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승천

- 사도행전 1:9-11 -

샬롬선교회 


[사도행전 1:9-11]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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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가복음 16:19, 누가복음 24:50-51, 사도행전 1:9-11

 

1. 예수님의 승천과 재림의 약속, 그리고 그 사이의 기간

 

부활하신 후 예수님의 나타나심에 대해서는 특히 나타나심의 시간적 순서가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 연결고리가 잘 잡히지 않는 느낌이다. 누가는 사도행전 서두에서 "40일 동안 - 아주 긴 기간이었던 것 같은데 -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여러 가지 확실한 증거로 자신이 살아 계신 것을 사도들에게 보여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도행전 1:3). 그 나타나심은 신기하게도 제자들에게만 국한된 것 같다. 민중을 끌어들이지 않고, 제자라는 한정된 사람들에 대한 마지막 정돈의 기간이었던 것 같다.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나타나신 곳은 감람산 기슭의 베다니였던 것 같다(누가복음 24:50, 사도행전 1:12). 예수님은 그곳에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릴 것과 약속의 성령이 제자들 위에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하셨다. 이후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시며 구름에 싸여 보이지 않게 되셨다(사도행전 1:9-11). 그리고 다시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천사(사자는 항상 흰옷을 입는다)가 말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승천과 재림 사이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사이의 시대는 구약시대 선지자들에게는 숨겨져 있던 골짜기 부분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예수님의 초림의 산과 재림의 산을 동시에 겹쳐서 보고 있다. 그 두 산 사이의 일은 보이지 않는다. 그 산과 산 사이의 시간적 거리는 2천년 가까이 지나가고 있다. 이 기간의 시대, '교회 시대'를 어떤 사람은 정규 프로그램 속에 갑자기 '특별 프로그램'이 편성되었다고 말한다. 좋은 표현이다. 특별 프로그램의 내용은 하나님이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방인인 우리가 접붙여진다는 특집이다. 지금도 그 특집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2. 예수님의 승천의 목적

 

(1)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기 위해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과 승천하셨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예수님이 승천하셔서 어디로 가셨는지, 그리고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를 아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매우 중요하다. 전자의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는 것이다. 후자의 질문에 대한 답은 '예수의 이름'이라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빌립보서 2:9), '더욱 뛰어난 이름'(히브리서 1:4), 즉 가장 권위 있는 이름을 아버지로부터 받아 하늘 보좌에서 왕으로 하나님 나라를 다스리고 계신다는 것이다.

 

(2) 약속의 성령을 부어주심으로써 예수 이름의 권능이 증거되기 때문이다.

 

약속의 성령이 부어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로 인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가 중요하다.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성령을 통해 보좌에 앉으신 예수님의 이름의 권능(권세와 능력)이 이 땅에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누가는 이를 '지극히 높은 곳에서 권능을 입으시고'(누가복음 24:49)라고 표현했다.

 

'보좌에 관한 가르침''십자가에 관한 가르침'과 함께 중요한 가르침이다. 그러나 '십자가에 관한 가르침'만으로는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승리할 수 없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에 관한 가르침'에만 머물러 있을지도 모른다. '보좌에 관한 가르침''예수님의 이름'의 권위와 능력을 받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은 십자가의 구속을 이루시고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후 주신 새로운 이름이다. 지상에서는 '예수'였지만, 승천 후에는 '예수의 이름'(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정확한 이름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 후에 반드시 '예수님의 이름으로'라고 기도한다.

 

초대교회는 '십자가의 가르침'은 물론이고 '보좌에 관한 가르침'을 과감하게 행사했다. 베드로와 요한은 자선을 구하는 태어날 때부터 다리를 저는 자에게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말했다. 그러자 한 번도 걷지 못했던 사람이 일어나 춤을 추며 하나님을 찬양했다. 이에 사람들은 놀랐지만, 베드로는 이 기적의 사실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사도행전 3:16)라고. 그리고 유대 당국의 심문 때는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사도행전 4:12)고 단언한다.

 

예수님의 이름의 권능이야말로 '보좌에 관한 가르침'의 핵심이다. 우리는 언제나 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는 것,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대로 선한 관이 되어 그 이름을 증거하는 것이 요구된다. 초대교회의 영적 힘은 실로 '예수님의 이름'에 있었다. 성령의 능력은 '예수 이름의 나타남'이다. 다시 한 번 이 사실을 우리는 깊이 되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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