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

- 누가복음 10:1~24 -

샬롬선교회 


[누가복음 10:1-12] “1. 그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2.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3.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4.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5.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6.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7.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8.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고, 9.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10.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11.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 날에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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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말씀에는 네 가지 사항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 70명의 제자를 파송할 때의 지시(1~12)

9:1~6에도 '열두 사도의 파송' 기사가 있는데,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로 파송에 있어서의 지시가 주어집니다. 긴급성과 우선순위의 관점에서 지시가 주어지는데, 예수님은 받아들여질 경우와 거절당할 경우의 대처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전자의 경우,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그곳에 머물러서 제공된 것을 받으라는 지시이고, 후자의 경우에는 '발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관계의 결정적 단절, 즉 무관함을 나타내는 상징적 행위"입니다.

참고로 '평안을 받을 사람'은 반드시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우호적인 사람,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사람, 협동심이 있는 선한 사람을 뜻합니다.

 

(2) 불신앙의 도시에 대한 예수님의 책망(13~16)

보내는 제자들에게 듣는 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제자들을 거부하는 자는 예수님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보내신 분(아버지)을 거부하게 되는 구조적 관계에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마을들(고라신, 벳새다, 가버나움)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거부할 경우,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된 소돔, 두로, 시돈보다 더 무겁다고 말씀하십니다.

 

(3) 70제자들의 보고(17~20)

제자들은 돌아와서 예수님께 보고할 때, 주님의 이름을 사용하면 악한 귀신도 복종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런 일로 기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고 명령하십니다.

 

(4) 아버지께 대한 찬양(21~24)

성령으로 말미암아 기쁨에 넘쳐 말한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이라는 말은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은 20절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하는 점입니다.

 

보냄을 받은 제자들이 '기쁜 마음으로 돌아와' 예수님께 보고했습니다. 그 보고의 내용은 주님의 이름을 사용하면 악한 귀신들조차도 자신들에게 복종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것으로 기뻐하지 말라. 오히려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기쁨'으로 삼는가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말해줍니다. , 그 사람이 무엇을 소중히 여기며 사는지(가치관), 무엇을 목적으로 사는지(일의 목적)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역의 효과와 결과를 예수님께 보고했을 때, 예수님은 그런 눈에 보이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오히려 '하늘에 이름이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기쁨'은 일(Doing)의 눈에 보이는 결과로서의 기쁨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Being)의 기쁨을 표현한 것입니다.

 

2. 21절의 "이것을"이란?

 

본문, 21"이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존재로서의 기쁨'이란 어떤 의미일까? 그 의미를 예수님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기쁨이 넘쳐서 아버지를 찬양하는 이유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이 부분(21)을 여러 성경 번역을 통해 살펴봅니다.

[新改訳] "... 이것들을 지혜 있는 자들과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겨 두셨다가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여. 이것이 아버지의 뜻대로 된 것이었습니다.

 

[岩波訳] "왜냐하면 주님은 이러한 일들을 지혜자와 슬기로운 자들에게 감추시고 어린아이들에게 드러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렇게 해서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프란치스코会訳"당신께서는 이러한 일들을 지혜로운 자들과 현명한 자들에게 숨겨두셨다가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셨나이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은 오직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뜻이니이다''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다'는 동의어입니다.

'어린아이들', '영아들', '작은 자들'은 여기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에게 계시된 것은 바로 '이것들'입니다. ,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예수님은 22절 이후에서 더 설명하십니다.

 

[본문, 10:22-24] “22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군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23 제자들을 돌아보시며 종용히 이르시되 너희의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여기서 말씀하시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알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곳에 초대받은 자들도 그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아는 관계'에 초대받은 것입니다. 그것은 영원한 사랑의 관계(영원한 생명)를 의미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영원한 사랑과 신뢰의 관계를 가지고 계십니다. 거기에 제자들이 초대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관계를 실현하고 지탱해 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기쁨이 넘치도록' 이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관계로 초대받은 제자들을 향하여 '은밀하게' 털어놓으셨습니다. "너희 보는 눈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보는 눈'은 이 비밀을 아는 자, 이 비밀을 경험할 수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은 존재 전체를 나타내는 히브리적 표현입니다.

 

서로 안다'는 관계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의 비밀이며, 과거 구약의 수많은 선지자와 왕들이 이 사실을 알고 싶어 했지만 누구에게도 계시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감추어진 영원한 비밀이 이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계시되어 그것을 알고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이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게다가 여기서 '기뻐하라'는 현재형 명령으로, '계속 기뻐하라'는 의미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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