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주석(전권)

존 칼빈주석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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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安教会=Heian Church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 로마서8:26-39 -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

 

하나님께서 회개시키시고, 믿게 하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모든 것"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그것 안에는 낙심할 만한 일도 있고, 실패한 일도 있고, 심지어 실수하고 죄를 범한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이 선을 이루는 데 사용된다.

 

1.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 (26-30)

 

(1)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6-27)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라는 말은, 우리는 이와 같은 성령의 도우심을 인하여 우리가 우리의 구속을 고통하고 탄식하여 갈급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정하신 뜻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라는 말은, 하나님의 영이 "친히 간구하신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첫째로 그가 실제로 자신을 낮추어 간구자로서 기도하거나 탄식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우리의 심령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기에 합당한 기도를 하도록 감화하시기 때문이다. 둘째로 성령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감화하시되 이와 같은 기도들이 간절한 까닭에 하늘에까지 상달되도록 해주신다.

 

(2)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8)

"우리가 알거니와"라는 말은, 바울이 의도하는 바는 분명하다. 비록 택함을 받은 자들과 유기된 자들이 구별 없이 비슷한 악들을 범하게 되지만, 그러나 그들 간에는 큰 차이가 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신자들의 경우는 고통을 통해서 깨우침을 주시고, 그리고서는 그들이 구원을 얻게 하여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이 역경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기에 그가 한 말은, ‘성도들에게 생기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주장하시기 때문에 세상이 해로 여기는 것이 결국은 그들에게는 유익이 된다.’고 한 것과 같다.

 

어거스틴은 성도들의 죄마저도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해를 끼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의 구원을 이루는데, 이바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거스틴의 이 말은 사실이기는 하지만, 고난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본문과는 관련이 없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이라는 말은,

바울이 우리에게 교훈하기를, 그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로 간주한 그 사람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미리 선택되었다고 한 것이다.

바울이 이와 같은 순서에 대해 유의하고 있는 것은, 성도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들이 그들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라고 사실이 제일 원인되는 하나님의 자유로운 수양에 근거한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알도록 하기 위함이다.

 

참으로, 바울은 신자들이 하나님에 의해서 부르심을 받기 전에는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밝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바울은 다른 곳에서도 또한 언급하고 있는데, 거기에 보면, 갈라디아 교인들이 하나님을 알기 전에 그들이 먼저 하나님에게 아신 바 되었다고 말씀되어 있다(4:9).

바울이 말하고 있는 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의 경우에는 환난이 구원을 이루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먼저 값없이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때에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고 하는 요한의 말도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더욱이나, 바울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부르심"은 넓은 의미로 쓰여 있다. 그것은 그가 곧 이어서 말하게 될 선택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바울이 말하는 부르심은 인간들이 추구하는 과정에 다만 반대되는 것뿐이다.

바울은 말하기를, ‘신자들은 그들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 경건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인도함을 받는다. 이는 그가 그들을 선택하여 그의 특별한 백성들이 되게 하셨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이다.

 

""이라는 단어는 인간들이 그들이 보답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배제하고 있음에 분명하다. 이는 마치 우리가 선택받게 된 원인들을 하나님의 은밀하시고 선하신 뜻 외에 다른 곳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고 바울이 말한 것과도 같다.

여기에 대해서는 에베소서 1장과 디모데 후서 1장에 더욱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거기에 보면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의가 또한 분명하게 대조되어 진술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선택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은, 그가 곧 이어서 첨부하여 말하고자 한 주제, 즉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에게 순복하게 하는 환난들이 하나님의 동일한 작정에 의해서 우리를 위하여 결정되었다는 것을 말해 주기 위함이었다고 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바울이 이같이 진술하는 목적은 마치 필연의 사슬에 의한 것처럼 우리의 구원을 십자가 지는 것과 연결을 지으려는데 있었다.

 

(3)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29)

신자들이 당하는 모든 환난들은 신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에게 순복하게 하는 단지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바울이 선택의 바로 그 순서에 의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에 대한 필연성을 이전에 선언한 바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선택(우리는 이 선택으로 말미암아 예정을 입어 생명에 이르게 되었다.)을 부인하지 않고,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우리는 이 형상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영광에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다.)을 우리 몸에 지니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 한, 우리는 환난으로 말미암아 슬퍼하거나 괴로워하거나 부담을 느낄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바울이 여기에 언급해 놓은 하나님의 예지는, 어떤 미숙한 사람들이 어리석게 생각하는 대로, 단순히 미리 아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언제나 자기의 자녀들을 버림받는 자들과 구별해 오신 수양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베드로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미리 아심을 따라 신자들이 택함을 받아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에 이르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므로 내가 방금 언급한 그 미숙한 사람들은 어리석게 결론 내리기를, 하나님께서는 그의 은혜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을 것으로 그가 미리 아신 자들만을 선택하셨다고 했다.

