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안에서 자녀와 부모

- 에베소서 6:1-4 -

샬롬선교회

 

[에베소서 6:1-4]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서언.

 

+ 본문은, 에베소서 5:21"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는 말씀을 토대로 하면서도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있어서 그리스도에게 있는 새로운 관계 속에서 서로서로가 '피차 복종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자녀가 부모에게 복종하고,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를 살펴보도록 한다.

 

1.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다.

 

+ 시편 127:3"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賜物)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報酬)이로다."라고 한다. '자식들''태의 열매'라고 바꾸어 말하고, '여호와의 기업''상급'이라고 바꾸어 말하고 있다. , 전반과 후반은 같은 의미로 이해를 해도 좋다는 의미이다. 그 의미하는 것은 자식들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인 동시에 부모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보관물'이라는 것이다. 자식들은 신앙을 통해 맺어진 부부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기업', 또한 '상급'인데, 결코 부모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맡겨진 '보관물'로서 키운다는 사명이 부여되었다는 의미로 이해하여야 한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에게서 나오고 하나님에게 속한다. '기업'이라고 하여도 책이라든가 보석과 같은 것과 동일한 수준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앞에 있는 산 생명이 있는 '기업'이다. 이 사실을, 우리가 앞으로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생각할 때에 대전제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 가정에서의 부부관계를 생각하더라도,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생각하더라도, 혹은 그 이외의 관계를 생각하더라도, 중대한 것은 에베소서 5:21에 있듯이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는 것이 대원칙이다. 그것은 서로 섬기는 것이고, 서로 양보하는 것이며, 그리고 상대방을 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의미하는 바를 한 말로 말하면 "인격의 존엄"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 '자식의 인격을 존중한다.'라고 하는 정의로서, '부모로부터 이름을 부여받은 자식이 결코 부모의 소유물로 여겨지지 않고, 또 부모의 꿈을 실현하는 도구로 여겨지는 일도 없고,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맡긴 존재로서 인정받고, 마침내 자식이 자기의 의지로, 사람으로서 자립해 나갈 권리가 존중된다는 것이다.'

= 특히 에베소서 6:4에 있는 "아비들아(어머니도 이 부름의 범주에 당연히 들어 있다).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라는 말씀이 진정으로 뜻하는 바는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2. 성경에서 자녀들을 양육한 부모들의 예

 

+ '부모가 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부모가 되는 사람이 반드시 처음부터 훌륭한 부모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자,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자가 반드시 자식들의 양육에 성공한다는 것도 아니다.

성경 중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도, 큰 직위를 부여받은 사람이라도, 직접 자신의 자녀의 양육에서는 성공하지 못한 예가 얼마든지 있다. 아래는 자녀들을 양육한 부모들의 예이다.

 

(1) 대제사장 아론의 경우 [레위기 10:1-2]

= 대제사장 아론의 아들들(나답과 아비후)은 여호와께서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드리고, 하나님께 심판을 받고 죽었다. 불은 항상 제단에 취하여야 했다. 말하자면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행위에 있어서, 거룩한 것에 대한 "무례(=불순종)"가 있었다. 가장 거룩한 것에 대하여 엄격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대제사장의 아들들이 거룩한 것에 대하여 "무례"를 행한 일을 폭로하는 사건이었다. "무례"로 인한 아들들의 죽음에 대해, 아론은 그저 잠자코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때에 하나님은 아버지인 아론에 대해 직접적으로 죄는 추궁하지 않았지만, 아론은 침묵 속에서 충분한 아픔을 느꼈을 것이다.

 

(2) 마지막 사사, 제사장 엘리의 경우 [사무엘상 2:22-36]

= 제사장 엘리의 아들들의 이름은 홉니와 비느하스이다. 그들은 함께 부정(不貞)한 짓을 했고, 최상의 제물로 자신들을 살찌우고 있었다. 아버지 엘리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아들들을 훈계하지 않았다. 이 때에 하나님의 진노를 당해 아버지도 아들들도 심판을 받았다.

 

(3) 선지자 사무엘의 경우 [사무엘상 8:1-5]

= 선지자 사무엘의 두 아들의 이름은 요엘과 아비야이다. 그들은 그 아비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서 뇌물을 취하고 판결을 굽게 하였다고 한다. 아버지 사무엘은 각지에서 하나님의 일에 쫓겨 가정에서의 아들들 교육에 시간을 들이지 못한 것일까?

 

(4) 이스라엘의 왕 다윗의 경우 [열왕기상 11:4-11]

= 다윗은 9명의 부인이 있었고, 그의 아들들은 모두 19명이다. 그 아들들 중에 주의 길로 간 것은 솔로몬이다. - 다윗은 솔로몬에게 주의 길을 가르쳐주었다. 솔로몬은 지혜가 풍부하여 정말 총명한 왕이 된다. 그러나 인생 후반에는 자신의 지혜에 의존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정략적인 결혼에 의해 우상을 받아드리게 되었다.

 

(5) 사도 바울의 경우 [디모데전서 1:2]

= 사도 바울은 평생 독신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아들은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영적인 아들이 있었다. 그 이름은 디모데('믿음에 의한 진실한 아들' '나의 아들'라고 부른다.)이다.

 

+ 이상에서 든 예를 통해 자녀양육의 어려움을 기억한다. 그런 가운데 비교적 좋은 예는 다윗의 솔로몬에 대한 교육과 사도 바울의 디모데에 대한 교육이다. 사도 바울의 디모데에 대한 태도는 이방인을 대하는 그의 태도와 공통된다. 바울은 바리세인으로서 대단히 엄격한 교육에 의해 자랐으면서도,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바울은 그리스도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이방인에 대해 관용적이고 유연한 태도를 취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러한 증거가 디모데에 대한 교육 가운데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언.

 

+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가정이다. 특히 성도의 가정은 자녀들의 신앙과 인격을 교육하는 가장 중요한 학교이다. 물론 이 학교의 교사는 부모이다. 그러므로 부모는 하나님 앞에서 가정에 대한 자신의 사명과 책임을 바르게 이해하고, 자녀들을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한다. 자녀들을 바르게 교육하는 일은 정부나 학교나 교회의 책임이기 전에, 일차적으로 부모의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