멋진 신앙고백이 아닐까? 그러나 다윗이 이런 고백을 하기까지 많은 고통과 마음의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 고백에 이르기까지 그는 몇 번이고 '밤'을 지새워야 했습니다. 시편 16:7을 봅니다.
[시편 16:7]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7절에서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라고 고백하고 있는데, 이 '교훈을 주신 여호와'가 바로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보혜사'이신 성령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약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성령을 받지만, 구약 시대에는 특정인에게만 성령이 주어졌습니다. 다윗은 그 특정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말씀을 주신 여호와'를 잠잠히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용한, 침묵의 찬양입니다. 마음속으로 드리는 찬양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내용으로 찬양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는 내용입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한다.' - 이것은 참으로 신기한 표현입니다. '말씀하시는 주님'과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한다.'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그것은 주님의 '말씀'은 사람의 마음에 조용히 역사하여 교훈하신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밤'입니다. '밤'이란 어떤 때일까? 그것은 외로울 때, 혼자가 될 때, 가장 조용한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매일 찾아오는 '밤'도 있지만, 인생에서 특별한 '밤'도 있습니다. 그것은 막막하고 막혀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스스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입니다. 사도 바울의 삶에도 세 번의 특별한 '밤'이 있었다고 누가는 '사도행전'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① 사도행전 16:9 “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그 밤의 배경에는 1차 전도여행의 동역자였던 바나바와의 격렬한 반목 이후, 새로운 동역자(실라, 디모데)와 함께 새로운 전도여행을 떠났을 때 가는 곳마다 모두 잘 안 풀리던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방황하던 바울이 '어느 날 밤' 조용히 기도하고 있을 때 환상을 보았습니다. 한 사람이 그의 앞에 서서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달라”고 간청하는 모습이었다. 바울은 이 환상을 보고 즉시 마게도냐로 건너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곳으로 초대하고 계심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이 확신으로 인도하는 데에는 성령의 '말씀'이 있었음을 믿습니다.
② 사도행전 18:9~11
“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11.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이 배경에는 고린도 마을의 유대인들의 방해가 있었습니다.
③ 사도행전 23:11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이 배경에는 예루살렘에서 바울이 체포되어 의회에서 심문을 받고 논쟁이 극에 달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①②③의 '밤'은 바울의 인생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시작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하루의 리듬은 '아침부터 밤'이 아니라 '밤이 있고 아침이 온다'입니다. '밤'이 시작입니다. 그리고 '밤'을 거쳐 새로운 아침이 오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시편 16:7로 돌아가 봅시다.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다윗에게도 '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었습니다. 우리의 '밤'에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는 것', 즉 보혜사이신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것, 이 분의 음성에 잠잠히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 이후의 다윗의 말씀은 없습니다. 그 이후의 말씀은 8절, 9절입니다.
[시편 16:8~9]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9.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다윗은 항상 주님을 자기 앞에 모셨습니다. 다윗이 성령의 세미한 음성을 따랐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의 밤에는 종종 성령의 보혜사 조용히 우리의 마음에 말씀하십니다. 그 목소리는 결코 강압적이고 위협적인 목소리가 아닙니다. 우리 마음의 양심에 말씀하십니다. 구약성경에서도 하나님은 특정 인물들에게 성령의 도우심을 주셨던 것 같습니다. 다윗이 그 중 한 명입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즉, 성령의 말씀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한 사람이 되어 내 안에 하나님의 성령의 근심을 느끼고 자신의 잘못을 하나하나 깨달아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령은 내 마음에 교훈을 주십니다. 그 충고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새로운 사람을 계속 입어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나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다윗처럼 우리 자신도 흔들리지 않고, 마음은 기뻐하고, 몸은 즐거워하며, 몸도 평안히 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그것을 믿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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