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열정에 불탔던 D.L 무디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쓰길 원하실까? 연약한 인간의 잣대로 수없이 하나님의 뜻을 가늠해보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잣대와는 멀고도 차원이 다름을 깨닫곤 한다.
교회사를 읽고 연구하다보면 맑고 향기나는 삶을 만날 때가 있다. 그때 무한한 기쁨 속에 밀려오는 작은 행복을 만끽하곤 하는데, 오늘 무디의 향기가 그러하다.
무디의 전도운동, 그리고 그의 삶은 우리에게 어떤 것을 시사할까? 시대도 다르고 배경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른 19세기의 사람. 국민학교도 제대로 못나오고, 목사안수도 못받은 평신도. 그렇다고 확연히 드러나는 카리스마적인 언변이나 은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평생 인류역사상 가장 많은 숫자인 1억명 이상에게 복음을 전했고, 수백만명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했는데, 무디는 그것 또한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고 힘주어 말한다.

시골소년의 야망
구둣가게 점원이고 국민학교도 제대로 못나왔지만 무디에게는 한가지 소원이 있었다. 큰 사업을 하여 돈을 많이 버는 일이 그의 절절한 꿈이었다.
무디의 조상들은 노드필드에서 조상대대로 건축업을 했는데, 그의 아버지 역시 석공과 흙으로 벽이나 바닥을 바르는 미장이 일을 했으나 생계는 빠듯했다. 게다가 무디의 아버지가 41세라는 젊은 나이에 심장병으로 돌아가시고 엄마 홀로 9남매를 키우신터라 그야말로 어린시절부터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무디는 살아야했다. 이웃집 가축도 기르고 때론 다른 집에 머슴으로 살아야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 무디의 소원은 오직 하나, 부자가 되는 것이었다. 부자가 되기 위해 가출했다가 험악한 세상을 경험하곤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그러다 그 야망이 도져 다시 한번 가출을 시도하였고, 무디는 삼촌이 있는 보스턴으로 향한다. “돈 많이 벌어올께”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훌쩍 떠난 무디는 자존심을 접어두고 양화점을 하는 외삼촌께 취직을 부탁한다. 그때부터 구둣가게 점원이 되는데, 거기에는 외삼촌이 제시한 조건이 있었다. 주일예배를 빼먹지 말고 꼭 지키라는 것이었다. 주일을 지키라는 것은 귀찮지만 일자리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안 무디는 흔쾌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청소와 심부름만 하다가 그의 성실성이 인정되어 직접 구두를 파는 점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천성적으로 위트와 유모가 많은 무디에게는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꽤 즐겁고 신났다. 교회가는 것만 빼고. 차츰차츰 일에 대한 감각을 익히기 시작하고 돈맛도 알기 시작하자 그의 꿈이 활짝 펼쳐지는 것 같았다.
무디는 외삼촌의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대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손님을 맞고 손님의 마음을 끄는 법, 섬기고 배려하는 법 등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상식을 배우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러한 노하우(know how)로 후에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리라고 굳게 마음을 먹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관심은 다른 데에 있었다.

회심
외삼촌과의 약속대로 교회예배는 빠지지않고 참석했지만 예배 출석은 어디까지나 약속이행이라는 의무감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예배는 그에게 구속이었고 괴롬이었다. 언제나 설교자로부터 가장 많이 떨어진 구석에서 앉자마자 졸기 시작하여 예배가 다 끝날때까지 그런 모양으로 시간을 때우기 일쑤였다. 그러나 주일학교 선생인 킴볼선생의 인격적인 태도 때문에 선생님을 꽤 존경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선생님이 구두방에 무디를 만나러 오신 것이었다. 대대로 청교도 후예이고 무디의 엄마도 열렬한 신자임을 안 킴볼 선생은 무디의 불신앙적 태도가 내내 마음이 걸렸던 것이다. 때는 1855년 4월 21일이었다.
“무디, 하나님께서 자네를 깊이 사랑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고 있는가?” “아뇨, 저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본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절 사랑한다면 왜 이렇게 가난하고 힘든 환경만을 주시는 겁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한다는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데 무디, 정말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남에게 자기 목숨을 던져줄 수 있을까?” “그건 절대로 있을 수가 없겠죠.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남에게 자기 목숨을 줄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 자네 무디를 위해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려 죽게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나를 낳아준 부모가 눈앞에 서 있어도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할 수 없는 일이니까.”
