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은혜에 이르는 길"

- 로마서 3:9-26 -

샬롬선교회

 

[로마서 3;9-26] "...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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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는 하나님의 은혜를 돈으로 살 수 있는 면죄부 제도와 부패한 권력에 대한 비판으로 교회로부터 이단 혐의를 받고 가톨릭교회의 심문을 받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 그는 점점 믿음으로 구원받고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진리를 선명하게 드러내게 된다. 그리고 그는 성경과 전통을 권위로 삼았던 가톨릭에 대해 오직 성경만을 유일한 권위로 삼는 입장을 표명하게 된다. 마르틴 루터에 의해 다시금 선명해진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라는 하나님의 은혜가 바로 이번에 우리가 배우고자 하는 로마서 3장에서 전개되고 있다.

 

1. 죄의 지배 아래 있는 전 인류

 

[로마서 3:9-18] “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우리는 자신의 겸손을 표현하기 위해 "나는 죄 많은 자요. 나는 작은 자입니다."라고 말할 때가 있는데, 사실은 "아니요. 당신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라는 말을 기대하며 말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그렇군요. 당신이 말하는 것은 사실입니다."라고 되받아치면 '나는 겸손하게 내 말을 하고 있는데'라며 기분이 나빠서 아마 화를 낼 것이다. 우리는 좀처럼 자신을 '죄 많은 사람'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아니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성경은 분명하게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죄 많은 자'라고 단정하고 있다.

 

9절 말씀을 보면, 그렇게 주의 깊게 읽지 않으면 ', 인간은 죄의 영향을 받고 있구나'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이 9절의 말씀은 어려운 말씀이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 유대인으로 대표되는 종교적으로 뛰어난 사람도, 혹은 헬라인으로 대표되는 문화적으로 뛰어난 사람들도 예외 없이 '죄의 지배 아래 있다'고 단죄하고 있다. '아래'는 하나의 권위, , 지배 아래 있다는 뜻이다.

 

''라는 단어도 단수가 사용되었다. 단수라는 것은 이런저런 죄, 물건을 훔쳤다, 거짓말을 했다, 남에게 욕을 했다, 고해성사를 했다, 장난을 쳤다, 이런저런 죄가 아니라, 어떤 하나의 지배, 권위, 힘 아래 있는 상태, 항상 그런 힘이 작용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말이다.

 

마태복음 8장에서 한 백부장이 예수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내 종이 중풍병에 걸려 집에서 자다가 심히 괴로워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신은 내 집까지 오실 자격이 없다. 다만 말씀만 주시면 됩니다. 그러면 내 종은 낫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예수님은 이 말씀에 깜짝 놀라셨다. "선생님. 내 밑에는 백 명의 병사들이 있는데, 내가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옵니다. 하물며 예수님의 말씀이라면 어떤 자라도, 병마든 사탄이든, 복종할 것입니다. ..."라는 말을 들은 예수님은 "나는 이스라엘 사람 중에 이런 믿음을 본 적이 없다"라고 말씀한다. 이 백부장이 말한 '내 아래'라는 말은 앞서 말한 '죄 아래 있다'라는 말과 같은 단어가 쓰여 있다. , 어떤 하나의 힘, 권위, 지배 아래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흔히 '내가 시키면', '내가'라는 말을 거만하게 한다. 마치 자신은 아무에게도 얽매이지 않는 존재인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사람은 누구도 예외 없이 죄의 지배 아래, 죄의 힘에 지배당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이론보다 증거, 우리는 작은 유혹에도 내 힘으로 이길 수 없는 존재이다. 나쁜 짓이라는 것을 알지만 멈출 수 없다. 하나님과 멀어진 인간은 예외 없이 '죄의 지배를 받고 있다', '내가'라고 말하지만, 죄라는 주인에게 노예가 되어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철교가 탁류에 떠내려갔다고 한다. 그곳으로 기차가 저쪽에서 온다. 그런데 열차 안에는 자랑을 늘어놓는 사람도 있고, 수다를 떨거나 술을 마시는 사람도 있고, 진지하게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거나 남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착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무엇을 하든 기차는 언젠가는 탁류에 휩쓸릴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다. 이처럼 인간이 아무리 교육이라고, 일이라고, 자선사업이라고, 문화사업이라고 외쳐봤자 기차는 결국 탁류 속으로, 영원한 멸망 속으로 빠져드는 것... 이것이 바로 인간의 모습이다.

 

9절에서 바울이 "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 현실이다. 19절에도 "모든 입이 막혀서 온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리라"고 했고, 23절에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모든 사람, 모든 입, 모두, 모두, 모두"라고 했다. '예외'는 없는 것이다. 석가도, 공자도, 소크라테스도 이다. 실로 성경은 과감하게 단언하고 있다.

 

+ 바울은 이를 구약의 여러 구절을 인용하여 논증하고 있다(로마서 3:10~18).

