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의 <논문 잘 쓰는 방법> (1) 제1장 제2장

 

 

그 동안 시간이 되면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책 중 하나가 움베르토 에코의 <논문 잘 쓰는 방법>이다.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OHS3&articleno=2881&categoryId=60&regdt=20120508002645&totalcnt=34이미 학부를 졸업하고 석사 과정에 있는 연구자가 이제야 ‘논문 잘 쓰는 방법’과 같은 주제의 글을 읽는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겠지만, 내가 학문의 길에 제대로 들어선 것은 스스로 솔직히 고백할 때 고작 2~3년 남짓이라고 할 수 있으니, 나는 아직도 연구자라고 하기에 한없이 낮은 수준이다. 나에겐 아직도 기초가 필요하며, 나는 솔직히 아직도 사회학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 같다.

이미 논문 학기를 두 학기나 맞이하고 있는 내가 정작 논문은 무엇이고 어떻게 써야하는지에 대해 마치 다 알고 있었던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음을 움베르토 에코의 이 책을 읽으면서 단번에 느끼고야 말았다. 아직 이 책의 삼분의 일 조차 읽지 못했지만, 매우 친절하고 상세하면서도 예리하고 탁월하게 나이브하고 수준 낮은 연구자의 오해와 편견을 짚어내어 나와 같은 연구자를 부끄럽게 만들어주는 에코의 글솜씨와 학자적 수준은 단숨에 내가 논문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만들어 주었다. 정말 더욱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대다수의 연구자들은 나보다 나은 수준과 처지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혹시나 나처럼 논문 작성에 기초적(?)인 어려움과 혼란을 겪는 사람이 계시다면 움베르토 에코의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길 강력하게 권한다.

 

제1장 졸업 논문이란 무엇이며 어디에 필요한가

움베르토 에코의 이 책은 현학적이거나 추상적이지 않다. 바로 책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논문 잘 쓰는 방법’에 대해 정말 실용적이면서 통찰력 있게 에코는 글을 썼다.

에코에 따르면, 논문은 기본적으로 편집 논문과 연구 논문으로 나뉜다. 편집 논문은 이탈리아의 경우 <석사> 논문에서 주로 선택되고, <연구 논문>은 Ph.D.로 불리는 박사 논문에서 주로 사용된다. 편집 논문은 특정한 테마에 관해 출간된 저술들을 비판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사회학의 경우라면, 담론 분석과 같은 것이 이에 해당되지 않을까 싶다. 이에 반해, 연구 논문은 단순히 기존에 출간된 저술들을 비판적으로 정리하는 차원을 넘어 특정한 주제에 관한 자료들을 정리하여 독창적인 연구 결과를 내놓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문 연구는, 전 세계적으로 오직 부자 학생들만의 특권이었다.”(24쪽)는 사실이다. “얼마 전”이라는 것이 과연 언제를 가리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 멀지 않은 시기를 가리킨다면, 학문이란 엘리트주의적 선상에 있는 것이었음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말인 것 같다. 나와 같은 사람이 학문 세계에 끼어든 것은 바로 이 “얼마 전” 사람들이 볼 때 참 놀라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내가 소위 ‘찢어지게’ 가난한 형편은 아니다.)

논문의 테마와 관련하여 에코는 “정말로 어리석은 테마란 없”(27쪽)다고 조언해 준다. 어떤 테마에서도 유용한 논문이 나올 수 있으며, 중요한 것은 “테마보다는 그 논문에 수반되는 작업의 경험”(26쪽)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는 정치 경제학에 관련된 학위 논문을 쓰고 졸업하지 않았다. 도리어 에피쿠로스와 데모크리토스라는 그리스의 고전 철학자에 관한 철학 논문을 썼는데, 이것이 마르크스의 사고를 훈련시켰고 후에 정치경제학 저술을 쓸 수 있게 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나에게 상당히 위로가 되었는데, 왜냐하면 석사 논문으로 준비하고 있는 ‘난민 인권(human rights for refugee)’은 평생 연구할 만한 메인 테마가 아닐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당장 박사 과정에 지원하게 된다면, 나는 난민 인권이라는 주제로 지원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높다. 도리어 서구 세계를 중심으로 후기기독교시대라고 불리는 현대의 ‘세속화(secularism)’ 경향에 대한 연구를 해 보고 싶다. 그런데 지금 내가 준비하는 ‘난민 인권’이라는 주제가 과연 어떤 도움이 될까? 에코의 조언을 통해 이 주제를 잘된 방법으로 써낸다면, 분명히 도움이 될 만한 훈련을 받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에코는 지도 교수가 (일방적으로) 부여해 준 테마로 논문을 작성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의 경우 교수님이 일방적으로 테마를 제공해 준 것은 아니었지만, 좋은 교수님을 통해 알지 못하던 분야에 관해 추천을 받고 석사 학위 주제를 선정하게 되었다. 하지만 우선 가장 어려웠던 점은 에코가 지적하는 것처럼 “연구의 방법론적 범주가 지원자의 경험 영역에 해당할 것”(28쪽)의 문제다. 아직 방법론은 전혀 결정되지 않았다(양적 방법론 보다 역사적-구조적 방법론이어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왜냐하면 이 분야는 나에게 기존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분야였기 때문이다. 박사 논문 주제는 이번의 경우처럼 선정되어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제2장 테마의 선택