이때 무디의 내면 세계에는 마치 태풍처럼 강타하는 그 무엇이 있었다. 자기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었다는 사실이 가슴깊이 사무쳐온 것이다. 눈물 콧물이 앞을 가려 그대로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의 죄들이 하나하나 또렷이 떠올라 절절한 회개로 이어졌고, 무디 한 사람의 회개는 훗날 수억명의 사람들을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피어나는 로맨스
어두운 환경과 가난이라는 역경속에서 멍이든 그의 가슴에 철저한 회개와 더불어 서광이 비쳐졌다. 하늘, 바람, 새 모두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들판도 바다도 언덕도 온통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했다. 시와 노래와 찬미가 그의 전 영혼을 전율하며 기쁨으로 짜릿했다. 하나님과의 로맨스가 시작된 것이다. 이 속에서 무디의 생각과 삶도 영글어갔다. 늘 뒷자리에서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며 끝나기만을 기다렸던 그가 이젠 설교 한마디 한마디를 들으면서 골수에 사무치도록 회개하고 물을 찾아 헤매는 사슴마냥 그렇게 애달프게 하나님을 그리워했다. 돈을 벌어 부자가 되겠다는 소망은 그 돈으로 많은 사람들을 구제해야겠다는 당찬 의지로 굳어져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꿈을 더 활짝 펼칠 수 있는 무대, 보스턴에서 시카고로 그의 거처를 옮겼다. 보스턴에서의 경력때문에 시카고에서는 처음부터 일자리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모범적이고 성실한 그의 태도와 열렬한 신앙자세까지 겸비한 그를 눈여겨본 사장은 그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시카고에서 플리머스 회중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중 그의 야망과 의지는 서서히 바래져가고,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섭리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보이지않는 이슬이 온몸을 적시듯이 하나님과의 로맨스는 작고 느리지만 차츰차츰 그의 전 영혼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우연히 “어린이 선교회”라는 간판을 보는 순간 그의 마음에 뜨거운 것이 울컥 솟구쳤고, 그때부터 하나님의 일에 발을 딛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모든 일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었다.
어린이 선교회의 현재학생은 12명인데 교사는 16명이나 되었다. 그래서 무디가 그의 열정을 펼치려면 스스로 어린이들을 전도해야만했다. 그때부터 길거리 다니는 어린이들만 보면 모아놓고 그만의 독특한 길거리 특강이 펼쳐졌다. 지팡이를 던지자 뱀이 된 이야기, 바람이 바닷물을 갈라놓아 수많은 사람들이 물 한방울 젖지 않고 건넌 이야기, 사람들이 풀무불 가운데 던져졌어도 머리카락 하나 타지않았던 이야기, 기도하자마다 태양이 하늘가운데 멈췄던 이야기 등 그의 신나는 길거리 특강으로 교회안으로 들어오는 아이들이 미어지도록 많았다.
무디는 어린이전도뿐 아니라 틈만 나면 불량배들의 소굴, 부두노동자, 대합실의 행려객, 감옥의 죄수들, 실업자, 병원의 환자들 가리지 않고 전도에 열을 올렸다.
처음 무디가 찾아갔을 때 12명이었던 선교회 아이들이 600명이 넘어 오래잖아 천명 이상이 모여 장소가 비좁아 다른 건물을 얻어야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부자가 되겠다는 야망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었던 젊은이가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어린이를 위한 전도에 온 힘과 정열을 쏟고 있었다.
무디가 시카고에 발을 들여놓은지 6년만에 커다란 건물 두 동의 어린이 선교회를 움직이는 중요한 책임자가 되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성경을 배우는 학급 숫자는 80개가 넘었고, 전체 교사들만 해도 1백명이 넘었다. “시카고에는 세계 제일의 어린이 선교회가 세워지고 그곳은 청년 무디에 의하여 움직여지고 있다.”는 소문이 급속도로 미국 중서부 지역으로 날아들어 후원자들도 많아지게 되었다.

미치광이 무디
아무튼 무디에게 있어서 주일은 가장 기쁘고 즐겁고 그리고 바쁜 날이었다. 어린이 선교회가 모이는 시간은 오후 2시부터여서 그 안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아이들을 불러모으기 위하여 사방으로 뛰어다녔고, 수고라기 보다는 그야말로 자원하는 기쁨으로 행한일이라 증폭되는 에너지를 전도에 쏟아 부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미치광이 무디’라 불릴 정도였다. 예배를 마치고 나서도 무디는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각반의 교사들이 그날 나오지 못한 아이들의 명단을 일러주면 또 일일이 심방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는 말씀은 안주하고 게으른 마음이 생길때마다 그에게 큰 힘이 되었다.
