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 자코멜리 : 구조화된 추상과 풍경


 현대사진의 출발인 1950년대 영상사진 ①의 개화로부터 1970년대 사진의 새로운 경향(존재론적) ②  그리고 그후 포스트모더니즘의 힘찬 사진의 도약은 의심할 바 없이 20세기 미국 사진의 승리를 단언하는 것이었다. 이는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미국 사진을 지배한 전통적인 형식주의(특히 매체 사진)와 인간 내적 탐구를 우선으로 하는 유럽의 실존주의 경향과의 적절한 접맥의 결과였다 : 예컨대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 랄프 으젠 미트야드(Ralph Eugene Meatyard), 랄프 깁슨(Ralph Gibson) 등과 같은 작가의 사진들은 엄밀히 말해 미국 사진의 전통보다 오히려 유럽의 실존주의나 초현실주의 경향에 더 가까웠다. 반면 마이너 화이트(Minor White) 또는 안셀 아담스(Ansel Adams)와 같은 사진가들은 전통적인 미국의 순수 사진계열 특히 대자연의 위대함과 신비를 재현하는 풍경사진을 선호했다. 그와 같이 1970년대 미국 사진은 전통적인 사진의 순수성을 바탕으로 풍부한 표현적 메시지를 은닉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유럽의 사진가들은 미국의 경우처럼 매체사진의 순수성을 그들의 전통으로 가진 것이 아니라 예술적 매체로서 표현주의적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점진적으로 사진 매체의 순수성을 거부하고 오히려 매체에 인위적인 조형성을 부여하면서,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표현을 우선으로 하였다. 말하자면 그들은 사진을 더 이상 객관적 사건의 전달 매체가 아닌 붓이나 잉크와 같이 개인적인 표현을 위한 표현 도구로 간주하면서 또 다른 조형적인 활용을 시도했다. 사진의 영역에서 이러한 새로운 지형을 개척한 대표적인 작가들 중 하나는 이탈리아인 마리오 자코멜리(Mario Giacomelli)였다.
 
 비록 유럽 사진작가 대부분이 1970년대와 1980년대 미국사진의 큰 영향력에 가려 비교적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마리오 자코멜리는 이미 1960년대부터 거의 유럽을 대표하는 서정 음유시인으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특징적으로 그의 사진적 테마들은 삶과 죽음 그리고 대지와 생명과 같이 자신을 둘러 싼 진솔하고 담백한 일상생활의 서정들이며 그 이면에 인간의 내적 본성에 대한 존재론적 비밀을 누설하고 있다.

마리오 자코멜리는 1925년 8월 1일 이탈리아 중동부에 있는 마르케주 세니갈라(Senigallia)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줄곧 그 곳 리비에라(Riviera)③ 라는 작은 마을에서 살았다. 그의 나이 9살 되던 1934년, 아버지의 죽음으로 세 아이들의 생계를 댈 수 없었던 그의 어머니는 양로원 세탁소에서 고된 노동을 했다. 그래서 그는 어머니가 일하는 양로원에 자주 갔고, 일찍부터 그 곳 노인들의 생활을 알게 되었다 : 생명의 시작만큼이나 삶의 종말이 있다는 것을 일찍부터 알게 되었고, 죽음은 어둠의 대상이 아니라 자연의 한 과정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그는 13살 되던 해 그의 인생에 있어 결정적인 경험이 되는 인쇄소에서 일하였는데, 거기서 (기술자가 아닌) 소년 직공으로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삼차원적인 자음과 모음의 식자글씨와 이상한 형상들에 유혹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다시 인쇄소의 주주로서 인쇄 일을 시작하지만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은 삶과 생명에 대한 시적 영감이었다. 그후 그는 은밀하게 시를 적기 시작하였고 점진적으로 이러한 행위를 자신의 삶에 있어 일상의 한 부분으로 만들었다.

그는 한 번도 사진 교육을 받지 않은 아마추어 사진가였다. 그는 8포즈 대신 10 포즈를 가능하게 하는 필름 6 x 9 사이즈를 개조하였고 그의 집 돌 세탁장 구석을 개조하여 암실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자신의 사진 행위를 독립된 예술 장르의 창작 행위로 생각하지 않았고 사진을 그림이나 데생으로 간주하여 최종적인 인화 과정에서도 자신의 표현에 적합한 흑백 종이를 선택하여 사진들을 현상했다. 왜냐 하면 그에게 있어 창조의 원초적인 힘은 자신이 체험한 시적 영감에 있었고 사진은 이러한 영감과 직감을 위한 시적 언어로만 이해되었기 때문이었다. 

