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누구라 하느냐?

- 누가복음 9:1~21 -

샬롬선교회

 

[누가복음 9:18~21] “18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가라사대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19 대답하여 가로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하나가 살아났다 하나이다.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21 경계하사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명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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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성경구절은 12사도(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칠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을 주시고 보내신 일(1~6)과 왕(갈릴리 영주) 헤롯의 당혹스러움, 그리고 5천명(남자들만)을 먹이는 기적을 행하셔서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은 일, 그리고 마지막에, 헤롯이 예수님에 대해 "이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던 것처럼, 제자들도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묻고 있다.

 

이 질문에 대해 베드로가 말한 '하나님의 그리스도(메시아)'라는 대답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메시아)라는 관점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모든 것, 그리고 행하신 모든 일(기적 포함)을 바르게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지금까지 말씀하시고 행하신 일만으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 예수님이 무엇을 위해 보내졌는가 하는 점이 밝혀져야만 예수님이 그리스도로서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

 

공관복음서는 예수님이 누구신가 하는 부분(전반부)과 예수님이 무엇을 위해 오셨는가 하는 부분(후반부)이 합쳐져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1. 영주 헤롯의 당혹감과 메시아의 비밀

 

예수님께서 12사도를 불러 모아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리고 이를 위한 권능(권위와 능력)을 주셨다. 사도들은 예수님이 주신 능력과 권위를 행사하여 많은 사람들을 치유했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과 권위는 과거 이스라엘 시대에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례 요한이나 구약의 선지자 엘리야라고 말했고, 어떤 이들은 옛 선지자가 다시 살아났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부활하신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으로 인해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능력과 권위를 행사하게 된다. 말하자면 그 선지자로서의 사역이었다.

 

헤롯은 갈릴리의 영주로서 이러한 예수님의 존재가 주는 큰 영향력을 매우 두려워했다. 이미 자신의 죄를 고발하는 세례 요한을 잡아들였을 뿐 아니라 그를 죽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는 사람이 있다는 말에 헤롯은 예수님을 만나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호기심으로 만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누가복음 23:8). 그러나 동시에 예수님을 죽이려고도 생각했던 것 같다(누가복음 23:11, 13).

 

예수님은 선교 사역을 마치고 돌아온 제자들을 데리고 벳새다 광야로 물러가신다. 여기서 '물러나다'로 번역된 헬라어 ποχωρέω는 누가복음 5:169:10에만 쓰인 동사인데, '기도를 위한, 혹은 명상을 위한 안식처'의 필요성을 기록한 중요한 구절이다. '물러나다'(Retreat)는 모든 사역의 힘의 원천에서 인풋하는 고요한 시간이기도 하다. 이것 없이는 큰 힘을 출력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 알지 못하는 군중들이 그곳에도 몰려든다. 그런 군중들에게도 예수님은 "기꺼이 그들을 맞이하여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병 고침이 필요한 자를 고치셨다"고 했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내쫓지 않으셨다. "오는 자는 거절하지 아니하시고, 가는 자는 쫓지 아니하셨다"는 것이다.

 

또한 오천 명이나 되는 군중에게 필요한 음식을 주시는 기적을 행하셨다. 그리고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고 한다. 이는 곧 예수님의 권위와 능력으로 주어지는 영적 축복이 제자들에 의해 주어져 사람들의 굶주림과 목마름을 채워줄 것임을 암시하는 기적이었다.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그 필요를 채워주신다. 그러나 영적인 갈급함을 채우고 만족시키는 사역은 결국 사도들(제자들)이 담당하게 된다. 사실 사도행전 6장에서는 교회가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 있어 매우 우선순위가 높은 사역으로 사도들은 '오직 말씀과 기도의 봉사에 전념'하게 된다(사도행전 6:4). 그것은 말씀과 기도가 교회 존재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는 것을 사도들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는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한 도전은 어느 시대에나 변함없는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은 단순히 물질적인 일용할 양식을 주실 뿐 아니라 영적인 양식, 즉 하늘로부터 오는 양식, 즉 세상의 생명을 주는 양식을 주시고 마음의 굶주림을 채우실 수 있는 분이심을 보여 주셨지만, 이를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군중 대부분은 물질적 필요를 채워줄 메시아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깊은 진리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잘못된 메시아 기대를 조장하지 않기 위해, 즉 하나님 나라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하지 않기 위해 예수님은 자신이 한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경고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내가 누구라 하느냐'는 질문에 정답을 말한 베드로와 그 주변에 있던 제자들에게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하셨다.

 

2. 예수님의 생애를 두 가지로 나누는 '질문'

+ 두 가지 질문

첫 번째 질문의 답은 "당신은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이었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것이 아버지의 계시에 의한 것임을 말씀하셨다. 이 신앙고백이야말로 2천년 기독교 교회에서 고백하고 싸워온 신앙고백이다. 이 고백이야말로 교회의 토대이며, 그리스도인은 이 신앙고백을 떠나서는 말할 수 없다. 이 고백 위에 교회는 세워져 있다. 이 고백이 없으면 아무리 훌륭한 회당(건물)이 있어도 진정한 하나님 나라, 혹은 교회라고 할 수 없다. 이 고백이 있는 곳에 비록 작은 무리일지라도 참된 하나님 나라가 있고, 교회가 있는 것이다.

 

이 고백 직후 예수님은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많은 고난'을 받을 것을 예고하신다. 제자들은 이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버림받고, 죽임을 당하고, 부활해야만 한다."라고. '죽임을 당해야 한다'는 표현은 '버림을 받아야 하고, 죽임을 당해야 하고, 부활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직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많은 고난을 받는 것이 정해져 있다는 뜻이다. 이 일을 위해 예수님이 오셨다. 이 일 때문에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입증하는 것이다. 후자의 내용은 누가복음 9:22 이후에서 다루어지기 때문에 여기서는 보류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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