무디의 소문이 번져가자 무디가 일하는 구둣가게도 번창해갔다. 이를 지켜보던 한 사업가, 당시 시카고 북부에서 신발사업으로서 가장 규모가 큰 상회를 운영하고 있던 헨더슨이라는 사업가가 그에게 외부영업을 맡아달라고 요청해왔다. 무디는 사업가로 성공하고자 했던 자신의 꿈이 점점 눈앞에 다가오는 것같아 설레기도 했지만 한편 고민도 되었다. 그 일은 여러 주를 돌아다니면서 거래하고 판촉하는 일이었기에 어린이선교회 사업에 지장이 있을까하는 우려에서였다. 신발거래를 위하여 여러 지방을 다니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의 지평을 더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될거라는 신앙동지의 말에 그는 용기를 얻어 헨더슨씨의 상회로 직장을 옮겼다. 이곳에 와서도 유능한 상술로 가는곳마다 매상을 부쩍부쩍 올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바쁜 중에서도 무디의 열정은 어린이 선교회의 일이었다. 지장은커녕 도리어 발전하여 한때는 선교회에 모이는 숫자가 1천5백명 가까이 이른 적도 있었다. 그러던중 회심못지않은 큰 내적변화가 그에게 찾아왔다.

은혜를 잊는다면 차라리
먼저는 헨더슨씨의 죽음이었다. 시카고 제일의 구두사업가로서 무디를 만나서 사업이 쭉쭉 뻗어가던차에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 한 사람의 목숨이 허망하게 쓰러지는 것을 보면서 자신에게도 그럴 수 있음을 직감하면서 정신이 번쩍든 것이다. 뭔가 더 진지하고 의미있는 일을 해야 될 것같은 마음이 그를 지배했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한낱 이 땅에서 부자가 되겠다는 자신의 야망 또한 되짚어봐야 했다. 헨더슨 부인은 남편의 유언에 따라 무디에게 모든 재산과 사업의 경영권을 맡아달라고 요청했으나 무디는 이러한 고민과 신앙적 갈등으로 인해 이를 거절하였다.
또 한 번의 충격이 그의 꿈을 바꾸는 결과를 낳게 된다.
어느 주일 오후 선교회에서 성경공부를 마친 후 교사 히버트가 무디를 찾아왔다. 폐출혈 증세가 재발되었다고 말하는 히버트의 얼굴은 창백하고 마치 죽으러가는 사람같았다. 뉴욕으로 치료를 받으러 떠나기전에 부탁할 일이 있어 찾아왔다는 그는 병색이 짙은 얼굴로 진지하게 부탁을 청했다. “우리반 아이 가운데 성경공부 시간만되면 심하게 방해하는 아이가 있는데, 다른 아이들까지도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이 아이의 변화를 위해 무디씨가 지금 나와 동행해주신다면 그 아이집을 직접 방문해 볼 참입니다.” 히버트의 얼굴엔 죽음의 그늘이 짙어졌지만, 한 영혼을 구원하겠다는 그의 눈빛만은 강렬하게 빛났다. 그 아이는 처음엔 선생님의 방문이 달갑지 않다는 자세였으나 히버트가 그 아이를 붙들고 거듭거듭 간곡하게 타이르자 마침내 그 아이의 눈에서는 회개의 눈물이 뚝뚝 흘렀다. “선생님, 이제부터 다시는 선생님과 아이들을 괴롭히지 않겠어요. 그리고 성경공부도 잘하겠어요.”
옆에서 이 장면을 목격하고 있던 무디의 마음에 강렬한 폭풍이 일었다. 감동과 격정이 주체할 수 없이 그의 내면으로 파고들었고, 마음 한쪽은 칼날같이 아려왔다. 오늘 내일 사경을 헤매는 한 병든 교사의 영혼을 향한 처절하기까지 한 그 열정! 그리고 마침내는 그 아이로 하여금 뜨거운 눈물을 쏟으며 기필코 회개하도록 만드는 그 지고지순한 열정이 무디의 마음을 강타했다. “나는 지금까지 무얼 했는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면서 내가 지금까지 애쓴 것은 아이들의 머리수 세는 일 뿐이었다. 아무리 많은 곡식단을 끌어모았다한들 쭉쩡이뿐이라면 그것이 무슨 소용있겠는가!” 그야말로 그의 전신 마디마디를 녹이는 뼈저린 회개였다.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의 참 가치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이때의 소원함이 얼마나 간절했던지 그는 이렇게 절규했다. “하나님, 오늘 제가 받은 은총을 잊어버린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게 하소서.”
이런 생각은 그의 가치관을 바꿔버렸다. 돈, 사업 등이 한낱 먼지로 다가왔고, 연연해하는 마음또한 그림자처럼 사라졌다. 그러자 선교회의 전체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교사들과 어린이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가되어 그 응집력이 힘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무디는 말한다. “만약 온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가 그들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도록 한다면 빈 교회는 하나도 없게되고, 세워진 교회마다 차고 넘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사랑의 의무를 제대로 실천하기만 한다면 전 세계의 복음화는 조금도 염려할 필요조차 없게 될 것입니다.”

