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생애와 사상


Ⅰ. 머릿말


  1. 바울연구의 자세

  바울은 누구이며, 그의 사상은 무엇인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을 보는 눈을 개발하지 않고, 방법론적으로 훈련되지 못한 까닭에 바울의 진정한 모습을 밝히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서신을 자신의 편견으로 읽음으로써 복음의 건전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바울 연구를 한다는 것은 바울이 원래 의도한 바를 바르게 이해하고 그것이 20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를 찾는 작업이라고 볼수 있다. 바울이 의도하는 바를 찾아내는 것을 역사적 접근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오늘날에 주는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해석학적 접근" 이라고 할 수 있다. 바울을 바르게 연구하기 위해서는 이 두가지 훈련을 철저하게 쌓아야 한다.

  또한 바울을 진정으로 알기 원하는 자는 자신의 카테고리를 벗어날 줄 아는 용기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알건 모르건 우리의 눈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제에 따라서 제한된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전제를 뛰어 넘고자 하는 노력이 의도적으로 선행되지 않는 한, 우리의 바울연구는 아무런 새로운 결과를 가져다 주지 않을 것이다. 만일 연구자가 자신의 카테고리에 묶여서, 모든 가능성과 연구의 결과에 대하여 열린 태도를 가지지 아니한다면 성서는 단지 자기 주장의 참고자료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바울을 진실되게 연구하고자 하는 자는 바울이 가라는 곳이면 어디라도 가야한다. 바울을우리가 의도하는 대로 끌고 다녀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 성서가 말하도록 하는 훈련을 쌓을 필요가 있다.


  2. 바울연구의 방법론적인 문제

  역사적 예수 연구와 더불어 역사적 바울 연구의 필요성은 최근의 바울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필수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도 역사적 예수에 관한 연구는 지금까지 심각하게 논의되고 계속해서 연구서들이 나오고있는 반면에 역사상의 바울에 대한 연구는 너무 피상적이며, 너무도 쉽게 바울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전제에 따라서 너무나 많이 채색되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이해하기 쉬운 인물이 아니다. 신약성서에 나타나 있는 바울에 대한 서술은 여러 가지 상황, 주제, 신학 등에 얽혀 있기 때문에 바울은 좀더 명료하게 설명되어야 할 필요가 있고 그 사상의 진수가 바로 인식되어야 할 필요가있다.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두가지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그 전제 속에서 다음단계로 논의를 이끌고 타가야 할 것이다.

  첫째, 바울의 이름으로 되어있는 서신이 13개인 것으로 보아 초대교회에서 바울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문제는 바울에게 소속된 각 서신들은 바울의 모

습을 상당히 각각 다르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바우어(F. C. Baur)의 경우 바울 서신을 3가지로 분류하였다. 첫번째 그룹은 바울의 1차적인 서신으로 갈라디아서, 고린도전후서, 로마서를 들었다. 나머지 에베소서,골로새서, 빌립보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빌레몬서는 조금은 불확실한 제2차적인 서신으로 취급하였고, 목회서신은 바울의 이름을 빌린것으로 간주하였다. 이러한 문학적인 문제에 대해서 여러가지 논의가 있어왔지만 바울학계가 도달한 결론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7개의 서신은 논쟁의 여지가 없이 바울의 진정성을 인정받고 있다.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빌립보서, 데살로니가전서, 빌레몬서가 그것이다. 에베소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후서는 아직도 공통된 결론에 이른 바가 없다. 목회서신은 바울에게서 직접 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필자의 바울에 대한 모든 언급은 위의 문학적인 이슈에 대한 결론들에 의존하여 출발할 것이다. 즉 바울 이름으로 제시된 13개의 모든 서신을 기초자료로 해서 서술될 것이 아니라 가장 논란이 없는 7개의 서신을 우선적으로 취급하고 3개의 불확신한 서신과 목회서신은 보완적인 자료로만 사용될 것이다. 이렇게 하는것이 13개의 서신을 다 취급하여 바울의 모습올 애매하고 혹은 왜곡되게 그리는 것보다 명료하고 본 모습에 가까운 진술을 이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두번째로 제기되는 문제는 바울서신에 나타난 바울의 모습과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바울의 모습이 때때로 일치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바울의 생애나 사상에 대한 연구는 사도행전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역사 비평의 발전과 그 결과가 신약성서에 적용된 이후로 사도행전은 누가의 신학에 의해서 많이 채색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고, 때문에 사도행전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진술은 상당한 주의를 가지고 사용되야 한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누가는 바울에 대해서 상당히 우호적이고 바울 중심적으로 서술을 해가지만 예루살렘 교회 측의 입장을 많이 대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은 사도의 반열에 끼지 못한다. 그는 단지 예루살렘에 의해 승인된 이방인을 위한 선교사일 따름이다. 그러나 바울 자신의 서신에서 보여진 바울은 그의 사도권의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고, 예루살렘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누가 자신이 바울의 서신을 전혀 알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사도행전이 말하고 있는 바울에 대한 진술은 그 역사적인 타당성을 세밀하게 검증하고 나서 사용되어야 한다. 진정한 바울의모습을 복원하기 위한 도구로서 사도행전은 단지 2차적인 자료로 이용될 수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바울의 모습을 재건하기 위해 사도행전을 제 1차적인 자료로 쓰고미흡한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바울서신의 자료를 사용하는 방법은 이제 방법론적으로 지양되어야 한다. 바울의 모습을 재전하기 위해서는 우선 제1차적인 바울서신에 가장 기초를 두어야 할 것이고 그 1차 서신에서도 편집적인 삽입을 주의깊게 분별하여 바울의 진정성을 확인한 후에 바울의 모습을 재건하는 자료로써야 할 것이다. 또한 바울 자신의 진술도 반대자와의 논쟁적인 상황에서 자기 변증의 역할을 할 경우 바울과 바울 반대자의 중간 입장에서 객관적인 진실이 무엇인지를 규명하고자하는 역사가의 안목이 필요할 것이다.


