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주석(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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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安教会=Heian Church

성령을 따르는 자

- 로마서8:1-14 -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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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육신을 좇지 않고 성령을 좇아 행하는 사람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 안에는 성령께서 거하신다. 성령께서는 그의 중생한 영을 감동하시고 지도하신다. 그러므로 그는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산다.

 

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1-4)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1)

"그러므로 이제 ...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는 말은, 율법은 우리에게 죄를 깨닫게 하고 우리로 사망에 이르게 한다. 그러나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복음으로 우리에게 의를 주시고 죄와 사망의 율법으로부터 자유하게 하셨고, 영원한 생명을 은혜로 주셨으므로 성도들에게는 정죄함이 없다.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라는 말에서, "성령"은 우리의 영혼에 그리스도의 피를 뿌려서 우리에게서 죄책의 얼룩을 제거할 뿐만 아니라, 우리를 성별하여 참된 순결에 이르게 한다.

바울은 덧붙여 말하기를, 성령이 생명을 준다고 하고 있다. 히브리 문법에 따르면, 소유격은 형용사로 취급하여 해석해야 한다. 따라서 "생명의 성령"생명을 주는 성령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율법의 의문에 매이게 하는 자들은 그를 죽음에 복종케 하는 셈이 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한편, 율법의 의문에서 결과하는 육신의 왕 노릇과 사망의 폭군노릇을 바울은 "죄와 사망의 법"이라고 칭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율법은 생명의 성령의 법과 죄와 사망의 법 중간에 위치한 것이 된다. 하나님의 율법은 의를 가르쳐 주기는 하지만 그것을 줄 수 없으며, 대신 우리를 죄에 매이게 할 뿐만 아니라 더 강한 오랏줄로 사망에 매이게 할 뿐인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의 의미는 이렇다. 사람들이 율법의 의무아래 있는 한, 그들은 죄의 굴레에 매여 있게 됨으로 해서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율법이 그들을 정죄하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은 육체의 무절제한 정욕을 바로잡음으로써 우리 안에 있는 죄의 법을 폐하며, 동시에 사망의 죄책에서 우리를 건져내 준다..

 

그는 우리가 율법의 외적인 교훈에 의해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부인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듭나게 되는 때에 동시적으로 또한 값없는 용서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받게 된다.

그리하여 더 이상 죄의 저주가 우리에게 있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은 마치 바울이 중생의 은혜가 의의 전가와 결코 분리될 수 없다고 말한 것과도 같다.

 

(칼빈)는 어떤 주석가들처럼, "죄와 사망의 법"을 하나님의 율법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싶지 않다. 이것은 지나치게 귀에 거슬리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비록 율법이 죄를 증가시킴으로써 사망을 가져올 수도 있지만, 바울은 이러한 비위에 거슬리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극히 삼갔던 것이다.

또 나의 생각에는, “죄의 법이 육체의 정욕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서, 바울이 자기가 그것을 정복한 것으로 말을 한 것처럼 설명하는 자들의 견해에도 또한 찬성할 수가 없다. 나로서는, ""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놓아두고 싶으며, 에라스무스처럼, ‘권세또는 세력으로 해석하고 싶지 않다. 바울은 결코 깊이 생각하지 않고 경솔하게 하나님의 율법을 언급하지 않았다.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이라는 말에서, 바울은 율법을 그 연약성을 인하여 불경하게 자기가 비난하고 있는 것으로 아무도 오해하지 않도록 하고, 또한 율법을 의식상의 규례에 국한시켜 아무도 생각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는 밝히 말하기를, 이러한 연약성은 율법 안에 있는 어떤 흠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육신의 부패 때문이라고 했다. 만일 누구든지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하게 이행할 수만 있다고 하면, 그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교훈에 관한 한 율법이 우리를 의롭게 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이는 율법이 의의 완전한 법칙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육신이 그 의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 율법의 전 능력이 무산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로써 의식법의 경우에만 의롭게 하는 능력이 없다고 바울이 말한 것으로 생각하는 자들의 오류와 망상이 논박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바울은 우리 자신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분명하게 주장하고 있고, 율법의 교훈에는 아무런 흠결도 없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 자기 아들을 ... 보내어"라는 말에서. 바울은 하늘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께서 자기 아들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의를 회복시켜 주는 방식에 대해 이제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바로 그 육신에 죄를 정하셨다. , 그는 우리의 죄상을 지워버림으로써 그의 면전에서 우리를 얽매이게 한 죄책을 폐지하신 것이다. 그가 그리스도에게 죄를 정함으로써 우리가 의에 이르게 된 것은, 우리의 죄책이 제거된 까닭에 우리가 사면을 받게 되어,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간주하신 때문이다.