가자, 경 마장으로
무디의 특성중에 하나는 조직력이다. 그는 적재적소에 일군들을 발견하여 세우는 일에 탁월했다. 치밀한 조직력과 전략으로 복음을 전하였는데, 이때 홀로 일을 추진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재능과 달란트대로 일을 분담했다. 그는 영혼을 구하기 위한 일이라면 힘과 열과 정성을 다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미국이 남북전쟁으로 폐허가 되고 승자와 패자 모두 황폐된 국토앞에 망연자실해 있을 때 무디는 선교회의 부활을 위해 몸을 던진다.
전쟁 고아들은 많이 늘어난터에 예전의 교사들은 다 흩어져버리고 누구하나 손잡고 일할 사람이 없었다. 무디는 이때부터 선교회를 주일학교라 고쳐부르기 시작했고, 이 운동은 미국 전역에 급속히 확장되어 수많은 지역에 주일학교가 설립되고 발전해갔다.
머지않아 무디는 전국 주일학교 연합회를 결성했고, 그 회장직을 맡아서 매달 교육위원회를 개최하여 나중엔 주일학교 연합회 임원들이 소집되기도 했다. 1871년 초 무디가 시카고에서 부흥집회를 인도할 때, 청중석의 맨 앞줄에 앉아있던 여인 셋이 자주 무디의 시선을 끌었다. 예배가 끝나자 무디에게 말을 건넸다. “저희들은 오랫동안 당신을 위하여 기도해 왔습니다.” “어째서 거듭난 성도인 나를 위해 기도한단 말입니까?” “ 당신에겐 성령의 권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권능이 당신의 설교 가운데 임해야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될 것이 아닙니까?”
그것은 무디에겐 큰 충격과 경각심을 주었다. 그때까지만해도 무디는 은근히 집회에서의 대성공이 자신의 역량이나 노력에 있음을 자부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이를 통해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또 한번의 거듭남의 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
그후 무디는 성령의 기름부음이란 단어를 되뇌이곤했고, 날마다 눈물뿌리며 성령의 기름부음을 달라고 기도하게 되었다. 심지어 성령의 능력을 입지 않고서는 더 이상 살고싶은 생각마저도 없어질 정도의 절실한 심정으로 기도하였다. 성령의 사람, 무디의 행군은 세상이 감당치 못할 정도였다.
1871년초 평생동역자 아이라 생키를 만나게 된 후 무디의 대중전도 집회는 본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8세기 존 웨슬리 이후 무디는 가장 큰 부흥의 불을 미국과 영국에 붙이기 시작했다. 영국 수정궁에서 집회할 때는 5만명이 회집할 정도로 무디의 집회는 맘모스 집회가 되었다. 3년동안 영국에서의 부흥전도 또한 가는곳마다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아일랜드, 스코틀랜드에서도 성령의 역사는 한결같았다. 미국내의 전도운동에도 항상 차고 넘치도록 청중이 모여 발디딜틈이없자 고심한 끝에 마련한 곳이 넓디넓은 대형 경 마장이었다. 그래서 한때 은혜받는 장소로서의 대명사격으로 “가자, 경 마장으로”란 단어가 유행했다.

성령의 사람
국민학교도 제대로 못나온 무디는 학식도 지력도 약한터라 문법이나 기교가 맞지 않을때가 많았다. 게다가 타고난 달변가도 아니었고 말 또한 유려하지 못했다. 그러나 거칠고 투박하지만 정감있는 그의 설교는 그야말로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들이 와서 안온을 느끼며 평온을 찾기에 충분했다. 무디는 그것으로 족했다. 이때까지 그의 직분 또한 목사도 부흥사도 아니었고, 집사였지만 복음전하는데는 문제되지 않았다. 모든 일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행했기에 그의 설교는 복음을 직설적으로 설명하는 장점이 있었고, 표현이 솔직하고 강력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들였다.
무엇보다 무디는 설교의 원동력을 성경연구를 통하여 얻어냈다. 그는 이를 위하여 아침마다 성경을 펴들고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을 가졌고, 이런 생활은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되었다. 늘 성경지식의 부족함을 깨닫고 끊임없이 성경연구에 몰두했으며, 많은 청중을 동원한 집회가 있은 다음에는 서재에 돌아와 수많은 책과 씨름했다.
아무리 뜨겁고 불타는 가슴을 지녔다해도,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서 성령의 역사를 기대할 수는 없다. 무디의 열정이 성령의 불을 지펴 활활 타오르기까지 불철주야 연구와 기도와 절제로서 하나님과 동행하려는 피나는 노력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성령의 역사는 분명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이지만 인간편에서도 100퍼센트의 의지드림이 절실히 필요함을 무디를 통해 우린 분명히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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