Ⅱ. 바울의 생애

  1. 바울의 출생과 성장

  바울이 태어난 연도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세례요한, 예수와 동시대에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그가 태어난 헬레니즘적 로마세계는 한마디로 말해서 급속한 변화와 확장의 시대라고 볼 수 있다. 여러민족의 문화가 혼합됨으로 말미암아 심리적,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인 모든 경계선이 무너지고 새로운 물결이 밀려오고 있었다. 이러한 세계 속에 사는 사람들은 전통에 대해서 깊은 향수를 느끼고 있었다. 이것은 두가지 방향으로 진행이 되는데 하나는 전통주의에 대한 회고이고 하나는 전통적 권위주의에 대한 청산이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위기 의식을 느끼고 내가 누구며, 나의 뿌리는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에 눈을 뜨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고학적인 발굴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자신의 민족의 전통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지금까지는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모든 것을 비판없이 받아들이고 계승했지만 이제는 시대가 달라지고 변화가 많아지니 그 전통적 가치가 소멸되고 새로운 가치를 찾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이러한 가운데서미래의 변화에 대한 불확실성과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은 초월적인 종교를 원하게 된다. 그래서 헬라적인 혼합주의적인 종교들은 여러 종교, 철학들을 동원하여 그 시대적인 요청에 응하려고 노력하였다." 그 당시 유대교도 상당히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유대교는 다신적, 혼합주의적인 헬라종교와 비교해서 유일신적, 배타적인 신자관으로 당시 사람들의 눈을 끌었고, 헬레니즘적인 도덕적 실험주의에 대해서 엄격한 윤리적 계명의 실천으로 그 진가를 발휘하였다. 더구나 디아스포라 유대교는 세계적인 선교에 눈을 뜨고, 공격적인 세력확장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런 시대의 아들로 바울은 태어났다. 바울 스스로는 한번도 자신의 출생지에 대해서 말하지 않지만 사도행전 21장 39절과 22장 3절에 나타나는 누가의 보도를 통해 보면 길리기아 지방의 수도인 다소에서 태어났음을 알 수있다. 이 지역은 헬레니즘적인 교육도시로 유명하며, 지리적으로는 무역에 적합한 곳이어서 번영한 곳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어린시절에 대해서도 바울 자신은 별로 시사한 바가 없다. 사도행전 22장 3절의 보도를 볼 것 같으면율법교사인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율법을 엄하게 교육받았다고 되어있다.

  가장 확실하게 바울의 배경을 알 수 있는 것은 바울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점이다. 빌릴보서 3장 5절~6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정체를 세밀히 밝히고 있다. 바울은 자신을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족속이며, 베냐민의 지파이고,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며,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며,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바울이 바리새파에 속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원래 헬레니즘적 유대교에서 태어났다. 헬레니즘적 유대교는 팔레스타인적인 유대교보다는 훨씬 자유스럽고 개방적이며, 진보적인 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방인들에게도 최소한의 계명 이외에는 그렇게 무거운 계율을 부과하지 않았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적인 유대교는 완전한 개종을 요구하였다. 할례를 고집하고 철저한 율법의 준수를 요구했다. 이중에서도 가장 철저한 율법주의자들은 바리새파 사람들이었다. 바울 당시의 바리새파는 복음서에 나타난 대로 너무 부정적인 관점에서만 인식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복음서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서 좀더 객관화시켜서 본다면 당시 바리새파는 상당히 경건하고 영향력이 있었던 운동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어쨌든 바울은 바리새파에 가담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는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열심히 있었고(갈1:14),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빌3:6)고 까지 말하고 있다. 그는 이를 기초로 하여 유대교 선교사로서의 확실한 기반을 마련 하였던 것이다.


  2. 다메섹에서의 소명

  이렇게 바리새파에서 훈련을 받았던 바울이 새로운 소명에 눈을 뜨게 된다. 우리는 이것을 보통 다메섹 사건이라고 부르고 있다. 연대적으로는 약 32년 경에 이루어진 일로 볼 수 있다. 다메섹 사건을 여러가지로 해석하고 그 비밀을 해명하고자 하는 노력이 그간 많이 있어왔다. 그러나 보도된 자료들을 세밀히 점검하여 실제 역사적인 사건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사도행전은 바울의 다메섹 사건을 상당히 드라마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누가는 바울의 소명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기적적인 사건만을 강조하고 있다. 다메섹에서 바울은 주의 현현을 경험하고 보지 못하게 되어 제자 아나니아에 의해 치료를 받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제자들과 사귀게 된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소명을 받게 된다. 이것은 누가의 신학적 의도를 감안하여 읽어야 한다. 누가는 바울의 소명을 예루살렘과 연결시킴으로써 예루살렘 교회와 바울교회의 견해차를 해소해 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러한 사도행전적인 바울 묘사는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것과는 상충된다. 갈라디아서 1장에서 바울은 자신의 다메섹 사건을 해석하면서 그 사건은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속에 나타내신" 사건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다메섹 사건을 소명과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누가의 보도와는 달리 자신은 1장 17절에 "나보다 먼저 사도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았다"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이렇게 예루살렘측으로 부터의 독립을 추구하는 것은 바울의 반대자들의 주장과 관련하여 이해되어야 한다. 바울의 반대자들은 바울의 복음과 사도권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했다. 그들은 바울이 원 사도들의 복음을 인간의 구미에 맞게 변질시켰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반대자들의 논리의 근원을 반격하기 위해서 자신의 복음을 예루살렘에 의존하고 있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직접 계시로 받은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사도권도 누가의 보도처럼 예루살렘의 사도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소명으로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바울의 진술을 토대로 해볼 때 다메섹 사건은 회심이라기 보다는 소명에 강조점을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바리새파였던 바울이 다메섹 사건을 계기로 유대 기독교파로 전향한 것으로 봐야 한다." 당시 기독교는 유대교와 명확하게 구분이 되어있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유대교 안의 한 파에서 다른 파로의 전이로 이해됨이 마땅할 것이다. 바울은 바리새파로서 상당히 율법에 충실한 보수주의 유대신학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헬라적 유대주의자를 박해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로 하여금 입장을 바꾸게 만들었을까? 그는 이점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다. 우리는 너무나 빨리 바울이 자신의 죄의식으로 말이암아 회개하 고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고 생각해 버린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바울의 직접 증언을 도외시한 것이다. 바울은 스스로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 누구보다 특심한 사람이었다. 이처럼 경건하고 흠이 없는 사람이 결단을 내렸는데 그것은 율법의 포기였다.

  바울은 자신의 소명을 구약의 예언자적 부름으로 이해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대개 신의현현은 다음과 같은 요소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이 빛과 영광 중에 나타나며, 그 영광중에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며, 하나님이 임재하는 그 당사자는 무엇을 듣거나 보게되고, 하나님이 주신 임무를 받고, 거기에 대한 반응을 보이게 된다. 그런데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바울의 소명의 요소를 빼고 교회 지도자를 통해서 소명을 받게 함으로써, 바울의 소명에 인간적인 중개 요소를 집어넣는다. 그러나 바울 자신은 인간적인 매개를 허용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소명과 복음의 내용을 받았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있다. 바울은 분명히 구약의 예레미아나 신약의 세례 요한 반열에 자신을 설정하고 있다.


  3. 독자적인 선교활동 시기

  바울은 다메섹에서 소명을 받은 이후 예루살렘 교회 측에 가담하지 아니하고 독자적인선교활동을 펴나간다. 우선 게바를 만나러 예루살렘에 올라가기 전에 약 3년 동안을 아라비아에서 지내게 된다. 아라비아에서의 3년의기간에 대해서는 바울은 침묵을 지킨다. 이 기간 동안에 그의 신학이 정립되고 사역을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이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지역에서 직접 선교에 나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후 14년 동안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서 복음을 전파한다. 이러한 독자적인 전도활동은 유대에 전해져서 바울의 얼굴을 알지못하는 사람들도 바울의 성공적인 사역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이러한 바울의 성공적인 사역이 사방에 퍼지게 되자 당시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였던 바나바에 의해 선택을 받아 이제는 독자적인 선교활동이 아닌 정식 교회의 파송받은 선교사로 일하게 된다.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과는 신학 입장이 달랐다. 상당히 이방인에게 대해서 개방적이며 율법으로부터도 자유롭게 행동하였다. 안디옥에서 비로소 기독교는 유대교와 구분이 되는 정체성을 인정받게 되었다.