 

(1) 죄 아래 있는 인간의 상태

+ 의인은 없다(10)

+ 깨달은 자가 없다(11),

+ 하나님을 찾는 자가 없다(11)

+ 방황하여 무익한 자가 되었다(12)

+ 선을 행하는 자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12)

 

(2) 죄 아래 있는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들

+ ... 불결함, 타박상, 사망의 독(13)

+ ... 쓴 말, 악한 말(14)

+ ... 유혈(투쟁), 파괴, 비극(15, 16)

+ - 불경건, 나쁜 눈빛 (18)

 

(3) 하나님의 율법이 주어진 역할

+ 율법은 사람을 선으로 인도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모든 입을 막기 위한 것이다.

+ 율법은 사람에게 죄를 깨닫게 하고 자신의 완전한 무력함을 인정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율법을 행함으로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율법은 우리에게 요구하지만 결코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다.

+ 율법은 사람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하나님께 사형 집행을 요구한다.

 

이처럼 율법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참모습을 알게 된다. 예수님은 "의사가 필요한 것은 병자다"라고 말한다. ... 자신이 병자임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의사의 필요성을 인정하게 된다.

 

''는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상태이다. 그러나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이다. ... 이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계시의 책이다. 하나님이 보신 인간의 모습이다.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든, 자신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든 그건 자기 마음이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가장 먼저 말하고 싶었던 내용이다.

 

2.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의(제공된 하나님의 의=구원)

 

그런데요, 21절의 '그러나 이제는'이다. 이 말씀은 완전히 새로운 것,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하는 희망의 말씀이다. 이로써 모든 사람이 죄의 지배에서 해방되어 구원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길을 밝히신 위대한 '그러나'이다.

 

구약 시대에는 '요벨의 해'라는 하나님의 규례가 있다. '요벨'은 기쁨의 해, 환희에 찬 해라는 뜻이다. 이것은 50년마다 한 번씩 찾아오는 특별한 해로, 그때까지의 모든 부채, 빚을 탕감해 주는 해였다. 하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사람들은 그 해가 다가올수록 대출을 주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구약의 요벨의 해보다 훨씬 더 놀라운 일이 시작될 것을 가리킨다. ,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빚을 갚을 것을 요구하지 않으시는 일을 행하셨기 때문이다.

 

[로마서 3:21-25], 본문

 

20절까지는 '인간이 어떤 자이며, 무엇을 해왔는가'에 대한 언급이 있었지만, 21절 이후부터는 달라진다.

+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구원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풀렸기 때문에 구원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대속'을 뜻한다.

+ '값없이''아무 이유 없이, 아무 자격 없이'라는 뜻이다.

+ '그 피로 말미암아''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말미암아'라는 뜻이다.

+ '화목제물'은 지성소 뚜껑 부분에 피가 부어짐으로써 하나님의 진노가 풀렸다는 뜻이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기 위해서는(=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속죄(=대속)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죄 아래 있었고, 따라서 유죄이며, 사망을 선고받은 자이고, 영원한 죽음을 받을 자격이 있는 자였다. 그 죄인이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속죄를 베풀어 주신 것이다.

 

'구속'에 대해... 신학교의 한 선생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그 선생님이 목사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이다. 어느 헌책방에 갔을 때 특이한 책을 발견했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한 책이었다. 그 책을 집어 들고 책장을 넘기다 보니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사실 도난당한 것 같았다. ... 이유야 어찌됐든, 그 책을 다시 내 소유로 만들기 위해서는 돈을 주고 다시 사야 한다. 원래 내 것이었는데 도둑맞은 책이라고 하면서 그 책을 가지고 올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책에 붙은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내 것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대가를 지불하고 되사는 것이다. 돈을 주고 그 책을 내 것으로 만든다. 이것이 '구속'이라는 것이다. 누가 내 빚을 대신 갚아줄 수 있겠는가. 게다가 그 금액이 많으면 많을수록, 어깨를 대신해 줄 사람은 없어진다. 더군다나 죽을 만한 빚을 대신 갚아줄 사람 따위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 때문에 속죄의 피(=생명)를 지불하여 갚아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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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는 그 근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일한 조건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뿐이다. 그 사실을 담대히 믿어야 하지 않겠는가?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고 입으로는 말하지만, 속으로는 믿지 못하고 '내가 이렇게 죄가 많은데 구원받았다고 하면 얼마나 못된 사람으로 보일까'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사탄이 꼬치꼬치 캐묻는다. ", 그래도 크리스천이냐. 그런 행위를 하면서."

 

다시 한 번(아니, 항상) 말씀으로 돌아가자. 성경이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자. "너희는 그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느니라."고 성경이 선언하고 있다면, 그 사실을 솔직하게 믿자. 우리의 구원의 근거는 우리의 감정에 의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말씀하셨다면 그대로 믿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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