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 누가복음 8:19~25 -

샬롬선교회 


[누가복음 8:22~25] “22.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매 이에 떠나, 23.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24.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25.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그들이 두려워하고 놀랍게 여겨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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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복음 8:19~25에는 두 가지 내용이 나온다. 하나는 하나님의 새로운 가족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호수 위의 큰 폭풍우 사건이다. 언뜻 보면 서로 다른 사건들이 나열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누가복음 8:1~18에 나오는 '씨 뿌리는 비유'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1. 하나님의 새로운 가족으로서의 공동체 (누가복음 8:19~21)

 

한 가지 질문으로 이 구절(8:19~21)이 왜 여기에 놓여있는가? 왜냐하면 마태복음 12:46~50과 마가복음 3:21~35에도 그 병렬 기사가 있지만, 문맥이 다르기 때문이다.

(1) 마가복음의 경우 이 기사가 '씨 뿌리는 비유' 앞에 놓여 있다. 그리고 예수님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또 어머니이다"라고 말씀하신다.

(2) 마태와 마가는 동일하다.

(3) 누가복음의 경우 '씨 뿌리는 비유' 뒤에 새로운 가족관계에 대해 말씀하신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새로운 가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의미는 예수님께서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듣는 방법에 주의하라'고 말씀하신 것과 관련이 있다. , 듣는다는 것은 수동적으로 듣고 알아듣는 것이 아니라, 먼저 그 뜻을 스스로 묻고 구하는 것, 스스로 묻고 진의를 알아가는 것이 '듣는다'는 의미였다.

 

참고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다''듣다''그것을 행하다''행하다'라는 동사는 각각 현재형 분사로 '계속 듣다', '계속 행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주로 새로운 공동체란 그런 공동체를 말한다. 항상, 반복하고, 깨달을 때까지 계속 질문하는 공동체이며, 진의를 깨닫고 따라가는 공동체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메시아의 진의를 묻고 그것을 행하기 위해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 이것이 혈연관계와는 다른, 그것을 넘어선 새로운 하나님의 가족인 것이다. 하나님의 식탁에 앉아 함께 하나님의 말씀의 진의를 탐구하고 그것을 먹는 즐거움을 누리는 가족으로서의 공동체이다.

 

2. 예수님의 질문

 

누가복음 8:22~25은 건너편으로 건너가기 위해 예수님이 먼저 배에 오르시고, 제자들이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예수님은 배에 오르시자마자 잠이 드셨다고 한다. 新改訳"예수님은 숙면을 취하셨다."(23)라고 번역하고 있다. '숙면을 취하셨다''아후프노오-' άφύπνόω의 어원으로, 강조를 나타내는 접두사 '아포' απο'잠들다'를 뜻하는 '프노오-' πνόω의 합성어로 '잠에 빠지다, 잠들다, 숙면하였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갑작스런 폭풍, 격렬한 돌풍이 그들에게 불어 닥쳤다. 그래서 그들은 물을 뒤집어쓰고, 배도 물에 잠기고, 습격을 당했다. 제자들은 물을 뒤집어쓰고 물에 잠겨 위험에 처해 있었다. 제자들은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두려움에 예수님을 일으킨다. 깜짝 놀라 일어나신 예수님이 바람과 폭풍을 꾸짖으시니(아오리스트), 그것들이 그치고(아오리스트), 잠잠해졌다(아오리스트)고 한다. 제자들은 놀라서 바람에 (권위를 가지고) 명령하고 그것을 멈추게 하는 예수님에 대해 두려워하고 놀라서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라고 서로 말하였다.

 

물론 예수님이 바람을 향해 '꾸짖으시니' 바람이 그치고 잠잠해진 현상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25) 이 한 마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이 이 구절의 묵상의 핵심인 것 같다. 예수라는 분은 하나님 나라의 깊은 뜻 안에 항상 살아계셔서 거기서 말씀하시고 행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그 진의를 찾아내어 자신의 것으로 삼아야 했다. 그런데 갑작스런 폭풍을 만났을 때,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어떻게 듣고 있었는지가 드러나고 말았다.

여기서 정말 놀라운 것은 폭풍우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배의 선미에서 잠을 자고 계셨다는 것이다. 제자들은 이 예수님의 모습보다 예수님의 권위 있는 말씀으로 폭풍이 잠잠해진 것에 두려움과 놀라움을 느낀다.

 

예수님의 평안히 주무시는 모습에서 하나님 나라의 위대함을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그것에 대해 놀라움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들은 기적의 사건에만 마음이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예수님은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건너가려고 하셨다. 그리고 돌풍이 불어오는 위기를 맞았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위기 상황에서의 신앙의 살아있는 실전 훈련이라고 할 수 있다. 폭풍을 만났을 때 제자들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신뢰)은 날아갔다. 그러나 예수님은 '침착하게, 아버지를 신뢰하고' 계셨다. 그래서 잠을 푹 잘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의 목적은 하나님 나라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과 아버지와의 관계의 비밀, 신뢰의 비밀을 아는 것이다. 그 중요성을 예수님은 "너희 믿음(신뢰)이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을 통해 제자들에게 깨닫게 하려고 하신다. , "너희가 내 말을 어떻게 들어왔느냐. 듣는 방식을 주의하라'라고도 바꿔 말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듣는 방식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예수님의 이야기를 어떻게 듣고 있는지는 갑자기 닥친 사건으로 드러난다는 뜻이다. '침착하게, 아버지를 신뢰'하고 있던 예수님은 폭풍 속에서도 잠을 잘 수 있었다는 것이다. , 믿음이란 이런 것임을 가르치려 했던 것이다. 예수님이 잠들었다는 사실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의 놀라운 현실이다. 그리고 이 믿음을 부여받고 키우기 위해서는 새로운 하나님의 가족으로서의 공동체, 같은 한 배를 타는 운명공동체가 필요한 것이다.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쿠데타로 수도가 함락되었을 때 지은 것으로 알려진 시편 3편에도 다윗은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5)라고 말한다. '생명 날까지 여호와의 집에 거하며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는 것'을 단 하나의 소원으로 삼은 다윗이 할 수 있었던 일이라면, 우리도 다윗이 '단 한 가지'로 구한 것을 자신의 우선순위로 삼아야 함을 생각하게 된다.

'안식'은 두려움을 몰아내는 사랑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의 힘'이야말로 영원한 생명,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라고 할 수 있다.

 

이사야 선지자는 강대국의 위협에 겁먹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다"(이사야서 30:15)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전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예수님의 사실(말씀과 행하시는 모든 것, 존재 그 자체)이 하나님 말씀의 실체를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두려움을 몰아내는 예수님의 믿음, 그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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