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힘의 위력
-에베소서 1:19 -
샬롬선교회
[에베소서 1: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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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에베소 교회 사람들에게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라고 하면서 세 가지를 기도하고 있는데, 그 세 번째 기도가 “그(하나님)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는 것입니다.
1. 사도 바울의 습관 (동의어, 유사어 나열)
* 사도 바울의 편지의 버릇이라고 할까, 특징이라고 할까, 그것은 하나의 사물을 여러 가지 말로 다시 표현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을 아는 것', '지혜와 계시의 영이 주어지는 것', 그리고 '마음의 눈이 열리는 것'은 모두 같은 말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번 3의 '믿는 자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힘의 위력'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19절의 말씀도 사실 동의어, 유사어 나열의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절을 살펴봅니다.
“그(하나님)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καὶ τί τὸ ὑπερβάλλον μέγεθος τῆς δυνάμεως αὐτοῦ εἰς ἡμᾶς τοὺς πιστεύοντας κατὰ τὴν ἐνέργειαν τοῦ κράτους τῆς ἰ σχύος αὐτοῦ"
= '전능'(ἰσχύος) - 그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는 고유한 힘, 내재적인 힘을 나타냅니다.
='힘'(κράτους) - 적대적인 힘이나 방해가 되는 장애물에 저항하고 극복하는 힘을 나타냅니다. / '힘'(Δυναμίς) - 일반적인 의미의 힘을 나타냅니다. 계획하고, 약속하고, 시작한 것을 성취하는 능력을 나타냅니다. 다이너마이트의 어원.
= '역사=일'(ἐνέργειαν) - '에너지'의 어원으로 신약에서는 8번으로 바울에게만 나온다. 힘의 실제적인 행사나 활동을 나타냅니다.
* 칼빈은 '전능'(이스쿠스)은 뿌리 부분, '힘'(크라토스)은 줄기 부분, '역사'(에너게이안)는 그 열매라고 그 관계를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뛰어난 능력'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우리를 창세 전부터 택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장차 그 나라를 유업으로 주시고자 하는 소망의 실현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계획과 약속을 완성하시는 힘(두나미스)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즉, 믿고 구원받은 자들에게 지금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말합니다. '그 능력이 어떠하냐'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지 창조의 힘이나 섭리의 힘은 우리가 믿고 안 믿고는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은 상대가 어떻게 믿고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합니다.
로마서 1:16에는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복음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얻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다이너마이트)입니다." "믿는 자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 그것은 하나님의 다이너마이트, 어떤 다이너마이트인가 하면 '구원을 얻게 하는' 다이너마이트라고 합니다. 누구에게 그런 힘을 주시는가 하면, '믿는 모든 사람에게'라고 했습니다. '믿는 모든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믿는 자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경험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믿는 자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어떤 능력일까? 바울은 그 능력을 알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이 놀라워하신 믿음
*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아는 통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기를 생각해보십시오. 발전소에서 얻은 전기에너지는 전선을 타고 각 지역으로, 그리고 그곳에 사는 가정으로 가서 집의 콘센트에 코드를 꽂아 에너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에너지는 열이 되기도 하고, 빛이 되기도 하고, 동력이 되기도 하면서 일을 합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힘도 우리의 신앙이라는 통로를 통해 하나의 힘이 됩니다. 그것은 어떤 행동을 촉구하거나 생각이나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기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기도 하고, 병이 치유되기도 하며, 우리 마음에 있는 염려와 불안을 평안으로 바꾸어 주기도 합니다. 이것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교회에 연결된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의 역사를 더 많이, 더 풍성하게 알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모든 성도들(즉, 우리)이 그 능력을 경험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 에베소라는 도시는 마술, occult(비술), 점술의 세계였고, 많은 사람들이 그 지배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영적 싸움을 하여 사람들을 악령의 지배에서 해방시켰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역사한 결과, 에베소 도시에 강력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하나님이 변하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도 변하지 않고 지금도 존재합니다. 다만 그것을 이끌어내는 믿음이라는 통로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 속에는 그러한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의 역사를 경험한 사람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번에는 특별히 '예수님이 놀랄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특별히 놀라실 정도로 예수님의 마음을 강하게 움직인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로마 백부장의 믿음입니다.
