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에서 요셉과 재회하는 아버지 야곱


[성경 구절] 창세기 46 장 1 절 ~ 47 장 12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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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었다고 생각했던 요셉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고 야곱은 요셉의 "서슴없이 내게로 내려와주십시오. .. 나는 당신을 길러 봅시다."라는 말에 무거운 허리 를 올리고 一族郎党 (70 명)을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있습니다. 그것은 힘든 이동했다. 여하튼 수백 km에 이르는 길을 모든 가축과 함께 이동하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야곱은 외삼촌 라반 사는 밧단 아람에서 하나님이 돌아 하셨다 베델까지 갈 때까지 10 년 정도의 기간을 필요로하고 있습니다. 무려 여유로운 여행입니까? 지금은 생각할 수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유예가 없습니다. 기근이 덮쳐 있었기 때문입니다.
  • 야곱 (이스라엘)이 처음으로 방문하게되는 이집트의 이동에서 여러가지 불안과 우려가 있었다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밤의 환상에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현현은 성경에서 종종 "밤"입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상징적 인 의미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도 바울도 종종 전도 여행에서 특별한 경험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인생의 큰 전환점이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야곱의 생애에 대해서도 적용됩니다. 루스의 땅에서 (28 : 13 ~ 15), 밧단 아람에서 (31:11), 얍복 강가에서 (32 : 24 ~ 29) 이집트로가는 길에 베 엘 세바에서 (46 : 2-4 ). 세겜에서의 현현 (35 : 1)를 제외하고 모든 밤에 야곱은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게다가 46 장 1 절에서 하나님의 현현은 야곱의 생애 마지막 하나가되었습니다.

    "내가 하나님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이다. 이집트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거기에서 너를 큰 나라에 이르기까지. 나 자신이 당신의 함께 이집트로 내려가 또한 나 자신이 반드시 당신을 인도 이른다. 요셉의 손은 당신의 눈을 감고되어 줄 것이다. "

  • 이처럼 야곱은 밤의 환상 중에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에 격려 요셉이 준비한 차를 타고 이집트를 목표로 한 것이 었습니다.
  • 그런데 이번 곳에서 말씀 드리고 싶은 명상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4 절에 "요셉은 당신의 눈을 감고주는 것이다."는 주님의 말씀과 야곱이 요셉과 22 년만에 재회하는 장면과 야곱이 이집트 왕 파라오를 알현하는 장면입니다 . 

1. "요셉은 당신의 눈을 감고 준다"는 ..

  • 주 께서 야곱에게 한 말의 마지막 부분에 "요셉은 당신의 눈을 감는 것이다"라고 있습니다. 원문 직역은 "요셉은 그의 손을 당신의 두 눈에 넣어 것 '이라는 의미이지만, 이것은 요셉이 아버지 야곱의 죽음을 간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기 그거야하면 형제의 한 사람으로서 요셉도 아버지의 죽음을 간호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48 장에서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을 자신의 아들한다고합니다 (48 : 5).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 결국 뚜렷한 오는 것입니다 만, 야곱의 열두 아들들이 각각 가나안 땅을 상속 재산으로받을 때 요셉이 아니라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부족에도 상속 재산을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요셉이 다른 형제들에 비해 두 배의 축복을받은 것입니다. 이 축복을 얻을 수있는 것은, 「장자의 권리 "가 요셉에게 주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야곱이 애굽에 내려 전에 맏아들의 권리를 양보 전달 요셉임을 은근히 야곱에게 나타난 것으로 간주합니다. 사실 야곱의 사후도 모두 요셉에게 맡기고 있기 때문에, 가독 권은 요셉에게 주어진 말할 수 있습니다. 

