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살피라

- 누가복음 6:41~49 -

샬롬선교회 


[누가복음 6:41~49] “41.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43.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44.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45.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47.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48.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49.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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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1~49까지는 접속사나 불변동사의 존재로 하나의 덩어리임을 알 수 있다.

41"그런데..." δέ 새로운 전개가 시작된다.

42또는...재차 표현된 표현

43그것은...」γάρ 앞의 비유를 설명하기 위한 비유

44그러므로」 γάρ 앞의 비유를 설명하는 비유의 연속

46그러나...」δέ 현실과 실체가 다르다는 지적

47절 현실과 실체의 관계를 설명하는 '집을 짓는 사람의 비유'

 

1. 각각의 비유 이야기

 

* 41~49절까지의 구절이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 주제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 41~42절에서 말씀하신 비유는 자기 눈에 들보가 있는데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형제의 눈에 있는 티끌을 빼내려고 하는 어리석음이다. 형제의 눈의 티끌을 제거하려면 먼저 자신의 눈에 큰 들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 43~44절은 '나무와 열매'에 대한 비유이다. 좋은 나무라면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라면 나쁜 열매를 맺는다. 나무는 열매로 알 수 있다는 진리이다. 열매의 좋고 나쁨은 나무 자체의 존재이다.

 

+ 45절은 '나무와 열매' 비유와 비슷하다. '마음의 창고'가 좋은 것으로 가득 차 있으면 자연히 좋은 것이 나온다. 반대로 마음의 창고가 나쁘면 나쁜 것이 나온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 그러나 46절 이후부터는 겉으로 보기에는 좋은 것이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좋은 창고가 아니라는 현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왜 나를 '주여, 주여'라고 부르면서 내 말을 행하지 않느냐'는 주님의 물음이 나온다. 그리고 48절에서 '내게 와서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비유로 말씀하시고, 49절에서 반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설명해 주신다.

 

* 48절의 '내게 와서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땅을 깊이 파고 바위 위에 터를 닦고 그 위에 집을 지은 사람'에 비유하고 있다.

'깊이 파고'로 번역된 부분은 그리스어 원문에서는 '파다(σκάπω), 그리고 깊이 파고(βαθύνω)'라는 두 개의 동사가 겹쳐져 있다. 또한, 토대를 '세우다(τίθημι)'라는 동사, 이 동사들은 모두 '아오리스트 능동태'이다. , 자신의 의지로 분명하게 그렇게 하기로 결심한 사실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 토대 위에 '세우다(οίκοδομέω)', 즉 여기서 '세우다'는 현재형 분사로 지금도 계속 세우고 있다는 뜻이다. 계속 세워나가지만, 그 토대는 이미 자신의 의지로 확고하게 다져놓았다는 뜻이다.

 

* 이런 사람은 어떤 홍수가 나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반대로 '듣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은 기초 없이 집을 지은 사람과 같아서 홍수가 나면 한꺼번에 무너지고, 그 무너짐이 심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2. 이 일련의 비유가 의미하는 바

 

* 41~49절까지의 일련의 비유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은 근본과 기초의 중요성이다. '평지설교'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율법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그것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원수를 사랑하라, 사람을 사랑하라'이다. 그러나 그것은 피상적인 언행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언행일치, 혹은 언행일치하는 사람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 사는 사람의 기준은 그런 눈에 보이는 언행이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결과일 뿐이다. 문제는 좋은 열매를 맺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좋은 나무가 되는 것,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이 요구되는 것이다. "주여. 주여." '라는 말과 행동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깊이 파고들어 자신의 기초를 반석 위에 세우는 것이 요구되는 것이다.

여기서 반석이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위에 기초를 세우는 것은 땅을 파고, 그리고 더 깊이 파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세상의 방향과 반대 방향이다. '원천 지향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신비로움으로 가득 찬 영역이다.

 

* '깊이 파다'로 번역된 동사 '바스노'(βαθύvω)는 신약성경에서 이 구절이 유일하다. 아마도 누가는 깊은 뜻으로 이 단어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집을 짓기 위해 땅을 파는 사람은 있어도, 바위에 닿을 정도로 깊게 파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행하는 사람과 땅을 꽤 깊게 파는 사람은 동의어로 쓰인 것이다.

 

*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듣고 행하라'는 말씀을 듣고 '행하라'는 곳에 마음이 머물기 쉬운데, 그것을 지탱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부분은 보이지 않는 부분이고, 정말 신비로운 영역이다. 요한복음은 이를 '머무르다'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머무르다'는 알 것 같으면서도 알 수 없는 신비로운 표현이다. 쉽게 체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머무름'을 몸소 보여주신 본보기가 있다. 그분은 바로 아들 자신이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의 관계만이 진정한 토대이다. 그것을 기초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자연스레 행함이 생겨난다는 것을 예수님은 말씀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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