  4. 예루살렘 회의

  초대 기독교의 역사에서 예루살렘 회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루살렘 회의에 대한 기록은 사도행전 15장 1절~29절과 갈라디아서 2장 1절-10절에 나오는데 이 두가지의 기록이 상당한 차이점이 있고 그 사건을 보고하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해석이 되고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여야 한다. 갈라디아서에서는 바울이 그의 변증의 목적에 맞게 그사건을 해석하였으며, 사도행전은 누가의 신학적 의도에 따라서 바울의 보고와는 상당한 차이점을 보여주고 있다.

  예루살렘 회의가 개최된 시기는 대체적으로 주후 48년경으로 보고 있다. 그 회의가 있게된 주된 이유는 할례와 토라에 관한 것이었다. 기독교가 이방인의 세계로 전파됨에 따라 이방인들에게 할례와 토라의 의무에 관하여 어떠한 조처를 취할 것이냐의 문제가 생겼다. 사실상 유대지역에서 선교가 행해졌을 때에는 이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경우 이미 태어날 때부터 할례를 받은 상태였고, 토라에 관한한 어렸을 때부터 철저하게교육을 받은 터여서, 예수의 복음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것을 버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방인의 경우 이것은 큰 문제가 되었다. 만일 할례와 토라를 요구할 경우에는 선교에 상당한 차질을 보게 될 것이다. 또한 디아스포라에 있는 유대인의 경우 어떻게 복음을 해석해야 하는가도 중요한 문제였다.

  이러한 이슈에 대한 입장은 대개 세가지로 분류될 수 있었다. 바울 반대파로 대표되는 보수적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그 첫째이다. 그들은 이방인들도 할례와 토라의 범주 안에 들어와야 된다는 강한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경계선을 구태여 그을 필요가없다고 보는 파들이었다. 둘째로는 예루살렘지도부이다. 그들은 게바로 대표되는데 실제적으로 야고보가 실세를 장악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바울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킨 자들의 뿌리가 야고보파에 있다고 볼 수 있는 여러가지 징후들이 있다. 이들은 처음에는 상당히 중재적인 입장에 있었던 것같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바울보다는 보수파에 상당히 기운 것같다. 세번째 그룹은 바울과 바나바이다. 이들은 형식적으로는 안디옥 교회의 대표로서 파견되었지만 실상 이방인 선교의 실권을 쥐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들은 결코 할례와 토라를 이방인에게 지을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취했고, 전략적으로 헬라인 디도를 데리고들어가서 그를 할례받지 않게 함으로 공인을 얻으려고 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보도하는 바에 따르면, 이 회의에서 보수파는 대패를 했고 예루살렘측과 바울측이 손을 잡았다. 그리고 바울은 예루살렘의 가난한 자들을 위한 모금을 해주겠다는 선물을 예루살렘측에 대가로 지불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합의는 얼마 안가서 깨졌음이 분명하다. 야고보가 변심을 했고, 베드로는 바울에게 심한 견책을 받을 정도로 자신의 행동에 책임질 수 없는 태도를 취하였다. 보수파는 대공세를 감행하였고 바울 교회는 상당히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5. 안디옥 사건

  예루살렘 회의에서 있었던 합의가 얼마 안가서 깨지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회의 때부터 예견이 될 수 있었다. 회의 석상에서 일방적으로 패배를 맛보았던 보수파들은 이 회의의 결과를 뒤집기 위해서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했다. 그들은 특히 유대교에 열심이었던 세력들을 중심으로 기독교의 탈유대교화를 방지하기 위하여 사명감을 가지고 덤볐고, 소위 순수한 복음을(바울처럼 사람의 구미에 맞게 복음을 변질시키지 않겠다면서) 지키기 위한 새로운 투쟁이 필요하게 되었다.

  때마침 보수파의 전세를 회복할 기회는 왔다. 베드로가 안디옥을 방문하게 되어 이방 그리스도인과 식사를 같이 한다는 정보가 왔다. 그 장소에 있던 다른 유대인들은 베드로와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고 오히려 주 안에서 한 형제된우리가 함께 식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였다. 바울도 이러한 상황을 만족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야고보파에서 온 어떤 사람들이 등장하자 이러한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금방 깨어지고 말았다. 그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급에 있는 베드로와 같은 인사가 이방인들과 식사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에 이를 통보하고 문제 삼겠다고 위협을 했을지도 모른다. 보수적인 유대인들도 이들이 이렇게 강경하게 나오자 마음이 약해지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베드로는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제대로 정리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를 황급히 떠나고 말았고, 남아있던 유대인들도 그자리를 피하였다. 더욱 바울을 슬프게 한 것은 그렇게 자신과 친밀한 동역자였던 바나바도확고하게 주장을 펴지 못하고 슬그머니 꼬리를 감춰버린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울은 베드로를 책망하고 호되게 질책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바울이 베드로와 이렇게 과감하게 맞섰는지 아니면 갈라디아서의 특유한 수사학적인 표현인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바울진영과 바울외적 진영이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불화를 겪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사실로만 봐서는 바울이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역사적 사실로는 바울이 패배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우선은 바울의 언어 자체가 상당히 흥분되어 있고, 방어적이며, 보수적인 유대 기독교인들이 다 보수파로 기울었음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현존하는 바울 서신 대부분이 연대적으로 볼 때 사건이후에 기록된 것만 남아있는 사실을 보더라도, 이때 승리를 쟁취한 예루살렘 측에서 바울의 영향력을 감소시키기 위해서 그 전까지의 바울의 서신을 정리해버리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해본다. 갈라디아서 2장 11절~14절의 보도 이후에 안디옥에 대한 언급이 없는것을 보아도 바울이 안디옥에서 실질적으로 밀려나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게된다.

  어쨌든, 보수파는 승리했으나 복음의 실현을 위해서는 비극적인 일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사도 바울의 복음의 해석은 옳았다.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술수를 부렸던 보수파의 복음은 사멸되고 보다 개방적인 바울의 복음은계속해서 헬라세계 전체에 퍼지게 되었던 것이다.


  6. 바울의 본격적인 선교여행

  바울은 자신의 서신에서는 구체적인 선교일정에 대해서 밝히지 않고 있다. 단지 우리는 사도행전을 통해서 여정을 복원할 수 있을 따름이다. 제1차 시기에는 약 47년 경으로 바울과 바나바가 함께 동역을 하게 된다. 그들은 함께 안디옥에서 출발하여 실루기아 항구에서배를 타고 구브로 섬에 도착하여 살라미와 바보에서 전도하고, 다시 배를 타고 밤빌리아 지역에 이르러 버가를 거쳐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말씀을 전하고, 거기서 핍박이 심하여이고니온으로 향하여 전도하였으나 그곳에서도 박해가 있어서 루스드라로 향한다. 루스드라에서는 유대인들이 바울을 돌로 쳐서 죽을지경에 이르렀고, 다시 더베로 향하여 거기서 전도하고 다시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을 경유하고, 버가와 앗달리아를 거쳐 다시 안디옥으로돌아오게 된다.