베드로는 신자들이 모두 그들 개인의 공로 때문에 듣기 좋은 말을 하지 않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원한 뜻을 회상하게 하여 그들에게는 선택받을 자격이 전혀 없다는 것을 선언하였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또한 하나님의 뜻에 관하여 그가 앞에서 기술하였던 것들을 말을 바꾸어 반복하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그가 원하시는 자들을 양자로 삼을 때, 그 자신 외에는 아무 것에 대해서도 미리 아시는 것이 없으시며, 그가 선택하고자 계획하신 자들을 단지 선발하셨기 때문이다.

 

"미리 정하다"라고 번역이 되어 있는 헬라어 동사에 의하여 본 구절의 전후 사정을 알 수가 있다. 바울이 의미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그가 양자로 삼은 모든 자들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지니도록 결정하셨다는 것일 뿐이다. 그가 신자들이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한 것은, 하나님의 모든 아들들이 본받아야 할 살아있고 두드러진 본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기 위함에서였다.

 

본 구절을 요약해서 말하자면, 값없는 수양(여기에 우리의 구원이 있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십자가를 지도록 택정하셨다고 하는 작정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먼저 하나님의 독생자를 본받지 않는 자들은 아무도 천국의 상속자가 될 수 없다.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라는 말은, 바울이 그리스도를 "맏아들"이라고 부른 것은, 만일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모든 아들들 중에서 탁월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하면, 그가 우리에게 본으로서 주어지신 것은 당연한 것이며, 따라서 그가 기꺼이 당하신 일은 어느 것이나 우리가 거절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단지 표현하고자 함이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그가 그의 아들에게 부여하신 권위와 지위에 대해 모든 수단을 다하여 증거하신 것을 보면, 그는 그가 자기의 왕국의 상속자들로 삼으신 모든 자들이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4)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라는 말은, 바울이 이제 점층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보다 더 분명한 논증에 의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을 본받을 때 우리의 구원이 참으로 가능케 된다고 하는 사실을 확증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바울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은, 우리가 십자가에 동참하는 것이 소명, 칭의, 그리고 마침내는 영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까닭에 그것들을 결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점이다.

 

사도가 하는 말의 의미를 독자들이 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리 정하다"라는 단어가 선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이 십자가를 의무적으로 지도록, 작정하신 하나님의 뜻, 또는 작정을 가리킨다고 하는 나의 앞서의 말을 되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제 "부르심을 받았다"라고 바울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바, 그 의미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 대하여 결정해 놓으신 것을 감추지 않으시고, 그것을 나타내 보여주셨다고 하는 뜻인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침착성과 인내심을 가지고 그들에게 주어진 상태를 그들이 참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부르심"은 그것보다 더 열등한 것으로 되어 있는 비밀로 가려진 선택과 구별되어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정해 놓으신 상태에 대해서 아무도 전혀 알지 못한다고 하는 반론이 제기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반론을 예방하기 위해서, 사도는 하나님이 그의 부르심으로 말미암아 공공연하게 그의 숨긴 계획을 증거해 주시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와 같은 증거는 외적인 복음 선포를 통해서만 된 것이 아니고, 그 선포와 관련하여 성령의 능력을 동반하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그의 입에서 나온 말씀으로 일하실 뿐만 아니라, 내적으로 이끄시는 택함 받은 자들을 바울이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의롭다 하심"이란 신자가 부르심을 받는 시간부터 그가 죽는 순간까지의 하나님의 은혜가 계속되는 과정을 포함하는 것으로 넓게 해석하는 것이 좋을 줄로 안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서 전체를 통하여 이 단어를 공로가 없이 되는 의의 전가의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이 의미를 무시할 필요는 없다.

 

여기서 한 가지 첨부해서 밝혀두어야 할 것은, 바울이 히브리 어법을 채택하여 그가 여기서 사용한 동사는 현재형 대신에 과거형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의 계속된 행위임에 거의 틀림이 없다.

그러기에 다음과 같이 의역될 수가 있겠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뜻에 따라 지금 십자가를 지게 하는 자들을 그가 부르시고, 동시에 의롭다하시어 구원의 소망을 갖게 하셨으며, 그리하여 그들이 낮아짐의 신분 가운데 있을 때 그들의 영광을 볼품이 없게 만드는 것 같지만, 하나님과 천사들이 보실 때에는 그 영광은 언제나 완전함 가운데서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이 점층법에 의하여 나타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신자들이 고통(이 고통으로 말미암아 신자들이 현재 낮아짐의 신분 가운데 있게 된 것임)을 당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천국의 영광을 얻고, 그리고 그들이 지금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에 이르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점이다.

 

2.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 (31-39)

 

(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라는 말에서, 바울은 이 말씀들을 통해서, 모든 시험을 극복할 수 있는 무적의 용기는 하나님의 부성의 은총에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이 일"은 구원의 일을 가리킨다. 세상에서도 최고 권력자가 어떤 이를 위하면 그를 대적할 자가 없을 것이다. 우주의 최고 권력자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위하시는 자들을 대적할 자가 누구이겠는가? 인간의 최대의 대적자는 사탄인데 심지어 그도 욥기 1장에 증거한 대로 하나님의 허락하신 범위 안에서만 활동할 수 있었다.

