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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安教会=Heian Church



율법으로부터 자유

- 로마서7:1-13 -

 

1. 형제들아 내가 법을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2.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3.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8.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9.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12.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13.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 말미암아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얻었다. 이것은 율법의 공포에서 벗어나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의와 선을 행하는 힘이 된다. 우리는 이제 율법 조문에 따라 행하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의와 선을 행하는 자들이 되었다.

 

1. 그리스도는 우리를 율법에서 자유하게 하여 우리를 그 자신에게 결합시켰다. (1-4)

 

(1) "형제들아 내가 법을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1)

"내가 법을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라는 말은, 바울은 부분적으로는 유대인들이나 다른 이방인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고, 부분적으로는 보통 사람들과 신원 미상의 사람들에게 하고 있다. 실은, 바울은 특별히 유대인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율법의 폐기에 대해 그들과 논쟁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들을 꼬집어 뜯듯이 다루고 있는 것으로 그들이 생각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는 그가 통상적이고 일반적으로 알려진 원리를 취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원리는 어려서부터 율법의 가르침으로 양육을 받았던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었던 것이다.

 

(2)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2-3)

"남편 있는 여인이"라는 말은, 바울은 은유를 들어, 우리가 율법에서 자유롭게 되어 율법이 더 이상 정당하게 그리고 그 자체의 권리로는 그것의 힘을 우리에게 행사하지 못하게 된 것을 증명하고 있다.

비유의 순서를 지키기 위해서 그는 여자란 그녀의 남편이 죽은 후에는 결혼의 결합관계로부터 자유하게 된다는 것을 말했어야만 했다. 율법-그것은 우리에게 대해서 남편의 위치를 차지한다.-은 우리에게 대해서 죽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의 세력으로부터 자유롭다. 만일 바울이 율법은 죽었다고 말했더라면, 그는 그의 거친 말씨로 말미암아 유대인들의 감정을 상하게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 그는 그의 표현을 바꾸어 우리가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고 말했다.

율법은 그것이 우리에게 대해서 죽게 된 때까지 우리의 남편이었던 바, 그의 멍에 아래 우리가 매어 있었다.

 

(3)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4)

율법이 죽은 뒤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취하여 자기에게로 맞아들였다. ,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율법에서 자유하게 하여 우리를 그 자신에게 결합시켰다.

그러므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에게 우리가 연합되었으므로, 우리는 그에게만 매달려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가 부활하신 후 영원한 것처럼, 우리 또한 내세에서는 그와 결코 이혼하는 일이 없게 될 것이다.

 

더욱이, 법이라는 단어가 어디에서나 같은 의미로 여기서는 사용되어 있지 않다. 한 곳에서는 그것이 결혼생활의 상호 권리를 의미하고, 다른 곳에서는 아내가 매여 있는 남편의 권위를 의미하며, 또 다른 곳에서는 모세의 가르침을 의미한다.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모세의 사역에 고유한 율법의 그 부분만을 바울이 여기서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율법이 십계명에 관하여 어떤 점에서든 폐기되어 있는 것으로 결코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른 것을 가르쳐 주시고 그리고 우리의 삶을 명하신 것은, 하나님의 뜻이 영원히 서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언급된 석방(벗어남)은 율법에서 가르치는 바 의로부터가 아니라, 율법의 엄격한 요구로부터와 율법의 요구에 뒤따르는 저주로부터임을 우리는 주의하여 주목해야 한다.

그러므로 폐기되는 것은 율법이 규정하고 있는 선한 생활의 규범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은 자유와 반대되는 성질의 것, 즉 절대 완전에 대한 요구이다. 우리가 이 완전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은 영원한 사망의 죄책 아래 우리를 매이게 한다.

 

2. 우리는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다. (5-6)

 

(1)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이라는 말은, 우리가 율법의 지배에 복종하였던 때의 우리의 상태를 서술함에 있어서, 바울은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였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이 말씀으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율법의 지배 아래 있는 모든 사람들이 얻는 바의 유일한 혜택이란 그들의 귀가 율법의 외적인 소리를 듣는 것이며, 그들이 내면적으로 성령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율법이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도록 더 좋은 처방책이 나오기까지는 대체로 죄가 완악한 채로 남아 있게 되는 것이 틀림없다.

 

또한 성경에 흔히 쓰이는 표현인, "육신 가운데 있다"라는 말씀에 주의하라. 이 말씀의 뜻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택한 백성에게 베푸신 그 특별한 은혜가 없이 그저 일반적인 본성의 은사들만을 부여받았다는 것이다.