  이 1차 전도 여행에서 특기할 만한 일은 요한 마가라는 인물이다. 그는 바울과 바나바와함께 선교 여행에 동참하였으나 어떤 이유에 의해서 버가에서 홀로 예루살렘으로 떠나버린다. 이 마가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사이에 문제가 생기고 바울은 마가뿐 아니라 바나바도 버리게 된다. 표면적인 문제는 마가의 동행이 이유가 되었을 것이지만 아마도 선교현장에서 오는 경쟁관계의 여러 문제점들이 바울과 바나바사이에 이미 내재되어 있었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쨌든, 여러 이유 때문에 2차 여행(약49년)부터는 바울과 바나바가 갈라서게 된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향하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향하게 된다. 더베와 루스드라에 이르러 디모데를 선택하여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한다. 바울이 왜 여기서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의견도 분분하다. 갈라디아서에서는 바울이 의도적으로 헬라인 디도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갈2:3). 바울은 디도를 이방인으로보았고 디모데는 유대인으로 간주했던 것같다. 바울은 유대인에게 할례를 베푸는 것까지는 반대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바울 일행은 우회하여 드로아에 내려가게 되는데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보게 된다. 마게도니야의 첫 관문인 빌립보에 이르러 유럽의 첫교회를 개척하는 사역을 이룩한다. 바울은 계속해서 데살로니가에 가서 교회를 개척한다. 이후에 베뢰아를 지나 아덴을 거쳐 고린도로 향한다. 고린도에서 바울은 1년 6개월이란 상당기간 동안 목회활동을 한다. 이 고린도 체류는 50년 초부터 51년 여름까지로 예상된다. 다시 에베소를 거쳐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안디옥으로 돌아와서 2차 선교여행을 마감한다.

  제 3차 여행(약52년경)은 안디옥에서 출발하여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지역을 순방하며 교회를 굳게 하고 에베소에 들러서는 두란노서원에서 가르치면서 2년동안 목회한다. 이 기간은 연대적으로는 52년부터 55년까지로 볼수 있다. 드로아를 거쳐 앗소, 미둘레네, 기오, 사모, 밀레도를 경유하여 고스, 로도, 바다라를 거쳐 두로에 상륙한다. 돌레마이를 거쳐 가이사랴를 경유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거기서 체포된다. 이때가 약 56년 봄쯤으로 추측된다.

  로마 여행 길은 예루살렘에서 출발하여 시돈을 거쳐 루기아의 무라성에 이르고 미항을 거쳐 유라굴로 태풍을 만나나 멜리데에서 목숨을 건진다. 수라구사, 레기온, 보디올을 거쳐 로마로 들어가게 되는데, 이곳 로마에서는 58년부터 60년까지 2년동안 수감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약 60년경 네로 치하에서 순교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바울은 약 7년 동안의 선교 여행을 통해서 많은 교회를 개척하고 서신을 통하여 목회활동을 하였다. 이 짧은 기간에 바울은 전 세계를 목표로 그의 선교의 꿈을 실현시키고자 하였다. 예루살렘 교회측의 입장과 비교해 볼 때 바울은 궁극적으로 승리를 거둔 셈이다. 조그만 유대종교의 이단적 소종파로 시작된 기독교가 어떻게 헬라세계 전체를 쉽쓸 수가 있었는가? 우리는 이 점에 대해서 깊이 탐구하여야할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의 핵심 본질을 파헤치는 작업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울의 선교적인 정열과 선교지에서 부닥치는 많은 목회적인 문제점, 그리고 그토록 바울을 괴롭혔던 반대자들에 대한 명확한 해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Ⅲ. 바울의 사상

  1. 바울서신의 성격

  바울은 편지를 썼다. 이것을 읽는 독자들은 그것이 편지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편지를 편지로 읽어야지 그 본질을 밝히 규명할수 있다. 바울을 철저하게 연구하기 위해서는 바울서신을 우선 문학적으로 접근하여야 한다. 성서의 각권은 문학적 장르에 따라여러 특징을 소유하고 있다. 신약성서에는 복음서의 양식이 있는가 하면 사도행전 같은 역사서의양식도 있다. 그리고 똑같이 보이는 양식이라도 저자나 상황에 따라 독특성을 가지고 있다.바울의 갈라디아서를 예로 보면, 어떤 주제에 대해서 설교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변증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사상을 전달하기 위해서 바울은 당시대의 그레코로만의 수사학적인 방법론을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연구자는 갈라디아서가 어떠한 형식을 가지고 어떤 구조로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가고 있는가 하는점을 고려해야 한다. 편지를 편지로 다루지 않고 조직신학 책으로 다룬다면 성서가 가지고있는 원래의 의도를 회석시킬 가능성이 있다. 그밖에도 문학적으로 고려해야 할 여러가지 요소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저자의 언어의 문학적인 기능, 구성상 본문이 차지하는 역할과 기능, 저자의 문학적 기교, 본문에 드러나지 않는 맥락 등을 파악하는 일은 가장 기초적인 훈련이라고 할 것이다.

  더 나아가 바울 서신은 과거의 문서이다. 이서신은 1세기에 일어난 일들을 취급하고 초대교회의 상황을 전제로 하여 우리에게 이야기하고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의 연구자들은 20세기의 눈으로 바울서신을 무리하게 해석하려고 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된다. 1세기의 저자 바울과 그 당시의 청중 혹은 독자의 관점에서 성서를 읽을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하기 위해서는 초대교회의 상황을 가장 적절하게 복원할 수 있는 역사가의 안목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역사적인 정황을 안개가 걷히듯이 명료하게 재구성할 수 있다면 오늘날 신학적으로 문제가 되는 많은 학설들이 명료해지고 설명이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인 재구성을 위해서는 연구자의 전문적인 지식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분야에서 많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된다. 크게는 두가지의 상황을 설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유대교적 상황과 헬라적인 상황이 그것이다. 유대교적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의 고대역사에 대한 지식이 필수적이고 중간기 문학과 예수 당시의 팔레스타인의 유대교에 대한 철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최근들어 관심을 끌고 있는 중간기의 문학에 대한 연구가부각되어야 할 것이다. 슈바이쳐의 연구 이후로 묵시적 종말론의 철저한 이해없이는 바울의 사상을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신약학계의 공통된 견해이다. 헬라적인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역사적 정황과 헬라철학, 헬라종곡 문화, 문학 등 전반적인 지식을 함양해야 할 것이다. 특히 스토아 철학과 견유학파에 대한 연구는 바울서신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보여지고, 필로의 저서와 영지주의에 대한 연구도 충분히 다루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모든 작업이 전문가만의 일이라고 미리 포기할 것이 아니라 성서의 깊은 이해를 위해 거쳐야하는 길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것이다.

