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독 빌라도의 관저

- 요한복음 18:28-32 -

 

[요한복음 18:28-32] “28. 그들이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29. 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나가서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발하느냐. 30.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 31.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 하니, 32.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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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복음 27:1-2, 마가복음 15:1, 누가복음 23:1-2, 요한복음 18:28-32

 

제사장, 장로, 율법학자로 구성된 최고 의회(산헤드린)에서 예수의 사형에 합당한 이유(신성모독죄)를 끌어냈을 때는 이미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일어나 예수를 의회에서 끌어내어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주었다.

 

1. 빌라도는 이방인 대표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교회라면 매주 이 인물의 이름을 입에 달고 살았을 것이다. "주님은...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교회가 존속하는 한 그의 이름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지만, 그의 이름은 우리 이방인의 대표이다. 그 사람 개인뿐만 아니라 그 사람 안에 우리 이방인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만 세 번째(마태복음 20:17~19, 마가복음 10:32~34, 누가복음 18:31~34) 자신의 수난을 예고하셨을 때, 분명히 인자는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사형에 처해질 것이며, 그리고 '이방인에게 넘겨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방인'은 바로 로마 총독 빌라도이다.

 

왜 최고 의회가 예수를 죽이기 위해 빌라도에게 넘겨야 했을까? 그것은 당시 사형은 로마 총독의 허가 없이는 집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대인은 로마의 속국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자유가 주어졌지만, 사형에 관해서는 유대인 최고 의회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원래는 가이사랴에 거주하는 총독 빌라도는 유월절 경비를 위해 우연히 예루살렘에 와 있었던 것이다.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으로 의회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빌라도는 사태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확인도 하지 않고 판정을 내리지 않은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일에 대해 개인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대 당국의 고유한 문제 속에 이방인이 끼어들 수밖에 없는 구도,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깊은 구원 계획인 것 같다. 빌라도는 예수의 십자가에 관여한 최초의 이방인이었다. 이 세상에는 많은 민족과 인종이 있지만, 성경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만 있을 뿐이다. 예수님은 이 때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놓여 있다. 뜻하지 않게 빌라도는 이방인의 대표로서 예수님을 대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놓이게 된 것이다.

 

2. 유대인에게 있어서 이방인 - 유대인과 이방인 -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는 반목과 적대감이라는 큰 벽이 있었다. 이를 요한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들이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요한복음 18:29)라고. 유대인들에게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는 것은 '더럽힘을 받는 것'이기에 교제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려는 더러운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월절 양의 본체인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모형인 양의 고기를 먹지 못할까봐 빌라도 관저에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빌라도 측에서 호소하는 그들에게 나와야만 했다. 이것이 당시의 유대교였다.

 

게다가 유대 최고 의회는 빌라도에게 고발하여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누가복음 23:2)라고 호소했다. 이방인들과 큰 벽을 가지고 있는 그들이 여기서는 '가이사의 세금을 내지 말라'고 마치 로마 편을 드는 듯한 발언을 하면서 예수님이 말씀하시지 않은 반대의 말을 하고 있다. 그들이 저지른 신성모독죄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들어있지 않다. 여기에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죄 많은 인간의 모습이 담겨 있다.

 

빌라도 일생에서 예수님과의 관계는 불과 몇 시간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교회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인물로 남게 된 것은 그가 예수의 무죄를 알면서도 자신의 안위를 위해 예수에게 사형을 선고했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자기 보전을 위해' 정의를 버리는 인간의 죄악된 모습을 볼 수 있다(이에 대해서는 다음 항목에서 자세히 살펴보겠다). 뜻하지 않게 그가 예수라는 존재와 관계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의 본질이 잘 드러난 것이 그의 이름을 영원히 남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결코 무관하지 않은 구도 속에 놓여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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