 

우선 바울이 그리스도께서 "보내어졌다고" 말한 것은, 그 의가 우리에게는 전혀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기 위함인데, 이는 그 의를 그리스도에게서 찾아야 하기 때문인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공로를 믿는 것은 헛된 일이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이 기꺼이 승낙해 주는 때에 한해서만 그들이 의로우며, 바꾸어 말하면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육신으로 성취하신 속죄에서 의를 빌려 오기 때문이다.

 

바울은 말하기를, 그리스도께서는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셨다고 하고 있다. 비록 그리스도의 육신은 전혀 죄로 더럽혀진 것이 없지만, 그 육신이 죄있는 모양을 취한 것은, 우리의 죄 때문에 그가 형벌을 당했고, 그리고 그것이 사망에 굴복되기나 한 것처럼 분명히 사망이 그리스도의 육신에 그것의 모든 권세를 행사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대제사장께서는 자신의 체험을 통하여 연약한 자들을 돕는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참뜻을 알아야 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병약한 육신을 기꺼이 입으신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죄 있는 우리 인간들에게 보다 더욱 동정적일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의 죄 있는 성품과 닮은 어떤 유사점이 그에게서 나타났다.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4)

"상반절의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라는 구문에서 우리가 추론할 수 있는 것은, 바울이 여기서 값없는 칭의 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신에게 화목케 하는 용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만일 죄를 이기는 방법을 거듭나게 하는 영에 의하여 우리가 배우게 되는 것으로 바울이 말하려고 했다면, 그가 무엇 때문에 이 구절을 덧붙였겠는가? 그러나 바울이 신자들에게 값없는 사죄를 약속하고 나서, 회개하고 믿음을 갖는 자들에게, 그래서 육신을 탐닉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남용하지 않는 자들에게 이 교리를 그가 국한시키는 것은 적절하다.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속죄되었다는 것을 바울이 분명하게 확언한 것은, 율법이 우리에게 의를 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율법에 요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만일 우리에게 율법을 성취할 만한 능력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 밖의 다른 대비책이 강구될 하등의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마치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공의를 요구하신 것은 우리 인간들의 능력의 성격과 범위를 그가 인정하신 때문인 것으로 착각하고서, 율법의 교훈들에 의하여 인간의 능력을 측정하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다.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라는 말을, 어떤 주석가들은 그리스도의 영에 의하여 거듭난 사람들의 경우 율법을 그들이 이루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그 주석가들은 바울이 의미하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그릇된 해석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신자들은 그들이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사는 동안에는, 율법의 의가 자기들에게서 완성될 만큼 믿음의 진보를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구절의 말씀을 죄 용서에 적용하여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순종이 우리에게 전가됨으로써 율법이 충족되고, 그리하여 우리가 의롭다고 여김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율법이 요구하는 완전이 이로 말미암아 육체에 나타났으며, 그래서 율법의 엄격한 요구가 더 이상 우리를 정죄할 힘을 갖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의를 그가 그의 영의 매는 줄로 자신에게 연합되게 한 사람들에게만 전가시켜 주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죄의 사역자로 오해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바울은 중생을 거듭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의 부성적인 면죄 교리를 악용하여 육신의 정욕에 빠지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한편 다른 이들은 그 교리가 의로운 삶을 추구하려는 마음에 찬물을 끼얹기라도 한 것처럼, 이 교리를 악의를 가지고 비방한다.

 

2. 성령을 따르는 자는 생명과 평안이다. (5-8)

 

(1)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이라는 말에서, "육신에 있는 것""육신을 따라 행하는 것"이 의미하는 바 이 정의를 바울이 덧붙여 말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처음에는 정확하게 구별하여 밝히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뒤에 가서 알게 되는 대로, 비록 신자들이 여전히 그들의 육신에 매여 있기는 하지만, 그들에게 좋은 소망을 주어 격려하려는 것이 바울의 목적이다.

 

바울은 신자들을 격려하여 좋은 소망을 갖게 해주는데, 이것은 신자들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의를 생각하도록 되어 있는 경우이다. 성령이 지배하는 경우는 언제나,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하는 은혜의 표적이다. 이는 마치 성령이 소멸되고 육신의 나라가 우세한 곳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존재하지 않는 것과도 같다.

 

(칼빈)는 여기서 다시 한 번 앞서 내가 준 권면의 말을 간단히 반복하여 말하겠다. "육신에 있는 것" , "육신을 좇는 것"은 거듭남의 은사를 결여하고 있는 것과도 같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본래의 인간그래도 계속해서 사는 사람들은 모두가 그러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2)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6)

본절의 육신과 영은 단지 사람의 육체와 영을 가리키지 않고, 사람의 죄성을 가진 몸 혹은 몸의 죄성과 성령을 가리킨다. 구원받은 사람의 내적 싸움은 죄성을 가진 몸 혹은 몸의 죄성과 성령의 대립이다. 사람은 육신의 죄성을 따라 살면 그 결과는 죽음이지만, 성령을 따라 육체의 소욕을 죽이며 산다면, 그 결과는 의와 생명과 평안인 것이다.