자코멜리는 그의 사진 인생에 결정적인 동기가 되고 또한 자신의 예술적 기질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친 중요한 인물을 만나는데, 그 인물은 고향 세니갈리아의 변호사임과 동시에 “라뷔솔라(La Bussola)”라는 아마추어 사진모임의 회장인 귀세프 카발리(Guiseppe Cavalli)였다. 카발리의 탁월한 지적 능력과 구상 미술의 박식함은 젊은 자코멜리를 강하게 유혹했고 그의 영향으로 표현상의 추상적 형태와 조형성 그리고 현대미술 특히 추상 표현주의의 강렬한 매력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사진 행위로 연결되었다. ④  물론 카발리의 요청으로 그는 라뷔솔라 그룹에 들어가지만 곧 그는 아주 다른 이데올로기적인 견해 차이로 즉각적으로 탈퇴한다. 그는 그때부터 결정적으로 아마추어 문화로부터 거리를 가지면서 깊은 고독 속에서 끈질긴 개인적 탐구를 계속한다.
 
마리오 자코멜리의 사진들은 한 마디로 말한다면 “내적 본성에 대한 서정적 탐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열정은 당시 전후의 암울하고 혼란스런 시대가 만든 작가의 깊고 원초적인 심리학적 충동과 자신의 특수한 성장 배경으로부터 형성된다 : 어린 시절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개인적인 고통, 전쟁으로 황폐된 재건 시대에 사회적 정치적 분쟁으로 야기된 나라의 집단적 위기의식, 외래 문화와 전통과의 혼동과 갈등은 근본적으로 작가로 하여금 거의 반사적으로 인간의 내적 본성에 대한 탐구와 인간적 연대 욕구를 발산하게 했다. 게다가 50년대 이태리 지방은 급속히 산업화되고 문명화된 도시와는 달리 아직도 내부적으로 많은 전통 종교와 우상 숭배적인 미신을 가지고 있었다.

자코멜리는 50년대 당시 이태리를 지배한 전통적 매체사진에 종지부를 찍으면서 일상의 서정을 농축시킨 삶의 흔적들과 특히 인간의 땀과 노동을 용해시키는 땅의 껍질과 주름(항공사진)을 통해 사랑과 일, 젊음과 늙음, 생명과 죽음 등의 보다 본질적인 주제들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그러나 거기서 이미지들은 더 이상 현실의 사실주의적 재현이 아닌 일종의 시적 언어로서 추상적인 형태를 가진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이러한 이미지들은 크게 두 가지 철학적 배경을 가진다.
우선 작가가 초기 사진부터 줄곧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자연과 문화의 조화”이다.
 
그것은 마치 음유시인이 읊는 가락과 같이 작가의 경험적인 체험과 내면적인 직감이 빚어내는 감정의 음색, 쉽게 말해 삶의 진실과 자연의 섭리일 것이다. 거기서 사진들은 언제나 감각 이전의 내재된 초월성 ⑤  즉 형태들의 생산 이전 단계로 거슬러 존재하는 내재적 생성 또는 구조화된 추상 이미지로 나타난다. 여기서 구조화(structuralisation)란 무엇을 말하는가 ? “그것은 이태리적인 영감을 말하는데, 그 의미는 현대 이태리어 “struttura”에서 아직 남아있는 라틴어 어원인 “structura”에서 암시되는데, 이 말은 뼈나 돌과 같이 자연적이든 인공적이든 여하간 모든 건설에 공통적인 무엇을 말하는 특수한 단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것은 일종의 구성적인 근본이고, 모든 특별한 실현 그 이전에 일반적인 원칙 다시 말해 자연과 문화에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일종의 선험적(transcendantal)인 디자인이다 - 그러나 이것은 “초월적(transcendant)”인 것이 아니라 반대로 아주 “내재적(immanant)”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예를 들어 독일 특히 헝가리의 바우하우스 디자인은 인공물 속으로 게다가 디지털 속으로 자연을 빨아들이려 한다.
 
