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기도론

(기독교 강요를 중심으로)
서론
칼빈은 제네바의 개혁자요 신학자요 목회자이기 전에 먼저 기도의 사람으로서, 그에게 기도는 신자들의 "가장 중요한 신앙의 훈련"이었다. 그렇기에 그에게 있어서 기도는 단순한 신자들의 필요에 따른 구함이 아니라 날마다 그리스도의 은혜에 거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칼빈자신의 기도의 강조로보아 칼빈은 자신의 신앙을 기도로써 훈련시켰던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본 논고는 이같은 기도의 사람 칼빈이라는 것에 관심을 두고 그의 기도에 관한 생각을 정리하고자 한다.

칼빈은 기도에 관한 글들과 직접 자신이 작성한 기도문들을 여럿 남겼다. 그러나 본인이 접할 수 있는 자료가 극히 제한되어 있어서 주로 그의 기독교 강요와 그외의 몇몇의 단편저작들을 통해서 칼빈의 기도에관한 생각들을 정리하고자 한다. 대개는 그의 기독교 강요에 국한되어 논할 것이다.



1. 기독교 강요에서 기도론의 위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소요리 문답 98번에서 기술한바와 같이 기도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구원의 유익을 전하시려고 나타내신 보통방법중의 세번째이다. 통상 이것을 은혜의 방편(말씀선포, 성례의 실시, 기도)으로 말한다. 이는 칼빈의 기독교 강요에서와 맥락을 같이한다.

기독교 강요에서 기도론이 차지하는 위치는 기독교 강요 제3권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는 방법>의 총 25장중 20장에 자리하고 있다. 즉 기도론이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는 방법이란 주제하에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기도론이 다루어지기 전에, 먼저 가장 중요한 은혜의 방편인 그리스도의 말씀을 다루고 있는데, 이같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은혜의 방편으로서 역사하는 것은 성령의 신비한 역사를 통해서이다. 즉 말씀의 역사를 통한 믿음, 곧 믿음을 통한 중생, 회개, 칭의,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그것이다. 결국 칼빈이 기도에 관해 논하는 것은 바로 그같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한 구원의 진리가 있고서이다.



2. 기독교 강요에서의 기도론


칼빈은 기도를 논함에 있어서 먼저, 기도의 본질과 가치를 논하고, 기도의 실제상에 있어서의 올바른 법칙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경외, 진실한 겸손과 회개, 죄의 용서를 구함, 확신있는 소망을 가지고 기도해야함을 강조한다.

먼저 칼빈은 기도를 정의함에 있어서, "기도는 믿음의 가장 중요한 훈련이며, 우리는 날마다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다"고 정의하였다. 이상의 정의를 볼 때, 칼빈은 기도를 신자들에게 그들의 믿음, 즉 그들이 믿고 있는 진리의 내용들을 더욱 확고히하며 그 진리안에서 자유함을 누리도록 하는 가장 중요한 훈련이자 동시에 은혜의 방편으로 여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칼빈은 이 기도론을 논하기 전에 여러 신학적인 문제들(믿음, 중생, 회개, 칭의, 자유)과 부닥뜨렸다. 그런데 이 모든 논의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는 방법인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서이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서 기도론이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로볼때, 칼빈에게 있어서 기도는 이미 얻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가지고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된다. 즉 칼빈에게 있어서 기도는 구원을 얻는 수단이 아니라 이미 얻은 구원 안에서 더욱 그 구원의 축복을 향유하도록 하는 수단인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필요하거나 부족한것은 무엇이나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아버지께서 자신의 충만하심을 그리스도 안에 머므르게하여 샘물에서 물을 퍼내듯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 말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찾고 기도로써 그리스도에게 구해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부분이다."


모든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만 그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누리는가? 그것은 기도함으로써이다. 샘물에서 물을 퍼내듯이 기도로써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부요함을 우리것으로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도는 신자에게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기도의 필요성을 거부하는 어떤자들은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 아시므로, 마치 우리가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을 움직이게해서 우리로 필요한 것을 얻는 것처럼 하는 기도는 필요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서 칼빈은 단호하게 논박한다. 칼빈에게 있어서 기도를 그런식으로 추론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기도를 제정하신 목적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왜냐면 "주님께서 기도를 명하신 것은 그 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들 자신을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칼빈은 기도의 필요성을 거절하는, 즉 "그들이 소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설득하기 위하여...........하나님의 고막을 파열시켰다"고 주장하는 그런 사람들을 다음과 같이 논박했다.


"신실한 자들은 하나님이 알지 못하는 것을 그에게 말하거나, 혹은 하나님의 의무를 행하라고 촉구하거나, 혹은 하나님께서 연기하고 계신일을 어서 하시라고 재촉하기 위하여 기도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을 추스려 하나님을 찾고 그의 약속을 무상함으로써 신앙을 훈련하고 또한 자신들을 들어올려 하나님의 품 안에 거함으로써 근심 걱정을 벗어 버리려고 한다.......이러한 점들을 굳게 잡아라. 우리의 기도들은 그의 자유 안에서 그에 의해서 기대되나, 그렇지만 우리가 요구하는 것을 우리는 기도에 의해서 얻는다"


이같이 기도에 관한 본직적 정의와 가치를 논한다음 칼빈은, 그 자신이 기도에 관해서 명한 "하나님과의 대화" 속에서 신자들을 올바른 기도로 인도하기 위한 네가지 규칙들을 제시한다.

