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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영광

베드로후서1:12-21

 

12 이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섰으나 내가 항상 너희로 생각하게 하려 하노라.

13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14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같이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15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나의 떠난 후에라도 필요할 때는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

19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20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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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미 아는 진리도 계속 다시 기억하고 복습해야 한다. 그것이 베드로가 편지를 쓴 목적이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목적이다.

또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영광이 사람의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고, 제자들이 친히 본 바요 구약성경이 확실히 예언한 바임을 알고 믿고 확신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들이 밝히 깨달아질 때까지 성경을 경건하게 읽고 묵상해야 하고, 또 성경을 제멋대로 잘못 해석하지 않도록 성령의 지도하심을 구하며 조심해야 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믿어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고 이단 사설에 유혹받지 않을 수 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영광에 대한 두 가지 증거

 

[12-15] "이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섰으나 내가 항상 너희로 생각하게 하려 하노라.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같이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나의 떠난 후에라도 필요할 때는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12-15)

 

우리는 성경 진리들을 이미 알고 있어도 그것들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베드로는 자신의 장막을 벗어날 것 곧 자신의 죽음이 임박함을 느끼고 있었고 그러기 때문에 더욱 성도들을 교훈하였다.

베드로후서는 베드로의 유언적인 내용이었다. 베드로는 자신의 죽은 후에도 성도들에게 필요한 때 이 진리가 생각나게 하려고 죽기 전에 힘써 교훈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하신 대로 성경을 주야로 묵상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늘 기억하며 교훈을 얻고 충만한 은혜와 유익을 얻어야 할 것이다.

 

[16-1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 (16-1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능력과 강림하심 즉 그의 성육신(成肉身)과 신적 영광을 바로 아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기본적 내용이다.

베드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영광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고 자신들이 그의 크신 영광을 친히 본 자라고 증거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사실들은 사람이 만들어낸 창작물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진실한 증인들의 증거들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사실들에 대한 증인들이었다.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우리는 여기서 자기가 잘 알지도 못하는 이론들을 떠벌이기 위해서 무모하게 강단에 뛰어오르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과 아무 상관이 없을 뿐 아니라 사도들과도 공통점이 전혀 없다는 결론을 얻는다. 하나님의 참 종은 자기가 전파하는 가르침의 진리에 대해서 확실한 증거를 가진 자이다. 그러한 증거를 가진 자가 전파할 때 비로소 듣는 모든 자들에게도 같은 확신이 전달되는 법이다.

 

베드로는 자기가 그리스도께서 하늘로부터 난 음성에 의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될 당시 그 현장에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곳에는 오직 세 사람만 있었다. 베드로는 자신이 친히 보았던 주의 크신 위엄과 영광에 대해 증거한다.

그것은 마태복음17장에 기록된 대로 그와 다른 두 제자(요한, 야고보)들이 주와 함께 높은 산에 올라갔을 때에 주께서 영광스럽게 변화되셨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늘로부터 친히 음성으로 그에 대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증거하신 내용이었다. 이 때 예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존귀와 영광을 얻으셨다. 이것이 예수님의 신적 영광에 대한 베드로의 첫 번째 증거이다.

그들은 완전한 증인들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수많은 이적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영광과 위엄을 보았고, 또 그의 부활에서 그의 신성의 현저한 증거를 친히 목격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확신을 얻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눈앞에서 다시 살아나시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그의 부활 사실을 손에 손으로 전하여 준 자들에게 의해서 알 수 있다. 또한 우리는 그것을 우리 양심의 내적 증거라도 알 수 있다. 그것은 모든 지각의 증거들 위에 뛰어나시는 성령의 인침인 것이다. 처음부터 복음이 막연한 소문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리고 사도들은 그들이 친히 목격한 바를 전하여 준 권위 있고 신빙성 있는 사신들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19-21]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19-21)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베드로는 예수님의 신적 영광에 대한 두 번째 증거를 말한다.

그것은 구약성경의 증거이다. 그것은 그가 친히 보았던 증거보다 더 확실한 증거이다. 성경은 인간의 그 어떤 증거보다 더 확실한 증거의 책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의 확실함을 위해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것은 어두운 곳을 비취는 등불과 같다. 어두운 밤에 불빛이 없다면 얼마나 답답하고 불편할 것인가? 성경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 어둡고 죄악된 세상에서 하나님과 인간과 구주에 대하여 바로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우리가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묵상할 때 바른 깨달음이 생기는 것을 가리킨다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책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 속죄의 복음을 바로 깨달을 때까지 성경책을 가까이 하며 읽어 나가야 할 것이다.