2. 22 년 만에 요셉과 재회 한 야곱

  • 야곱이 애굽의 고센 땅에 간 후, 요셉은 아버지를 맞이하기 위해 거기로 향했습니다.그리고 아버지를 만나기 마자 아버지의 목에 달라 붙어 그 목에 매달려 계속 울었습니다. 그 때 아버지의 기쁨은 "이제 나는 죽어도 좋다이 눈으로 당신이 살아있는 것을 보았 기 때문은."고 말했다. 이것은 기대했다 상봉을 완수 한 최고의 기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것을 (구원) 기다리던 늙은 시므온이 아기 예수를 안고 하나님을 찬양했지만, 늙은 시므온도 야곱과 같은 것을 말합니다. "주여 이제 당신은 당신의 하단 말씀대로 평안히 떠나 십니다. 내 눈이주의 구원을 보았 기 때문입니다."누가 복음 2 장 29 ~ 30 절 참조.
  • 역시 야곱에게 요셉은 특별한 존재였던 것입니다. 물론 요셉을 잃고에서 야곱은 삶의 의욕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야곱의 생애를 본다면 아버지 이삭을 속여 형에서로부터 장자권을 빼앗은 만에 가족으로부터 멀어 질 수밖에 무일푼으로 삼촌 라반에게 가서 타산적 인 라반도 와 20 년간 섬겼습니다. 한편, 두 사람의 정실과 두 사람의 여종에서 11 명의 아들 (나중에 다른 사람)을 얻었 습니다만, 특히 지난 7 년 동안 야곱은 상당한 재산을 쌓았습니다. 그것은 많은 아이들을 양육에 필요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자신의 어머니 리브가와도 만날 수없고 사별,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잃고 요셉을 잃는다는 결코 행복하다고는 말할 수없는 생애를 걸어온 할 수 있습니다. 야곱이 그 인생에서 가장 행복을 느낀시기는 이집트로 이주해 요셉 근처에 피신 후입니다. 13 년 동안 야곱은 점차 자신의 가족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평안 가운데 죽음을 맞이합니다.
  • 요셉의 존재는 야곱의 삶을 축복했습니다. 일시는 잃었지만, 거기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숨겨져있었습니다. 야곱에게 고통 버텨 낸 22 년 이었지만, 마지막 17 년은 행복으로 가득 때였습니다. 이 축복을 하나님이 예비 해주고있었습니다. "이집트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거기에서 너를 큰 나라하겠다"고 하나님의 약속은 진실이었습니다. 이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것은 우리에게 희망이됩니다. 

3. 야곱이 바로를 축복했다는

ゴシェンの地
  • 이스라엘 가족이 최고의 땅인 고센 땅에 살게되고 나서 요셉은 아버지 야곱을 바로에게 데리고 알현 시켰습니다. 그 때, 새로운 개역은 아버지 야곱이 바로에게 "인사를했다"(47 : 7)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또한 바로 앞을 떠날 때 역시 '인사'하고와 있습니다 (47:10).
  • 공동 번역 개정판에서는 만날 때에는 「축복의 말씀을했다 "고 번역, 떠나 때에는 「작별 인사를했다"고 미묘하게 번역 바꾸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키네 역, 나카자와 역, 이와 나미 역, 바르바 역은 모두 빠짐없이 '축복'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원문은 「축복」 「바라후 "(בָּרַךְ)이 강한 형 (피에르 상태)입니다.
  • 구약에두고는 "바라후"({בָּרַךְ};) 항상 강한 형 (피에르 상태)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축복은 항상 피에르 상태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축복하면 으레 "바라후"(בָּרַךְ)의 강도 뜻 형 (피에르 상태)입니다. 여기 47 장 7 절과 10 절은 비슷하지만, 왠지 새로운 개역에서는 "인사를했다"라고 번역하고있는 것입니다.아마 일본적인 감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즉, 입장이나 지위가 위에있는 사람이 아랫 사람을 축복한다는 것은 이해 할 수 있지만 아랫 사람이 위의 입장에있는 자에게 축복하는 말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하지만 성경에서 사용되는 "축복"라는 동사는 신에게 축복받은 사람이 사람을 축복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축복"경우에는 "축복"은하지 않고 "칭찬", "강복한다", "찬양"로 번역됩니다.
  • "인사를"로 번역되어 있어도, 그것은 친절하고 허물 인사가 아니라 존경을 드러냈다 인사 인 것은 틀림 없습니다 만,이 '인사'라는 뉘앙스는 아무래도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상대에 대치하고 축복한다는 뉘앙스가 전해져오고 없습니다. 영어로는 분명히 Jocob blessed Pharaoh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 이런 점에 대한 思いめぐらし은 우리가 세상의 권세있는 자에 대하여 어떻게 대치 할 것인지를 생각하게합니다. 세상의 권위를 너무 의식하고 引け目을 느껴 버리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즉 세상에서 상대의 지위에 영향을받지 않고 두려움없이 대치하고 축복 할 수 있는지 여부 이 추궁 당하고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 생각해 보면 이집트가 기근 속에 풍족 인 요셉의 지혜 때문에입니다. 그 요셉은 하나님이 자신을이 이집트에 파견 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요셉의 머리 이신 아버지 야곱이 애굽의 바로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위와 축복했다고해도 결코 부 자연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창세기의 진정한 저자 (성령)이 축복하는 "바라후"(בָּרַךְ))의 강도 뜻 형 (피에르 상태)를 어떻게 생각 쓴지思いめぐらす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애굽의 바로는 야곱의 축복으로 살아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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