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찬송하고 전함
시편22편
[22-24절]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에서 . . . .
다윗은 말한다.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회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다.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 얼굴을 저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부르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회중’(카할)은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를 가리킨다.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을 인정치 않고 감사치 않고 찬송치 않을 것이지만, 성도들의 회에서는 찬송 소리가 그치지 않을 것이다.
다윗은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권한다. 찬송은 모든 사람이 해야 할 의무이다. 시편 150: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24장로들과 천만 천사들은 창조주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께서 찬송과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시다고 찬송하였다(4:10-11; 5:12). 하나님을 참으로 알고 믿고 섬기는 자들은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시편 33:1,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로다.”
원문 24절은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시작된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고난 당하는 자들의 고난을 멸시치 않으시고 그 얼굴을 숨기지 않으시고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 찬송을 올려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고난 받는 성도를 돌아보시고 그 부르짖음을 들으신다. 다윗의 체험은 또한 모든 성도들의 체험이며 다윗이 말한 찬송의 이유는 또한 우리의 찬송의 이유이기도 하다.
[25절] 대회 중에 나의 찬송은 주께로서 온 것이니 주를 . . . .
다윗은 또 “대회 중에 나의 찬송은 주께로서 온 것이니 주를 경외하는 자 앞에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이다”라고 말한다. ‘대회’(카할 라브)라는 원어는 ‘많은 회중’이라는 뜻이다. 다윗은 많은 회중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송하였다. 우리는 개인적으로도 하나님을 찬송하지만, 특히 교회에서, 성도들과 더불어 하나님을 찬송한다. 다윗은 그가 성도들과 함께 부르는 찬송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고백한다. 성도의 찬송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은혜에 대한 깨달음과 지식과 힘을 가지고 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말했고(고전 15:10), 만물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오고 하나님으로 말미암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했다(롬 11:36). 하나님의 은혜로 하는 찬송은 참된 찬송이다.
다윗은 또한 그의 서원을 경건한 자들 앞에서 갚겠다고 고백한다. 서원은 하나님 앞에서 맹세하며 결심하고 약속하는 것이다. 다윗은 큰 환난 중에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간구하며 서원하였던 것 같다. 이제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셨으므로, 그는 그 서원한 바를 그대로 갚겠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서원은 꼭 갚아야 한다. 옛날에 입다는 하나님께서 암몬 족속을 그에게 붙여주셔서 승리케 하시면 돌아올 때 집 문에서 제일 먼저 그를 영접하는 자를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겠다고 서원하였고 그것을 이행하였다(삿 11:30-31). 한나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아들을 주시면 그를 하나님의 전에 하나님의 종으로 바치겠다고 서원하였고 그것을 이행하였다(삼상 1:10-11).
[26절]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 . . .
다윗은 또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라고 말한다. 본절은 고난에서 건짐 받은 성도를 ‘겸손한 자,’ ‘여호와를 찾는 자’라고 표현하며 그의 복된 면모를 말한다. ‘겸손한 자’(아나윔)라는 원어는 ‘고난 당하는 자, 겸손한 자’라는 뜻이다. 성도는 고난을 통해 겸손한 인격이 되며 또 이제 하나님을 찾는 자가 된다.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에서 건짐받은 성도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먹고 배부르게 하신다.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말했다(시 23:1-2). 이사야 55:1-2,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또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다. 성도는 평소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경외하지만, 특별히 환난 날에 하나님을 찾고 구원을 체험하며, 그 후로는 더 하나님을 찾는 자가 되며 하나님을 찬송하는 자가 된다. 구원받은 체험을 한 자마다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 것이다. 그는 기쁨과 감사의 찬송을 부를 것이다.
또 하나님을 찾는 자의 마음은 영원히 살 것이다. 마음은 영혼의 활동이다. 마음이 죽는다는 말은 마음이 슬픔과 절망 가운데 낙심되고 침체되는 것을 말하고, 마음이 산다는 것은 마음이 기쁨과 소망 가운데 힘을 얻고 활기를 찾는 것을 말한다.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 구원 얻은 성도는 마음에 힘과 기쁨과 활기를 얻을 것이다. 세상에는 언제나 슬픔과 근심, 환난과 고난이 많지만, 하나님을 찾는 자의 마음은 영원히 기쁨과 힘을 잃지 않을 것이다.
[27-28절]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 . . .