만일 현재의 생명 상태가 전적으로 죄가 많다고 한다면, 우리 영혼의 어떤 부분도 본래적으로 순결하지 않으며, 우리의 자유 의지가 갖고 있는 유일한 능력은 화살처럼 사방으로 악한 감정들을 내쏘아 보낼 것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라는 말은, 율법이 우리 안에서 악한 생각들을 야기 시켜서, 그것들로 인하여 우리의 모든 지체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우리의 악한 생각들에 속박되지 않는 지체란 아무 것도 없었다.

율법의 행위는, 우리의 내면의 교사이신 성령이 부재할 때에, 우리의 마음을 더욱 자극시켜 그러한 정욕들 가운데로 돌진하게 한다.

 

바울이 여기서 율법을 인간의 부패한 본성과 비교하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본성이 부패한 인간의 완악성과 정욕은 의에 의하여 제어되어 억제하면 할수록, 더욱 격렬하게 폭발한다. 그는 다시금 덧붙여 말하기를, 우리의 육신의 감정이 율법의 지배를 받고 있는 한, 그것은 사망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다고 한다.

바울은 이처럼 율법은 그것 자체로서는 파괴적이었다고 증명한다. 사망을 초래하는 속박을 그렇게도 열렬하게 갈망하는 사람들은 완전히 바보들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2)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6)

"얽매였던 것"은 율법의 규례들을 가리킨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는 죄와 사망으로부터 뿐만 아니라, 또한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되었다. 우리는 율법에 대해 죽임을 당했고 율법으로부터 자유하게 되었다.

 

바울은 6:14에서도 너희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다고 말했었다. 또 그는 갈라디아서에서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해 강조하면서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었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으나,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않다고 말했고(3:23, 25),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하였다(5:1). 바울은 그 책에서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에 대해 분명하게 말했다.

 

"영의 새로운 것으로"라는 말은, 바울은 영과 의문을 대조시킨다. 우리의 의지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지를 따라 형성되었기 전에는 우리는 율법에서 밖으로 나타나 있는 외형적인 의문(문자)외에는 아무 것도 얻지를 못했다.

이 의문이 우리의 외적인 행위를 구속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조금도 우리의 정욕의 불길을 제어하지 못한다. 바울이 우리가 새 사람 된 것을 성령의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은, 새 사람이 옛 사람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의문이 묵은 것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 의문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될 때에 그것이 죽기 때문이다.

 

3. 율법이 하는 일은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다. (7-13)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7)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라는 말은, 죄는 율법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고 있다. 죄의 원인은 우리의 육신의 부패한 정욕이며, 율법 안에서 우리에게 선언되어 있는 하나님의 의에 대한 우리의 지식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를 알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율법이 없으면 정()과 사()이에 어떤 구별도 있을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율법이 없으면 자기도취로 말미암아 완전히 분별력을 결여하게 되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라는 말은, 죄에 대한 무지가-여기에 대해서는 바울이 앞서 말했다-자기 자신의 정욕을 깨닫지 못한 데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 보여준 앞 문장에 대한 설명이다. 바울은 일부러 한 가지 종류의 죄만을 다루고 있다. 탐심의 죄는 보다 은밀하고, 깊이 숨겨져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감정에 따라 판단하는 한, 그것에 결코 주의하지 않는다.

 

바울은 그가 탐심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고 자랑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이 죄가 그의 마음속에 잠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만큼 방종하지는 않는다. 그는 그의 의가 자신의 탐심으로 말미암아 방해 받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가 잠깐 그릇된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그가 마침내 죄인인 것을 깨달았을 그 때에 그는 탐심-아무 인간도 이것으로부터 자유하지 못한다.-이 율법에 의하여 금해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2)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8)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라는 말은, 모든 악은 죄와 육신의 부패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다. 율법은 단지 악이 이용하는 기회로서, 악의 근인(the occasion of evil)이다. 바울은 율법이 우리의 탐심을 자극하여 더욱 광적인 것으로 폭발하도록 하는 자극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고 있는 그 말씀들은 율법이 전달해 주는 죄에 대한 지식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마치 그가, “감추어져 있을 동안에는 아무튼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던 나의 모든 탐심을 율법이 내 안에서 들추어냈다고 말한 것과도 같다 하겠다.

그러나 육체는 율법에 의해서 보다 민감하게 충동을 받아 탐심을 품게 되며, 이렇게 해서 또한 자체를 드러낸다는 것을 나는 부인하지 않는다. 바울의 경우도 아마 이와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죄가 드러나는 것에 대해서 내가 말해온 것이 문맥에 보다 더 잘 들어맞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는 바울이 다음과 같이 즉시로 덧붙여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라는 말은, 바울은 위에서 그가 하는 말의 뜻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의 말의 요지는, 율법이 없으면 죄에 대한 지식이 묻혀 있다는 것이다.