(1) 백부장의 믿음
예수님께서 놀라신 것은 백부장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이방인이지만, 본래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에서도 이 백부장과 같은 믿음을 본 적이 없다고 말씀하셨을 정도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을까?
+마태복음에는 백부장의 이야기 이전과 이후에도 기적의 기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앞의 기적은 이렇습니다. 한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나아와서 엎드려 말했습니다. "주님, 마음만 먹으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손을 내밀어 그를 만지시며 "내 마음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해졌습니다. 당시 '나병'은 가장 혐오스러운 불치병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병에 걸린 사람은 가족으로부터도, 사회로부터도 격리되어 살아야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든 모든 관계에서 단절된 채로 살아야 했습니다. 말하자면 살아 있으면서 죽은 자와 다름없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주여. 주님, 마음만 먹으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라며 치유를 간구했습니다. 용기가 필요한 행위였습니다. 아무도 만지지도 만져보지도 않았던 나병환자에게 예수님은 손을 만지시며 "내 마음이다, 나아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마음'은 병든 자, 고통을 받는 자, 소외된 자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이 나병환자는 예수님이 그런 분임을 믿고 "주님, 당신의 마음 하나로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라고 믿었습니다. 놀라운 믿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특별히 놀라지 않으셨습니다.
* 이후 제자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이 직접 손을 대시자 열이 내리고 일어나 예수님을 대접하는 기적을 베푸십니다. 여기서도 나병환자와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병자에게 직접 손을 대시고 치유해 주신 것입니다. 앞의 기사도 뒤의 기사도 예수님이 직접 만지셨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의 경우는 다릅니다. 그가 자신이 병든 것이 아니라 그의 하인이 중풍에 걸려서 집에서 자면서 심히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그가 예수님께 가서 간청하고 있습니다. 이 백부장은 자신의 종(노예)을 위해 일부러 예수님을 찾아간 것입니다.
+당시 종(노예)은 물건과 다름없이 인격적인 대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쓸모없으면 언제든 버리고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현대의 일회용과 같은 개념이었습니다. 그런 '종'을 위해 자신이 직접 예수님께 찾아가 간청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 백부장은 대단한 군인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이 일로 예수님은 백부장을 칭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믿음에 놀라는 것입니다. 그 믿음은 무엇일까?
[마태복음 8:8~10] “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2) 권위와 말씀
* 여기서 '권위와 말의 관계'를 볼 수 있습니다. 군대에서는 상관의 명령은 절대적입니다. 전쟁 영화 등을 보면 가끔 상급자와 하급자가 의견이 대립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군대의 경우에는 상급자가 "이렇게 해라. 이것은 명령이다."라고 말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명령을 받은 사람은 수긍할 수밖에 없습니다. 백부장은 군인이기 때문에 그런 세상에 살았던 것입니다.
+군대가 아니더라도 회사 등에서도 여러 사람이 모여서 이것저것 논의해도 결정되지 않던 일이 유력한 사람이나 권위자의 말 한마디로 그대로 결정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학의 한 마디'입니다. 학은 새 중에서도 귀한 새이고, 울음소리도 다른 새에 비해 유난히 큽니다.
+인간의 말조차도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면(물론 인간의 말의 경우에는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되리라 말씀하시면 반드시 그렇게 됩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겠다고 말씀하시면 반드시 그렇게 하십니다. 그래서 백부장은 "다만 말씀 한 마디만 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가진 힘, 말씀의 권위를 믿었던 것입니다.
* 이 백부장의 믿음이야말로 믿음의 본질을 갖춘 믿음,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믿음입니다. 그의 믿음이 결코 평범한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을 놀라게 했다는 의미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는 진정한 믿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대단한 사람입니다.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다고 믿습니다.
[이사야 55:10~11] “10.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3)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서서 실천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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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자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날마다 알 수 있게 하소서. 구원과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의 확신,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시는 축복 등을 믿음으로 맛보기를 원합니다. 날마다 그리고 수시로 "주님, 말씀 주옵소서.", 혹은 간단히 "주님, 말씀 주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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