  이러한 전반적인 바울서신의 배경에 대한 인식이 전제된 다음 본문의 역사적 상황을 복원하는 작업을 해야한다. 이 본문이 쓰여지게 된 구체적인 역사적 정황을 파악하기 위하여 연구자는 연구하는 책 전체의 목적과 상황 설정에 창조적인 상상력을 동원해야 한다. 이러한 역사적 복원없이는 바울의 이야기는 자칫 해석자의 개인의 의도에 따라 그 본래의 의도가 변형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2. 바울의 반대자들

  바울의 사상은 여러 기독교적인 그룹들과의 논쟁을 통해서 표현되었다. 바울과 대적했던사람들은 비기독교적인, 혹은 타종교의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똑같이 기독교인으로취급되어야 하고 신학적인 입장이 바울과는 다른 사람들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의 반대자들을 연구한다는 것은 바울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접근 방법의 하나이다. 왜냐하면 바울은 이 반대자들을 대상으로 설득하고 논증하고 있으며, 또한 전승을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대자들이 어떠한 사상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이 전승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를 알아보는 일은 바울사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바울 반대자들의 사상은 먼저 바울서신에 나타난 바울의 언어(반대자들의 성격을 규정할수 있는)를 통해 접근 가능하고, 그 언어들의 배경들을 연구함으로써 반대자들의 성격을 규정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바울이 논증할 때 반대자의 논리를 준거로 삼은 언어를 복원해 내고, 그 언어들이 종교사적으로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를 규명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바울의 논리의 초점을 찾아 그의 사상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지금까지의 접근방법 혹은, 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의 바울 반대자들에 대한 논의는 항상 바울의 편에 있었으며, 따라서 결론은 항상 미리부터, 바울은 옳고, 반대자들의 의견은 잘못된 것으로 판정이 나 있었다. 이러한 태도는 바람직한 학문의 태도라볼 수 없을 뿐 아니라 바울의 진정한 모습도 왜곡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초대교회 공동체는 단순하게 옳고 그른 양자의 입장만 존재했던 것만이 아니라, 상당히 역동적이며 다양한 운동이었다. 정통적 교리에 의해서 고착화 된 것이 아니라, 변화와 성장과 발전의 과정을 거친 다양한 현상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바울 반대자의 사상을 좀더 객관적이고 열린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바울의 반대자들이 어떤 태도를 취할 때나 행동을 할 때에,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복음을 어떻게 해석하였는지, 또는 어떻게 원래의 복음을 변형시켰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논리를 조심스럽게 재구성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과제라 아니 할 수 없다.

  바울을 연구하는 사람은 바울과 바울의 반대자의 중간에 서서 그들이 말하고 싶어하는것을 말하게 하여야 한다. 주석자가 바울의 입을 빌어 자신의 견해를 말하는 것은 우리가 가장 경계하여야 할 태도이다. 물론 우리는 우리의 편견과 독단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지만 성서가 주는 메시지를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반성하는 진실된 태도가 끊임없이 요구된다 하겠다.


  3. 초대 기독교 사상과 바울

  초대 기독교의 사상적 맥락에는 세 가지 흐름이 있다고볼수 있다. 각 흐름을 네가지의 요소로 분류해 볼 수 있는데, 종교적인 선이해, 기독론, 교회론, 문학등이다. 그 첫 번째 흐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종교적인 선이해는 '하나님의 나라'로 표현될 수 있으며, 주로 묵시적 종말사상을 가지고 있는 흐름이다. 이 흐름의 예수 이해는 '인자' 사상으로 나타난다. 쿰란 공동체의 사상적 흐름이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교회론적으로는 분파(sect)적인 요소가 강하며, '소명 '을 강조함으로써 공동체 의식이 강하고, 배타성이 강하다. 갈등, 전쟁, 핍박 등의 공동체적 상황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속하는 문학으로서는 주로 예언자적 이야기를담고 있는 부분들과 묵시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구절들이다. 신약성서 각권 별로는 마가복음과 요한계시록 등이 이에 매우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두번째 흐름은 소위 그레코 로만 세계와 관련이 있는 흐름인데 여기서의 종교적인 선이해는 종교적인 기사 이적과 관련이 있다. 종교적 영웅을 등장시킴으로써 그 영웅의 기적적인 탄생, 어린시절, 능력의 사역 등을 부각시킨다. 그래서 기독론도 자연히 이러한 흐름으로 이어져서, 종교적 영웅의 일대기적인 삶을 표현한다. 교회론적으로는 방랑하는 선교사들로 이루어진다. 이들은 한자리에서 꾸준히 목회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여행하며 자기의 영역을 넓히고 그 영역에서 항상 경쟁자들 혹은 대적자들을 만나 논쟁을 통해서 설득하고 승리의 자리를 다툰다. 문학적으로는기적 이야기들, 탄생기사, 이적자료 등이 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고 책으로는 요한복음이 이에 매우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세번째 흐름은 종교적인 선이해를 지혜 전승이나 로고스 전승에 두고 있고, 선재사상을 가지고 있다. 구원을 일종의 신적인 지식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예수 이해는 낮아지셨다가 영광의 우편에 앉아계신 분으로 인식한다. 교회론적으로는 세상에서 분리되어 분파적 성향을띠며 금욕주의적인 경향이 강하고 '저 세상'을 매우 강조하며 영지주의 경향성이 농후하다. 문학적으로 보면 요한복음의 서문, 빌립보서의 그리스도 찬가, 히브리서의 초반부, 디모데전서 등이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세가지 맥락이 신약성서를 관통하고 있는 주요 흐름이라고 볼 수 있는데 물론 이러한 흐름이 선명하게 구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흐름이 신약성서 안에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분명하게 구분할 수 없는 때도 있다. 그러나 초대기독교의 본질을 좀더 명확하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신약성서의 각전에서 이러한 사상적인 흐름이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가를 주의해서 바라보아야 한다.

