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 선고

- 요한복음 19:6-16 -

샬롬선교회 


[요한복음 19:6-16] "6.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7.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8.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9.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부터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10. 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1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 12.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13.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돌을 깐 뜰(히브리 말로 가바다)에 있는 재판석에 앉아 있더라. 14.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15.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16.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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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복음 27:15-26, 마가복음 16:6-15, 누가복음 23:13-25, 요한복음 18:39-19:16

 

1. 눈치가 없는 빌라도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돌려보내진 예수를 석방하려는 빌라도는 제사장들과 지도자들, 그리고 백성들을 불러 모아 다시 한 번 무죄를 주장한다. 누가복음 23:13-15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13.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관리들과 백성을 불러 모으고, 14. 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이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고 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심문하였으되 너희가 고발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15. 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그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그가 행한 일에는 죽일 일이 없느니라.“고 말했다. 세 번째 주장도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하니"(누가복음 23:22)라고 되어 있다.

 

둘 다 빌라도의 말의 전반부는 '죄가 없다'는 것인데, 이해가 안 되는 것은 후반부의 '그래서 나는...'이라는 부분이다. 왜 빌라도는 예수를 징벌한 후에 석방한다고 말했을까? 무죄라면 굳이 징계를 할 필요가 없을 텐데 말이다. 아마도 '예수를 징계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채찍질을 의미했을 것이다. 채찍질은 그 자체로 무서운 징벌이고, 그것을 보면 예수의 사형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는 빌라도의 안목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예상도 빌라도는 빗나가고 만다. 빌라도의 입장에서는 점점 더 자신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는 것을 보고 두려움에 떨었을 것이다.

 

2. 빌라도의 약점을 파고드는 제사장들

 

유대 지도자들은 빌라도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다. 빌라도의 약점은 백성들이 폭동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행정적 실책에 대한 책임을 물어 당장 총독직을 박탈당할 수도 있었다. 그들은 그 약점을 잘 파고들었다.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잘 꼬드겨서 선동된 민중은 빌라도의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바라바를 석방하라"고 계속 주장한다. 그래서 빌라도는 "그러면 예수를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라고 물은 것은 빌라도에게 돌이킬 수 없는 발언이 되고 만다. 민중은 빌라도의 말에 자극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민중의 요구의 목소리가 더 컸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또 하나 빌라도에게 두려움을 안겨준 유대인의 말이 있다. 요한복음 19:12이다.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이 발언은 빌라도에게 두려움을 심어주었고, 자기보호를 위해 본의 아니게 군중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바라바를 석방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허락하는 불의를 저지르게 된다.

 

빌라도에게는 자신의 지위를 걸고 예수의 무죄를 주장할 재량권이 없었다. 악의 흐름을 막는 둑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빌라도는 그들의 요구대로 사형을 선고하고 말았다.

 

3. 빌라도는 우리의 본보기

 

어떤 의미에서 빌라도는 불쌍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교묘하게 짜여진 유대 당국의 집요한 요구에 허약하게 무너져 버린 것이다. 마치 일본의 키리시탄 시대의 (fumie)[江戸幕府(edobakufu)가 당시 금지했던 기독교(천주교) 신자(기독교인)를 발견하기 위해 사용했던 그림이다]를 밟힌 느낌이 든다. 빌라도는 정의라는 를 밟았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빌라도는 우리 인간에게 하나의 전형이다. 빌라도에 대해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만약 자신이 빌라도의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했을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유대인들이 총독에게 예수를 사형에 처해달라고 끊임없이 호소했던 것이 예수를 죽인 것은 유대인이라는 정설이 되었고, 이후 유럽 기독교 사회에서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박해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는 옳지 않다. 이방인인 빌라도 역시 협박을 받았지만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결과적으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 성경에서는 인류 전체를 의미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나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 이 범주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에 대한 질투심 때문에, 빌라도는 자기 보신을 위해 예수님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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