다윗은 또 말한다.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열방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경배하리니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열방의 주재심이로다.” 이 말씀은 땅의 모든 끝 곧 만국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는 예언이다. 예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행 1:8). 우리나라는 그 ‘땅끝’에 속한다. 우리나라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이 들어온 것은 기독교 2천년 역사에서 단지 100년 전의 일이었다.
열방의 모든 족속, 즉 세상의 모든 족속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것이다. 그것이 세계복음화이다. 세계복음화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 즉 ‘너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얻을 것이다’는 약속에서 이미 암시되었다(창 12:3; 18:18). 이것은 이사야 45:22에서도 암시되었다: “땅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 주 예수께서는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명령하셨고(마 28:19),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다”고 말씀하셨다(눅 24:47).
원문 28절은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세계복음화의 이유는 나라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 열방은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노아의 후손들이다(창 10:32). 하나님은 온 세상의 유일한 통치자이시다. 인류 역사는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 속에 되어진다. 창조도, 타락도, 구속도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 속에 있다. 의인의 고난도, 악인의 핍박도 그렇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도 만세 전에 하나님의 작정하신 바이었다.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나온다(롬 11:36).
[29절] 세상의 모든 풍비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 . . .
다윗은 또 “세상의 모든 풍비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진토에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다 그 앞에 절하리로다”라고 말한다. ‘풍비한’이라는 원어(다쉔)의 뜻은 ‘살찐, 부유한, 힘있는’이다. 이 말은 육신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존귀하고 힘있는 자를 가리키는 것 같다. 그는 평소에 하나님을 무시하고 세상과 돈을 의지하며 살았을지도 모르나 이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그에게로 돌아오며 영의 양식을 먹고 하나님께 경배할 것이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지만, 부자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 요한계시록 21:24, 26은,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고 말했다.
또 본문에 ‘진토(아파르) 즉 흙에 내려간다’는 말은 ‘풍비한’이라는 말과 대조되며 죽음을 가리킬 것이다. 그러면 ‘진토에 내려가는 자’는 가난하고 가련하고 힘이 없어 죽어가는 자를 가리킨다. 그는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 즉 거의 죽을 지경에 떨어졌으나 스스로 자신을 건지거나 회복시킬 힘이 없는 자이다. 옛날부터 이런 자들이 많이 예수님 믿고 구원받았다. 고린도전서 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그런 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복된 새 생명을 얻는다.
이와 같이, 본문은 각양의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올 것을 암시한다. 부자도 가난한 자도, 권세자도 평범한 시민도, 용사도 가련한 자도 다 회개하고 구원을 받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굴복할 것이며(빌 2:10-11) 택함받은 모든 사람이 구주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온 세상에 가득할 것이다.
[30-31절] 후손이 그를 봉사할 것이요 대대에 주를 전할 . . . .
다윗은 또 “후손이 그를 봉사할 것이요 대대에 주를 전할 것이며 와서 그 공의를 장차 날 백성에게 전함이여,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할 것이로다”라고 말한다. 구원받은 자들의 자손들이 하나님을 섬길 것이다. 어른들만 섬기거나 당대(當代)에만 섬기고 마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자녀들과 또 그들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바르게 잘 섬길 것이다. 이것이 참된 복이다. 자녀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세상으로 가면 그것처럼 큰 불행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욥은 그의 자녀들이 범죄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할까 염려하여 잔칫날 후에는 그의 식구 수대로 번제를 하나님께 드렸었다(욥 1:4-5).
구원의 복음과 바른 신앙생활은 경건한 모든 사람에게와 우리의 자녀들에게 전해져야 한다. 신명기 6:6-7,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에베소서 6:4,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구원받은 성도는 특히 하나님의 의를 전파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구약성경을 이루기 위해 오셨고(마 5:17), ‘다 이루셨다’고 십자가 위에서 말씀하셨고(요 19:30), 우리의 의(義)를 위해 율법의 완성이 되셨다(롬 10:4).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롬 3:24). 이것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른 신앙의 계대(繼代)가 주님 오실 때까지 이루어지기를 원하신다. 고린도전서 11: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디모데후서 2:2,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우리는 우리를 죄와 멸망으로부터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해 또 고난 중에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심을 인해 하나님을 찬송하자.
우리는 고난 중에 낙심치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부르짖는 성도들의 기도를 결코 외면치 않으시고 들어주신다.
세계복음화는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만방에 전하고, 또 우리 자녀들에게도 가르치자.
http://www.oldfaith.net/01exposit/01ot/1-19시편.htm#22편: 메시아의 고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