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가르치신 제자의 길(3)

- 누가복음 22:24~34 -

샬롬선교회

 

[누가복음 22:24~34] “24.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26.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27.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28.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29.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33.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34.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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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월절 식사 후 제자들 사이에 '누가 크냐'하는 다툼이 난 것을 계기로 예수님은 제자의 길에 대해 말씀하셨다. 이번 시간에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제자의 길(3)'로 두 가지를 다루고자 한다.

 

하나는 '섬기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믿음이 흔들린 후에 '회복되면 형제들을 '굳게 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눈빛은 결코 그들을 비난하지 않고 긍휼로 가득 차 있다.

 

1.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 지니라."

 

예수님의 가르침, 혹은 예수님의 제자훈련은 미리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떤 일을 계기로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말씀하셨다. 그것이 예수님의 방식이었다.

 

제자들 사이에서 '그 중 누가 크냐'라고 다툼할 때 가르치신 말씀이다.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동의어 병렬법)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고 말씀하셨다.

27절에서는 '섬기는 자''섬기는 자'로 되어 있는데, 원어는 모두 동사 '디아코네오' διακονέω의 분사형이다. 명사는 '디아코니아' διακονία로 섬김, 돌봄, 접대, 교회에서의 집사직을 의미하며, 역시 명사 '디아코노스' δάκονος는 봉사자를 의미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훗날 교회의 지도자가 되는 데 있어 그 자세는 '섬김(봉사)하는 것'이었다. 그 자세는 그들의 스승이신 예수님의 삶의 방식이었다. 누가복음에는 나오지 않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행위를 통해 '섬김'이 어떤 것인지 그 모범을 보여주셨다. 세상의 왕이나 지도자들은 백성이나 신하들로부터 섬김을 받는 자들이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위에 있는 자가 섬김의 본을 보여야 한다는 것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것이다.

 

병행기사인 마가복음 10:45에도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것이 예수님의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삶의 방식은 45절 후반부에도 있듯이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섬기는 자'의 궁극적인 모습, 즉 대속물로 주려함(대속적 죽음)으로 이어진다.

 

+ 사도 바울도 빌립보서 2:5~8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빌립보서 2:5~8]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여기에 '섬기는 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으로서의 본분을 버리시고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다는 내용이 있다. 예수님의 제자의 길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가짐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나 9절에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라고 말한다. '섬기는 자'는 결국 예수님께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듯이,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에 합당한 위치에 서게 될 것을 보장해 주신다. 그것이 바로 누가복음 22:28~30의 말씀이다. '섬기는 자''다스리는 자'가 되겠다는 약속이며, 사실 예수 그리스도가 그 첫 번째 증인이 되신다.

 

+ 세상에서는 '사람 위에 군림하는 것'을 추구한다. 사람을 지배하고 권위를 얻으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 권위를 가지고 사람 위에 서서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철저하게 (당시 노예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자'라는 것이다. 그 사람만이 하나님에 의해 높이 들림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 중 누구도 이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

 

2.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예수님의 제자로서 하나님과 사람에게 '섬김'의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한 제자들이 십자가라는 사건에서 '섬김'의 자세가 '발휘'되는 것은 지극히 필연적인 일이었다.

 

시몬뿐만 아니라 제자들 모두가 흔들리지만, 여기서는 특히 대표격인 시몬을 향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누가복음 22:31~32] “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가 '섬김'에 있어서 마지막에 '넘어질 것'(너는 돌이킨 후에)을 예견하고 계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의 믿음이 사라지지 않도록 그를 위해 이미 기도했다고 말씀하신다(아오리스트 시제). 예수님의 기도가 들리자 베드로는 자신의 진정한 연약함을 깨닫고 예수님의 대속으로 서게 됨을 깊이 경험하게 된다.

 

사탄의 계략은 베드로의 체면을 구겨서 다시는 예수님 앞에 서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희생으로 그의 죄는 용서받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셨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32절의 말씀,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고 하신 말씀인 것 같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용서의 선언인 동시에 실패가 실패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희망의 빛을 주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힘에 의존하던 베드로가 완전히 무너져도 그 너머에 희망이 있음을 선포하신 예수님의 말씀에는 창조적인 하나님의 능력이 담겨 있다.

 

+ 베드로는 이 예수님의 말씀을 먼저 자기 자신이 경험해야 했다. 자신이 하나님과 그 은혜의 말씀으로 '힘을 얻어야' 했다. '힘을 얻는' 경험을 통해서만 다른 형제들을 '힘 있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복된 이후 베드로의 모든 행보는 이 예수님의 말씀으로 방향을 잡게 된다. 베드로를 위해 중보 기도해 주셨을 뿐 아니라 회복되면 '형제를 굳게 하라(형제에게 힘을 북돋우어라)'고 명하셨다, 이 사역을 위해 베드로는 평생을 하나님과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 갈 것을 생각할 때 주님의 선택과 언약의 사랑에 감격하게 된다.

 

참고로 '굳게 하다(힘을 북돋우다)''스테-리조-' στηρίζω라는 동사로 '강화하다, 견고하게 하다, 굳건히 세우다, 단단히 세우다, 흔들리지 않게 하다'라는 뜻이다. 히브리어로는 '-사크' הָזַק, 강의로 '강화하다, 강하게 하다, 힘을 북돋우다'인데, 재귀태(히츠파엘)'분발하다, 용기를 내다'라는 뜻도 있다. 스스로를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아 줄 수 있어야만 다른 사람에게도 ''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도 주님 앞에 얼굴을 들 수 없는 죄를 지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죄이다. 그러나 그 죄로 인해 버림받지 않고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주님의 긍휼과 중보의 기도 덕분이라고 믿는다. 그로 인해 우리는 '회복'할 수 있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베드로처럼 주님의 은혜로 날마다 힘을 얻는 것이다. 이를 통해 주님께 있는 자들을 조금이라도 '힘 있게' 도울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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