 

(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2-33)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의 독생자를 주신 일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이다(3:16; 5:8).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선물인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하다면, 그 외의 것을 무엇이든지 주지 않으시겠는가?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라는 말은, 우리가 앞에서 시종일관하여 진술했던 대로, 여기서 유의할 점은, 바울에 의하면, ‘의롭다함을 받는 것이란 하나님의 사형 선고를 면제받음으로 해서 의로운 것으로 간주되는 것을 단지 의미한다는 것이다.

 

본 구절에서 이것을 입증하는 데에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바울은 본 구절에서 하나의 명제를 무효화시키고 있다. , 죄를 면해 주는 것과 송사하는 것은 반대되는 명제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불리한 송사를 전혀 인정하지 않으실 것은, 그가 우리에게 모든 죄의 책임을 사면해 주셨기 때문이다.

확실히, 마귀는 모든 경건한 자들을 송사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 자체와 경건한 자들 자신의 양심도 그들을 책망한다. 그러나 이것들 중에 어느 것에 의해서도 그들을 의롭다 하시는 재판관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어떠한 대적자도 우리의 구원을 뒤흔들 수가 없으며, 더구나 파괴할 수는 전혀 없다.

 

바울은 또한 그들을 "택하신 자들"이라 부르고 있으며, 자기 자신도 그들의 수에 들어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그가 그와 같은 지식을 갖게 된 것은, 어떤 궤변론자들이 거짓되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특별 계시에 의해서가 아니라, 모든 경건한 자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지각력에 의해서였다.

그러므로 여기서 택함 받은 자들에 대하여 사용된 진술은, 바울의 예를 따라, 모든 경건한 자들의 자신들에게 적용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만일 그가 선택을 하나님의 은밀한 계획으로 간주하여 언급하지 않고 덮어 두어 버렸다고 하면, 이 선택 교리는 아무런 열기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전혀 생기가 없는 교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경건한 자들이 자신들에게 적용해야 할 어떤 것을 바울이 여기서 의도적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우리가 받은 부르심을 검토하도록 인도함을 받고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임에 틀림없다.

 

(3)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4)

"누가 정죄하리요."라는 말은, 마귀와 사망과 죄와 지옥의 문들에 대하여 능히 승리할 수 있는 이 위대한 확신이 모든 경건한 자들의 심령 속에 깊이 심어져야 하는 것은, 만일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것이고, 성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하신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하면, 우리의 신앙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원의 불확실성을 운운하는 스콜라주의적인 교리처럼 유독하고 파괴적인 개념은 없는 것이다.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라는 말은, 우리가 그의 이 대언을 우리의 육신적으로 판단해서 안 되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벌려 가련하게 성부 하나님께 애원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언해 주시는 것으로 말하는 것이 정당한 것은, 그가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성부 앞에 계속적으로 나타나시기 때문이며, 그러기에 그의 생기 있는 기도가 성부를 화목하게 하고 우리의 소원을 성부께서 기꺼이 들어주시게 하는 효력이 있다고 말하는 것 또한 옳은 것이다.

 

(4)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라는 말은, 신적 자비를 확신하는 사람들은 가장 절박한 환난 가운데서도 설 수가 있다.

 

우리의 구원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너무 크고 확실하기 때문에 아무도 그 사랑의 줄을 끊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 사랑에 근거한 우리의 구원은 영원한 보장을 가진다. 우리의 삶은 고난과 핍박의 삶이지만, 우리는 어떠한 고난의 현실 속에서도 두려워하거나 낙심치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헐벗음이나 위험이나 칼이나 그 어떤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실이 어렵고 힘들지라도,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할 수 있다. 우리의 구원과 승리는 완전하고 확실하다.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긴다.


(5)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 능력이나"라는 말은, "권세자들""능력"또한 천사들을 의미하는데, 그들이 신적 능력의 으뜸 되는 도구들이기에 그렇게 이름이 지어진 것이다.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라는 말은, 비록 바울이 과장된 표현을 사용하여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는 환난의 기간이 아무리 길다고 할지라도 주님의 은혜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는 것을 사실상 단언하고 있다.

 

여기에 성도의 넉넉한 승리를 단언한 이유가 있다. 성도는 영광의 구원에 이를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우리를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미 하나님의 선택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성령의 인치심에서 확증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미 우리에게 부어졌고 그 사랑에서 끊을 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고난의 현실에서도 낙심치 않고 담대히 행할 수 있다.

 

이 말씀을 첨부하는 것이 필요했던 것은,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악들을 인하여 느끼는 슬픔뿐만 아니라, 절박한 위험들로 인하여 우리가 당황하게 될 수 있는 두려움과 걱정과 더불어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이 뜻하는 것은, 악의 세력들이 아무리 오래 버티고서 우리를 괴롭힐지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양자된 것을 믿는 우리의 신앙이 그것에 의해서 결코 파괴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하여 아무 염려하지 말라는 것이다.

 

- 존 칼빈 주석을 중심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