첫번째 규칙은 "경외", 즉 하나님과 대화를 가지려는 사람으로서 걸맞는 정신과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으로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기도를 "정식으로 그리고 올바르게" 구성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것은 우리가 일종의 하늘에 있는 친구, "위에 있는 사람"이신 하나님께 호소하는 변덕과 경솔함의 그런 종류를 피하라는 것을 의미한다. 참으로 신성한 존재에게로 들어간다함은 "하나님의 위엄에 의해서 감동된"것이다. 우리는 가식적인 말들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중대한 의도로 기도하러 올 때, 혀가 마음을 앞질러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호의는 공허한 말들의 나열에 의해서 획득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경건한 마음에 내보내는 열망들은 화살을 쏘는 것과 같이 하늘에 이르려는 것들이다"

또한 이 규칙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것 이상으로 오만하게 하나님에게 요구하지 말아야할 것 과,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그 분의 뜻과 일치되게 모든 것을 구해야 할 것을 의미한다.

두번째 기도의 규칙은 우리는 부족과 진정한 회개의 마음으로부터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도는 경건한 중얼거림 이상이다. 이것은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와야 한다. 칼빈은 이같은 참된 기도를 묘사히기 위하여 여러 동사들을 사용한다. 기도에서 우리는 갈망한다, 소망한다, 배고파한다, 목말라한다, 찾는다 요구한다, 간청한다, 부르짖는다. 그리고 회개는 기도에서 빠질 수 없는 목록이다.


"우리는 우리의 부족을 느끼고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하는 바로 그것들을 우리가 얼마나 절실하게 필요로 하고 있는 가를 깊이 묵상해야 한다. 그 후에 주님으로부터 그것들을 얻도록 간구하자. 다른 마음을 품고 간구하면 우리의 기도는 위선과 거짓으로 가득찰 것이다.........하나님께 죄사함을 구하라 네가 진정으로 죄인임을 알지 못하면 너의 기도는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 밖에 더 되겠는가?....."


세번째 기도의 규칙은 두번째 규칙을 위따르는 것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모든 신뢰를 내려놓고 겸손하게 우리의 용서를 탄원해야한다. 기도의 전체적인 목적과 참으로 모든 기독교적 생활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려고 서는 어떠한 사람도 참된 겸손 속에서 "그 자신의 영광에 대한 모든 생각을 포기하고, 그 자신의 가치에대한 모든 생각을 내던지고, 모든 자기 확신을 제쳐놓아야만 한다"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의 약속을 의지하면서 우리의 기도를 시작하는 것이 적절하다. 참으로 기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죄의 용서를 비는 것이며, 자신의 의를 거부하는 것이다.

네번째 기도의 규칙은 확실한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다. "참된 겸손에 의해서 낙심되어지고 굴복되어졌을 때,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을 것이라는 확신에 의해서 기도하도록 격려받는다". 칼빈은 하나님께 받들여지는 유일한 기도는 "신앙의 뻔뻔함"에서 나오는 것이라고까지 말하기도 했다. 물론 우리의 소망의 실질적 토대는 우리의 기도들의 방향지워지는 대상이다. 우리는 우리의 하늘에 계신 아버지, 모든 자비의 아버지, 모든 약속들이 확정되고 성취되는 예수 그리스도, 그의 아들 우리 주를 통하여 기도한다. 왜냐면 그리스도께서는 영원불변하시는 우리의 중보자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에서 우리의 스승이 되고 "우리의 타고난 능력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것을 생각하도록 우리 안에서 확신, 소망, 그리고 탄식을 일으키는" 성령을 통하여 기도한다. 참으로 하나님의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들이 우리의 기도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성자들의 중보를 통해서 기도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중보의 영광을 빼앗는 것이다. 우리는 중보자 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직접 나아간다.

칼빈은 이상의 네가지 규칙들을 신자 개인의 기도에서와 교회의 공동기도에 그대로 적용시킨다. 참으로 칼빈은 "예배의 중요한 부분은 기도의 직책에 놓여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어떤 특정한 장소(교회당)에서 기도가 더 효과있다고 주장하는 그러한 사람들을 참지 못했다. 왜냐면 하나님의 성전은 교회 건물 자체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공적인 기도는 단순하고, 직접적이어야 하며 위선적인 "공허한 기도"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는 기도중에 찬양하는 문제에 대하여, 우리가 찬양할 때 곡조보다는 가사의 내용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하며, 찬양 역시 기도 사역에 속한다고 했다. 아울러 기도의 말에 있어서 그것은 누구나가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일상언어임을 강조했다.


3. 결론


본 논고는 필자의 결론을 대신하여 칼빈의 다음의 글로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이같이 하는 이유는 이상의 논의에 대한 더 이상의 훌룡한 글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조금도 선한 구석이 없다. 인간을 구원할 능력도 인간에겐 없다. 그러면 그가 어디가서 도움을 호소해야 하는가? 자지자신이 아닌 다른 근원에 호소할 수 밖에 없다. 이 사실을 우리는 잘알고 있으며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자유롭게 자신을 제시하신다는 것도 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가난한 자에게 부요함을, 불행한 자에게 복을 주시며 하늘 창고를 열어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심없는 믿음 안에서 그의 사랑하는 아들을 묵상하며 의심없는 기대 안에서 그를 기다리며 의심없는 소망 가운데 그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그 안에서 안식한다. 논리에 얽매인 철학을 가지고는 하나님께서 눈을 열어주신 자 외에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이 비빌을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모든 필요한 것을 간구하고 찾으라고 가르친다. 성부 하나님은 당신의 모든 풍요하심을 그리스도 안에 두기 원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넘쳐흐르는 샘물을 찾자. 기도하는 가운데 그리스도께 간구하자. 성부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내용은 그리스도 안에만 있다.

어떤 사람에게 땅 속에 숨겨져 있는 보물을 가르쳐 주어도 그는 네 손가락을 주목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만물의 주인이요 수여자임을 알면서도 그 분의 손 안에 있는 것들을 달라고 그에게 나아가 간구하지 않는 우리가 바로 그 사람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