에코는 단일 주제 논문과 파노라마식 논문을 비교하여 설명한다. 이 설명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는데, 좀더 구체적이고 범위가 좁게 논문 주제를 선정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에코의 설명은 나의 시각을 넓혀주고 논문을 좀더 현실적으로 구성하기 위한 안목을 제공해 준 것 같다.

재밌는 것은, 에코가 ‘노련한 판단’이라고 부르는 내용인데, 만약 “학생이 아주 구체적인 테마에 대해 진지하게 논구했다면, 대부분의 심사 위원들이 모르는 소재를 다루는 것이 된다.”(30쪽) 이 부분을 읽으며 순간 번쩍하는 경험을 했다. 심사 위원들이 잘 모르는 내용을 만약 내가 논문을 다루게 된다면, 물론 구체적인 방법론이나 일반적인 논문 연구 원칙에 대한 지적을 받을 수 있겠지만, 내용 자체에 대해서는 학생인 나 자신이 심사 위원들 보다 우위에 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데, 기존에 잘 알려져 있는 주제를 새로운 아이디어로 설명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기존 주제에 대해 심사 위원들이 내용을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준비하는 ‘난민 인권’에 관하여는 연구된 바가 많지 않기 때문에(특히 사회학에서는 거의 다룬 적이 없다.), 내용과 관련해서는 내가 우위에 설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물론 이를 충분히 잘 활용할 만큼 준비가 되어 있어야 겠다.)

잘 알려진 내용이기도 하지만, ‘거인들의 어깨 위에 앉은 난쟁이’가 되라는 에코의 조언은 매우 유익했다. 논문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특정한 인물의 이론으로 국한시키며 그것을 극복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 예를 들어 에코가 언급한 것처럼 ‘피아제에서의 지각의 문제’, ‘초기 하이데거에서의 존재의 문제’, ‘칸트의 자유 개념’ 등 이런 방식의 연구에 대한 무의식적인 거부감이 나에게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피아제에서의 지각의 문제’가 아닌 ‘지각의 문제’를 다루려는 논문은 매우 어려우며 비현실적이라는 사실이 에코의 설명을 통해 깊이 깨달아졌고 나의 잘못된 생각을 교정할 수 있었다.

또, 현대 저자들을 연구하는 것이 더 쉬울 것이라는 편견을 깨뜨려주는 지적도 유용했으며, 고전 작가의 손쉬움이(내용상 다루기 쉽다는 뜻은 아니다) 설득력있게 다가오기도 했다.

외국어에 대한 조언도 유용했는데, 말하지는 못하더라도 논문을 쓰면서 읽어야할 외국어 원전들이 있다면 이를 외국어를 공부하는 기회로 삼으라는 내용이었다. 앞으로 내가 두고두고 참고할 주옥같은 말들이다.

정치적 논문을 과학적으로 쓰라는 에코의 지적 또한 상당히 즐겁게 읽었다. 사실 사회학을 전공하면서 정치적인 의미를 갖는 논문을 쓰고 싶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나 또한 정치적으로 유의미한 논문을 쓰고 싶은 욕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인 지향은 곧 학문적 엄밀함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편견이 나에게도 있었는데, 에코는 정치적 논문을 과학적으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었다. 결국 인문학이거나 사회과학이거나 자연과학에 이르기까지도 논문은 ‘과학적 요건’을 충실하게 갖추는 것이 핵심적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다. 마르크스도 자신의 이론은 ‘과학적 사회주의’라고 주창하지 않았던가!

