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고 부패된 인생

    

 시편14편

[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 . . .

 

다윗은 말한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하나님께서 안 계시다고 말하는 것보다 더 무지하고 어리석은 일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이며 그는 온 세상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온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고 국가의 흥망성쇠를 주장하시는 섭리자이시다.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은 자식이 부모님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자신을 낳으시고 기르신 부모님을 부정하는 것이 큰 무지요 어리석음이듯이,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은 큰 무지요 어리석음이다.

 

또 하나님을 부정하는 자는 그 행위가 부패하게 되어 있다. 인류 역사가 그것을 증거한다. 사람은 다 죄인이며 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로 그를 두려워함이 없이는 악을 떠나지 못한다. 잠언 16:6,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하여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을 부정하고 하나님 없이 사는 자는 죄악될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들 속에서는 참된 도덕성을 찾기 어렵다. 세상에도 비교적 선한 사람들이 있으나 그들의 선행은 결함이 있고 환경에 따라 변하며 흔히 자기 자랑을 동반하고 위선적이다.

 

[2-3]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사람들을 보시니 하나님을 찾는 자가 없고 다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보신 것이니 확실한 사실이다. 세상의 종교들은 우상숭배적이고 고행과 금욕을 가르치나 사람들로 하여금 참된 의와 선을 행하게 하지 못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긍휼의 구원이 아니고서는 우상숭배와 죄를 떠날 수 없고 참 경건과 도덕성을 가질 수 없다.

 

[4]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뇨? 저희가 떡 먹듯이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뇨? 저희가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다시 번역하면, “죄악을 행하는 자, 곧 내 백성을 떡 먹듯이 먹으며 여호와를 부르지 않는 자는 다 무지하뇨?”(KJV, NASB, NIV). 악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5] 저희가 거기서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 . . .

 

다윗은 또, “저희가 거기서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라고 말한다. ‘거기서라는 말은 악인들이 악을 행하는 장소를 가리키는 것 같다. 악인이 하나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악을 행하는 곳에서 양심의 가책을 받고 크게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진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의인들과 함께 계심을 느끼기 때문이다. 성경은 다윗을 죽이려 했던 사울이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하심을 보고 다윗을 더욱 두려워하였다고 증거한다(삼상 18:12, 28-29). 하나님께서는 의인들과 함께 계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특권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고 순종하는 자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을 도우신다.

 

[6] 너희가 가난한 자의 경영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 . . .

 

다윗은 또, “너희가 가난한 자의 경영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 피난처가 되시도다라고 말한다. 악인은 가난한 자 즉 고난 당하는 성도의 계획을 부끄럽게 한다. 즉 그는 그 계획을 방해하고 좌절시키려 한다. 그것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피난처가 되신다. 그것은 성도의 특권이다.

 

[7]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 . .

 

다윗은 또 말한다.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 즉 예루살렘에서 나오기를 소원하였다. 이것은 경건한 자들의 소원인 동시에 예언적 간구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과연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시온에 보내주셨다. 다윗의 예언적 간구는 성취되었다. 동일한 예언이 이사야 2:2 이하에도 나온다. 이사야 2:2,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 들 것이라.” ‘여호와의 전의 산은 시온산 즉 예루살렘이다. 주께서는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다고 말씀하셨고(24:47),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1:8).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것이다. 이 말씀은 성도들이 원수의 핍박 아래에서 건져냄을 받는 것을 뜻하며 또 이스라엘 백성이 장차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올 것을 예언하는 뜻도 있을 것이다. 또 영적으로 죄와 사탄과 사망에 포로된 인생들이 구원받을 것을 의미하는 뜻도 있을 것이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실 자로 이 세상에 오셨다(1:21). 우리는 죄와 멸망으로부터 구원을 받은 자들이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구원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백성의 기쁨과 즐거움의 이유이다. 사실상, 죄와 사탄과 사망으로부터의 구원보다 더 큰 복이 무엇이며 더 기쁘고 즐거운 일이 무엇이겠는가.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말씀하셨고(10:20), 또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했다(살전 5:16, 18).

 

 

시편 14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무신론은 어리석은 사상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이며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시는 세상이다. 그는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고 국가의 흥망성쇠를 주장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신론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둘째로, 무신론자는 부도덕하다. 어리석은 무신론자들은 그 행위가 부패하고 가증하며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은 도덕의 근거이시다.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죄를 멀리하고 의와 선을 행하게 된다. 무신론에서는 도덕이 보장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다면 인간이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러므로 역사상 무신론자들은 많은 악을 행하였고 특히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해왔다. 구원받은 우리는 오직 의와 선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의인들과 함께 계신다. 성도는 세상에서 핍박을 당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피난처가 되신다. 세상은 불경건하고 부도덕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새 세계를 만드실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다. 이 하나님의 구원은 시온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회개와 구원의 운동은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확장될 것이며(24:47; 1:8), 오늘날 온 세상에 충만히 이루어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들과 함께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감사하며 그의 뜻대로 의롭게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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