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처소가 되는 교회

- 에베소서 2:20~22 -

샬롬선교회 


[에베소서 2:20~22]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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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교회가 어떤 곳인지 보여주는 다양한 비유가 있습니다. 교회는 한 가지 비유로 다 표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한 사람', '그리스도의 몸', '하나님의 가족', '하나님의 거처인 교회'... 등등.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거처가 되는 교회'를 다루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거처인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처가 되는 교회'라고 한 것은 지금도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교회를 '건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라고 하면 건물 자체를 상상하는 경우가 있는데,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건물 자체가 교회라는 것은 아닙니다. 편의상 그렇게 말하는 것일 뿐입니다. 진정한 교회는 누구의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해도 ', 그리스도의 몸이 보인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본문을 다시 한 번 잘 살펴보면, 결합된 건물 전체가 성장한다는 식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몸이라면 성장한다는 표현은 이해할 수 있지만, 건물이 '성장한다'는 표현은 뭔가 이상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건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항상 성장하는 생명 있는 건물, 살아 있는 건물, 즉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장소로서의 거룩한 성전을 의미합니다. 그곳에 사는 것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이방인입니다.

 

본문(2:20~22)에서 세 가지를 짚어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건물의 기본 구조란 무엇인가'입니다. 두 번째는 '서로 결합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에 대해서입니다.

 

1. 건물의 기본 구조란 무엇인가?

 

건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은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건물 자체만 놓고 보면 둘 다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비가 내리고 홍수가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을 덮쳤을 때, 건물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 드러나게 됩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은 비가 내리고 홍수가 밀려와도 집이 흔들리지 않았지만,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은 심하게 무너져 내렸다.

 

'반석 위에 집을 짓는다'는 것은 기초를 깊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모래밭의 훨씬 아래 깊은 곳까지 파서 기초를 다져놓았습니다. 그래서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이 비유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건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기초에 있다는 것이다. 그 기초를 예수 그리스도께 두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기초가 어디에 놓여 있는지 시험받을 때가 반드시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모르지만, 기초가 드러나는 시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20절에서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 터 위에 세우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그 반석이 되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기초''주춧돌'이 있는데, 어떻게 다를까? 新改訳'주춧돌'로 번역하고 있지만, 성경에 따라 그 번역어는 다음과 같이 다양합니다.

'모퉁이 돌'(新共同訳), '모퉁이의 머릿돌'(口語訳), '모퉁이 돌'(永井訳), '주춧돌'(尾山訳), '가장 중요한 주춧돌'(L.B)...등등.

 

'머릿돌'은 건물의 주춧돌로서 건물을 완성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돌을 의미합니다. 시편 118편에는 이 '머릿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고 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그것을 우리에게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그 돌을 어찌하여 버렸느냐는 내용입니다.

[시편 118:22~24] “22.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23.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24. 이 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 여기서 말하는 '집을 짓는 자들이 버린 돌'은 사실 머릿돌이 되시기로 작정된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한 것입니다. 그런 머릿돌을 버리면 집을 지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돌을 사용하시고(부활시켜) 건물을 견고하게 완성하는 주춧돌로 삼으셨습니다. '우리 눈에는 기이한 일이로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건물의 기초가 되는 '사도와 선지자'가 전한 말씀은 후에 신약성경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그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주춧돌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내게 머물러라', '내 말에 머물러라',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들 예수님은 항상 아버지께 머물러 계셨습니다. 항상 아버지의 말씀에 머물러 계셨습니다. 항상 아버지의 사랑 안에 머물러 계셨습니다. 사실 오늘날 이 관계는 매우 희박합니다. 이 것이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로 형성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21절에서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절에서도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했습니다.

교회라는 살아있는 건물, 성장하는 건물은 성경이라는 토대뿐만 아니라 그 토대가 되는 주춧돌인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참된 교회가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그 목적은 교회가 하나님의 거처가 되기 위함입니다.

 

2. 서로 결합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제 본문 21절과 22절을 다시 살펴봅시다.

본문 21절과 22절은 같은 내용을 다른 표현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으로서 동의어적 병렬주의 수사법을 잘 알고 있고, 그 달인입니다. 다음과 같이 바꿔서 말하고 있습니다.

21그의 안에서” = 22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21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 22함께 지어져

21'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 22'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해'

=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유대인)'너희'(이방인)'합하여' '함께 지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주춧돌로 삼은 교회가 하나님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가능해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계획은 이미 '모세의 성막'에 계시되어 있었습니다.

 

(아래는 새로 추가된 부분) '유대인''이방인''서로 결합(연합)된다'는 이 비전은 이미 구약의 두 가지 일들 속에 계시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는 모세의 성막 본체를 덮는 네 장막 중 안쪽 두 장 안에, 다른 하나는 주님의 예식인 '오순절 축제'에서 드리는 두 개의 빵에 계시되어 있습니다. , 성경은 히브리적 뿌리를 끊으면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할 수 없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1) 서로 연결하여 하나의 성막으로 만드는 것 [출애굽기 26:1~6].

두 막을 하나로 묶는 '금 걸쇠'에는 푸른색 끈의 고리가 있습니다. 파란색은 하늘의 색이며, 이 둘을 연결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성령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푸른색 끈의 고리'가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여호와의 절기 - '칠칠절'에 담긴 하나님의 계시 [레위기 23:15~17].

유월절에는 보리를 첫수확으로 하나님께 드리고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빵'7일 동안 먹어야 했던 반면, 칠칠절에는 새 밀가루에 누룩을 넣어 구운 빵 두 개를 주님께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누룩이 들어간 것일까? 그리고 왜 그것으로 만든 빵 두 개일까? 여기에 숨겨진 하나님의 비밀이 있습니다.

 

두 개의 빵은 '유대인''이방인'을 의미합니다. 이 두 개의 빵에 죄를 상징하는 '누룩'을 넣은 것을 제사장에게 가져온다는 것은 그대로 제사장을 통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칠칠절'을 행하면서도 그 의미는 가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제 메시아이신 예수님과 성령의 부으심의 은사로 인해 그 축제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깊은 뜻'을 성령 충만한 제자들이 바로 깨달았느냐 하면 그렇지 않았습니다. '깊은 뜻'이 명확하게 계시된 것은 사도 바울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도들에게도 보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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