제2장 마지막에 ‘지도 교수에게 이용 당하다는 것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라는 매우 재미있고 도발적인 내용 또한 흥미로웠다. 스스로 교수이며, 지도 교수로서의 수많은 경험을 갖고 있는 저자가 마치 ‘양심 선언’ 또는 ‘내부 고발’을 하듯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 지도 교수를 모시고 있는 나에게 즐겁게 다가왔다. (그렇다고 나의 지도 교수님이 나를 이용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안타깝게도 차라리 좀 이용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번 ‘독서 일기’에 이어 나머지 부분을 다 읽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본 책을 통해 나는 논문을 쓰려고 하면서도 마치 논문 쓰는 법을 다 알고 있는 듯이 행동했던 지금가지의 무책임함과 게으름에 대해 깊이 반성하게 되었다. 게다가 무언가 닫힌 듯 열리지 않던 논문 연구의 길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학부 시절에 이 책을 만났더라면, 그래서 논문 작성의 기본기를 충실하게 학습했더라면 지금쯤 시간을 많이 단축하지 않았을까 하는 일말의 아쉬움을 가져본다. 하지만 동일한 이유로 더 늦지 않게 이 책을 만난 것에 대해 깊이 감사한다.

 

자료 조사와 참고 문헌에 대하여


제3장에서 에코는 자료를 조사하는 방법에 대해 다룬다. 아마 내가 가장 큰 도움을 받았던 부분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논문은 주제와 분야를 잡고 기본적인 자료 조사가 끝나면 상당 부분 진도가 나간 것과 다름없다.

에코는 우선 1차적 출처와 2차적 출처를 명확하게 구분할 것을 요청한다. 절대적인 의미에서 1차적 출처와 2차적 출처가 미리 구분되어있는 것은 아니다. 에코에 따르면, 논문이 다루고자 하는 연구대상과 주제에 따라 이와 같은 구분이 달라지게 된다.

어떤 테마를 연구하기로 결정할 때, 주로 연구자 자신이 출전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처음부터 모든 자료의 이용가능 여부를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1차적 출전은 직접 접근할 수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 주제를 바꿀 수 밖에 없다. 에코는 말한다. “왜냐하면 비평적 문헌에 대해서는, 비록 전부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중요한 것은 모두 읽어야 하며, 출전은 직접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72쪽)

에코의 이 말은 심사위원의 입장에서 논문을 평가하는 기준을 보여주고 있다. “그 논문들에는 출처들이 아주 정확하게 확인되었으며, 또한 확인 가능한 범위로 제한되어 있었으며, 분명하게 학위 지원자의 능력에 합당했고, 또한 지원자는 그것들을 어떻게 다룰지 잘 알고 있었다.”(72쪽)

출전에 있어서, 번역의 문제 : 직접적으로 에코는 번역과 선집은 출전이 아니라고 말한다. 번역은 제한적 도구이며, 선집은 최초의 접근에 사용되는 정도로만 유용하다. 또한, 다른 저자들에 의한 설명 역시 출전이 아니다. ‘재인용’과 같은 것은 기본적으로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합리적 예외가 존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부수적이고 간략한 인용에 그친다면 진지한 학자에 의해 인용된 것을 재인용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원문을 직접 본 것처럼 재인용을 해서는 안된다.

참고 문헌을 조사할 때, 기본적으로 도서관을 통한 예비 연구가 바람직하다. 도서관에는 저자별/주제별 도서목록이 일반적으로 존재한다. 물론 도서관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다. 참고 문헌 목록이나 도서관의 사서를 활용하는 것도 중요한 지침이 된다. 그러나 사실 중요한 문헌 목록이란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에코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이나 사서 등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책의 특정한 페이지를 통해 연구자는 결정적인 단서를 얻을 수도 있다. 그 외 도서관 상호대차, 컴퓨터 데이터베이스, 다른 도서관으로부터의 대출 등이 필요할 수도 있다.

에코는 참고 문헌을 조사할 때, ‘카드 정리’를 사용하도록 권한다. 카드의 종류는 독서 카드, 참고 문헌 카드가 있다. 에코는 여러 페이지에 걸쳐 상세하게 인용과 참고문헌 규칙을 나열하고 있다. 이탈리아 대학생 및 연구자를 대상으로 작성된 책이기 때문에 실제로 한국적 상황에서 적용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대체로 일반적인 규칙은 통용되는 것 같다. 무엇보다 정확하고 구체적인 참고 문헌 서지 사항의 명기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필자는 약 일주일 안에 예비 조사를 끝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때 참고 문헌 목록을 기본적인 자료들을 중심으로 만들 수 있고, 논문의 가능성과 방향을 대강 짚어낼 수 있게 된다. 기본 참고 문헌 조사가 끝나면 지도 교수와 상의하는 것이 좋다. 예비 조사를 통해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얻는 것은 자료가 부족한 지방 도서관에서도 가능한 일이며, 따라서 “그 자체로서 부유한 학생들을 위한 논문이란 없다.”(133쪽)고 에코는 말한다.

