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복

- 누가복음 6:20~26 -

샬롬선교회 


[누가복음 6:20~26] “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21.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22.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24.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25.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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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복음 6:20~49은 마태복음 5~7장의 '산상수훈'과 병행되는 기사가 있다. 마태복음은 '산상'이지만, 누가복음은 '산기슭, 혹은 평지'에서의 설교이다. 예수님의 기적적인 이적은 누구에게나 분명한 사실이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예수의 설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설교이며, 결코 사람들에게 아첨하지 않는 설교다.

 

+ 마태복음의 산상수훈 첫머리에 나오는 8가지 행복의 가르침과 누가복음의 그것과 비슷한 부분과 그렇지 않은 고유한 부분이 있다. 누가복음의 독창성을 살펴보기 위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을 비교해 보고자 한다.

 

1.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비교

 

(1) 마태복음의 '복 있는 사람' (마태복음 5:3~11)

 

(2) 누가복음의 '복 있는 자들''불쌍한 자들' (누가복음 6:20~26)

복 있는 자들

불쌍한 자들

 

+ 마태복음의 경우 모두 '복 있는 자들'이 어떤 자들인지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누가복음의 경우 첫 번째 세 구절은 '복 있는 자들'에 대해, 나머지 네 구절은 '불쌍한 자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게다가 그 내용은 매우 대상적이다.

 

+ 전자의 '복 있는 자들''호이 마카이오이'라는 명사(복수)인데, 후자의 '불쌍한 자들'로 번역된 어휘는 명사가 아니라 '-아이' ουαι라는 슬픔, 비통함을 나타내는 감탄사(불변사라고도 한다)이다. 이 감탄사는 신약성경에서 46번 사용되었는데,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요한계시록의 독점적인 용어이다. '아아, 가증스럽다, 비참하다, 비참하다, 불쌍하다, 유감스럽다'로 번역된다. 모두 하나님()이나, 사자, 선지자의 목소리인데, 이는 곧 어떤 사람들에게 닥쳐올 운명을 내다보는 비통한 외침이다.

 

+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들'처럼 사람들의 기쁨을 위한 말만 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결코 사람들에게 아첨하지 않고, 복과 화를 동시에 말할 수 있는 참된 선지자였다.

 

+ 누가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네 가지 축복(복 있는 자)은 가난한 자, 굶주린 자, 우는 자, 사람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고 있는 자들에 대한 것이다. 이런 이들이 예수님 안에서 축복을 받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누가복음의 특징은 마리아 찬가에도 잘 나타나지만, 복음이 선포됨으로써 역전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이 낮아지고, 낮은 자리에 있는 자들이 높이 들린다. 굶주린 자가 좋은 것으로 배불리 먹고, 부자에게는 아무 것도 주지 않고 오히려 쫓겨나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말한다.

 

2.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을 기뻐하라

 

+ 누가복음 6:20 이후에서 흥미로운 점을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바로 23절의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는 말씀이다.

 

+ '그 날'이란, 인자(人子)의 일로, 제자들이 어떤 핍박을 받는 그 때를 의미한다. 그 날에는 '기뻐하라, 춤추며 즐거워하라'로 번역되어 있다. 모두 이 동사는 그리스어로 '아오리스트 명령형'이다. , 아오리스트의 명령형이 의미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어떤 결정적인 결단을 촉구하는 것이다. , 그리스도 때문에 어떤 핍박이나 괴롭힘을 당할 경우 '즉시 기뻐하라'는 뜻이다. 의지적으로 "즉시 뛰어올라 기뻐하라"는 뜻이다.

 

+ 보통은 그런 일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우울해지거나 반대로 화를 내며 반격을 하려고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여기서 예수님의 가르침은 즉시 기뻐하는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이유도 명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원문에는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 γάρ가 있다) 하늘에서 너희의 상급이 클 것이기 때문이니라."(23)라고 되어 있다. '크다'로 번역된 형용사 '폴루스' πολύς는 보통이 아닌, 엄청난 크기를 뜻한다. 그런 보상이 있다는 것에 마음을 돌릴 수 있다면, 우리는 핍박이나 괴롭힘 등으로 인해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것이 중요하다. 성령께서 그 말씀을 기억나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들이 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기뻐했음을 알 수 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사도행전 5:41)

 

+ 사도 베드로도 그의 서신서 1장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베드로전서 4:12-14]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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