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ya-10[1].jpg : 한국 대가야(大加耶) 속에 일본의 문화가 보인다.

 

한국 대가야(大加耶) 속에 일본의 문화가 보인다.

대가야 유물중 눈에 띄는 것이 더 있는데, 바로 왕관이다. 삼국시대 왕관특히 신라시대 왕관은 얼마전 끝난 선덕여왕을 통해서도 봤지만, 나뭇가지와 사슴뿔 모양의 관인데 비해, 대가야 왕관은 풀잎이나 꽃잎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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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백제, 고구려의 삼국(三國)은 잘 알고 있지만, 고령을 중심으로 하여 나중에 신라로 병합된 대가야(大加耶)의 존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나 또한 대가야는 역사시간에 희미하게만 기억하고 있는 고대국가였을 뿐이다. 

서기 42년부터 562년 신라 진흥왕의 공격으로 멸망할 때까지 520년간 지속되었던 대가야는 전성기때 지금의 경북 고령을 중심(동쪽)으로 북쪽으로는 전북 무주, 서쪽으로는 전남 순창 남쪽으로는 전남 여수, 경남 의령까지 세력이 미치는 국가였다.

가야는 대가야 외에도 김해의 금관가야, 고성의 소가야, 상주의 고녕가야 등 총 7개의 가야문화권을 형성하며 500여년간 서부경남과 동부전남 지역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한때는 백제와 왜와 함께 신라를 공격할만큼 힘도 있었고, 중국 남제와 왜와 교역을 하는 등 국제무대에서도 존재를 알리고 있었던 국가였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가 정착되고 함참 신라와 백제가 경쟁을 할 때 신라에 의해 멸망했다.

500여년간 지속되었던 대가야의 흔적을 모아놓은 곳이 바로 고령읍 지산리에 세워진 대가야박물관이다. 대가야박물관은 당시 왕릉들이 모여있던 지산리 고분군터에 자리잡고 있는데, 이곳에 박물관과 왕릉전시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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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물중에 야광조개국자는 대가야가 왜와 교류했던 중요한 증거로 인용된다. 당시 야광조개는 일본 오키나와쪽에서만 나오는 특이한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또 일본의 많은 고대 유물중 가야의 철로 만든 갑옷과 장신구, 왕관 문양은 대가야 양식을 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졌는데, 당시 왜와 대가야의 문화적 교류가 활발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대가야 유물중 눈에 띄는 것이 더 있는데, 바로 왕관이다. 삼국시대 왕관특히 신라시대 왕관은 얼마전 끝난 선덕여왕을 통해서도 봤지만, 나뭇가지와 사슴뿔 모양의 관인데 비해, 대가야 왕관은 풀잎이나 꽃잎모양이다. 

다른 가야지역에서는 출토되지 않기에 대가야가 있는 고령이 통치세력이 살았던 곳임을 짐작할 수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가야의 왕릉들은 도굴을 당해 일본이나 다른 박물관에서 대가야의 왕관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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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cusee.net/2462289

대가야 박물관 / 유물과 유적
http://www.daegaya.net/program/relic/inclstRelic.asp?cat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