 

논문 작성에 관하여

 

제4장에서 에코는 논문 작업 계획을 잡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논문 작성을 위한 계획은 기본적인 것이다.

가설적 차례는 140페이지에서 언급된 것을 인용한다.

1. 문제의 상황

2. 이전의 연구들

3. 우리의 가설

4. 우리가 제시할 수 있는 자료들

5. 그 자료들의 분석

6. 가설의 증명

7. 결론 및 이후의 연구에 대한 언급

작업 계획을 세운 이후, 서문의 초안을 작성한다. 서문과 차레는 작업이 진행되면서 어짜피 다시 쓰게 되기 때문에 처음부터 완벽하지 않은지 너무 염려할 필요는 없다. 서문을 쓰면서 스스로 무엇이 중심인지, 주변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서문을 작성하면서 이와 같은 구분이 되지 않는다면, 논문 주제를 재고해야 한다.

카드 작성과 메모 작성에 대해 에코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밑줄은 책을 개인의 것으로 만든다.”(155쪽) “책을 존경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믿지 마라. 책들은 그대로 놔두는 것이 아니라, 사용함으로써 존경하는 것이다.”(157쪽) 이 말은 적어도 내가 아는 어떤 분(?)의 견해와 정확하게 반대가 된다.

독서 카드의 작성에는 다음과 같은 요소가 필요하다. (167쪽)

1. 정확한 참고 문헌적 표시

2. 저자에 대한 정보

3. 그 책 또는 논문의 간략한(또는 긴) 요약

4. 자세한 인용문

5. 여러분의 개인적인 견해

6. 카드 위쪽에 색깔이나 약자로 분류 표시(작업 계획과의 연관성)

에코는 ‘학문적 겸손’이라는 주제를 이 장 마지막에 언급하는데, “가장 훌륭한 생각은 유명한 저자들에게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169쪽)에 “학문 연구를 하고자 한다면, 원칙적으로는 어떠한 추전도 경시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171쪽)을 우리에게 강조한다.

제5장에서는 원고 쓰기에 대해 설명한다. 우선 논문은 지도 교수나 심사 위원만을 실제로 대상으로 하게 되지만, 글을 쓸 때 많은 다른 사람들(인류 전체)이 읽는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대상 학문의 규범적이 이론의 여지가 없는 용어들이 아닌 이상, 사용되는 용어들을 정의해야 한다.” 또한, “일반적인 규칙으로서 우리 논의의 핵심 범주로 사용된 모든 용어들을 정의해야 한다.”(174쪽) 또, 핵심적으로 다루어지는 인물이 있다면, 그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상기시켜 주어야 한다.

문장을 쓸 때는 긴 문장을 가능한 쓰지 말고, “지나치게 많은 대명사와 종속 문장들을 생략”(176쪽)해야 한다. 최초의 원고를 쓸 때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모두 쓰라.”(179쪽) 그러나 그 내용이 테마의 중심에서 벗어난 것이라면, 주나 부록에 넣어야 한다. 독자로 지도 교수를 활용하고, 생략 부호, 감탄 부호, 반어적 표현 등은 가능한 쓰지 말아야 한다. 어떤 용어를 처음 도입할 때는 반드시 그 용어를 정의해야 하며, 그럴 수 없다면 그 용어를 포기해야 한다. (용어를 자주 창조하는 사회과학자들에게 유용한 지침이다.)

인용의 종류는 그 본문에 대해 해석하기 위해 하는 인용과 자신의 해석을 뒷받침하기 위해 하는 인용이 있다. 그러나 인용이 반 페이지를 넘어간다면 문제가 있다. 그리고 권위있는 저자 논문의 인용이 중요하다.

주는 인용의 출처와, 참고문헌 표시, 권위자를 통한 자신의 주장 증명, 본문의 주장을 확대, 본문의 주장을 수정, 도움을 받은 저자에게 빚을 갚는 의미 등을 위해 필요하다. 주는 절대로 길어져서는 안된다.