그러나 이것(선험적 디자인)은 자연에서 문화로 가는(즉 문화 혹은 인공물이 자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 예 자연의 형태에 조화를 이루는 우리 나라의 초가집 경우) 것이다.” ⑥  

그래서 구조화라는 말은 구체적인 형태나 의미로 구성된 수많은 문화들이 사실상 형태가 없는 동일한 골격으로 환원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이것은 문화의 관점에서 자연을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로서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문화는 단지 자연의 표면일 뿐이고 구조를 말하는 배경에서 형태로 돌출된 구성(construction)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문화와 자연의 조화임과 동시에 형태 없는 자연으로의 회귀를 말하는 구조화된 추상이다. 가령 산허리를 가로지르고 산을 관통하여 만든 거대한 동맥의 고속도로, 지도를 바꾸는 엄청난 간척공사, 방대한 인간 조직과 그 집단 활동 등은 문화에 자연을 흡수하면서 언제나 구체적인 문화를 구성한다. 그때 자연과 문화는 별개의 것이 된다. 그러나 대지의 품에서 활동하는 인간의 땀과 노동은 자연에 흡수되어 구조(본질화)화 된 문화가 된다. 거기서 우리는 문화와 자연의 조화를 볼 것이며 형태와 의미 이전의 본질적인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자연에 대한 시적 영감과 직감은 문화를 자연 속에서 이해하는 구조화(조직화)된 가장 전형적인 것이다. 그때 시적 영감의 이미지는 단지 추상적인 형태만을 가질 것이다. 마리오 자코멜리는 자신의 풍경 사진들에 대해 “그것은 추상일 수 있다, 그러나 단지 본질적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소위 “메타”라고 언급할 수 있는 정상적인 형태로부터 이탈된 그의 사진들(리터칭 된)이 단순히 시각적으로 변형된 풍경이 아니라 자신의 시적 영감에서 구조화된 본질적인 풍경이라는 것을 말한다.

자코멜리 사진을 특징짓는 또 하나의 내적인 개념은 삶과 죽음 그리고 대지의 순환을 말하는 “생성-형성(devenir-forme)의 시적 재현”이다. 그는 “모든 역사는 세계가 진행하고 있는 역사(진화)를 자연적이고 우주적인 틀 내부에서 이해하는데 있다”고 말한다. 그의 사진들이 암시하는 어떤 순환적인 리듬과 반복은 일종의 무의식적인 제식화로 나타나는데, 이는 대지로부터 탄생하여 다시 대지로 돌아가는 동양의 윤회사상과 유사하다. 그래서 대지와 생명, 삶과 죽음, 인간과 자연 등과 같이 보다 본질적인 문제들을 가지는 사진의 테마들은 마치 웅장한 서사시에 적용되는 후렴구처럼 언제나 반복과 리듬을 가진다.

 언제나 위대한 문학가나 시인들을 유혹한 것은 특별한 영적 신비 의식(초월성)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에 은닉된(내재성) 삶과 죽음의 순환이었다. 마찬가지로 자코멜리를 유혹한 것은 바로 이러한 삶의 진실이었다. 그를 유명하게 한 양로원(사진 1), 어린 신학생들(사진 2), 스카노(사진 3) 등과 같은 매혹적인 사진 시리즈들은 어떤 신비론적이고 종교적이고 예언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아주 강한 흑백 콘트라스트와 거친 입자 그리고 무차별한 인공 빛이 만들어내는 비현실적인 분위기 속에서 공통적으로 우리 일상의 어떤 존재론적인 내재성을 지시하고 있다. 특히 삶의 종착역인 “양로원의 삶”을 들추어내는 묵시론적인 이미지들은 무기력하게 던져진 고통과 죽음의 상처 그리고 이러한 자국들 뒤에서 미리 사후의 세계를 예견하듯이 우리에게 삶과 죽음의 연속적인 시간을 암시하고 있다.

인간 존재와 대지와의 관계는 언제나 함께 공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생명이다. “생명, 그것은 자연, 들판의 일, 축제, 어느 젊은 커플의 열렬한 포옹, 웃음, 노래, 미소, 그리고 지칠 줄 모르는 춤이다. 삶의 원초적인 제스처와 유머로 가득 찬 대지의 역사들은 우상숭배의 땅속에서 솟아오르는 관능으로부터 시적인 모든 상상에 적절한 환기적이고 서정적인 긴장을 진동시킨다.” ⑦ 엄마 손길과 같은 천성적 대지, 풀밭 위 젊은이들의 열애, 식사와 노동, 마르케의 땅, 거기로부터 나온 시(詩)적 영감이 바로 사진이고 그때 사진가는 음유시인이 된다.