 

(3)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7-8)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라는 말은, 궤변론자들이 대단한 것으로 알고서 격찬하는 자유 의지가 갖고 있는 능력이란 고작 그런 것이다. 그들 자신들이 공공연하게 반박하는 것, 즉 우리 인간으로서는 우리의 감정을 율법에 굴복시킬 수 없다고 하는 그 점을 바울이 여기서 명맥하게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자랑하기를, 만일 인간의 마음이 성령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도움을 받는다고 하면 그 마음이 아무 쪽으로나 향할 수가 있고, 만일 성령께서만이 우리에게 도움을 준다고 하면, 우리의 능력으로 선악을 자유로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선택 또는 거부가 있을 뿐이다.

 

그들은 또한 생각하기를, 우리가 우리 자신의 자유 의지로 준비해 놓은 선한 행위가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 바울은 선언하기를, 우리의 마음은 지나치게 딱딱하고 완악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멍에에 본래 굴복될 수가 결코 없다는 것이다. 그는 감정들 중에 한두 가지를 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부정한 표현을 사용하여 우리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감정들을 망라하고 있다.

그러므로 기독인의 마음은 자유 의지에 대한 비기독교철학을 멀리해야 하며, 우리 모두 자신이 본질상 죄의 종인 것을 인식하여, 그리스도의 은혜로 자유함을 받아 자유로운 몸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여타의 자유를 자랑하는 것은 극도로 우둔한 소치인 것이다.

 

결국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않을 뿐 아니라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인간은 심히 죄악되며 무능력해졌다. 그러므로 본성 그대로의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성화는 본성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성령의 도우심으로만 된다.

 

3.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 (9-11)

 

(1)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9)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라는 말은, 바울이 그가 이 서신을 써 보내고 있는 수신자들에게 일반적인 진리를 가정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것은, 그의 강화를 특별히 그들에게 말해 줌으로써 보다 그들을 강력하게 감동시켜 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저주를 제거해 준 사람들의 수에 그들이 속했다는 것을 방금 주어진 정의에서 확실하게 결론지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의 영이 택한 자들에게서 어떤 능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어떤 열매들을 맺고 있는가를 설명함으로써 그들에게 바울은 새 생명을 권장하고 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이라는 말은, 바울은 적절하게 말씀을 덧붙여 가지고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을 좀 더 면밀하게 성찰케 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세상의 자녀들로부터 구별되는 가장 확실한 표지는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중생하여 정결함과 거룩함에 이르는 것이다.

 

바울의 설명에 의하면, 영적인 사람들이란 하나님께서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다스리시는 자들이요, 자신들의 충동에 근거하여 이성에 순종하는 자들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이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오늘날은 성령 충만이 아무에게도 있지 않다), 비록 그들이 그들 안에 남아 있는 육체의 찌꺼기들을 발견하게 되지만, 그래도 그들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을 그들이 모시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영을 좇는 자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령이 그들 안에 내주하게 될 때에는 반드시 그들의 중요한 기능들을 지배하시는 것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라는 말은,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육신을 부인하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이 말씀을 덧붙이고 있다. 성령의 나라에서는 육신이 전폐된다. 성령께서 내주하시어 왕 노릇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자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그의 영과 분리시키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죽은 형상이나 시체로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도가 말씀하신 바, 값없는 사죄가 거듭나게 하는 성령과 불가분하다는 권면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그의 영과 분리시키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갈기갈기 찌는 것이 되고 만다.

 

(2)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이라는 말은, 바울은 이제 그가 성령에 관하여 앞서 언급한 것들을 그리스도에게 적용하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방식을 나타내 보이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성별하여 자신을 위한 성전으로 삼으신 것처럼, 바로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미 언급한 바, 하나님의 아들들이 영적인 존재들로 간주된 것은 온전하고 흠이 없이 완전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 안에서 시작된 새 생명 때문이라는 것을 바울이 이제 보다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라는 단어가 영혼을 의미하지 않고, 거듭나게 하는 성령을 가리킨다는 것을 이미 독자들에게 말씀드린 바 있다.

그런데 바울이 거듭나게 하는 이 성령을 "생명"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사시며 활동하실 뿐만 아니라, 그의 능력으로 우리를 소생시키어 우리의 죽을 육신을 멸하시고 마침내는 우리를 완전히 새롭게 하시기 때문이다.