  바울이 어떠한 맥락을 가지고 있는가를 살펴보기 이전에 우선 복음서의 특징들을 비교해 봄으로써 바울사상의 독특성이 부각될 수 있을 것이다. 마가복음의 경우 바울사상과 매우 유사한 특징을 보이고 있다. 마가복음의 종교적 선이해는 묵시적이다. 마가복음 1장13절에 보면 예수께서 광야에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예수께서 들짐승과 함께 계시고, 천사들이 수종을 든다. 이것은 묵시문학을 읽은 사람에게는 상당히 익숙한 장면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묵시문학에서는 사단과 어두움의 세력과의 전쟁이 강하게 나타나고 종말론적인 색채가 강하다. 묵시문학에서의 구원은 인간중심적인 개념이 아니라 우주론적인 개념이다. 구원은 우주론적 조화, 즉인간과 짐숭, 인간과자연, 피조물 모두가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이다. 나아가, 마가복음13장을 보면 묵시적 사상의 핵심에 와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가복음의 또 하나 특징은 예수 이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수는 첫 사역을 가르침으로시작한다. 회당에서 그의 가르침을 듣는 사람들은 예수의 교훈에 놀라고 구세대의 가르침과는 다른 새로운 가르침이라는 사실에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는다(막1:21~22). 마가복음에서는 기적 이야기도 어떤 놀라운 사건에 그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가르침에 목적을 두고 있다. 마가는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세상에 알리시는 것으로 이해한다. 귀신을 쫓아내는 것과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연결시키는 것은 예수에게서 독특한 것이다. 마가는 또한 베드로의 예수 이해를 거부한다. 마가복음 8장 29절에서 "주는 그리스도"라는 베드로의 고백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경계하고 31절에서 '인자'이해, 즉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을 말한다. 10장 45절에는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는 해석을 가하고 있다. 마가의 예수 이해는 사도들의 예수 이해, 예루살렘의 예수 이해와는 달랐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것을 지역적으로분석해 보면 갈릴리의 예수 이해와 예루살렘의 예수 이해가 달랐다고 볼 수 있다. 마가복음은 이런 의미에서 반 사도적인 복음이라고 볼수 있고, 이점에서도 바울과는 상당히 입장을같이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마태복음은 바울과는 여러모로 상반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유대교에 대해서 상당히 경쟁적인 입장에 있으면서도 유대적인 신학적 방법론을 많이 따르고 있다. 마태복음은 마가복음과 Q자료를 이용해서 엮어졌지만 나름대로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마가복음에는 예수탄생 이야기가 전혀 나타나 있지 않으나 마태복음에서는 예수의 탄생을 상당히 자세히묘사하고 있다. 예수의 기원을 신적인 영웅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마가복음에서의 '하나님나라'가 여기에서는 '하늘나라'로 변경되고 있다. 그리고 주로 유대적인 전승을 많이 이용하고 해석하고 있다. 가장 독특한 특징은 율법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행함에 비중을 둔 신학을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서, 마태복음 7장 21~29절에 보면 예수께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한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선지자 역할을 했다,귀신을 쫓아냈다, 권능을 행했다고 한다 할지라도 이러한 고백은 즉각적으로 거부되고 '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고 말씀하신다. 마태는 그 복음서를 끝마칠 때도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행할 것인가에 관심을 갖고 있다(마28:19-20). 마태복음은 신학적으로 볼 때 바울과 매우 상반된 관점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누가 문서는 마가복음과는 달리 사도적인 시각을 매우 중요하게 보고 있다. 교회가 제도화 되어가면서 신학도 경직화 됨을 볼 수 있는데, 예루살렘을 중심으로한 보수적인 신학과바울중심의 개방적인 신학이 누가에게서 화해가 추구되고 기독교회의 통일성을 추구하는 모습이 역력히 보인다. 누가는 바울을 변호하고 있지만, 그의 신학적 입장은 예루살렘 교회측의 의도에 많이 따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바울은 과연 어떤 흐름을 타고 있는가? 바울서신은 기독교 공동체의 첫 기록이다. 그래서 초대 기독교 운동의 핵심적인 사상을 이해하는 데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바울사상은 종교적인 선이해에 있어서 의인의 고통과 죽음에 대한 해석을 가하고 있다고 볼수 있는데 그 뿌리는 두 가지의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헬레니즘적 유대교적인 순교론의 맥락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에서는 순교가 '어떤 사람을 위해' 죽는 것을 말한다. 즉 대속의 죽음이다. 헬라의 애국적 종교에서 이러한 것들이 발견되며, 마카비4서에서도 발견된다. 또한 유대 종말론적인 각도에서도 이해될 수 있는데 죽음과 부활을 새시대의 시작으로 보는 해석이다. 위의 두가지 방향중에 어느 것이 바울의 핵심이냐에 대한 논란으로 그간 바울학계는 양분이 되어왔다고 보아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4. 바울사상의 핵심

  지금까지의 바울신학의 대부분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 신학을 기초로 형성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루터적인 해석에 의해서 영향을 받고 그 카테고리를 벗어나려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바울에 대한 루터적인 해석에 만족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동안 많은 바울 연구자들이 얼마나 자신의 카테고리 안에 갇혀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예이며, 더 나아가서는 연구자의 태만으로 볼 수밖에 없다.

  로마서를 살펴보자. 지금까지 로마서를 읽는 대표적인 독서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1장부터 4장까지는 예비적인 서언으로 보고 5장부터 8장까지 의인론을 로마서의 중심사상으로 보아왔다. 그리고 9장부터 11장에서는 유대인의 위치를 설명해주는 것으로 보고 12장 이하는 윤리적인 가르침으로 인식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독서법은 새롭게 조명되어야 한다. 로마서 1장 17절까지는 서론으로 보고 1장 18절부터 4장 25절까지는 가장 중요한 주제를다루고 있는 핵심으로 보아야 한다. 5장은 결론적인 장이며 6-8장은 위에서 제기된 이유에 따라 야기된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9-11장은 이스라엘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12장 이하는 윤리적인 문제를 다루고있는 것이다.

  핵심적인 부분을 살펴보면, 로마서 2장 9-10절에는 유대인과 헬라인을 대조하면서 서술하고 있다. 2장 11절에는 하나님께서 외모로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신다는 논지를 설전하면서, 계속해서 3장 29~30절에서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 뿐이시뇨 또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뇨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는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1장부터 3장까지익 진정한 결론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동일한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로마서 4장 5절도 이와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바울사상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하나님께서는 경건치 아니한 자를 옹호하신다. 로마서의 핵심적인 논지는 하나님께서 유대인만을 돌보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을 위해 존재하신다는 것이다. 로마서 9~11장에서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의 일을 모든 민족에게 부여하신다는 것을 논증하고 있다. 로마서 10장 11절에도 유대인과 헬라인에게 차별이 없다고 선언한다.

  바울은 복음의 기능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 기능을 설명하기 위해서 바울은 민족주의적인 논증을 사용하고 있다. 그는 유대인, 의인, 깨끗함, 거룩, 남자, 율법 등의 용어를 모든 민족, 죄인, 어두움, 종됩, 여인등의 언어와 대조하여 사용함으로써 그의 사상의 본질을 나타내고 있다. 죄의 파괴적인 능력은 위와 같은 자랑하는 요소에 깊이 박혀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나눔의 언어를 깨뜨리고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기 위해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셨고 부활하셨다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2장 11~21절도 동일한 맥락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본문에 나오는 그 유명한 의인론은 갈라디아서의 상황의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우리는 너무 성급하게 의인론이 바울사상의 핵심이며, 둘째될 수 없는 우선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여 다른 많은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려는 시도를 하지 못하고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 본문에 나오는 바울의 의인론은 갈라디아서 1장과 2장을 이어가는 흐름에 속해 있는 것이지 결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금의 의인론은 유대 기독교 신학적인 맥락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바울은 15절에서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유대인이요, 이방인은 죄인이다라는 사실을 선언적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수사법의 형태는 유대인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바울은 3장 1절 이하에서는 갈라디아 사람들을 향하여 전혀 다른 형태의 논증을 감행하고 있다. 2장 21절과 3장 1절 사이의 단절성은 너무나도 분명하여 이것이 연결된 서신인가에 회의를 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한 것은 바울이 2장 15-21절과 3장 1절이하에서 각각 다른 형태의 논증을 추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어쨌든, 바울은 본문에서 의롭게 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율법의 행위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대비하고 있다. 개역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번역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이라고 번역해야 정당하다(πιστεωζ Ιησου Χριστου). 이것은 헬라어 자체를 볼 때도 정당한 것이지만, 바울의 묵시적 사고체계를 고려해 볼 때도 정당하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 23절에도 "믿음이오기 전에", 25절에 "믿음이 온 후로"라는 묵시적 표현을 쓰고 있다.