대지와 생명을 노래한 1950-60년대 자코멜리의 풍경 사진 시리즈(사진 4)는 최고의 모상 즉 대지에 공헌된 한 편의 서사시로 간주된다. 비행기(큰 소리를 내는 모터 달린 조립형 경비행기)에서 포착된 풍경들은 우리로 하여금 밭고랑의 운각으로 나누는 분절과 앵글 속에서 보잘 것 없는 하찮은 것 소위 의미 없는 “무 - 기표(insignifiant)”의 존재를 알게 한다. 그러나 여기서 풍경이라고 말하는 것은 단순한 자연적 지형의 모사가 아니라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구조화) 조화의 풍경을 말한다.
 
다시 말해 풍경들은 모든 원근법적이고 피토레스크적인 규범들을 비우면서 땅, 밭고랑, 나무 그리고 땀(노고)과 같은 이름을 부여하는 종속이상 더 이상 다른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것들은 오히려 풍경의 본질적이고 거시적인 재구성을 보여준다. 결국 작가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한 번도 경작 안 된 황무지를 보여주는 단순한 지형적 탐색이 아니라 거기에 남긴 밭고랑, 구획, 들판의 자국들 즉  인간의 노동(문화)이다.
 
자코멜리 사진이 가지는 구성상의 특징들(탈-형식주의, 항공사진, 거친 입자, 강한 콘트라스트, 리터칭, 영화화된 장면 등)은 궁극적으로 표현적인 조형성을 우선으로 하는 탈 - 형식주의(anti - formalisme)경향을 가진다. 이러한 경향은 미국의 순수사진들이 전통적으로 표명하는 형식주의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 거의 직감적인 음 - 양(clair-obscur) 이미지, 구상 예술의 전통적 양식과 형식주의로부터 이탈, 구성상의 자유로운 흐름 등 특히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야생적인 측면을 암시하는 극단적인 콘트라스트와 의도적으로 필름과 인화지에 직접 실행하는 모델라주(modelage /리터칭)는 작가의 표현주의적 의도를 잘 말해줌과 동시에 형태들(formes)의 생산 이전 단계로 거슬러 올라가는 구조화된 추상을 보여준다.
 
궁극적으로 그가 사진을 통해 재현하려는 이미지는 구조(골격)화 된 이미지였다. 이를 위해 우선 기복이 심한 이태리 풍경에서 의도적으로 선들을 굵게 하기도 하고 자세한 부분을 지우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강조와 지움은 “어떤 형이상학적 의문을 놓는 것이다.
 
즉 배경(fond)이 무엇이고 형태(forme)가 무엇인가 ? 자연(nature)이 무엇이고 문화(culture)가 무엇인가 ? (...) 1963년 스카노의 거리에서 검은 외투의 부인들과 어린 소년의 등장인물이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여전히 구조화(textural 짜여진)된 추상에 의해 내재되어 있다” ⑧  구조화된 추상 이미지, 그것은 작가의 시적 영감과 직감에 대한 사진적 재현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우리의 현실을 떠난 초월적(au-del )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각자 심연(ombres)에 존재하는 내재적(en-de a)인 감성의 음색이다. ●

주요 참고 서적
Ennerry Taramelli, Mario Giacomelli, Contrejour 1992/Nathan 1998, Paris, 1998.
Enzo Carli, Giacomelli, cat., Charta, Milano, 1995.
L'echappe europenne, Les cahiers de la Photographie, Paris, 1992.
Mario Giacomelli, cat., Centre Regional de la Photographie Nord-Pas-de-calais, Douchy, 1987.
Henri Van Lier, Histoire photographique de la photographie, Cahier de la photographie, Paris, 1987.
 
① 여러 번 언급되는 말이지만 영상사진의 “영상”은 외래어인 이미지(image)를 번역하여 만든 말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그 의미는 코드화(양식화) 할 수 없는 혹은 그 이전의 존재론적 대상을 내포하는 그러한 사진을 말한다. 이는 언어로서의 사진이 아닌 사진 그 자체로서의 언어를 가지는 사진을 말한다. 필립 뒤봐는 이러한 사진을 포괄적으로 말해 현실의 변형(상징, 코드, 의미, 관습, 약속, 문화 등)이 아닌 “지표로서의 사진(La trace du reel)”이라 하고 또 다른 이는 “사진적 장치(dispositif)”라고 한다. 물론 이러한 견해는 후기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대략 1970년대 후반부터 점진적으로 언급된 것이다. 그러나 논리와 의미에 익숙한 우리의 눈에 영상이라는 순수한 어원적인 단어(텍스트가 없는 시각적인 이미지)로 인해 영상사진을 흔히 텍스트 없이 서술화 된 사진 이미지(스토리 사진 ?)로 오해한다. 결국 "영상"이라는 뜻을 앞서 말한 존재론적 관점에서 기표 없는 무의미를 말하는 존재의 자국으로 이해하지 않고 단순히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해석학적인 장면으로 이해한다면 전혀 다른 것이 될 것이다.
 