 

한편, ""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세속적인 불순물이 아직 정화되지 않은 완고하고 무감각한 덩어리를 의미한다. 그 몸은 조잡한 것만을 즐거워한다. 그렇지 않다면, 죄에 대한 책임을 몸에 돌리는 것은 불합리할 것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영혼은 결코 생명일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자체로서는 저절로 생명을 가질 수도 없다. 그러므로 바울이 의미하는 바는, 에서는 죄가 우리를 정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영이 승리하신다는 것이다.

첫 열매들만이 우리에게 주어졌다고 해도 아무런 장애될 것이 없다. 왜냐하면 성령의 한 줄기 섬광마저도 생명의 씨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하늘에 계시지만 신성으로 그의 영 곧 성령을 통하여 우리 속에 계신다. 우리의 몸은 죄로 인해 죽은 것과 같고 또 어느 날 죽게 될 것이지만, 우리 속에 계신 성령께서는 생명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자이시다. 성령께서 우리 속에 생명을 시작하시고 유지시키시는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의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고 말한다.

 

(3)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11)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라는 말은, 사도가 의미하는바 "죽을 몸"이란 아직도 사망에 굴복한 채로 남아있는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가리킨다.

바울의 일반적인 관례는 이 명칭(죽을 몸)을 우리의 조악한 부분에 적용하는 데 있다. 이로 보건대 바울은 순간적으로 일어나게 될 마지막 부활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고, 성령의 계속적인 활동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으로 결론을 지을 수가 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그의 계속적인 활동에 의해서 점진적으로 육신의 찌꺼기들을 제어하시며 우리 안에서 거룩한 생명을 새롭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이 우리 속에 계시다면 우리의 영은 장차 그 영으로 인하여 살아날 것이다. 모든 구원을 받은 사람들 속에 계시는 성령께서 그 일을 행하신다.

 

4. 하나님의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다. (12-14)

 

(1)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라는 말은, 여기서 바울의 문장은 다른 부분, , 우리가 성령께 빚진 자들이라는 대구가 생략되어 있다. 그러나 문장의 의미는 아무런 모호한 점이 전혀 없다. 바울의 관례가 원리에서 권면의 말씀을 항상 끌어내는 데 있듯이, 이 결론의 말씀도 강력하게 권고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다른 구절에서도 이렇게 그는 경고하여,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4:30)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또한 갈라디아서5:25에서,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라고 권면한다.

 

우리의 본분인 하나님의 의에 전념하기 위해서 육욕을 포기하는 때에 우리가 성령으로 행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본받아야 할 논리인 바, 우리에게는 아무런 힘도 없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다고 부질없이 말하는 어떤 욕설장이들의 통상적인 관례와는 같지 않다. 그러나 우리에게 제공되어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멸과 태만으로 소멸해 버린다고 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된다.

 

(2)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라는 말은, 바울은 그들의 나태함을 엄정하게 바로잡기 위해서 경고를 덧붙이고 있다. 이 경고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영이 없이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받는 것으로 자랑하는 자들을 효과적으로 반박할 수 있게 해준다.

 

사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만 의롭다함을 받는 모든 자들이 그들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도록 주님에 의하여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 또한 사실이요 확실하다. 그러므로 신자들이 그를 신봉하는 것은 칭의 뿐만 아니라 성화를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이 두 가지 목적을 위하여 우리에게 보낸 바가 되신 것은, 그릇된 불건전한 신앙에 의해 그를 갈기갈기 찢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는 말은, 바울이 이처럼 그의 견해를 조절하고 있는 것은, 아직도 자신들이 허물투성이임을 의식하고 있는 경건한 자들에게 절망감을 느끼게 하지 않기 위함이다.

비록 우리가 아직도 죄에 굴복될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육신을 죽이기를 힘쓸 것 같으면, 우리가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그는 여전히 약속하고 있다. 바울은 육신의 멸절을 엄격하게 요구하고 있지 않고, 다만 육신의 정욕을 정복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일 것을 우리에게 명하고 있을 뿐이다.

 

(3)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라는 말은 바로 앞서 한 말씀에 대한 증명이다. 하나님의 영으로 다스림을 받는 자만이 마침내 하나님의 아들로 여김을 받는다고 하는 것을 바울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데, 이는 성령에 의하여 인도함을 받고 있는 이 표시가 있어야 만이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시기 때문이다.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유명무실한 위선자들의 헛된 자랑이 헛된 것이 되고, 신자들은 이렇게 해서 그들의 구원에 대한 의심할 여지가 없는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가 다양하다는 것을 알아보는 것은 적절하다 하겠다. 모든 피조물이 보존되고 기동하는 성령의 보편적인 역사가 있다. 또한 사람들에게만 특유하게 있는 성령의 역사들이 있다. 이 역사들은 그것들의 성격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바울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성령은 성화를 의미하고 있으며, 주님께서는 그가 택한 자들 외에는 아무에게도 이 성화의 은총을 허락하지 않으신다.

 

- 존 칼빈 주석을 중심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