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메시아의 비밀'

- 누가복음 8:40~56 -

샬롬선교회

 

예수님께서 어느 날 ", 호수 건너편으로 건너가자"라고 말씀하시며 직접 배에 오르시자 제자들도 따라갔다. 건너편으로 가는 도중에 갑자기 폭풍우를 만나게 되는데, 이 사건은 제자들의 신앙에 대한 귀중한 교훈이 되었다. 건너편(거라사 사람 지방)에 도착해 상륙했을 때, 한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을 만났다. 예수님은 그 사람 안에 있는 악령을 쫓아내셨고, 그 사람은 완전히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누가복음 431~36절에도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풀려난 비슷한 사건이 있다. 그 사건은 선교의 본거지인 가버나움에서 일어났지만, 이번 본문인 누가복음 8:26~39의 사건은 갈릴리 호수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있는 거라사 사람 지방에서 일어났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다시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시는데, 그때까지 군중들은 예수님을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서 야이로라는 사람이 자신의 '외동딸' 문제로 찾아왔다. 이 사람은 회당 관리자(감독자, 지도자)로서 자기 집에 와 달라고 계속(반복해서) 간청했다(미완성). 왜냐하면 그에게는 12살 된 '외동딸'이 있는데, '죽어가고 있었다'(미완성)고 했기 때문이다.

'외아들'로 번역된 '모노게네-' μονογενης(형용사)唯一(유일)이라는 뜻이다. '외아들'은 누가복음에서 핵심 키워드 중 하나다. 7:12'과부의 외아들', 8:42'야이로의 외동딸', 9:38'간질병에 걸린 외아들', 그리고 비유에 나오는 '잃어버린 양 한 마리와 은전 한 닢'을 찾았다는 기쁨의 사신, 이것들은 누가복음만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회당 관리자의 간곡한 간청에 이끌려 나가실 때, 군중들이 숨이 막힐 듯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밀고 들어오다, 짓누르다, 질식시킬 수 있다'는 미완료 동사 '숨프니고-' συμπνίγω는 누가복음 8:14에도 쓰이는데, 거기서 '세상의 정욕과 재물과 쾌락에 사로잡혀'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앗에 비유하고 있다. 그런 절박한 상황 속에서 한 가지 사건이 일어났다.

 

1. 혈루증 여인의 치유

 

누군가가 예수님의 뒤에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실을 아셨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힘이 자기 안에서 빠져나간 것을 느끼셨기 때문이다. '만지는'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의 옷을 만진 한 여인에게 일어났다.

 

그 여인은 12년 동안 부인병으로 고통을 받았고, 치료를 위해 생활비 전부를 써도 낫지 않아 어쩔 줄 몰라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게다가 당시 사회에서는 여성의 이런 질병은 종교적으로 더럽다고 여겨져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마지막으로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예수님께 다가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을 때, 즉시(순식간에) 그녀의 피가 멈추게 된다.

 

'만지다'로 번역된 원어는 '하프토' άπτω'만지다, 움켜쥐다, 매달리다'라는 뜻이다. 비슷한 예가 누가복음 619절에도 있다. "군중의 모든 사람이 어떻게든 예수님을 만지려고 했다. 큰 권능이 예수님에게서 나와서 모든 사람을 고쳐주었기 때문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지는 모습이 나온다. 그리고 이번 구절(8:43~48)에서는 혈루증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다'는 어휘가 4번이나 나온다.

 

참고로 5:13에서는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만져 깨끗하게 하시고, 7:14에서는 예수님께서 직접 다가와 죽은 청년의 관에 손을 얹어(만지시며) 그 청년을 살리셨다. 어쨌든 '만지다, 접촉'을 통해 하나님의 치유의 능력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점이다.

 

48절에서 예수님은 그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신다. 마지막 희망의 끈, 한 가닥의 소망을 가지고 한길로 예수님께 매달린 그 여인의 믿음을 믿음으로 여기셨을 뿐 아니라, "네 믿음이 너를 고쳤다(현재 완료)"고 칭찬하시며 "안심하고 가라"고 격려하셨다. 이는 7:49에서 죄 많은 여인에게도 말씀하신 구절이다.

 

'당신의 믿음'이라는 '믿음''피스티스' πίστις'신뢰'라고도 번역할 수 있다. 그녀의 믿음은 객관적으로 볼 때 믿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보잘 것 없는 믿음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은 그것을 '네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해 주시는 것이다.