② 프랭크 이후 1970년대 아버스나 아베돈과 같은 거의 대부분의 현대 사진가들이 실행한 억압되고 망각된 존재들(음영, 시뮬라크르, 탈-구조 등)에 대한 사진적 탐색을 말한다. 이때 사진들은 코드가 아니라 영상 언어들이다.
 
③ 그는 몇 번의 외국 여행과 전시 그리고 외국의 단기 체류 목적으로 고향을 떠나기는 하였지만 거의 줄곧 자신의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 지금도 그는 거기에 살고있다.
 
④ 그러나 리터칭과 덧칠 같은 조형성을 허락하는 이러한 사진 행위는 오늘날 1980년대 이후 연출사진이나 구성사진과 같은 조형사진 계열에 속하지는 않는다. 그의 조형성은 단지 표현을 위한 사진적 방식 또는 강조로 간주되며 그의 사진은 조형사진이 아니라 순수 서정 사진으로 이해된다.
 
⑤ 철학에서 “초월”이라는 용어는 세 가지로 설명된다. 첫째, 스콜라 철학에서 초월은 보통 사고의 범주 이상의 것으로 초감각적인 것 즉 “지적 직관”을 말한다. 두 번째로 칸트의 인식론적 관점에서 본 초월 용어는 두 가지 서로 다른 개념에서 이해된다. 먼저 “초월적 (transcendant)”이라는 것은 인간의 지식이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을 말한다. 다시 말해 인간 지식 외부에 있다는 의미로 인간의 실천적 행위를 규제하는 기초(영혼불멸, 신)로 간주한다.
 
그래서 인식론적으로 경험 불가능한 범위 내에 있다는 의미에서 “내재적”이지 않다. 반면 “선험적 (transcendantal)”이라는 것은 “초월적”과 같은 어원이지만 이것은 인간 지식의 성립 기초로 이해된다. 그래서 인식론적으로 경험 가능한 범위 내에 있다는 의미에서 “내재적(immanent) / 내재성(immanence)”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신의 “내재성”은 신은 세계 내에 존재한다는 범신론 관점에서 본 것이다. 끝으로 실존주의 철학에서 유신론적 관점에서 초월의 용어는 키에르케고르 신이나 야스프스의 포괄자가 보는 성스러운 초월을 말하며, 무신론적 관점에서 볼 때 특히 하이데그 사르트르 철학에서 실존이 그 존재방식으로서 끊임없이 현실을 뛰어넘어 가는 것을 “초월한다”라고 한다(참조, 철학 용어 사전, 동녘).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초월은 인식론적으로 경험 가능한 범위에서 칸트의 선험적 초월인 “내재성(immanent)”을 말하는 것이지만 이것은 어떤 존재가 실재 밖의 비현실적인 상부구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부에 실재한다는 설명을 위해 칸트의 “내재적”용어를 차용한 것이다.
 
사실상 이 말은 우리의 경험과 인식이 도달하지 못하는 심연에 존재하는 무의식적이고 비인식적인 무엇을 지칭한다. 이러한 심연의 영역이 원래의 “초현실주의” 개념인 것이다. 고로 초현실주의의 대상들은 단지 내부적 혹은 보이지 않는 현실일 뿐이고, 작가가 감지하는 영감이나 직감 또는 대상과의 교감에서 포착되는 감성의 음색은 비록 우리가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현실에 분명히 실재하는 내적 대상인 것이다.
 
⑥ Henri Van Lier, Histoire photographique de la photographie, Cahier de la photographie, Paris, 1987, p. 162.
 
⑦ Ennerry Taramelli, Mario Giacomelli, Contrejour 1992/Nathan 1998, Paris, 1998, p. 18.
 
⑧ Henri Van Lier, op. cit., p. 164.
 
글·이경률
(미술사 박사)
 
(사진 1) 양로원 시리즈 중 1955-1968
(사진 2) 어린 신학생들 시리즈 중, 1961-1963
(사진 3) 스카노 시리즈 중 1957-1959
(사진 4) 풍경 시리즈 중 1955-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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