요즘 논문에서 많이 보이는 저자-연도 방식의 주에 대해 이 책을 통해 어느 정도 정확한 정보를 얻게 되었다. 같은 해에 한 저자에 의해 여러편의 논문이 작성된 경우, 연도에 a와 b 등을 붙여 구분한다. 저자-연도 방식의 주는 ①“논문의 예상 독자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 매우 동질적이고 전문적인 참고 문헌이어야 한다.” ②“근대적인 참고 문헌, 또는 최소한 지난 두 세기 이내의 참고 문헌이어야 한다.” ③“박식하고 과학적인 참고 문헌이어야 한다.”(이상 210쪽)

일반적으로 알려진 개념에 대해서는 참고 문헌이나 출전을 제시할 필요가 없다. 감사의 글을 작성하는 것도 필요한데, 지도 교수가 경멸하는 학자에게 감사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지도 교수의 입장에 따라 참고하지 말아야할 학자가 있다는 것이다. (재미있으며 현실적이고, 하지만 의아스러운 지침이다.)

에코는 이 장의 마지막 결론을 상당히 의미심장한 문장으로 끝맺는다. “X라는 테마에 대해 논문을 쓴다는 것은, 그 이전에는 누구도 그 테마에 대해 그토록 명료하고 완벽하게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의미이다.” “……라는 테마에 대해서는, 여러분은 살아 있는 최고의 권위자가 되어야 한다.”(이상 218쪽)

제6장은 최종적인 원고 작성에 관한 설명이다. 여기는 그다지 많은 도움을 받지는 못했다. 아마도 이탈리아 상황을 배경으로 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가능한 강조를 해서는 안된다. 세 줄을 넘지 않는 인용은 인용 부호 안에 넣어서 본문 안에 넣고, 그 이상은 따로 문단을 구분해서 인용한다. 그 이외의 모든 기호들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참고문헌은 ①“참고하고 있는 저서를 알아볼 수 있도록 해준다.” ②“그 저서를 찾기 쉽도록 해준다.” ③“졸업하고자 하는 학문의 관례들에 친숙함을 보여 준다.”(이상 243쪽)

이제 제7장 결론이다. 에코는 논문 작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논문을 쓴다는 것은 스스로 즐거움을 얻는다는 의미이며, 논문은 마치 돼지와 같아서 버릴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251쪽) 다음의 조언도 역시 나에게 매우 의미심장했다. “만약 여러분이 스포츠처럼 즐겁게 경기를 한다면, 훌륭한 논문을 작성할 것이다. 만약 그것이 중요하지 않은 하나의 의식(儀式)이며 관심도 없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한다면, 여러분은 이미 출발점에서 패배한 셈이다.” “대개 논문 작업을 하는 동안에는 단지 논문이 끝날 순간만을 생각한다. …… 그러나 논문이 잘되었을 경우에는 논문이 끝난 다음에 엄청난 연구 의욕이 솟아나는데,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이상 252쪽) “만약 여러분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연구에 몰두한다면, 잘 쓴 논문은 전혀 버릴 것이 없는 물건이라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논문은 여러분이 진지하고 엄격한 과학적 연구를 한 맨 첫 번째가 될 것이며, 그것은 결코 간단한 경험이 아니다.”(이상 253쪽)

‘인권’을 주제로 논문을 작성하려하는 내가 갖고 있던 태도에 대하여 깊이 성찰하고 반성하게 만드는 지적이다. 큰 도움이 되었다.

부록으로 역자가 첨부한 “국내 학위 논문의 체제와 작성 방법”이 유용하게 실려 있다. 나머지는 자료의 가치가 있지만, 재미있던 사실은 bibliography와 reference의 차이점이었다. bibliography는 “직접적으로 인용된 문헌만을 가리키는” 말이고, reference는 “논문을 쓸 때 인용하거나 참고한 문헌 및 기타 자료(면담, 강연, 음반, 영화 필름, TV나 라디오 프로그램, 그림 등)를 포괄하여 나타내는”(이상 292쪽) 것이다.

어떤 책을 만나느냐에 따라 단지 유희나 지식의 획득만이 아닌, 인생이 바뀌거나 당면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이탈리아 기호학자이자 문학가인 움베르토 에코의 이 책과의 조우는 불 꺼진 방에서 출구를 찾다가 빛을 발견한 것과 같은 경험을 하게 해 주었다. 모르는 분야와 주제가 있을 때, 그 분야에 대해 최소 5권의 주요 저작을 읽는다는 어떤 분의 독서법 조언처럼, 책을 좋아한다 하면서도 막상 답답해 하던 문제에 대한 책을 진작 찾아나서지 않았던 것이 이번만큼 후회가 되는 경우가 없었다. 1년만 먼저 이 책을 발견했어도 상당 부분 시간을 아꼈을 것이리라. 이 책에 이어 몇 권의 책을 더 읽으면, 논문 작업에 본격적으로 들어갈 용기와 지침을 얻게 될 것 같다. 이미 충분한 희망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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