  바울의 의인론이 유대인들과의 논쟁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될 수밖에 없었던 사상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바울사상의 핵심을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서 찾는 것이 정당하다고 보여진다. 바울은 역사적 예수전승을 거의 쓰고 있지 않으며, 단지 예수에 대한 신학적인 해석을 하고 있다. 복음서에서는 예수가 기적을 일으키는 자로 표현되고 있으며, 특히 Q자료에서는 주로 예언자적이며, 묵시적인 담론과 지혜격언, 비유 등이 나온다. 지혜적인 자료와비유같은 경우 그 독특한 성격 때문에 역사적 예수를 연구하는 자료로서 상당한 진정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바울에게 있어서는 역사적 예수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다. 대신에 새시대의 도래를 시작하는자, 메시야적인 임무를 가진 자와 더불어 고양된 예수의 상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십자가와 부활의 신학으로 정리되어질 수 있다. 바울의 부활에 대한 해석은 헬레니즘적인 사유와는 구별된다. 헬레니즘적으로 부활을 이해하면 부활은 기적사건에 초점을 맞추어야한다. 그러나 바울은 부활을 그런 식으로 이해하지는 않는다. 만일 부활이 기적적인 사건으로만 이해되어야 한다고 바울이 생각했더라면 바울은 부활의 증거에 대해서 논증했을 것이다. 바울은 오히려 거꾸로 그의 논증을 이끌어나간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상당히 세밀한 부활 논증을 하고있다. 바울은 예수의 부활에서 하나님의 통치의 시작을 보고 있다. 부활은 죄의 능력으로부터의 구원과 관련을가져야 한다. 바울에게서 사망은 죄의 파괴적인 능력을 뜻하며, 삶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창조된 것을 말한다. 하나님 한분만이 우리에게 살리시는 능력을 부여하실 수 있다. 부활은 삶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의 삶은 하나님의 임재로 말미암은 삶의 질적인 변화를 이야기한다. 로마서 8장 10절에 보면 "또 그리스도께서 너회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9절의 논리에 따르면 "하나님의 영"이다.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살리시는 능력이다(고전15:49). 부활은 우리 안에 들어오시고, 우리를입히시며, 사망을 이기시는 하나님의 살리는 능력이다. 부활의 궁극적인 의미는 하나님의 통치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구원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배타적인 권세, 통치, 능력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의 통치의 시작의 표징이다. 이러한 사상적 구조는 묵시적 종말론의 맥락을 이어받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5. 바울 윤리

  지금까지 바울의 윤리에 대한 신약학자들의 해석은 직설법과 명령법의 관계성에 대한 연구에 집중된 경향이 있다. 그러나 바울윤리에 대한 그러한 해석은 바울의 윤리적 교훈에 대해서 지나치게 신학적인 기원만을 강조하고있다는 데 문제성이 있다. 학자들은 바울 윤리에 대해서 바울의 신학을 우위에 두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그들은 윤리적인 문제들이 신학적인 사유와 명료화에 주요한 동기가 된다는 점올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바울의 윤리적인 사고가 그의 신학에 통합되어 있다는 것은 맞다.그러나 그것들 사이의 관계가 마치 신학이 윤리적 함축성을 생산해 내는 것과 같은 일방통행식의 관계는 아니다. 바울의 신학은 그로 하여금 구체적인 행동양식에 관하여 생각하게한다. 마찬가지로 바울이 기독교인의 구체적인 삶의 양식에 관하여 관심가질 때 그는 신학화의 길을 걷고 있다고 봐야한다.

  더구나 지금까지의 바울 윤리 해석에 있어서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바울 윤리에 있어서 사회학적인 영역에 대해 무관심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윤리적인 가르침을 형성할 수 있도록 자극이 되었던 교회 안의 실제 도덕적인 문제에 민감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기독교 공동체의 역사적인 문제를 인식하고 있기는 하였으나 바울의 신학적인 사고에만 강조점을 두었지 초대 기독교인들의 실제 삶의 양식에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다. 바울의 가르침이 발전되고, 그 가르침이 행해진 사회적 상황에 대한 해명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바울의 신학과 윤리는 둘 다 그의 공동체에서 그가 파악한신학적이고 도덕적인 문제들에서 파생되었고,또 그것들에 대한 응답으로 나온 것이다. 다른말로 말하면, 바울의 신학과 윤리는 바울 공동체의 사회적 상황과 좀더 분명하게 관련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바울의 윤리적 사고는 당시의 사회적 상황에만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바울과바울의 교회 공동체가 동시에 공유했던 기독교 전승의 해석에 의해 좌우된다. 바울의 윤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에토스와 바울과 공동체가 공유한 기존 전승과 바울의 신학적 사유와의 관계가 고려되어야 한다.

  이와같은 이유들 때문에 바울의 윤리에 대한 해석 작업은 매우 복잠하다. 이것은 더 이상 직설법과 명령법의 변증법으로만 설명될 수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상황에 대한 적용으로 시도되는 것도, 기독교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바울의 구체적인 윤리적 가르침이 대부분의 헬라시대 도덕 교사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바울의 윤리는 에토스와 전승과의 상호관계에 의해 생겨난 것이며, 결과적으로 이 윤리는 계속해서 새로운 에토스의 형성에 이바지하게 되는 것이다. 바울 공동체의 실제 삶의 양식이 더욱 세밀하게 초점이 맞추어지면 질수록, 그 안에서 형성되고 정제된 윤리적 가르침을 좀더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의 윤리는 바울신학의 부록이나 실제적 적용 정도로만 인식되어서는 안될 것이고, 처음부터 중요한 요인으로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퍼니쉬가 명확하게 지적한대로, 바울의 윤리가그의 신학에 통합되어 있고, 그 신학과 땔수 없는 관계에 있다면, 그 반대도 성립되는 것이다. 바울신학은 기독교인의 삶의 구체적 실현과 동떨어질 수 없다. 바울에게 있어서 신학과 윤리의 관계성은 발전될 수 있다. 바울신학은 초대교회의 실제 삶을 적절히 통제하기 위한 기준을 발견하기 위한 윤리적 문제로부터, 그리고 전승과 에토스의 상호관계로부터 발생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전의 해석이 바울 윤리의 문제를 단지 신학과 윤리의 관계성이라는 측면에서만 보았다면 그것은 너무 추상적이다. 그들은 바울 공동체의 에토스와 전승에 적절한 관심을 기을이지 못했다. 그들이 그것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므로 바울이 그 공동체의 에토스와 전승과씨름하고 있다는 사실의 중요성을 놓친 것이다. 바울의 직설법과 명령법은 선물과 요구 혹은 시작과 실현과도 같은 일차원의 서술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에토스와 전승의 복잡한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우리는 바울 공동체가 다양한 본문과 전숭을 사용했다고 상상할 수있다. 그리고 에토스는 이러한 전승들로부터 유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들어, 어떤 전승이 고린도 교인들에 의해 채택되었을 때, 그것은 고린도의 에토스를 정당화하는 데 근거를 제공한다. 그러나 똑같은 전승이 바울에 의해서 사용될 때, 고린도 교인의 에토스를 비판하는 데 쓰인다. 바울의 명령법은 그의 공동체의 에토스에 대한 비평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바울의 윤리를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울 공동체를 역사-사회적인 접근방법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날 바울윤리에 있어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바울 공동체의 에토스에 대한 연구이다. 바울의 사고, 바울 공동체의 에토스, 그리고 그들의 전승의 삼차원적인 관계성이 논의의 초점이 된다면, 해석자의 과제는 본문을 해방시켜서 그것이 초대교회에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의 교회에도 적용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Ⅳ. 맺음말

