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장막에 거할 자
시편15편
[1-5절]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 . . .
다윗은 말한다.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 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 아니하는 자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이다.”
‘주의 장막’과 ‘주의 성산’은 천국을 가리킨다. 천국에 들어가 살 기에 합당한 자들에 대해 본문은 열한 가지의 자격을 말한다.
첫째로, 정직하게 사는 자이다. ‘정직하게’라는 원어(타밈)는 ‘완전하게’라는 뜻이다. 창세기 6:9는,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고 말하였고, 욥기 1:1은, “[욥은] 순전하고[완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고 말했다. 완전함이란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게 살며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것을 말한다. 성도의 성화(聖化)의 목표는 도덕적 완전함이다.
둘째로, 의를 행하는 자이다. 의는 기준에 맞는 것을 말한다. 도덕적 기준은 바로 하나님의 계명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과 뜻을 반영한다. 양심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의로운 삶이란 양심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교훈대로 사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주관과 편견과 이권(利權)을 따라 살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객관적 원칙 즉 그의 계명과 성경 교훈대로 살아야 한다.
셋째로, 그 마음으로 진실을 말하는 자이다. 진실은 사실 그대로를 가리킨다. 진실은 하나님의 속성이며 하나님 나라의 행동 원리이다. 마귀는 거짓말쟁이이며 거짓말쟁이의 아비이다. 그러나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계 22:15). 성도는 자신에게 유익이 되든지 해가 되든지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
넷째는, 그 혀로 참소하지 않는 자이다. ‘참소한다’(라갈)는 원어는 ‘돌아다니며 거짓말로 남을 비방한다, 중상(中傷)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이웃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악한 행위이다. 느헤미야의 원수들은 그가 유다 사람들과 함께 모반하려 한다는 거짓말로 그를 비방하였다(느 6:6). 출애굽기 23:1은, “너는 허망한 풍설을 전파하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무함[모함]하는 증인이 되지 말라”고 말했다.
다섯째는, 그 벗에게 악을 행치 않는 자이다. 악이란 남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를 가리킨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들에서 쳐죽인 일이나(창 4:8) 형들이 요셉을 미디안 상인들에게 종으로 판 것이나(창 37장)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은 30개에 팔아 넘긴 것은 다 악한 일이었다. 앞에서 말한 거짓된 비방, 명예 훼손, 사기, 도적질, 인신 매매, 폭력, 살인, 강간 등은 다 천국에 합당치 않은 악한 일들이다.
여섯째는, 그 이웃을 훼방치 않는 자이다. 훼방은 남의 흠을 들어 그를 비난하는 것을 말한다. 이웃에 대한 말은 정당한 것이라도 꼭 필요한 경우 외에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꼭 필요한 경우란, 재판 석상에서 증언하는 것이나 남의 거짓된 비난에 대해 해명하는 것이나, 교회의 유익을 위해 공적으로 증언하는 것 등이다. 바울은 교회의 유익을 위해 후메내오와 빌레도, 부겔로와 허모게네, 구리장색 알렉산더 등을 언급했고(딤전 1:20; 딤후 1:15; 2:17; 4:14), 요한은 디오드레베를 언급했다(요삼 9). 그러나 우리는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마 7:1)는 주의 교훈을 기억해야 한다.
일곱째는, 그의 눈에 망령된 자를 멸시하는 자이다. ‘망령된’이라는 원어(니브제)는 ‘야비한, 비열한’이라는 뜻이다. 그는 비열한 자를 칭찬하거나 높이지 않고 멸시한다. 잠언 17:15는, “악인을 의롭다 하며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자는 다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느니라”고 말하였고, 잠언 28:4는, “율법을 버린 자는 악인을 칭찬하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하느니라”고 했다.
여덟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존경하는 자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모든 도덕의 원천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요(잠 8:13),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악에서 떠나게 된다(잠 16:6). 그러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 있어 첫 번째 요소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세상의 부귀와 영광을 누렸던 아합 왕보다, 비록 가난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한 선지자 엘리야가 확실히 더 존귀하고 가치 있는 자이다.
아홉째는, 자기가 한 맹세가 비록 자신에게 해가 되어도 지키는 자이다. 맹세는 하나님 앞에서 말하는 행위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맹세를 지킬 것이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그것을 지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맹세를 지키지 않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가 된다. 신명기 23:21,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 입다의 귀한 점은 그가 자기에게 해로운 서원을 이행한 것이었다. 그는 그의 사랑하는 무남독녀(無男獨女)인 딸을 서원대로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렸다(삿 11장).
열째는, 이자를 위해 돈을 빌려주지 않는 자이다. ‘변리’라는 원어(네쉐크)는 ‘이자 혹은 고리대금(usury)’이라는 뜻이다(BDB).8) 성경은 사회에서 인정된 대금업 혹은 은행업을 정당한 것으로 여기지만(마 25:27; 눅 19:23), 성도 간에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것이나 특히 고리대금(高利貸金)을 금한다(출 22:25; 레 25:35-37).
열한째는,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않는 자이다. 성도는 불의의 이익을 구해서는 안 된다. 성경은 장로나 집사의 자격으로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않는 것’을 꼽았다(딤전 3:3, 8; 딛 1:7). 우리는 돈을 정당하게 벌어야 한다. 잠언 16:8은,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한다.
천국에 들어가 살기에 합당한 자들의 자격은 도덕적 완전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하나님의 뜻은 여전히 우리의 도덕적 완전이다(마 5:20, 48; 7:21; 살전 4:3; 딤후 3:17). 빌립보서 4:8, “무엇에든지 참되며 . . .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도덕적 완전은 단지 신앙의 문제가 아니고, 행위의 문제, 곧 윤리의 문제이다.
도덕적 완전은 의와 진실과 선을 가리킨다. 천국에 합당한 자들은 하나님의 계명대로 의롭게 살고 진실을 말하며 이웃에게 선을 베푼다. 그들은 이웃을 거짓말로 비방하지 않고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않고 남의 흠을 들어 비난하지 않고 또 비열한 말을 하는 자들을 멸시한다.
또 천국에 합당한 자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경하고 하나님 앞에서 한 서원은 비록 자기에게 해가 될지라도 갚는다. 또 천국에 합당한 자들은 불의의 이익을 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자를 위해 돈을 빌려주지 않고 또 뇌물을 받지 않는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그러나 우리는 도덕적 완전을 위해 힘써야 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시험이 올 때 넘어지기 쉽지만, 행함이 있는 믿음은 영원히 요동치 않고 견고히 설 수 있을 것이다(마 7:24-27; 벧후 1:10-11).
http://www.oldfaith.net/01exposit/01ot/1-19시편.htm#15편: 하나님의 장막에 거할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