 

폭풍에 휘둘려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다고 외치는 제자들에게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누가복음 8:25)고 꾸짖으시는 반면, 장님에게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그 믿음을 칭찬하시는 것은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이 혈류병자의 믿음에 대한 칭찬은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일편단심 예수님께 내기를 걸었던 믿음이었다. 죄 많은 여인의 믿음이 그녀를 구원했다는 경우의 믿음과는 의미가 조금 다르다. 그녀의 믿음은 자신이 이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는 믿음 때문에 대담하게 예수님의 발에 값비싼 향유를 부을 수 있는 적극적인 사랑의 행위를 할 수 있는 믿음이다. 백부장이 칭찬받은 믿음은 권위 있는 말씀에 대한 신뢰였다. 칭찬받는 믿음이지만, 각각 칭찬받는 믿음의 특징이 다른 것이다.

 

2. 야이로의 딸의 치유와 '메시아의 비밀'

 

세 가지 말씀, (1) '믿으라 그리하면...' (2) '죽은 것이 아니라 잠들었느니라' (3) '영이 돌아왔다'에 주목하고자 한다.

 

(1) "믿으라, 그리하면...“

 

네스트레 27판 이전에는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 믿어라(현재 명령형). 그러면 딸은 고쳐질 것이다 σζω(구원받을 것입니다)(미래형)." 라고 되어 있었는데, N27판에서는 '계속 믿어라''믿어라(아오리스트 명령형)'로 바뀌었다. , 분명하게 자신의 분명한 의지를 가지고 '믿으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게 하면 반드시 구원받을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지만,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믿음'의 내용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믿는 것의 중요성을 요청하고 있다.

 

여기서 왜 예수님은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그리고 부모 외에는 누구도 집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을까? 아마도 이것은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계시가 이 세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계시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헬몬산 변모 사건 당시에도 특별히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를 데리고 산에 오르신다. 그리고 예수님의 변모와 함께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최후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서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누가복음 9:28~36)고 기록되어 있다. '메시아의 비밀'이다.

 

(2) "죽은 것이 아니라 잠들어 있는 것이다"

 

이 말씀은 딸이 죽었다고 울부짖는 자들을 향해 하신 말씀이다. 여기에도 예수의 비정상의, 스캔들 같은 말씀이 있다.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하는 예수를 '조롱했다(미완료)'고 되어 있다.

 

이는 장차 일어날 '부활'의 계시를 암시하고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조차도 이 계시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그래서 결국 드러날 부활의 계시를 한정된 세 명의 제자만 골라 보게 하신 것이다. 게다가 그것을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기 위해 예수님은 세 제자와 기절해 정신을 잃은 부모에게까지 못을 박고 있다. 왜냐하면 생각해보면 이 사실을 제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메시아의 비밀'이다.

 

(3) 영이 돌아왔다

 

예수님은 딸의 손을 잡고 외치시며 "아이야. 일어나라(혹은 깨어나라)"고 명령하셨다. 그러자 딸의 영이 돌아와서 딸이 즉시 일어났다고 한다. 부활을 누가는 '영이 돌아왔다'고 표현하고 있다. 거꾸로 말하면, 죽음은 육체에서 영혼이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는 뜻이다. ''은 헬라어로는 '프뉴마'(Πνεύμα), 히브리어로는 '-아흐'(רוּחַ)이다. 모두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유일한 피조물인 인간의 존재로서 중요한 어휘이다.

 

'영이 돌아오는 것'이 바로 '부활'이며, 영이 '돌아왔다(아오리스트)'로 번역된 '에피스트레포-' έπιστρέφω'방향을 바꾸다, 돌아가다, 돌아오게 하다, 되돌리다'라는 뜻으로 히브리어 '-'(שׁוּב)에 해당되는 어휘라고 할 수 있다. 영어로는 turn, return으로 번역된다.

 

마지막 나팔과 함께 오실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는 예수 안에서 잠든 자들(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부활하고, 그 다음에 주 안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모두 썩지 아니할 몸으로 순식간에 변화되어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질 것이 약속되어 있다(데살로니가전서 4:13~17, 고린도전서 15:52 참조). 죽음에서 부활하는 것은 썩지 않는 그리스도의 영이 그 사람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부활은 복음의 비밀이다. 어느 시대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 일을 어리석은 일이라고 조롱한다. 성령의 도움 없이는 예수님의 부활 사실이 의미하는 그 깊은 뜻이 그렇게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설득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쉽게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믿어지지 않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이렇게 곧 명백한 사실이 되는 예수님의 부활은 단순히 죽음에서 살아났다는 사실을 넘어, 거기에는 우리의 생각과 생각을 뛰어넘는 장엄한 하나님의 구원의 전모가 숨겨져 있다. 이것이 바로 '메시아의 비밀'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딸의 부활(소생) 사실을 어리석다고 조롱하는 자들 앞에서는 입 밖에 내지 말라고 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http://meigata-bokushin.secret.jp/index.ph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