역사적 예수를 바로 이해하는 일이 상당히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지만, 역사적 바울을 정확히 이해한다는 것도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하지만 예수 연구와 바울 연구는 분명히 자료 접근상의 차이점이 있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아무런 직접적인 자료를 남기시지 아니하셨다. 단지 2차적인 자료를 통해서 그분의 원래의 모습의 복원에 도전할 뿐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가 직접 남긴, 초대교회에서 가장 최초의 자료가 신약성서에 남아 있다. 그러므로 바울의 진실된 모습을 복원하는 작업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여러가지 해석상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실망하지 않고 도전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초대기독교의 본질을 규명하는 데 있어서도 바울의 직접적인 자료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또한 앞으로도 많은 도전이 될 것이다.

  바울은 현대의 연구가에게 기독교의 원초적인 성격을 변질시켰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던적이 있고, 일부 여성신학자에게는 남성우월주의의 사고에 사로잡혀 있었던 사람이라고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바울은 1세기 당시에도 많은 교회의 반대자들과 싸워야 했고 시대정신과 싸우면서 복음을 전하는 데 반평생을 바쳤다. 바울은 시대가 흐름에 따라 시대의 정신에 의해서 해석되고, 그 시대에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도 바울은 수수께끼 같은 신비적인 인물로 우리 앞에 서있다. 그 바울은 정당하게 해석되어지길 요청하고 있다. 교리적인 편견이나 지나친 상황화에 의한 제물이 되길 거부하면서도 오늘도 의연히 우리 앞에 서있다. 바울을 연구하는 모든 사람들은 바울을 연구하기 전에 겸허히 자기 비판의 과정을 통하여서 진정한 바울의 모습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


(주)

1. 역사적인 접근 방법은 우리로 하여금 바울이 살았던 시대상황과 역사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도록 도와주며,바울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정당한가를 스스로 검증하고 비판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역사 비평에 관하여는Edgar Krentz, The Historical-Critical Method (Philadelphia: Fortress, 1975)를 참조하라.

2. 역사적인 접근방법이 바울 연구의 객관화를 도와준다면, 해석학적인 접근방법은 좀더 주관적인 면을 보완한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인 접근방법이 '바울이 무엇을 말하는가? '를 찾는 방법이라면, 해석학은 저자의 경험에 관심을 기울인다. 또한 해석학에서는 해석의 지평이 바울에게 뿐만 아니라 해석자에게 까지 넓혀진다. 해석학에 대한 논의를 좀더 알기 위해서는 PauI J. Achtemeier, An Introduction to the New Hemeneutic (Philadelphia:Westminster, 1970); Donald K. Mckim, A Guide to Contemporary Hemeneutics (Michigan:Grand Rapids, 1986)을 참조하라.

3. Ferdinand Christian Baur, Paul the Apostle of Jesus Christ Ⅰ, Ⅱ (London : William S Norgate, 1875-1876)을 참조하라.

4. Leander E. Keck "Images of Paul in the New Testanment," Interpreation 43/4 (Goober,1989):341.

5. 헬라시대의 역사와 종교에 대해서는 Helmut Koester, History, Culture and Religion of the Hellenistic Age(Berlin:Walter de Gruyter, 1982)를 참조하라.

6. 헬라종교에 대하여는 특히 Walter Burken, Greek Religion (Cambridge : Harvard University Press, 1985)롤 참조하라.

7. 도덕적 실험주의는 고린도교회에서 보는 바와같이 윤리의 기준이 없어지고 여러가지 삶의 양태가 행해지는 것을 말한다. 전통적인 가치체계가 몰락하고 새로운 기준에 의해서 삶을 평가하게 되면 이 전에 경험하지 못하였던 많은 새로운 것들이 삶의 현장에서 시도되게된다. 예를 들면, 채식주의자들이 생긴다든지, 아비의어미를 취한다든지, 우상에 바친 제물을 먹는다든지,성에 대한 자유를 만끽한다든지, 반대로 아주 금욕적이 된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8. 최근에 바울 당시 유대주의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지금까지의 유대주의 연구가 너무 기독교적인 편견에 의해서 왜곡되었다는 점을 반성하고 있다. 유대교를 연구할 때 기독교를 변호하기 위한 입장에서가아니라유대교적인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눈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9. Beker는 바울의 회심사건이 바울사상을 이해하는 관문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바울이 세계선교에 나서게 된 것은 그의 회심 체험을 통해서가 아니라 복음에대한 소명을 통해서이기 때문이다. C. Beker. Paul the Apostle (Philadelphia : Fortress, 1980), p.10 참조하라.

10. 여기에 대한 논의는 다음을 참조하라. Jacques Dupomit, "The Conversion of Paul, and ie Influence onhis Understanding of Salvation by Faith," in Apostolic History and the Gospel, Biblical and Historical Essays Presented to F. F. Bruce on His Sixtieth Birthday, ed. Ward Casque and Ralph p. Martin. (Grand Rapids:Eerdmanns,1975); Paul Aubin, Le probleme de la conversion (Paris:Beauchesne 1963).

11. 예언자적 소명에 관하여는 Johannes Lindblom, Prephecy in Ancient Israel (Philadelphia: Fortress, 1962)를 참조하라.

12. 예루살렘 회의에 대한 연구는 L. Knox. St. Paul and the Church at Jenusalem (Cambridge : Cambridge University, 1925)를 참조하라.

13. Hans Dieter Betz, Galatians : Commentary on Paul's Letter to the Churches in Galatia (Philadelphia:Fortuness, 1779)는 이러한 각도에서 갈라디아서를 연구하였다.

14. 다음을 참조하라. Rudolf Bultmann, "The Problemof Ethics in the Writings of paul," The Old Man and New Man in the Writings of Paul (Richmond:John Knox Press, 1967; Hans Windisch, "Das Problemdes paulinischen imperatives." ZNW 23 (1924) ; Victor Paul Furnish, Theology and Ethics in Paul(Nashville Abingdon Press, 1968), p. 279.

15. Furnish, Theology and Ethics in Paul, p.225.

16. 이점에 관하여는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상세히 다루고 있으므로 참고하기 바란다. "Ethos and Traditions in Pauline Ethics : A Study off Corinthians 6:12-20"(Drew University, 1990). 


http://m.blog.daum.net/lbts5857/38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