 

(존 칼빈)는 베드로가 언급하고 있는 이 어두움이 인생의 전 생애를 뒤덮고 있는 어두움의 세력으로 본다. 그리고 나는 그날에 대하여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게 보나, 그날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는 것같이 밝히 볼 수 있다고 한 그때가 우리에게 다가온다고 해석한다.

의의 태양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실로 복음 안에서 빛을 발하신다. 그러나 우리가 육신의 장막을 벗어나 하늘로 옮겨질 때까지는 항상 사망의 그림자가 우리의 마음을 뒤덮고 있으므로 아직은 어두움에 처하여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날이 되면 무지의 구름과 안개가 완전히 걷히고 밝은 태양이 환하게 비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분명히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완전에서 멀 듯이 그 완전한 날에 도달하려면 아직도 까마득하다. 그러므로 우리의 현재 삶이 어두움으로 지칭되고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복음이 우리를 부르시는 지식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베드로는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 순례의 길을 행하고 있는 한 선지자들의 가르침이 하나의 길을 인도하는 빛으로서 우리에게 필요하며 만약 그 빛이 없다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어두움 가운데서 방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는 선지자들이 우리의 길을 밝혀주는 빛이 된다고 말함으로써 예언과 복음을 분리시키지는 않는다. 그의 유일한 목적은 우리 인생의 전 행로가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방에 가득한 무지의 어두움으로 둘러싸여 있고, 또 우리가 주의 말씀을 우리의 등불로 삼을 때만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 주시기 때문이다.

 

사도가 즉시 그의 논증을 샛별이 떠오르는 것에 연관시킨 것은 이 해석에 잘 들어맞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우리가 전 생애를 통해서 전진해 나아가야 할 그 확고한 지식이 날이 새는 것으로 표현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사도가 그날의 하루하루를 서로 비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날들을 다 포함하는 그날은 주께서 그의 말씀의 빛으로 우리를 도우시기 위하여 강림하시지 않는 한 우리의 모든 지각을 완전히 가릴 것이라는 어두움과 대조되고 있다고 본다.

 

"먼저 알 것은", 베드로는 이제 여기서 성경을 바로 사용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우리가 마음을 열어야 할 것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이 말에 대해서는 두 가지 가능성 있는 해석이 있다.

그 하나는 다른 이들이 보는 바와 같이, 곧 접근, 공격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채택하고 있는 해석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받아들이는 그 뜻은 곧 우리가 자신의 이해력을 믿고 성경을 마구잡이로 성령이 성경의 참 해석자이신 사실에서 이 뜻에 대한 뒷받침을 얻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 해석은 분명히 하나의 참되고 경건하고 유익한 교훈을 함축하고 있는데, 곧 오직 우리가 육체적인 이해력을 제쳐두고 성령의 가르침에 복종시킬 때에만 선지자들의 예언의 말씀을 읽을 때에 유익을 얻을 수 있으며, 또 성경을 이해함에 있어서 주제넘게 우리 자신의 이성에서 나오는 재간을 부릴 때에는 그것이 성경을 모독하는 사악한 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교황주의자들은 이 구절에서 개개인의 사사로운 해석은 아무 것도 믿을 만한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림으로써 이중적인 잘못을 범하고 있다. 그들은 베드로의 이 증언을 왜곡시켜서 성경 해석의 최종적인 권위를 부당하게 자기들의 종교 회의에 돌림으로써 그들은 실로 어린아이와 같은 짓을 자행하고 있다. 베드로는 사사로운 해석에 관하여 말할 때 개인이 혼자서 성경을 다루는 일을 금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무릇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사사로운 것을 성경에 끌어들이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이라고 말할 뿐이다. 성경을 사사로이 풀면 그 결과도 사사로운 것이 되리라는 데에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일치된 의견을 가져야만 할 것이다. 이는 그 주제가 여기서 하나님의 계시와 대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계시 안에서 성령의 조명을 받아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 가운데서 보여주고자 하시는 것만을 인식하게 된다.

우리가 성경을 사사로이 해석해서는 안 되는 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이기 때문이다. 예언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 곧 선지자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말한 것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딤후3:16).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해석할 때 매우 조심해야 한다.

 

건전한 성경 해석의 방법은 우선 문법적으로 해석하고, 그 다음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면서 해석하고, 마지막으로 성경을 전체적으로 통일성 있게 해석하는 것이다. 물론, 성경을 깨닫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이시므로 성경을 연구하는 이들은 하나님의 깨닫게 하시는 은혜를 구하면서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연구해야 할 것이다.

 

- 존 칼빈 주석을 중심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