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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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은 미국에 찾아 온 청교도들에 의해서 시작되었습니다. 영국에서 신앙의 박해를 받아 1609년 홀란드로 제1차 '순례의 길'을 떠났던 순례자들(Filgrim Fathers)인 청교도들은 암스테르담(Amsterdam)과 라이덴(Leyden)에서 12년 동안 신앙의 자유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1620년 엘리자베스 1세가 여왕으로 즉위하자 타향살이를 청산하고 영국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하게 됩니다.

청교도 순례자들이 스피드웰(Speedwell, 60톤)호를 타고 영국 사우스암톤(Southamton)으로 돌아왔으나, 엘리자베스 여왕은 수령장을 선포하고 청교도들의 입장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청교도들은 고국 땅에 정착하지 못하고 다시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갈 것을 결심하고 1620년 9월 2일 영국의 종파주의자(English Sectarians) 60명, 승무원 6명 (선장 크리스토퍼 죤스(Christopher Jones)) 등 총수 101명(남자 72명, 여자 29명(기혼 18명 미혼 11명))이 메이플라워(May Flower, 180톤)호를 타고 플리머스(Plymouth) 항구를 떠나 65일 간의 모진 고난의 항해 끝에 1620년 11월 9일 마사추세츠(Massachusetts)주 케이프 카드 만(Cape Cod Bay)에 도착하였습니다.

이들은 굶주림과 추위, 그리고 인디안의 습격에 대한 공포 속에서 첫 해 겨울을 보내면서 거의 반수가 괴혈병, 폐렴 등의 질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1621년 2월 28일까지 무려 50명이 세상을 떠났고, 봄이 오기 전까지 하루에 2-3명이 죽어갔습니다.

그러나 청교도들의 개척의 의지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있다는 일념으로 역경을 헤쳐 나갔습니다. 현명하고 강력한 윌리암 브래드포드(William Bradford)의 지도 아래 정착을 시작하여 열심히 개척하였습니다. 1621년 3월 이후에는 인디안들이 청교도들의 농사 도구를 훔쳐가기도 하고, 청교도들이 심어 놓은 밀, 완두콩 밭을 짓밟아서 못쓰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인디안 부족 왐파노아그(Wam Panoag)족 추장인 마사소이드(Massasoid)와 스쿠안토(Squanto)가 찾아와서 맺은 상호 협력 및 불가침 조약이 미국 최초의 대외 조약으로 기록되었고, 그 후 다행히도 우호적이어서 옥수수와 밀 경작법 등 많은 도움을 받아 간신히 생활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특히 청교도들이 일주일에 3일씩 금식을 하며 어렵게 지낼 때에는 인디안들이 짐승을 잡아다가 주기도 했고, 그들이 25에이커에 심은 옥수수와 보리, 밀 등도 풍작이 되어서 연명할 수 잇었습니다.

가을 추수를 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청교도 지도자 윌리암 브래드포드(William Bradford)씨는 인디안들과 함께 최초의 "추수감사절"을 지키며 축하하기로 하고 인디안 추장 마사소이드(Massasoid)를 초청했습니다. 추장은 90명의 용사를 데리고 참석했는데, 이 날 청교도들은 들 새를 잡으러 나가서 많은 칠면조(turkey)를 잡았고, 인디안들은 사냥에 나가서 다섯 마리의 사슴을 잡아 왔습니다. 청교도들은 인디안들과 어울려 모여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기뻐하였습니다. 드디어 청교도들이 바라던 신앙의 자유을 만끽할 수 있는 삶의 터전이 마련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날이 1621년 11월 마지막 목요일이었습니다.

1789년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독립 전쟁의 승리와 헌법 제정을 축하해서 11월 26일(목요일)을 추수감사절(Thankgiving Day)로 선언했으며, 그후 1863년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국민 단합을 위해 11월 마지막 목요일을 국가적 축제일인 감사절로 선포했습니다. 나아가 1939년 루즈벨트 대통령은 11월 셋째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추수감사절이 미국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닙니다. 출애굽기 34장 22절에서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밭에서부터 거두어 들일 때" 즉 추수기와 연관된 수장절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후 신명기 16장 13절로 15절의 말씀에서 수장절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에서 거행되어야 할 초막절이라고도 했습니다. "너희는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에서 소출을 거두어 들일 때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켜야 한다. 너희는 이 절기에 너희와 너희의 아들과 딸과 남종과 여종과 성 안에서 같이 사는 레위 사람과 떠돌이와 고와와 과부까지도 함께 즐거워해야 한다.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이 택하신 곳에서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켜야 한다. 너희는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의 모든 소출과 너희가 손을 댄 모든 일에 복을 주셨기 때문에 즐거워하는 것이다."

레위기 23장 39절로 43절에서 우리는 초막에서 거주하는 의식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탈출시킬 때 그들에게 초막 생활을 하도록 했다는 사실을 기념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밭에서 난 곡식을 다 거두고 난 다음, 너희는 일곱째 달 보름날부터 이레 동안 주께 절기를 지켜야 한다... 이레 동안 너희는 초막에서 지내야 한다. 이렇게 하여야 너희의 자손이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 그들을 초막에서 살게 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그렇다면 수장절, 즉 초막절은 종교의 자유를 기념하며 기억하는 절기이면서, 또한 추수에 대한 감사 절기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구약의 수장절, 즉 초막절의 정신이 근대에 와서 그대로 재현된 것이 미국에 정착한 청교도들의 추수감사절기였던 것입니다. 이 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구나 이 절기가 진행되는 7일 동안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즐거워 했던 것입니다. 신명기 16장 14절 말씀에 "하나님이 농사를 축복하사 온전히 즐거워하게 되리라."고 한 말씀대로 였습니다.

한국 교회는 1912년부터 추수감사절을 지키기 시작하여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주일로 정했는데 이는 복음을 전해준 미국 선교사님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또 추수 시기에 맞춘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