 

(3)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9)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라는 말이 의도하는 바는 죄가 자기에 대하여 또는 자기 안에서 죽은 때가 있었음을 뜻하는 데 있다. 그가 언제든지 율법 없이 지냈던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내가 살았더니라는 문구는 그러나, 특별한 언외의 뜻(connotation)을 가지고 있다. 그가 살아있다고 하는 이유, 즉 비록 그 자신의 의에 대한 자신감으로 자만하고 있었지만, 그가 정말로 죽었을 때에 생명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이유는 율법이 부재한 데 있었다. 그 문장은 우리가 다음과 같이 즉, “내가 한 때 율법 없이 지냈을 때에, 내가 살아 있었다.”고 읽을 것 같으면, 그 뜻이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칼빈)는 이 표현이 강조 용법이라고 말한바 있다. 왜냐하면 그가 의롭다고 가장함으로 해서 그가 또한 살아있는 것으로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뜻은 이렇다. 내가 율법에 대한 지식을 버림으로 해서 죄를 지었을 때,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던 나의 죄가 잠잠하여 깊이 잠들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거의 죽은 것처럼 보였었다. 다른 한편, 나는 내가 죄인이라고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생명을 가진 것으로 생각하고서, 나는 나 자신으로 만족하였었다. 죄가 죽는 것은 사람이 사는 것이요, 또한 죄가 사는 것은 사람이 죽는 것이다.

 

"계명이 이르매"라는 말은, 바울은 이제 율법을 참되게 이해하기 시작하게 되었을 때, 율법이 이르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율법이 죽은 자에게서 죄를 깨우쳐준 것은, 그 율법이 바울에게 그의 마음의 깊은 곳에 가득 차 있는 부패가 얼마나 심각한 것이었는가를 보여 주었고, 또한 동시에 그 율법이 그를 죽였기 때문이었다. 바울은 위선자들이 그들의 죄를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우쭐대면서, 그들이 신뢰하는 마취 상태에 있는 자만심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4)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0)

바울은 여기서 두 가지 것을 말하고 있다. 첫째, 계명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 안에 있는 생명의 도를 보여 주고 있으며, 우리가 준행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그 계명이 주어졌다. 둘째, 그러나 우리 가운데 아무도 율법을 지키지 못한다. 오히려 그 율법이 우리를 불러낸 그 인생의 길로 곤두박질한다. 그러므로 율법은 사망 외에는 아무 것도 우리에게 가져다주지 않는다. 우리는 율법의 본질과 우리 자신의 사악함을 구별해 둘 필요가 있다.

 

이로부터 결론할 수 있는 것은, 율법이 우리에게 치명상을 가해주는 것은 하나의 불상사라는 점이다. 이는 마치 불치병이 치료할 목적의 처방에 의해 오히려 급성병으로 악화되어버린 것과도 같다. 불상사가 율법과 불가분하다는 것을 나도 인정한다. 그래서 이런 이유로, 율법은 복음과 비교될 때, 다른 곳에서 사망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불리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율법이 그 자체의 본질상 우리에게 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부패한 까닭에 율법의 저주를 초래한다고 하는 취지는 유효하게 들어맞는다.

 

(5)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1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라는 말은, 바울은 또 다시 기회라는 말을 쓰고 있다. 이는 율법이 저절로 사망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망과 관련되는 것은 다른 요인들 때문에 우발적으로, 그리고 불의에 이루어지는 것임을 우리가 알도록 하려는 데 있다.

 

(6)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12-13)

율법 자체는 죄악이 되지 않다. 율법은 실상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다. 바울은 율법을 신령하다고까지 말한다(12). 그는 디모데전서1:8에서도 사람이 율법을 법 있게 쓰면 율법은 선한 것인 줄 우리는 아노라고 말했다. 율법은 바른 정신으로 사용하면 구원받은 성도에게 선하고 유익하다. 그러므로 선한 것이 우리에게 사망이 되었을 수 없다. 단지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해 그 선한 율법으로 우리를 죽게 하였다. 이로써 죄가 심히 죄악이 됨을 드러낸 것뿐이다.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라는 말의 뜻은, 죄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드러나기 전에는, 어느 정도 정당화된다. 그러나 그것이 율법을 근거로 삼아(, 기회를 타서 율법으로 말미암아)드러나게 되는 때, 그것은 참으로 죄라고 칭해지는 것이다. 그 의미는, 죄의 잔학성이 율법에 의하여 탐지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만일 죄가 엄청나게, 그리고 난폭하게 터져 나오지 않았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죄로 인정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죄는 이처럼 엄청나고 난폭하게 쇄도하는 한편, 생명을 바꾸어 사망이 되게 한다. 그러므로 변명할 근거들이 하나도 없게 되는 것이다.

 

- 존 칼빈 주석을 중심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